2010년 5월 30일 일요일

[띄어쓰기] 싶어지다, 싶어하다


※ 메모:
  1. 일반적으로 '-어 지다'는 '본용언+보조용언'의 구조이므로 한글맞춤법에 따라서 띄어 쓸 수도 있고, 붙여 쓸 수도 있습니다.
  2. 다만, 형용사'-어 지다' 구조와 '-어 하다' 구조가 붙는 경우에는 붙여 씁니다.
[ex]
  • 좋다 → 좋아지다, 좋아하다
  • 깊다 → 깊어지다,
  • 싫다 → 싫어지다, 싫어하다
'싶다'는 보조형용사입니다. 일종의 형용사이지요. 그래서 '싶어지다, 싶어하다'처럼 씁니다.
  • 밥이 먹고 싶다.
  • 밥이 먹고 싶어지다.
  • 밥을 먹고 싶어하다.
[주의] 아래아한글에서는 '싶어하다'에 빨간 줄이 그어지기 때문에 틀린 것으로 오해하게 되는데 붙여 쓰는 것이 맞습니다.

.... 이상 위 출처의 자료

※ 메모: 다른 예들을 더 찾아볼 수 있겠다.
  • 부끄럽다 → 부끄러워지다, 부끄러워하다
  • 지겹다 → 지겨워지다, 지겨워하다
  • 부담스럽다 → 부담스러워지다, 부덤스러워하다

프랑스어 표기에서 e (어, 으)

자료: 세계의 말과 글, http://iceager.egloos.com/1236197


※ 검색한 자료의 일부 내용을 본 블로그에 기록해 둡니다.

***

(앞의 글 생략) 프랑스어의 [œ]와 [ø]는 현실 프랑스어에서 무강세 음절에 오는 모음 [ə]와 발음이 거의 같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œ]와 [ø]는 '외'로, [ə]는 '으'로 적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어의 [ə]는 강세가 없는 e에 쓰이는데, 이 모음은 탈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어의 [ə]는 '어'로 적는데 반해 프랑스어의 [ə]는 '으'로 적게 한 것이다.

이런 외래어 표기법 규정은 프랑스어의 토박이말을 적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Brian처럼 다른 언어에서 온 말의 발음에서 원어의 [ə]를 흉내내기 위해 [œ] 내지는 [ə]를 쓴 경우는 상당히 애매해진다.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에도 '어'를 사용해야 할까?

아마 가장 흔한 예는 영어, 독일어 등에서 온 이름이 -er로 끝나는 경우일 것이다. 프랑스 가수 Mylène Farmer는 '밀렌 파르메르'로 보통 쓰지만 사실 Farmer는 영어식 예명으로 발음은 [faʁmœʁ]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발음에 상관없이 [ɛʁ]로 끝나는 것처럼 '에르'로 적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워낙 이런 예가 많고, 하나하나 발음을 확인하기도 어려우며 사람에 따라 [œʁ]로 발음하기도 하고 [ɛʁ]로 발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Léon Warnant의 프랑스어 발음 사전 Dictionnaire de la prononciation française dans sa norme actuelle에서는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ajzənɔwœʁ]로 발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흔히 [ɛzɛnɔ(w)ɛʁ]로 발음된다고 적고 있다.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프랑스어에 들어온지 오래된 단어일수록 프랑스어식인 [ɛʁ]로 발음하고 최근 들어온 단어일수록, 또 발음하는 사람이 영어 발음을 더 잘 알수록 영어 발음을 흉내낸 [œʁ]를 쓰는 듯하다.

기존 외래어 표기 용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면 Kouchner를 '쿠슈네르', Honegger를 '오네게르'로 표기하도록 하는 등 영어독일어에서 온 이름의 -er는 대체로 '에르'로 적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œʁ]보다는 [ɛʁ]로 발음되는 경우이겠지만 앞으로도 '에르'로 통일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이하 생략)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

자료: http://mirror.enha.kr/wiki/한글로%20표기할%20수%20없는%20발음

접속일: 2010.05.30

※ 메모: 하이퍼링크는 위와 같으나 출처는 찾아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참고로 찾은 자료인데 다시 검색할 수 없을까 염려되어 블로그에 스크랩해둔다.

***

한글로 발음을 구별하거나 온전히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을 나타낸 페이지이다. 이곳의 예는 한국어 만능론의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은 없다'는 주장에 대해 간단한 반례로 사용될 수 있다.(물론 저 주장 자체가 완전히 터무니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글은 어디까지나 한국어로 된 언어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표기 수단이다. 그 때문에 한글은 한국어 내지는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존재하지 않는 발음을 표기할 수 없으며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위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꿈과 달리 오히려 한국어 안에서도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이 있다.

디씨인사이드에서 초창기의 토마티를 비롯하여 몇몇 누리꾼들이 ㅸ,ㆄ,ㅿ를 이용하여 V, F, Z 등을 표기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으나 대개의 경우 무의미한 시도라고 여겨져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왜냐면 글로는 쓸 수 있으나 자판으로 타이핑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효율성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가 의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언어' 간의 발음은, 설령 1-1 대응이 가능하고 닮은 발음이 있다고 해도(ex : あ - 아) 그 두 발음이 100%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례로 일본어의 'つ'는 표준 표기법으로 '쓰'이지만 일본어의 'つ'와 한국어의 '쓰'의 발음에는 (실제로 인지할 수 있을만한) 차이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언어의 발음을 신경쓰며 표기법을 수정하는 일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또한 중요하게 지적할 점은 한글 만능론(또는 한글의 표음능력에 대한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문자의 확장변용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문자와 그 문자가 나타내는 발음의 관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약속일 뿐으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을 표기문자로 수입한 아무개 언어X가 있다고 하자. 이 언어에는 한국어에 없는 v음이 매우 자주 쓰이고, 반대로 한국어에 있는 자음의 거센소리/된소리 구분 ㅋ/ㄲ 은 없으며, 모음에서 ㅓ소리는 없고, ㅔ소리는 한국어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언어에서는 쓸모없는 된소리 글자 ㅃ를 [v]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변용하고, ㅔ소리를 나타내는데 획수가 많은 ㅔ보다 ㅓ를 쓰는 등의 변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드시 한 글자가 한 소리에 고정되어 있을 까닭은 없는 것이다. 또한, 기존자모로 나타낼 수 없는 음이 있다면 새 자모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무수히 많은 언어표기에 쓰이는 라틴 문자는 나라마다 다양한 확장과 변용표기를 볼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한글은 다른 언어표기에 부적합하다는 반론이 나오면 확장및 변용표기를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문제점은 적절한 확장, 변용, 개정과정을 거치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문자들(...)도 똑같은 표음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맘먹고하면 다들 가능하다. (그 가운데 라틴 문자는 5대륙의 거의 모든 언어에 대한 어지간한 용례가 다 있다) 다만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안 할 뿐이다. 일반언어의 문자는 그 음성언어를 시각적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하면 훌륭한 것이다. 모든 언어의 발음 표기라는 부분에 방점찍히신 분들은 이미 IPA라는 음성학 전용 결전병기(...)가 있으니 그걸 익혀서 음성학을 공부하면 된다.

외래어에 한해서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어 발음으로 내지 않고 외국식 발음을 일부러 티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예를 들어 오뤤지라든가...오뤤지라든가...)이중언어 사용자거나, 외국에서 오래살아서 한국식 발음에 익숙치 않아 익숙한 외국식 발음에 의존하는 경우가 아닌 토종한국인이라면... 그냥 싸구려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국어파괴에 가까운 짓인데 한국어 인토네이션과 발음에 동화되지 않은 외래어는 그냥 외국어일뿐이다. (한번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는 중국어로,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는 일본어로, 외래어도 제각기 들어온 나라 발음에 따라 발음해 보시기 바란다 그게 한국어가 되겠나?)

또한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음(=곧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영어나 일본어,중국어등 한
국과 역사,경제적으로 접촉이 많은 몇몇 강대국 언어에 국한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가를 알 수 있다.(결국 강대국 언어를 더 잘 배울 수 있게 우리말을 거기에 맞춰 개조하자는 것밖에 안되니)

....그래도 너무 기죽지 말자... 세종대왕님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은 약간만 응용하면 학이 우는 소리와 바람이 부는 소리도 표기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확실히 다른 언어들보다 발음 가능한 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글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임을 기억하자.



  • 영어의 F,P / R,L / B,V발음
    F,P는 "ㅍ", R,L은 "ㄹ", B,V는 "ㅂ"로 표기할 수 밖에 없다. 초기 한글에는 분명히 비슷한 발음을 표기하는 자도 있었으나 정작 우리말에서 그 발음들이 차차 사라지면서 사어가 되었다. f, r, v 발음을 p, l, b 발음과 구분하기 위해서 ㅇ을 앞에 붙인 겹자음(ㅇㅍ, ㅇㄹ, ㅇㅂ)도 있었지만 역시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 영어J,Z 발음
    J와 Z은 귀로 듣기에도 명확하게 발음이 다르나, 한글로는 똑같이 "ㅈ"으로 표기된다.

  • 영어의 'Th' 발음
    이것은 세타(θ)와 eth(ð)의 두 가지 발음이 존재한다. 그런데 단어에 따라 발음이 달라서 어떤 낱자로 써야 할 지 애매한 경우도 많을뿐더러, 특히나 세타 발음의 경우에는 발음 자체가 한국에서 발음하는 것과 너무나 달라서 적절한 단어를 쓰기가 어렵다. 굳이 가장 비슷하게 쓰자면 반치음(ㅿ)정도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보통 'ㅅ'/'ㅆ'로 쓴다) 역시 쓰기에 애매하다. eth(ð)발음의 경우는 대개 "ㄷ"으로 쓰인다.

  • 영어의 'Ye' 발음
    역시 모음만으로 이루어진 발음임에도 불구, 한국어 글자로 옮길 수 없는 발음이다. '으'도 '유'도 '의'도 아니기 때문. 굳이 한글로 표현하자면 '얘'를 시계 방향으로 90도 회전시킨 모양의 글자 정도라고 해야 할까?

  • 프랑스어R. 구개수음.

  • 프랑스어의 En, Em. "앙"도 아니며 "엉"도 아니고 "응"도 아닌 미묘한 발음이기 때문에 한글표기가 어렵다.

  • 스페인어J,rr

  • 중국어의 sh,zh,ch
    혀를 말아올려 슈+스/쥬+즈/츄+츠의 발음이 나와야한다. '슈'나 '스'의 발음할때 보다 혀를 더 말아올리는 것이 포인트. 옛날에는 ㅅ, ㅆ, ㅈ, ㅉ, ㅊ의 좌우 획 길이를 다르게 하는 방법으로 표현했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표기법이다.

  • 중국어의 r
    권설음. 한국어 표기법으로 '얼'이라 표기하게 되어있지만 그냥 'r'발음이다. 중국어의 모든 'r'발음을 '얼'로 표기하면 'つ'와 '쓰'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안드로메다급 발음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실제로 KBS에서 수입한 드라마 칭기스칸에서 권설음을 전부 '얼'로 표기해서 문제가 되었다. (버'얼'테는 메'얼'치 족에게 납치되었다. 발음을 바꿔보아라(...).)

  • 중국어의 u
    사실 이건 영어로도, 일어로도 표기가 불가능하다. 사실은 독일어의 u 움라이트와 유사한 발음으로 간주한다.'유'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그 중간 정도에 위치한 발음으로, '유'로 시작해서 중간에 혀를 말아 '위'로 변환하는 느낌. 다만 이 뒤에 e가 붙어 ue가 되면 '웨'와 대단히 비슷한 발음이 된다, 카드캡터 사쿠라의 '유에(月)'가 실은 이 케이스.

  • 한국어의 ㅟ+ㅓ발음(사귀었다 등을 줄여 말할때 발생. ㅠ+ㅓ와 비슷하다.) 및 ㅣ+ㅡ발음(남부 사투리.[1])
    • 비슷하게 영어의 Sha~ 발음. shadow나 shaker 등.

  • 독일어의 ch(구개수음. 대충 가래가 끓는 소리...같은 소리다. IPA 발음기호로는 x로 표기한다. [2] 아랍어에도 비슷한 발음이 다수 있다)

  • 일어의 ざ,じ,ず,ぜ,ぞ. 영어로 굳이 표기하자면 za, zi, zu, ze, zo로 한국어의 "ㅈ"발음과는 사뭇 다르다.

  • 일어의 つ. 위의 본문에 설명되어 있다.

  • 러시아어의 Ж,Х,Ш,Щ,Ц 발음. 또한 연음과 경음을 구분할 수 없다.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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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외에도 감탄사 등에서 이 발음이 나오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흔히 우리가 '어유'라고 표기하는 감탄사의 실제 발음은 '어유'보다는 오히려 '어이ㅡ'에 더 가깝다.
[2] 영어의 x는 IPA로는 그냥 ks라고 표기한다.

Dic: ─(느)ㄴ/던 것이

[당연한 사실을 말한 뒤에, 그것을 그 다음 말의 근거로 삼는 데에 쓰이어]
(느)ㄴ 사실, 일, 짓인데 (그로 말미암아. 그 까닭은).
  • 잠시 쉰다는 것이 불쌍한 아이는 그만 깜박 잠이 들어 버렸대!
  • 그 사람 말은 믿어도 되는 것이 절대로 헛소리하는 법이 없거든.
... 연세한국어사전
  • 글과 말 중에 말이 낫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특별한 준비 없이 오가는 말들은 어지럽기도 하고 종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CF. ‘─는데’
연결 어미.
[Ⅰ]
1. 뒷절에 표현될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설명적 지식이 되는 일반적 상황을 제시함을 나타냄. ‘-는데’만의 고유 기능으로서, 뒷절이 생략된 채 쓰이지 못함.
  • 딸 둘을 낳고 3년간을 꿀같이 살았는데 6˙25가 나자 그 남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2. 뒷절에 표현되는 내용에서 설명 또는 부연할 대상을 제시함을 나타냄. ‘-는데’만의 고유 기능으로서, 뒷절이 생략된 채 쓰이지 못함.
  • 모든 식품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고 음료수 종류는 빨대까지 끼여 나오는데, 이런 폐기물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3. 뒤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원인, 이유, 근거 등을 앞에서 제시하는 뜻을 나타냄.
  • 나, 사실은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 비가 오는데 우산이나 가지고 갑시다.
4. 뒤에 오는 사실과 대립되는 사실을 제시함을 나타냄. ‘-지만’이나 ‘-나’의 뜻.
  • 될 성싶지 않았는데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사대에 입학이 허락되었다.
  • 이래서 제발 과자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안 먹는 아이가 없다.
5. ‘-거늘’의 뜻.
  • 개도 사랑으로 순하게 되는데 하물며 사랑 받는 인간이 어떻게 사나워지겠는가?
6. ‘-는데도’의 뜻.
  • 시간이 늦었는데 굳이 가셔야겠어요?
  • 푹 잤는데 왜 이리 피곤하지?
7. ‘-는데야’의 뜻.
  •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쩌겠나.
  • 자네가 청하는데 만사 제쳐 놓고 가야 하지 않겠나.
8. [말하는 이 자신의 말을 강조하는 용법으로] 어미 ‘-다, -라, -자, 냐’ 뒤에 쓰이어, 뒷절을 생략함으로써 종결 어미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 듣는 이의 반응을 기대함.
  • 좀 저쪽으로 가 있으라는데.
  • 어허 조용히들 하라는데.
9. [뒷절이 생략된 듯한 형태로 종결 어미처럼 쓰이어] 어떤 사실을 설명하듯이 말하면서 언어 외적인 효과를 표현함을 나타냄.
ㄱ. 혼자말처럼 중얼거림을 나타냄.
  •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 저기 늪 지대에서 정거할 이유가 없는데.
ㄴ. ‘듣는 이의 반응을 기대함’을 나타냄.
  • 재판관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이지 않는데.
  • 제가 아직 어렸을 때에는 이 놈도 생기가 있었는데.
[Ⅱ] 해체의 종결 어미처럼 쓰임.
1. 의외라 느껴지는 어떤 사실을 감탄하여 말하는 뜻을 나타냄.
  • 그 녀석 꽤 예쁘게 생겼는데.
  • 저 사람들, 나라를 위해 기도 많이 하는데.
2. [물음조의 억양에 의하여] 일정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나타냄.
  • 부모님께서 어디에 가시는데?
  • 돈이 얼마나 있는데?
※ ‘-는데’는 동사의 어간이나 ‘-았-, -겠-’ 뒤에, ‘-ㄴ데’는 형용사나 ‘이다’의 어간 뒤에, ‘-은데’는 받침 있는 형용사의 어간 뒤(‘ㄹ’ 제외)에 쓰임.
... 연세한국어사전

2010년 5월 27일 목요일

Dic: 마냥(1)

마냥1【부사】
1. 언제까지나 계속하여. 줄곧.
  • 가게를 마냥 비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 나는 이제 마냥 그렇게 기쁨에만 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2. 부족함이 없이 실컷.
  • 김포 슈퍼보다 십 원씩 더 가격을 내리고 저울 눈금도 마냥 후하게 달았다.
3. 한없이. 몹시.
  •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마냥 부러워질 때가 많았습니다.
  • 아이들과 어울리면 서른 네 살이라는 내 나이도 잊은 채 마냥 즐겁기만 하다.
.... 연세한국어사전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Dic: ─자면(2), ─자면(1)

─자면2【준꼴】 ‘-자고 하면’이 줄어든 꼴.
  • 두고 보자면 누가 겁낼 줄 알아?
  • 저녁이나 같이 하자면 그녀가 좋아할 줄 알고 있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면1【어미】 연결 어미.

1. 하고자 하는 바를 가정하여 조건으로 나타낼 때 쓰임.
  • 이 어두운 밤길을 가자면 지팡이가 꼭 요긴한 물건인데, 이걸 짚고 갑시다.
  • 이런 곳에서 미용실을 차리자면 돈이 꽤 들 것이다.
2. 의도하는 바가 없이:
ㄱ. (의도하는 바가 없이) 장차. 그렇게 되려면.
  • 마음이 가라앉자면 아직 멀었다.
  • 김치가 제맛이 나자면 며칠은 더 있어야겠구나.
ㄴ. [주로 ‘-고 있자면’의 꼴로 쓰이어] ‘(의도하는 바가 없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의 뜻을 나타냄.
  • 전기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면 나는 눈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마치 그 자가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군인인 듯한 생각이 저절로 든다.
3. ‘그렇게 설명한다면’의 뜻으로 설명적 조건을 나타냄.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일은 제 힘으로 도저히 역부족입니다.
  •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대는 새로운 윤리학을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 연세한국어사전

Dic: ─같다, 같다

─같다(2) 【접미사】
[일부 명사에 붙어, 형용사를 만드는 데 쓰이어] ‘∼과 아주 비슷하다’의 뜻을 나타냄.
  • 번개같다/벼락같다/쏜살같다/귀신같다/깨알같다/하나같다/천금같다.

같다(1) 【형용사】 용례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 [Ⅲ]:
1. [‘같은’의 꼴로, 명사 바로 뒤에 쓰이어] (앞에서 말한 것들과) 한 종류에 속하다.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다. [‘같은’의 꼴로 쓰이어] ‘등의, 따위의’의 뜻을 나타냄.
  • 수면제 같은 약은 아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 앞으로의 전망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그들은 주로 조나 수수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였다.
2. [‘같은, 같게’의 꼴로, 명사 바로 뒤에 쓰이어]‘처럼’의 뜻을 나타냄.
  • 낙지 같은 뼈 없는 고기나 새우, 조개류같이[조개류 같이??] 뼈의 각질이 겉으로 나온 것은 먹지 못한다.
  •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낡은 추억으로 남의 일 같게만 느껴졌다.
3. [‘같으면’의 꼴로, 명사 바로 뒤에 쓰이어]
ㄱ. ‘∼ 이라면’의 뜻을 나타냄.
  • 옛날 같으면 십 리, 이십 리를 강 건너 고개 넘어 다리도 없는 데를, 도중에 쉬기도 하면서 올 것을 지금은 버스를 타고 오면 금방입니다.
  • 평일 같으면 드나드는 사람들로 한창 북적댈 시간이었으나 오늘은 한산하기만 했다.
ㄴ. ‘-ㄹ(을/를) 것 같으면, -하자면, -이라고 가정하면’의 뜻을 나타냄.
  • 오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입장에서 손을 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구원의 대상이었다.
  •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반죽음 상태에서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4. [‘마음/생각… 같아서는/같아선’의 꼴로 쓰이어] ‘로는’, ‘에는’, ‘지금의 마음, 형편, 판단에 따르자면’의 뜻을 나타냄.
  •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려서라도 그 낭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기분 같아서는 그냥 두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사정을 잘 알게 된 그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5. [‘∼ 같은 ∼’의 꼴로 쓰이어]‘ 한 종류 중에서도 가장 기준으로 삼을 만한’의 뜻을 나타냄.
  • 말 같은 말을 해야지.
  • 연애를 해도 좀 사람 같은 사람을 사귀어야지.
  • 하루 종일 부엌에서 난리를 쳐도 음식 같은 음식은 하나도 못 만드는구나.
6.
ㄱ. [체언 바로 다음에 쓰이어] ‘-인 듯/일 듯하다, -라고 짐작되다, -과 비슷하다’의 뜻을 나타냄.
  • 믿기 어려운 일 같지만 사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소망과 이상은 과학자들의 부질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다.
  • 언젠가 맡아 본 냄새 같은데 무슨 냄새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ㄴ. [‘-ㄴ(은/는) 것’이나 ‘-ㄹ(을/를) 것’ 다음에 쓰이어] ‘-이라고 생각되다’의 뜻을 나타냄.
  • 하늘은 아침 일찍부터 잔뜩 찌푸려 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 약속을 잊을 것 같아서 다시 전화했습니다.
7. [‘∼ 같으니, 같으니라고’의 꼴로 쓰이어] 어떤 사실을 비난조로 말하거나 남을 욕할 때 그와 다름없다는 뜻을 나타냄.
  • 비겁한 유생 나부랑이들 같으니!
  • 이런 철부지 같으니라고.
  • 못난 작자 같으니라고.
.... 연세한국어사전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Dic: collegiality

자료: Wikipedia, http://encyclopedia.thefreedictionary.com/collegial

Collegiality is the relationship between colleagues.

Definition of collegiality

Colleagues are those explicitly united in a common purpose and respecting each other's abilities to work toward that purpose. A colleague is an associate in a profession or in a civil or ecclesiastical office.

  • Thus, the word collegiality can connote respect for another's commitment to the common purpose and ability to work toward it.
  • In a narrower sense, members of the faculty of a university or college are each other's colleagues; very often the word is taken to mean that.
  • Sometimes colleague is taken to mean a fellow member of the same profession.
  • The word college is sometimes construed broadly to mean a group of colleagues united in a common purpose, and used in proper names, such as Electoral College, College of Cardinals, College of Pontiffs.
Sociologists of organizations use the word collegiality in a technical sense, to create a contrast with the concept of bureaucracy.
  • Classical authors such as Max Weber consider collegiality as an organizational device used by autocrats to prevent experts and professionals from challenging monocratic and sometimes arbitrary powers.
  • More recently, authors such as Eliot Freidson (USA), Malcolm Waters (Australia) and Emmanuel Lazega (France) have shown that collegiality can now be understood as a full fledged organizational form.
  1. This is especially useful to account for coordination in knowledge intensive organizations in which interdependent members jointly perform non routine tasks -an increasingly frequent form of coordination in knowledge economies.
  2. A specific social discipline comes attached to this organizational form, a discipline described in terms of niche seeking, status competition, lateral control, and power among peers in corporate law partnerships, in dioceses, in scientific laboratories, etc.
  3. This view of collegiality is obviously very different from the ideology of collegiality stressing mainly trust and sharing in the collegium.
Roman collegiality

In the Roman Republic, collegiality was the practice of having at least two people, and always an even number, in each magistrate position of the Roman Senate. Reasons were to divide power and responsibilities among several people, both to prevent the rise of another king and to ensure more productive magistrates. Examples of Roman collegiality include the two consuls andcensors; six praetors; eight quaestors; four aediles; ten tribunes and decemviri, etc.

There were several notable exceptions: the prestigious, but largely ceremonial (and lacking imperium) positions of pontifex maximus and princeps senatusheld one person each; the extraordinary magistrates of Dictator and Magister Equitum were also one person each; and there were three triumviri. (이하 생략)

[개념과 소통] Political economy와 Economics의 개념과 번역

자료: 개념과 소통, 제2호(2008. 12)
지은이: 이헌창ㅣ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 게시물은 개인적 학습과 메모를 위한 노트에 불과하니 본 소론을 보실 분들은 위 자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 국학의 연구와도 접목시키면서 진지하게 풀어가는 학자적 향취가 물씬해 인상적이다. 묵직한 소론을 인터넷에 공개해주신 저자 분과 〈개념과 소통〉 편집진 분들께 감사드린다.

요약:

오늘날 Economics는 경제학, 그리고 Political economy는 정치경제학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경제학이라는 번역어는 Economics가 아니라 Political economy를 대상으로 고안되었다. 흥미롭게도 한자문화권과 인도에서 채택된 Political economy의 번역의 어원(語源)은 근대 경제학이 성립하기 이전 Political economy의 의미와 상통(相通)한다. 아랍권에서 채택된 번역어의 어원은 Economy의 의미와 상통한다. 이들 용어는 고대사상의 발전기에 출현하여 근대
학문의 성립기에 오늘날 개념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원래 가정관리라는 그리스어로부터 출발하여 국가관리를 의미하도록 political이란 형용사를 부착하였는데, 고전학파의 단계에 Political economy는 사회과학으로서 확립되면서 경제질서와 부(富)의 성격∙생산∙분배를 탐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나아가 경제학의 전문성과 과학성이 진전되는 과정을 완결하고자 했던 신고전학파는 정치와 무관하게 가정과 기업이라는 개별 경제주체의 행동을 분석하는 과학을 지향하면서 political을 떼어 버리고 가정관리론의 어원으로부터 유래하는 Economics를 학문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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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기록 메모: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Dic: 쉽다

연세한국어사전에 나온 세 가지 용례 중 두 가지.

[Ⅱ] (-는) 경우가 많다. 경향이 많다. 잘하다.
  • 물건을 파는 처지에서는 손님이 오기에 쉽고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 아침, 저녁의 안개와 음산한 기후는 사람을 병들기 쉽게 한다.
  • 인간은 정의 세계에 빠지면 주관적이 되기 쉽다.
  • 동화책은 아이들이 읽기 쉽게 큰 활자체로 인쇄된다.
  • 요즈음에 이용하기 쉽고 편리한 기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Ⅲ] ‘-기(가) 쉽-’의 꼴로 쓰이어] 가능성이 많다.
  • 역시 인쇄가 잘못 되었기 쉽다.
  • 이런 일은 흔히 거꾸로 되기 쉬운 거니까.
  • 아마, 안 돌아오기 쉬울 거예요.
  •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으면 일을 망치기 쉽습니다.
.... 연세한국어사전

※ 단상:

예를 들어 "환경 변화는 종의 진화를 유발하기 쉽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치면, '쉽다'를 '쉬어진다'로 바꾸어 편집하는 일이 안 생기면 좋겠다. 글쓴이가 "진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를 뜻했다면, 굳이 이런 취지를 "진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로 바꾸어 표현할 이유가 없다.

Dic: 못쓰다

못쓰다[몯ː쓰다]〔못쓰는, 못써, 못씁니다〕【동사】

1. [주로 ‘-면 못쓰다’의 꼴로 쓰이어] (어떤 행위를 하면) 안 되다. 좋지 않은 일이 되다.
  • [예문]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수업 중에 장난만 하면 못써.
2. [주로 ‘못쓰게 되다’의 꼴로 쓰이어]
ㄱ. 건강 상태가 나빠지다.
  • [예문] 어, 형님 서울 가더니 얼굴이 영 못쓰게 됐구먼.
ㄴ. 성격이 나빠지다.
  • [예문] 그런 몰상식한 집에 들락날락해 봤자 사람만 실없어지고 못쓰게 돼.
..... 연세한국어사전
[동사]
1 {주로 ‘못쓰게’ 꼴로 쓰여} 얼굴이나 몸이 축나다.
  • 얼굴이 못쓰게 상하다.
  • 그는 병으로 하루하루 못쓰게 돼 갔다.
2 {주로 ‘-으면’, ‘-어서’와 함께 쓰여} 옳지 않다. 또는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다.
  • 거짓말을 하면 못써.
  • 무엇이든 지나치면 못쓴다.
  • 그는 너무 게을러서 못쓰겠다.
  • 증거도 없이 의심해선 못쓰는 법이야.≪서기원, 조선 백자 마리아 상≫
.... 네이버국어(국립국어원)

2010년 5월 19일 수요일

[교수학습센터] 문장 첨삭 사례: 어미 ─며와 ─는데의 활용

자료: 교수학습센터, 문장(문장의 짜임), 갱신된 URL
출처: 교수학습개발센터 > 중등교육 > 국어 > 교수학습자료 > 고교선택과목-문법


[예제] 축구 경기에서 최후방 수비수를 골키퍼라고 하며, 판단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이 문장은 이어진 문장이다. 두 문장을 잇고 있는 ‘─며’에 대해서 연구 학습을 한 다음 이 문장에 있는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 좋다. ‘─며’의 연세한국어사전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결 어미.
1.ㄱ. 둘 이상의 사실을 나열함을 나타냄.
  •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며 행복해지려고 애쓴다.
1.ㄴ. [형용사나 ‘이다’의 어간 뒤에 쓰이어] 어떤 사실이나 상태를 나열함.
  • 건이는 치밀하지 못하고 겁이 없으며 동생은 치밀하지만 겁이 많다.
2. [주로 동사에서 ‘∼며 ∼며’의 꼴로] 두 가지 이상의 행동을 엇바뀌게 잇달아 함을 나타냄.
  •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
3.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를 아울러 나타냄.
ㄱ.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와 쓰이어] 앞문장과 뒷문장의 동작이 동시에 일어남을 나타냄.
  • 그러자 영하가 웃으며 물었다.
  • 나는 유리창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썼다.
ㄴ. [형용사나 ‘이다’의 어간 뒤에 쓰이어]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이나 상태를 아울러 나타냄.
  • 과연 가을은 정신 노동을 하기에 알맞은 계절이며 사색의 작업을 하는 데 절호의 계절이다.
ㄷ.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면서 아울러 나타남을 뜻함.
  • 여행을 하며 우리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라는 걸 느꼈다.
※ ‘-며’는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뒤에, ‘-으며’는 받침 있는 용언의 어간 뒤에 쓰임.
일단 ‘─며’는 동등한 문법 단위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어가 같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어를} 생략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예제의} 문장에서는 이어진 문장의 주어가 다르다. 앞 문장의 주어는 ‘우리’ 정도가 되겠다. 뒤의 문장은 주어를 찾기가 좀 어려운데, 서술부가 ‘판단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이므로 그에 대한 주체를 찾으면 된다. 그 주체는 ‘그’ 또는 ‘골키퍼’이다. 주어진 문장의 문제점은 두 개의 이어진 문장이 주어를 달리하고 있는데, 주어를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라는 주어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흔히 생략되는 잉여적인 것이지만, ‘그(골키퍼)’는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첨삭 결과 1]
축구 경기에서 최후방 수비수를 골키퍼라고 하며, 그에게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교사용 지도서는 ‘─며’를 다른 어미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며’ 대신 ‘─는데’를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는데’의 연세한국어사전의 정의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연결 어미.
[Ⅰ]
1. 뒷절에 표현될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설명적 지식이 되는 일반적 상황을 제시함을 나타냄. ‘-는데’만의 고유 기능으로서, 뒷절이 생략된 채 쓰이지 못함.
  • 딸 둘을 낳고 3년간을 꿀같이 살았는데 6˙25가 나자 그 남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2. 뒷절에 표현되는 내용에서 설명 또는 부연할 대상을 제시함을 나타냄. ‘-는데’만의 고유 기능으로서, 뒷절이 생략된 채 쓰이지 못함.
  • 모든 식품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고 음료수 종류는 빨대까지 끼여 나오는데, 이런 폐기물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3. 뒤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원인, 이유, 근거 등을 앞에서 제시하는 뜻을 나타냄.
  • 나, 사실은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비가 오는데 우산이나 가지고 갑시다.
4. 뒤에 오는 사실과 대립되는 사실을 제시함을 나타냄. ‘-지만’이나 ‘-나’의 뜻.
  • 될 성싶지 않았는데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사대에 입학이 허락되었다.
  • 이래서 제발 과자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안 먹는 아이가 없다.
5. ‘-거늘’의 뜻.
  • 개도 사랑으로 순하게 되는데 하물며 사랑 받는 인간이 어떻게 사나워지겠는가?
6. ‘-는데도’의 뜻.
  • 시간이 늦었는데 굳이 가셔야겠어요?
  • 푹 잤는데 왜 이리 피곤하지?
7. ‘-는데야’의 뜻.
  •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쩌겠나.
  • 자네가 청하는데 만사 제쳐 놓고 가야 하지 않겠나.
8. [말하는 이 자신의 말을 강조하는 용법으로] 어미 ‘-다, -라, -자, 냐’ 뒤에 쓰이어, 뒷절을 생략함으로써 종결 어미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 듣는 이의 반응을 기대함.
  • [예문]좀 저쪽으로 가 있으라는데./어허 조용히들 하라는데.
9. [뒷절이 생략된 듯한 형태로 종결 어미처럼 쓰이어] 어떤 사실을 설명하듯이 말하면서 언어 외적인 효과를 표현함을 나타냄.
ㄱ. 혼자말처럼 중얼거림을 나타냄.
  • [예문]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저기 늪 지대에서 정거할 이유가 없는데.
ㄴ. ‘듣는 이의 반응을 기대함’을 나타냄.
  • [예문]재판관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이지 않는데./제가 아직 어렸을 때에는 이 놈도 생기가 있었는데.
[Ⅱ] 해체의 종결 어미처럼 쓰임.
1. 의외라 느껴지는 어떤 사실을 감탄하여 말하는 뜻을 나타냄.
  • [예문]그 녀석 꽤 예쁘게 생겼는데./저 사람들, 나라를 위해 기도 많이 하는데.
2. [물음조의 억양에 의하여] 일정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나타냄.
  • [예문]부모님께서 어디에 가시는데?/돈이 얼마나 있는데?
※ ‘-는데’는 동사의 어간이나 ‘-았-, -겠-’ 뒤에, ‘-ㄴ데’는 형용사나 ‘이다’의 어간 뒤에, ‘-은데’는 받침 있는 형용사의 어간 뒤(‘ㄹ’ 제외)에 쓰임.
‘─는데’의 설명 Ⅰ의 “뒷절에 표현될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설명적 지식이 되는 일반적 상황을 제시함을 나타냄. ‘-는데’만의 고유 기능으로서, 뒷절이 생략된 채 쓰이지 못함.”을 볼 때 교사용 지도서의 지적이 정확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칠 수 있다.

[첨삭결과 2]
축구 경기에서 최후방 수비수를 골키퍼라고 하는데, 그에게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연결어미] ─어/아/여서

출처: 어법사전(연변과학기술대학 한국어학과 김종식 교수 편찬)

[범주] 연결어미

[구조]
  • 동작동사, 상태동사, 이다동사에 붙어서 선행절을 후행절에 종속적으로 연결한다.
  • ‘-어서’ 앞에는 시상어미 ‘-았-,-겠-,-더-‘ 등을 쓰지 못하고, 후행절에 시상어미를 씀으로써 시제를 나타낸다.
  • 선행절과 후행절의 주어는 동일하다.
[의미]
  • 선행 동작이나 상태가 후행절에 원인이나 조건이 됨을 나타낸다.
  • 문장에서는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 p.183. ─니까>
[1] 선행절이 후행절의 원인이 되는 경우:
  • 대개 일반적인 사실 설명을 할 때 흔히 쓴다.
  • 선행절이 후행절에 대하여 강한 원인이나 조건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왜’라고 하는 특정 질문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 후행절에 ‘-ㅂ시다, -ㅂ시오, -ㄹ까요?’는 쓰지 못한다.
[예문]
  • 기뻐서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는데요.
  • 짐이 많아서 빨리 뛰지 못하겠어요.
  • 재미 있어서 한번 더 읽었습니다.
  • 약속이 있어서 그만 나가 봐야겠어요.

CF. ‘─니까’와 ‘─어서’의 비교

─(으)니까: 화자 개인의 생각이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선행절은 후행절에 대한 이유가 된다.
  1. 선행절에는 완료형 어미 ‘-었-‘을 쓸 수 있다.
  2.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싶을 때 쓴다.
  3. 후행절의 종결어미는 ‘-ㅂ시다, -ㅂ시 오’를 자주 쓴다.
  4. ‘─니까’ 다음에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는 쓰지 않는다.
─어/아/여서:
  1. 일반적으로 원칙을 표시한다.
  2. 일반적으로 선행절에는 시상어미를 쓰지 않는다.
  3. 특정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고 일반적인 원인을 말할 때 쓴다.
  4. 후행절의 종결어미로 ‘-보시다, -보시오, -ㄹ까요?’는 쓰지 않는다.

[2] 선행절이 후행절의 조건이 되면서 시간적인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
  • 선행절과 후행절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선행절이 일어나지 않으면 후행절이 일어날 수 없는 경우에 쓴다.
  • 여기에서는 ‘-ㅂ시다, -ㅂ시오, -ㄹ까요?’를 쓸 수 있다.
[예문]
  •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봐요.
  • 선물을 사서 곱게 쌌어요.
  • 커피를 끓여서 한 잔 씩 마시자.
  •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서 만화를 보고 있습니다.
  • 그 사람을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합시다.

[교수학습센터] 문장 첨삭 사례

자료: 교수학습센터, 문장(문장의 짜임) 중에서

예문:
  • 입찰자는 사전에 제한사항 확인 및 입찰 등록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입찰 유의 사항, 계약서 등을 열람한 후 응찰하시기 바라며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습니다.
※ 위 문장과 같은 공고문은 단어도 어렵고 표현도 낯설어 학생들이 어려워할 것이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실용문이라는 점에서 과제로 제시할 만한 문장이라 하겠다. 이 문장이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호응관계 및 연결된 문법 단위의 동질성을 검토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위 문장에서 ‘입찰자’가 사전에 해야 할 일은 ‘제한사항 확인’과 ‘유의 사항, 계약서 등의 열람’이다. 만약 이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다고 하였다. 입찰자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두 가지인데,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1. ‘제한사항 확인’과 ‘열람한’으로 하나는 구 형식이고 하나는 절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수정해온 바와 동일한 방식으로 어느 하나의 형식을 구나 절로 바꾸어주면 된다. 다음과 같이 수정할 수 있다.
  • 입찰자는 사전에 제한사항을 확인하고 입찰 등록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입찰 유의사항, 계약서 등을 열람한 후 응찰하시기 바라며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습니다.
2. 그런데, ‘응찰하시기’와 같이 주체높임법이 사용되어 있으므로 ‘확인하고’도 ‘확인하시고’로 고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입찰자는 사전에 제한사항을 확인하시고 입찰 등록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입찰 유의사항, 계약서 등을 열람하신 후 응찰하시기 바라며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습니다.

3. 여러 가지를 고쳤으나 위 문장은 번잡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확인하시고’와 ‘열람하신 후’ 그리고 그 사이에 쉼표가 있는 것 등이 문장을 번잡하고 긴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문장이 길면서도 길지 않게 느껴지게 하려면 문장이 리듬감 있게 나누어지면 된다. 또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무엇에 대한 책임인지가 분명해지면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고쳐볼 수 있겠다.
  • 입찰자는 사전에 제한사항의 확인과 입찰 등록 장소에 비치된 입찰 유의사항, 계약서 등의 열람을 마치신 후 응찰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확인하지 못하여 생긴 불이익에 대한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습니다.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우리 안의 원시

지은이: 임 항 (국민일보 환경전문기자)

(전략) 이 둘이 공통적으로 대표하는 문화현상을 보자. 나는 전기구석기시대수렵채취 사회라는 코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나비족도, 조에족도 수렵채취민이다. 우리의 문화적 편견은 수렵채취를 원시적이거나 야만적인 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적어도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 사회가 초기농경사회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삶도 여유로웠다는 데 동의한다. 발굴된 유골의 이빨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수렵채취 원주민들의 영양상태는 농경 원주민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농사는 단일, 혹은 소수의 작물에 목숨을 거는 일종의 도박이었던 반면, 수렵채취는 에너지의 흐름이 풍부한 생태계를 찾아서 그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알프스산의 동굴, 고대 그리스와 터키, 미국의 옥수수 농업 지대에서 발견된 유골에 대한 고병리학적 조사 결과 수렵채취인들의 평균 신장은 현재의 인류보다 더 컸고, 이빨과 영양 상태가 좋았던 반면 농경인들은 충치와 영양실조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4만년~1만년전의 남부유럽은 그처럼 양호한 생태계였던 것같다. 간빙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북부는 풍부한 산림과 초원으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의 프랑스와 스페인에 해당하는 이곳에 살았던 수렵채취 인류, 즉 일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무리지어 달리는 거대 초식동물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일주일에 두 시간만 사냥하면 배불리 먹고 살았다고 한다. 다만 생태계에 부하를 급격히 늘리지 않기위해 인구조절과 영아살해가 성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평균수명은 짧았다고 한다. 오늘날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 인류가 농경 기법을 일찌감치 알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농경을 기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수수께끼 3부작을 쓴 마빈 해리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은 지금도 수렵채취를 고집하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등의 예를 들어 이같이 주장한다.

‘아마존의 눈물’을 제작한 김진만 PD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의 원시부족에 대해 “어쩌면 (문명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잊고 살던 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 같다”며 그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그들이 사는 아마존이 없어지지 않도록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한 것 같다며 PD들은 뿌듯해 했다.

물론 아마존의 눈물을 시청한 우리 국민들이 모두 원시사회, 전기구석기시대를 동경했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비접촉 원주민의 삶의 방식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고서는 그토록 높은 관심과 시청률을 보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아바타의 나비족을 자연을 숭상하는 수렵채취인들로 설정한 것도 관객들의 원시나 자연에 대한 동경 또는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을 어느 정도 전제로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관찰은 얼마 전 타계한 프랑스의 구조조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전 일생을 서구우월주의의 편견을 깨는 데 썼다. 그는 다른 지역의 사회들의 친족체계와 신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부수고 ‘야만’의 세계도 ‘문명’ 못지않은 논리와 합리성을 갖추고 있음을 명확한 근거를 통해 제시했다. 인류학자인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는 레비-스트로스의 업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문명’과 ‘야만’, 과거와 현재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1만 년 전의 인류나 현대인이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 그래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게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다” 

MBC ‘아마존의 눈물’ 홈페이지에는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한 조에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조에족은 턱에 나무 막대기를 꽂는 뽀뚜루로 장식을 한다. 생활방식도 원시 그대로. 해를 시계 삼아 하루를 보내고 나무를 마찰시켜 불씨를 얻는다. 칼을 가지고 밀림을 해치며 사냥한 고기들을 다듬고 그 이상의 문명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받아들인 문명의 이기는 칼, 거울, 바늘이 전부라고 한다. 1만여년전 수렵채취인들이 농경을 거부했듯이 조에족은 문명이 그들을 파괴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 수렵채취를 근간으로 하는 원시사회를 일방적으로 미화한다거나, 반대로 일부 오락프로그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희화화하는 것 모두가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접촉 원주민의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함으로써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회와 문화에 “다름을 있을지언정 우열은 따질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본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레비-스트로스의 저작들을 설명하면서 “풍요가 경제발전의 결과라는 것은 현대인의 착각이다. 원시사회야말로 풍요한 사회였다”고 단언한다.

한반도 남쪽의 우리 민족에게 지난 반세기는 경제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이제는 가끔 옆이나 뒤도 돌아보면서, 지구 반대편이나 선사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서 교훈을 얻을 때다. 그것은 현대문명이 잉태한 여러 모순과 위험에 대한 자각이기도 할 것이다. 도구와 기술에 대한 맹목적 의존,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로 대표되는 위험을 내재한 산업사회, 천연자원의 낭비와 기후변화, 환경파괴와 환경성 질병 등은 현대문명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연약한 기초위에 서 있는 지를 깨우쳐 줄 것이다.

[인류학 산책]인류사회의 변천

출처: 한겨레, 2009/01/21 10:29
※ 기사 같은데 지은이 성함은 찾기 어렵다. 용어와 개념을 공부하고자 메모해 두는 것이니 원본을 보실 분은 위 자료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같은 신문의 다른 자료: 정착생활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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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러므로 사회의 변천을 보는 것이 바로 인류사의 변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사회의 진화는 인류학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 인류사회는 사회구조를 기준으로 군족(群族 Band), 부족(部族 Tribe), 수장국(首長國 Chiefdom), 국가(國家 State)의 단계로 진화해왔다.
  • 사회 통제를 기준으로 하면 평등사회(Egalitarian Society), 등급사회(Ranked Society), 계급사회(Stratified Society)로 나눈다.
  • 생산 양식을 기준으로 나누면 수렵 채취 사회, 농경 사회, 유목 사회, 산업 사회로 나눈다.
  •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나누면 원시 공동 사회, 자영 농경 사회,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로도 나눌 수 있다.
  • 도구를 기준으로 하면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눈다.

모건(Lewis Henry Morgan)이란 학자는 <고대사회>라는 책에서 인류사를 야만(Savagery), 미개(Barbarism), 문명(Civilisation)이라는 세 가지 시대로 구분했지만 자문화중심주의의 바탕에서 나온 편견적이고 타당성이 없는 시대구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1) 사회 구조를 기준으로 나눈 사회

1) 군족 - 적게는 너 댓 명의 가족 규모에서 많게는 백 명 정도의 소규모의 수렵-채취 집단으로 함께 야생 먹거리를 찾아 이동 생활을 하며 혈연적으로 가까운 집단이다. 너 댓 가족이 모인 25명 정도의 인원이 가장 이상적인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지도자가 없고 구성원 사이에 계급이나 경제적인 차이가 없는 평등 사회다. 이동 생활을 하므로 캠프생활을 주로 하고 사냥을 하면 서로 나누어 먹는다. 구석기 시대의 대부분의 사회는 바로 군족 사회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부시맨도 군족사회다.

2) 부족 - 군족보다 큰 사회이고 대략 5천명 이하로 구성된다. 주로 경작과 가축을 길러 생활하는 농부나 유목민들의 집단이다. 지도자도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권력은 미약하며 기본적으로 평등 사회이다. 대체로 농가나 마을을 이루고 산다. 나이든 지도자의 주례로 제례의식을 치르고 공동으로 이웃의 침입을 막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 초기에 주로 존재하던 사회 구조이다. 부족 사회의 예로는 프에블로 인디언이 해당된다.

3) 수장국 - 여러 부족들이 합병 혹은 통합되어 구성된 5천명에서 2만 명 정도 규모의 사회다. 풀타임 지도자를 갖고 있으며 사회적 신분에 토대를 둔 등급사회지만 진정한 의미의 계급사회로는 이행이 안 된 사회이다. 제례 의식이 중요시되며 제례 의식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갖고 있으며 보통 제정일치의 정치 구조를 갖는다. 도읍지를 성읍(城邑)의 형태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조선은 수장국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4) 국가 - 법제도, 관료제도, 조세제도 및 군대를 갖고 있으며 혈연이 아닌 계급에 기반을 둔 사회이다. 왕이나 황제와 같은 통치자가 통치하며 보통 인구 2만 명 이상의 규모의 사회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그 예이다.


(2) 생산양식을 기준으로 나눈 사회

1) 수렵 채취 사회- 수렵 채취는 노동이 수확으로 즉시 변환되는 생산 양식으로 생산 수단은 활, 창, 덫, 낚싯대, 작살, 어항 등 비교적 간단하며 누구나 쉽게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 재산은 개인 용품이나 생산 도구에 불과하며 재산의 축적은 불가능하거나 의미가 없다. 생산 수단의 임대 거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동 생활과 캠프 생활을 주로 하며 이동에 편한 간편한 짐이 개인 소유물의 전부가 된다.

2) 농경 사회- 농경지가 생산의 중요한 수단이다. 경작은 투입된 노동이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어야 수확으로 변환되는 생산 양식이다. 토지, 주택, 곡식 등이 주요한 재산의 구성 요소이며 부의 축적과 세습이 가능하며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다.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생산 활동을 시작 할 수 있다. 생산 수단과 재산의 임대 거래가 종종 일어나고 이것이 부의 축적의 한 수단이 되며 분쟁의 원인이 된다. 토지의 소유로 인해 수렵 채취 사회보다 분쟁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권위적인 사회 규약이 필요하다. 정착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택, 가구, 생활 용품 등에 공을 들인다. 토지와 주택의 존재 때문에 이웃 사회로부터 침입에 대한 방어의 필요성을 갖는다.

3) 유목 사회- 유목도 경작처럼 투입된 노동이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어야 수확으로 변환되는 생산 양식이다. 가축이 주요한 생산수단이다.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수렵 채취 부족들처럼 이동 생활과 캠프 생활을 하나 가축을 이동하는데 사용하므로 개인 소유품들이 수렵 채취 부족들 보다 크고 많다. 가축이 주요한 재산의 구성 요소이며 부의 축적과 세습이 가능하며, 경작처럼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생산 활동을 시작 할 수 있다. 생산 수단과 재산의 임대 거래가 이따금 일어난다. 가축을 목표로 하는 이웃 사회의 침입으로부터 방어의 필요성을 갖는다.

4) 산업 사회- 주로 자본주의와 결합된 경우가 많다. 투입된 노동은 단시간에 상품으로 변환되나, 상품이 팔려야 수확으로 완성된다. 대부분의 생산은 소비가 아니라 판매를 통해 생기는 이윤을 위한 것이다. 즉, 수확은 수렵 채취나 농업처럼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거래로부터 나온다. 토지뿐만 아니라 기계와 설비가 중요한 생산 수단이다. 재산의 대상이 다양하다. 농업보다 훨씬 빠른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 상당한 재산의 축적이 없는 사람은 노동력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다.


(3) 권력관계를 기준으로 나눈 사회

1) 평등 사회- 토지나 천연 자원의 사용과 소비에 있어서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군족 사회와 부족 사회가 이런 사회에 해당된다.
2) 등급 사회- 혈연에 따른 등급에 토대를 둔 사회. 본격적인 계급 사회로 이행되기 이전의 사회. 이 사회에선 대체로 지배 집단의 혈연에 가까울수록 등급이 높다.
3) 계급 사회- 사회적 분업과 직업에 따른 계급에 토대를 둔 사회. 계급에 따른 의무와 권리가 법이나 관습적 규범에 의해 정해짐.


(4)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나눈 사회
1) 원시 공동 사회- 소규모 공동 운명체가 공동으로 생존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사회.
2) 자영 농경 사회- 가족이나 작은 집단이 자기 소유의 토지나 가축을 갖고 농사를 하며 사는 사회.
3) 봉건 사회- 제후나 거족 등 지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농민들은 지주들의 토지에서 경작을 하는 대가로 지대를 내고 지주는 국가에 조세를 납부하는 사회.
4) 자본주의 사회- 재산과 생산 수단이 사유화되어 개인의 의사와 결정에 따라 경제가 운영되는 사회.
5) 사회주의 사회- 대부분의 생산 수단이 국유화 또는 사회화되어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사회.

이하 생략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맑스, 마르크스, 마륵스

자료 1: 한글의 표기능력 확충을 위해
지은이: 최정호 객원 대기자 (동아일보 2006.6.29)

이탈리아 사람, 프랑스 사람들은 푸치니의 유명한 오페라를 ‘또스까’로 발음하고 영국 사람, 독일 사람들은 ‘토스카’로 달리 발음한다. 그 차이를 우리는 알아들어도 그들은 못 알아듣는다. 둘 다 똑같이 ‘TOSCA’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토’와 ‘또’, ‘카’와 ‘까’라는 소리의 뉘앙스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밝은 귀에 못지않게 그를 구별해 적는 한글의 빼어난 표기 능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처럼 섬세한 우리 귀, 그처럼 세계에 독보적인 문자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자랑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일까...‘Marx’라는 단음철(單音綴)의 이름을 우리는 원음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맑스’라고 원고에 적으면 출판사에서는 에누리 없이 거의 일본식 표기처럼 ‘마르크스’라는 4음철의 표기로 바로(?)잡아 놓는 데에 나는 매번 당황하고 있다. 우리는 ‘Goethe’를 한글로 ‘괴테’로 똑바로 표기하면서도 그의 대표작 ‘화우스트’는 왜 ‘파우스트’로 엉뚱하게 표기하는 것인지…(생략)


자료 2: 마르크스는 틀렸다, 마륵스가 맞다
출처: 오마이뉴스블로그 꺄르르, http://blog.ohmynews.com/specialin/236562
자료 속 원출처: 김주환 저,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생각의 나무. 2008)

우리는 흔히 ‘Marx'를 ’마르크스‘로 표기해왔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껴왔듯이 분명 어색한 표기이다. 마르크스는 ’マルクス‘의 음역일지는 몰라도 ’Marx'의 음역이라 할 수는 없다. 이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몇몇 분들이 ‘맑스’라는 표기를 쓰는 경우도 있는 듯하나 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글 ‘맑’에서 ‘ㄹ’은 발음되지 않으며, 따라서 ‘맑’은 그저 ‘막’으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맑스(Marx)'는 ’막스(max)'가 되고 만다. 가장 자연스러운 표기는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x' 발음은 ’r'종성과 ‘ㅅ’초성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컨대 우리는 ‘taxi’ 는 ‘태크시’라고 하지 않고 ‘택시’라고 하며, 'fax'를 ‘패크스’라 하지 않고 ‘팩스’라 하고 ‘text’를 ‘테크스트’라 하지 않고 ‘텍스트’라 한다. 따라서 ‘Marx’는 ‘마르크스’가 아닌 ‘마륵스’여야 한다. ‘Marx’를 ‘마륵스’라 하지 않고 ‘마르크스’로 쓰는 것은 ‘sex’를 ‘섹스’라 하지 않고 ‘세크스’라 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표기이다.
필자가 새계 10여개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일본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Marx’알아듣지 못했다. 반면 한글의 뛰어난 표음 능력을 보여주는 ‘마륵스’는 어느 나라 사람에게든지(심지어 일본 사람까지 포함해서)금방 전달되었다. 잘못된 것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옛적에 칼 맑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잘못된 표기다. 애당초 종성 ㄺ은 그냥 ㄹ아니면 ㄱ으로 ... 실제 발음은 카알 마르크스에 가깝다. 표준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춘 독일어 표기는 카를 마르크스...


Karl Freund는 독일인이니 칼/카알/카를(원래는 카를이라고 써야한다고 하나..너무 어색해서 그냥 칼, 내지 카알로 하는 것이 나을 듯. 기술적인 문제) 프로인트라고 읽어야 맞습니다.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자료] 현대 생물학의 ‘인간’ 발견: 인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지은이: 도정일 (경희대 영문학)

자료 출처: 하나,

※ 자료 출처의 명칭을 찾기 어렵다. 다음의 두 출처 링크를 보면, 대입 논술 학습용 텍스트로 자주 활용되는 글로 추정된다. 아래 게시물은 공부 삼아 해당 텍스트를 메모나 강조 표시와 함께 개인 블로그에 보관할 용도이므로, 원 텍스트를 보려는 분은 위 출처를 보시기 바란다.

***

1. “인간을 읽는다”

인간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를 인지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지할 뿐만 아니라 그는 거울 속의 자기 이미지에 매혹된다.
  • 인간이 자기를 대상화하는 내성적 동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 인지와 매혹의 능력 때문이다. 인간의 이 자기 대상화를 학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Humanities)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라거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학문적 추구가 인문학(Humanities)의 기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 학문의 역사는 질문 발견의 역사이다. 인문학은 말하자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거울 속에 넣고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 이후 ‘인간’은 인간의 집중적인 지적 탐구 대상이 된다.
  • 사자(獅子)는 자기를 알기 위해 ‘사자학’을 시작하지 않고 침팬지는 거울 속의 자기 이미지에 매혹되지 않는다.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자체의 역사 -그 인문학적 질문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서양의 경우 학문은 인간 그 자체보다는 인간을 둘러싼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먼저 발원하고 이것이 서양 과학의 시초를 이룬다. 이 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외부세계이며, 이때 의미 있는 질문은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라거나 “물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같은 것이다.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 탈레스(Thales)가 일으킨 그리스의 이오니아 학파이다. 이 학파가 서양 과학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외부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그 학파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0년쯤 지나서 인간의 눈을 외부세계로부터 인간 그 자체에게로 돌려 놓는 시점이동 또는 사고의 전환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혁명’이다. 이 전환적 사고의 요점은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외부에 알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라는 것이었다. 질문자가 질문자 자신을 질문의 ‘대상’으로 돌려놓게 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철학은 서양 인문학의 조직적 출발점이 된다. 인간의 자기 발견이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서사화’된 것은 물론 그리스 신화와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서사문학에서이다. 그러나 인간을 반성적 질문의 대상 다시 말해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형식 속에 대상화함으로써 인문학적 탐구의 길을 연 것은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고전 철학이다.

그 이후 2, 500년 동안 ‘인간’은 인간의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되었고 “인간은 이런 것이다. ”를 내용으로 하는 여러 장의 그림과 이미지들이 제시된다. 이 그림과 이미지들을 우리는 ‘인간에 대한 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다.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만이 이런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나 권력 현상의 연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일정한 정의와 그림, 다시 말해 인간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con)’이라는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의는 정치학적 정의이면서 동시에 고전 철학의 인문학적 인간관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준 과학의 영역이라 할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고고 인류학 등도 인간 연구와 직결되어 있다. 예컨대 언어학적 인간 패러다임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상징 기호를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기호 체계에 대한 현대 언어학의 연구는 이미 그 자체로 인간 연구에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한다. 천문학, 물리학, 화학 등의 근대 과학도 인간 발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제기된다. 인간을 탐색하는 노력이 이처럼 오래 지속되고 그로부터 여러 개의 흥미로운 발견들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발견’의 대상인가? 우리는 아직도 인간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단 말인가? 인간이 도대체 뭐길래?

현대 생물학이 인문학도와 사회 과학도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바로 그 인간 발견에 관계된 새롭고 중대한 정보들이 20세기 생물학의 분야에서 속속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그 정보들은 단순히 새롭기 때문에 ‘중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존의 그림, 지식, 패러다임들을 흔들기 때문에 중대한 것이고, 인문학이 큰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발견들이 인문학적 지평의 확대 내지 수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등 생명체로부터의 진화의 결과이고 침팬지가 인간과는 ‘밀림의 사촌’ 관계에 있다는 식의 정보는 이미 현대 인문학의 관심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직계 조상으로 알려졌던 직립 원인(Homo erectus)과 현생 인류(Homo sapiens)가 서로 별개의 존재이고 양자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는 0. 6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직립 원인은 절멸한 반면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는 주장, 그 미세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언어 능력’에 있다는 생물학/유전학 쪽의 발견은 인문학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또 인간의 유전을 지배하는 법칙과 콩의 유전 법칙이 동일하다는 멘델의 발견은 그 자체로는 중대한 유전학적 업적이었지만 진화론 이후의 위축된 인간 초상을 더 찌그러뜨릴 정도의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1953년 디옥시리보 핵산(DNA)의 구조 발견과 함께 인간이 ‘유전자 언어로 씌어진 책’이라는 분자 생물학적 관점이 대두한 것은 인간에 대한 지금까지의 모든 패러다임들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생물학이 인문·사회 과학의 인간관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련의 발견들을 내놓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분자 생물학(molecular biology)에서 진행된 인간 읽기의 방법 개발 때문이다. 이 경우 ‘인간’은 물론 생물학적 육체, 더 정확히는 개체 인간을 결정하는 유전 정부[정보??] 체계이다. 현대 분자 생물학의 대두 이전까지는 개인의 특성, 자질, 능력, 질환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특정의 유전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는가를 알 수 없었다. 유전 정보체계는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는 자연의, 또는 신의 비밀 장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 의한 DNA 구조 발견 이후 이 비밀의 텍스트를 읽어내기 위한 방법들이 차례로 발견되고, 마침내 인체의 전체 유전자 지도를 그리기 위한 대대적인 사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로 알려진 이 연구는 향후 10년 이내에 완성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이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질 경우, 21세기 사회는 한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이미 태아 단계에서부터 그의 ‘생물학적 미래’를 들여다보는 놀라운 지식을 보유하게 된다. 말하자면 21세기 인간은 자신이 어떤 유전적 특성과 자질을 갖고 있는가에서부터 언제 어떤 질병을 일으킬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미래 일기’를 사전에 공개 당하게 된다. 인간의 운명에 관한 사전 지식의 사회적 보유가 어떤 놀라운 신세계를 가져올 것인가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생물학의 인간 읽기가 개인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상당한 사회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2. 유전자-미래로 열린 창

자연을 ‘책’이라는 은유로 표현했던 최초의 과학자는 갈릴레오이다. 자기 작업의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는 박해자들에게 그가 “나는 단지 자연의 책(the book of nature)을 읽고자 했을 따름이다. ”라고 대답한 것은 과학사의 일화로 남아 있다. 책은 특정 언어의 문법 질서로 씌어진다. 그러므로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의 문법 체계를 알아야 한다. 갈릴레오의 은유는 자연과 우주도 문법에 비유할 만한 ‘질서’를 갖고 있고, 따라서 우리가 그 질서를 안다면 자연이라는 책을 읽어낼 수 있다는 관점을 표현한다.

인문학의 궁극적 과제는 인간의 이해, 다시 말해 ‘인간 읽기’이다. 그러나 인간을 읽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책이 어떤 문법, 어떤 언어로 씌어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 현대 인문학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그가 ‘무의식 읽기’라는 방법으로 인간을 ‘읽어내려’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이성과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며 따라서 무의식을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을 알 수 있다. ” 2, 500년 넘게 유지되어온 서양의 이성 중심적 또는 의식 중심적 인간관을 뒤흔든 ‘프로이트의 혁명’은 이처럼 간단한 명제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명제는 대체로 어떤 발견에 이르기 위한 가설이지 그 자체가 반드시 발견인 것은 아니다. 자기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우선 무의식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고 이 증명 방식으로 그가 채택한 것이 ‘무의식을 지배하는 문법’의 제시였다. 그 문법에 따라 읽으면 인간의 행위나 정신 질환 중에 그 때까지 설명되지 않았던 것이 설명된다. 따라서 이 설명력은 역으로 무의식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프로이트가 발견한 인간은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책’이었고 그의 업적은 이 무의식의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문법의 발견에 있었다.

분자 생물학의 인간 발견은, 물론 정신 분석학의 인간 발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신 분석의 읽기 대상이 무의식이라면, 분자 생물학의 판독 대상은 인간의 유전 정보망이고, 이 읽기가 제시하는 인류를 인간이 유전자 언어로 씌어진 책이라는 것이다. 양자가 모두 인간을 모종의 텍스트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생물학과 정신 분석의 관심 및 방법은 상호 비교하기 어려운 차원에 있다. 그러나 서양의 오래된 인문주의적 인간관에 차례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양자를 서로 비교할 만하다.

플라톤에서부터 데카르트, 르네상스의 근대 계몽 이성 시대, 정치적 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는 사이에 형성된 서양의 인문주의적 인간관은 시대에 따른 조금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기억, 이성, 의식의 주체로 파악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유명한 이분법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라는 완전히 상호 이질적인 두 부분으로 구성된 복합체이다. 영혼은 진리를 기억하고 진리를 알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고, 육체는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차원, 다시 말해 인간이 지닌 동물적 차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이성적 차원의 영혼이며 육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동물적 ‘망각의 자루’이다. 영혼은 이 망각의 자루를 벗어날 때에만 진리의 본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이 이분법은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진리와 비진리, 기억과 망각, 의식과 무의식 등의 서열 질서로 양분되는 서양적 이분법의 토대를 이루고 이 분할 구도는 데카르트에 와서 확인, 강화된 다음 근대의 이성적 ‘자율 주체’ 사상을 거쳐 확고한 인식의 틀로 굳어진다. 이 인식 구도에서 특징적인 것은 ‘육체’의 비하이다. 육체는 유한성, 타락, 부패, 오염, 망각, 무의식, 비진리의 범주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 이 인문주의적 인간관에 준 타격은 [:]
  • 인간이 명징한 이성의 주체도, 명료한 의식 주체도 아니라는 관점의 제시에 있었다.
  • 인간은 오히려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조종을 받고 있고 따라서 그는 의식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 주체이다. 그의 유명한 언술을 빌면 “인간은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다. ” 무의식은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비논리의 왕국’이다.
  • 그러나 이 비논리의 영역을 캐고 들어 갔을 때에만 인간은 자기 주인을 만난다.
프로이트의 이 관점이 의식 주체론을 뒤엎고 있다면, 현대 생물학의 인간관은 또 다른 각도에서 영혼/육체의 이분법과 의식 주체론을 전복한다. 분자 생물학의 발견에 따르면 인체 유전자는 다량의 정보를 수집, 보존, 기억하고 그 자체의 언어 문법에 따라 그 기억 정보들을 복사, 전달한다. 그러므로 육체는 플라톤이 생각한 것처럼 망각의 자루가 아니라 엄청난 기억 용량을 가진 정보 체계이다. 뇌세포의 기억만이 기억이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그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이 유전정보 체계에 종속되고 그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지금까지 판독되지 않았던 그 ‘유전자 언어’다.

‘인간은 유전자 언어 문장으로 씌어진 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고 인간이 그 책의 판독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확장이라는 선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선 그 지식은 개인과 종의 미래를 유전 공학적 통제와 조절의 영역으로 몰아 넣는다. 특정의 유전병이나 유전적 정신 질환이 특정의 염색체와 유전자 문장의 교란에서 오는 결함이라면, 인간은 그 결함 유전자 또는 교란된 유전 정보를 제거, 치료, 무력화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치유 불능의 것으로 알려진 질환들을 통제할 수 있다. 분자 생물학과 유전 공학이 열어 놓은 이 가능성은 유전자 의학, 유전자 치료법, 유전 약물학의 광대한 새 영역들을 열어제친다. 유전자 문장을 고쳐씀으로써 인간을 바꾸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가능성은 치유가 불가능한 선천성 결함 인자를 가진 태아에게는 탄생의 기회를 아예 박탈하는 우생학적 사회 공학의 대두를 암시한다. 또 개인의 생물학적 미래가 적혀 있는 유전 정보가 사회적으로 보유된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보험 회사는 보험 가입자들의 유전 정보에 입각하여 요율(料率)을 책정할 수 있고, 이 유사한 선택, 배제, 불평등 조건 부과 등등의 가능성이 결혼과 취업의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21세기 청춘 남녀들에게는 궁합, 사랑, 연애 아닌 각자의 유전 정보 교환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먼저 유전자 문장으로 된 그 결정적 텍스트를 서로 검증해본 다음 ‘이상 없음’의 판정이 있고 나서야 결혼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또 개인 유전 정보에의 접근이 허용되고 그것의 사회적 사용이 보편화할 경우 미래의 고용주에게는 취업 희망자의 유전 정보를 검토하는 일이 이력서 심사 이상으로 중요해 질 수 있다. 알 수 없는 비밀의 영역, 신과 운명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개인의 미래는 21세기 인간에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적힌 생물학적 자서전을 미리 검토받은 다음에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과거의 재구성

유전자 언어의 판독은 인간의 미래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는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과거’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담고 있는 시낭(타임 캡슐)이자 ‘살아있는 화석’이다. 특수한 유전 정보나 유전적 특성이 왜 특정의 종족에게서만 발견되는가를 안다는 것은 그 종족의 과거를 아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세계의 타 지역 인구들에서는 극히 적은 ‘리수스 네거티브’(통칭 RH 마이너스) 혈액형이 스페인의 바스크족에서는 20퍼센트 이상의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이 사실은 바스크족의 과거를 해명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이며 농업 문화의 확산 경로를 아는 데에도 중요한 정보이다. 말하자면 생물학은 지금까지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고고 인류학, 언어학 등에서 얻어진 인류의 과거나 특정 종족의 과거에 대한 지식을 확대 내지 수정케 하는 유용하고 결정적인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과거 재구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상 한국어와 일본어는 알타이 어족의 특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이 정보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다른 요소들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언어를 어느 어족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운 ‘고아 언어’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다. 종족적 유전 특성 연구 분야의 권위인 루카 카발리-스포사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은 인근 인종 집단인 중국인이나 티베트인들보다도 오히려 유럽계에 더 가까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앞으로 한국측 연구자들의 손에서 더 정밀하게 확인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현대 유전학이 유전자 연구를 통해 내놓은 현생인류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발견은 매우 극적인 것의 하나이다. 1987년 캘리포니아 대학 유전학자 앨런 윌슨이 인류의 일원 발생설을 내놓기 전까지는 인류의 다지역 진화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지역 진화설에 따르면 각 대륙에 분포해 있었던 직립 원인으로부터 현생 인류가 진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예컨대 유럽인은 유럽 대륙에 살았던 직립 원인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진화해서 오늘의 백인종을 이루게 되고, 아시아 쪽의 황인종은 북경 원인으로 알려진 직립 원인을 조상으로 하며, 동남아-호주계 인종은 자바 원인을 조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윌슨은 인체 세포에 들어 있는 두 유전자 가운에 하나임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이 유전자는 여자[어머니]를 통해서만 자식에게 전달된다. )의 돌연변이 과정을 추적한 결과 현생 인류의 모계 뿌리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어떤 여성(집단)에 있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발견은 인류의 발생과 진화, 6대륙 분포 과정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지도를 그리게 한다. 일원 발생설이 그리는 진화도에 따르면 20만년 전 ‘아프리카의 이브(African Eve)’에서 발원한 현생 인류의 한 줄기는 아프리카에 남고 한 줄기는 약 10만 년 전쯤 중동 아시아로 진출했는데, 인류의 5대륙 분산이 시작된 것은 거기서부터이다. 아시아 내륙을 향한 이 신인류의 이동은 6~7만 년 전에 시작되고, 동남아를 거쳐 호주로의 이동은 약 4만 년 전, 베링 해협을 거쳐 북미 대륙으로 진출한 것은 3만 5천년에서 1만 5천년 전이다. 유럽 대륙을 향한 신인류의 서진은 약 4만 년 전의 사건이다. 신인류가 유럽으로 진출했을 당시 그 대륙에는 직립 원인 네안데르탈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이들과 신인류는 뒤섞인 것이 아니라 신인류가 네안데르탈인들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것이 유전학 쪽의 설명이다. 인류 일원설은 아직 더 확실한 증거를 필요로 하지만 유전학이 내놓은 증거들 자체의 상당한 과학성 때문에 이미 이 학설은 구학설(다지역 진화설)을 대체하고 있다.

이 발견이 왜 인문·사회 과학에 특별히 흥미로운가? 그것은 생물학과 유전학이 인류의 과거에 대한 지식을 정밀화하는 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과학과 권력의 결탁 등에 관한 비판적 안목을 유지하는데 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럽 백인종이 흑인을 위시한 여타 인종들과는 다른 ‘별개 조상’을 가진 별개 인종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19세기 생물학의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19세기 생물학이 유럽의 당대 제국주의 담론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를 접수할 때 필요했던 것은 제국주의적 침탈 행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백인이 흑인보다 ‘우수한’ 인종이며 따라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야만 인종을 깨우쳐 그들을 ‘문명’으로 이끄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쪽으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백인 별개 인종설을 확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정당화 작업의 필수적 부분이었다. 게다가 백인과 흑인이 동일한 조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백인 사회의 정서 구조상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쉽게 말하면, 네안데르탈인 백인 조상설은 제국주의적 담론 구조나 백인 정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과학적 발견’이 되어 준 것이다. 따라서 현대 유전학의 인류 일원 발생설이 확고한 증거를 확보할 경우, 네안데르탈인 백인 조상설은 과학이 과학의 이름으로 어떻게 당대적 권력 담론과 결탁하는가(이는 미셸 푸고의 주요 주장인 ‘권력/진리 불가분설’의 골자이기도 한다. )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미 현대 생물학자들 사이에는 네안데르탈인 백인 조상설이 과학사상 최대의 ‘사기극’이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한때 인종 차별주의에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듯이 보였던 생물학이 지금은 인종주의적 편견의 근거를 삭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과 그 연관 분야로부터의 발견이 인간의 지식 체계와 미래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생물학의 근래 동향들 중에는 인문학, 특히 문화론과의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것들이 많고 이 대목은 21세기 초반의 지적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충돌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이 칼럼의 다음 번 화제이다.

"Man is not the master of his own house" (The Private Self, A.H. Modell, 1993)

자료: http://books.google.co.kr/books?id=clv-CaUOAaIC, "one is not the master of one's own house."



In The Private Self, Arnold Modell contributes an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 in formulating a theory of the private self. A leading thinker in American psychoanalysis, Modell here studies selfhood by examining variations on the theme of the self [:]
  • in Freud and
  • in the work of object relations theorists,
  • self psychologists, and
  • neuroscientists.
Modell contends that the self is fundamentally paradoxical, in that it is at once dependent upon social affirmation and autonomous in generating itself from within. We create ourselves, he suggests, by selecting values that are endowed with private meanings. By thinking of the unconscious as a neurophysiological process, and the self as the subject and object of its own experience, Modell is able to explain how identity can persist in the flux of consciousness. He thus offers an exciting and original perspective for our understanding of the mind and the brain.

추가 정보
The Private Self
(공)저: Arnold H. Modell
출판사: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171~173쪽에서:

Whether affective experiences support or diminish the agency of the self is a topic that Freud frequently explored using a different language--the language of the ego rather than of the self. Freud implied the existence of angency when he referred to the "taming" of the instincts by the ego. Psychanalytic research, he said, proved that "the ego is not even master in its own house, but must content inself with scanty information of what is going on unconsciously in its mind"[13] Freud saw this affront to the human being's narcissism as one of a series of blows inflicted by sceince.
  • Copernicus and Darwin destroyed the belief that humans are at the center of the unverse, and
  • psychoanalysis destroyed the belief that one is the master of one's own soul.
As Richard Rorty has said, this decentering indicates what is most unsettling about psychoanalysis: Freud suggested not only that one is not master of one's own house but that one's house is occupied by alien presence[14]


"Where It Is I Shall Be"

When Freud wrote "Where It is I shall be,"[15] he was using "It" in the sense formulated by Georg Groddeck, who introduced the term. "It" is the impersonal, attesting to the fact that we are "lived" by unconscious and uncontrollable forces.[16] Freud portrayed this It(Id) as "a chaos, a cauldron full of seething excitations."[17] He emphasized that the major threat to the ego's continuity and coherence was internal. Today most psychoanalysts would give equal weight to the threats from without--to developmental disturbances and traumatic impingements, all of which result in a loss of a sense of the agency of the self. This loss of the sense of agency reflects a decline in the self's coherence. "Coherence" literally means "a sticking together," so that a severe disturbance of homeostasis implies a fragmentation of the self, a flying apart, a sens of chaos. When Freud spoke og the irrational and chaotic id, he believed that the ego gained mastery over the id developmentally through a process of internalization. Freud referred to this process "desexualization" or "sublimation" where, through identification, the ego assumes the features of the loved objects and forces itself upon the id, saying: "Look, you can love me, too--I am so like the object."[18] In current time, in contrast to early development, the I(ego) extends its hegemony over the It(id) by means of insight. In psychoanalytic treatment, insight is achieved both by means of those interpretations that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and by a reliving within the transference. All of these measures extend the agency of the self. ........

2010년 5월 12일 수요일

Help Korea

[Help Korea!] 8 Koreans out of 10 disagree with 4-River Project but govn't just ignores it and keeps destructing mother rivers @Greenpeace

2010년 5월 9일 일요일

Dic: 데(의존명사), -ㄴ 데다(가)

(1)【의존명사】

1.ㄱ. 곳. 장소.
  • 너랑 어디 잠깐 들를 데가 있어.
1.ㄴ. 부분. 요소.
  • 사람은 이상한 데가 있어서 돈이 없으면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 이 글에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데가 없다.
2.ㄱ. 일.
  • 언젠가는 내 소신을 펼 날이 올 것을 믿고, 나는 기능을 익히는 데만 힘을 기울였다.
2.ㄴ. 것. 사실.
  • 제가 아는 데까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남의 친구가 되는 데 있다.
  • 철기가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 해 저무는 고향의 풍경은 비할 데가 없이 아름답다.
3. 경우. 상황.
  • 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질서가 필요하다.

-ㄴ/는 데다(가)
[정도가 더 심해짐을 나타내어] (그러한) 상황에 더하여.
  • 그는 워낙 머리가 좋은 데다가 책벌레라고 하리만치 부지런하여 항상 일 등을 독차지했다.
  • 이 제품은 싼 데다가 질도 좋아 매우 잘 팔려요.
※ ‘-는 데다가’는 동사의 어간과 ‘있다, 없다’의 어간 뒤에, ‘-ㄴ 데다가’는 받침 없는 형용사의 어간과 ‘이다’의 어간 뒤에, ‘-은 데다가’는 받침 있는 형용사의 어간 뒤에 쓰임.
.... 연세한국어사전 via/ http://garyshome.net/search/

Dic: 그렇다고, 그렇다(고) 하더라도/해도/해서

그렇다고【부사】
[‘∼도 아니다/없다’ 따위의 양보하며 부정하는 말 앞에 쓰이어] 그러하다고 인정을 하여도. 그러나.
[예문]
  • 그는 어른 비위도 아이 비위도 잘 맞추었다. 그렇다고 아첨을 떤다거나 간사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달랐다.
  • 평소에 모아 논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다 팔 것도 없는 무척 어려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 그네와의 약속을 지킬 수도, 그렇다고 안 지킬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해도/해서
그러하다고 인정을 하여도.
[예문]
  • 분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의 집 가정 문제에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는 문제니까 좀 참아.
  • 경찰관이 빈정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캐묻는 것도 아닌 투로 말하곤 가 버렸다.
... 연세한국어사전 (via http://garyshome.net/search/ )

2010년 5월 7일 금요일

사회과학 글쓰기 자료 찾아보기

읽기에 더 간편해 보이는 사회과학 글쓰고 권고사항을 찾아보자.

맞춤법 통일안과 다르더라도 간편하고 합리적인 부분을 기록해둠이 좋겠다.

2. ...


※ 다음은 어느 PPT 자료(정병기 교수 지음, 자료링크를 다시 찾지 못함)의 일부:

1) 직접인용 조사
“......”라고, “......”라는 (맞춤법통일안 원칙)
“......”고, “......”는 (사회과학 글쓰기 권고: ‘라’의 생략으로 이해하고 이와 같이 사용할 수 있음).

2) 보충설명으로 쓰인 쌍점
정약용의 대표작 : 목민심서, 경세유표 (맞춤법통일안 원칙)
정약용의 대표작: 목민심서, 경세유표 (사회과학 글쓰기 권고)

3) 인용부호
홍길동에 따르면,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홍길동 2000, 48) (맞춤법 통일안 원칙)
홍길동에 따르면,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홍길동 2000, 48). (사회과학 글쓰기 권고)

(사회과학 글쓰기: 대학생을 위한 논문작성법)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연결어미 (-어서/-아서 등)

1. 교수학습센터: 문장: 문장의 짜임 (앞서 한번 보관했던 링크) 
2. 티스토리의 시퍼: 정말 헷갈리는 '되어→돼'에 대한 총정리

토론▷ 골드만삭스: 금융제국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부활


  • 지은이: 리사 엔드리치 (Lisa Endlich)
  • 제목: 골드만삭스: 금융제국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부활(원제: Goldman Sachs: The Culture of Success)
  • 한국어판 출판일 및 출판사: 2010년 4월, 21세기북스
  • 원서 출판일 및 출판사: 2000년 3월(2판) 1999년(초판), Touchstone/Simon & Schuster
***
| 2009년 중반부터 11월 초순까지 번역하느라 꽤 긴 시간이 들어간 책입니다. 한국어판 출판사에서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골드만삭스라는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를 1876년 창업 때부터 훑어가는 한 기업의 역사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다른 면모를 많이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즐비합니다.
  • 우선, 19세기 후반 독일계 유대인의 1인 어음 중개상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20세기 말 세계 1위의 투자은행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투자은행산업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1998년 아시아금융위기 이래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등 금융위기 때마다 '주범'으로 등장하는 투자은행이란 곳들이 뭐하는 곳이고 어떻게 시작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커다란 흐름 두 개를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이 산업혁명을 거칠 때 필요했던 자본을 공급하면서 이들 투자은행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물결이 있었고, 1970년대 중반 이후--특히 1980년대부터--거세져 가는 자본의 국제화 흐름을 타고 이들의 움직임도 전통적인 자본배분 기능에 비해 투기적인 거래가 강화되어가는 물결입니다).
  • 둘째, 우리나라의 회사 문화와는 아주 다른 합자회사(partnership)의 역사라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동업은 곧 망하는(혹은 사기 당하는) 지름길이라는 우리 사회의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수백 명의 동업자(즉 파트너)가 어떻게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을 만들었는지 그 내부의 이야기는 다른 시각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일이 될 듯합니다. 주식회사가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회사 형태로 보이지만, 기업가 정신과 일하는 사람의 동기 측면에서 과연 그러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 그밖에 미국의 재무부장관(로버트 루빈, 헨리 폴슨)을 비롯해 여러 공직에 많이 진출한 이 회사 사람들의 성장 과정도 한 번 살펴볼 만한 대목입니다. (2009년 12월 29일)
|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증권금융업계가 수수료(위탁매매 및 판매 등) 사업에 치중하고 수익성 높은 투자은행사업은 일천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여전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일례로, 골드만삭스를 필두로 투자은행업계에서 시작된 "principal investment"란 용어 자체도 "자기투자", "자가투자", "자기자본투자", "자기자본직접투자" 등 우리말 용어가 제각각이고 마땅히 정립되어 있는 용어가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proprietary trading"이란 용어 역시 "자가투자", "자기거래", "자기매매", "자기자본거래" 등으로 제각각이고 마땅한 확립되어 있는 용어를 찾기 힘듭니다. 이러한 용어를 비롯해 이 책에서 다룬 옮긴이 주를 모아 봅니다.(2009년 12월 31일)

| 독자 참고(같은 제목의 다른 책): 골드만삭스(찰스 엘리스 지음, 예스위캔 펴냄)-예스24,
| 언론서평: 매일경제, 세계일보
    ***
    주요 목차:
    ※ 아래 세부 목차는 출간 전에 제가 적어본 것이라서 표현상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 일러두기

    1장. 1986년: 가기 어려운 길
    2장. 1869~1976년: 가족회사
    • 맨해튼 지하실에서 시작한 1인 어음 중개상
    • 제이피모건을 피해 공모발행의 새 길을 열다
    • 1929년 주식광기의 선봉에 서서
    •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다: 시드니 와인버그와 월터 삭스
    •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백의종군의 세월
    • 포드자동차의 최초공모발행
    • 타고난 트레이더, 거스 레비
    • 또다시 찾아온 위기: 펜센트럴 철도의 파산
    3장. 1976~1990년: 세계무대에 오르다
    • 두 명의 존, 그리고 루빈과 프리드먼
    • 미국에 이어 유럽의 인수합병 거래를 주도하다
    • 성장과 동시에 회사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트레이딩 파워의 맹아, 제이애런의 인수
    • 뒤처진 채권업무의 재구축
    • 루빈의 위험차익거래부문과 프리맨의 내부자거래 혐의
    4장. 1990~1991년: 임무 교대
    • 포스트 와인버그 시대의 개막: 루빈-프리드먼의 쌍두마차
    • 더 이상 고객의 대리인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투자은행으로의 변신
    •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선발 과정
    • 런던에서의 기반 구축과 미디어 거물 맥스웰과의 악연
    • 맥스웰과의 결별, 뒤따른 그의 죽음
    5장. 1992~1993년: 정상에 서서
    • 근 20년 만에 성장의 주역으로 발돋움한 런던지사
    • 투기적 단기매매의 부상.
    6장. 1994년: 성공의 저주

    7장. 1995~1998년: 기업공개로 가는 길

    1999년: 기업공개

    ‘-들’은 복수만 뜻하지 않는다

    자료 출처: 웹사이트는 한국언론재단인데, 1차 출처인지 2차 출처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지은이: 이경우, 서울신문 교열팀 차장


    중학생 대여섯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인지라 학생들의 소소한 일까지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었다. “너희들 아버지들께서도 우리 학교 나오셨지?”

    여기서 ‘너희들’은 ‘너희’로 대체하기 어렵다. ‘아버지들’이 학생들 각각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를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너희들’이라고 했다. 찾아간 학생들이 형제나 남매였다면 어땠을까? 선생님은 “너희 아버지도 우리 학교 나오셨지?”라고 했을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너희’는 개개인을 뭉뚱그려 전체를 가리킨다. 반면 ‘너희들’은 전체를 말하면서도 개개인을 드러낸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최고다”라고 했을 때와 “너희가 최고다”라고 했을 때의 의미가 다르다. ‘너희들’은 선수 개개인에게 직접 ‘네가 최고’라고 말한 것 같은 의미를 어느 정도 전한다. 받아들이는 선수들은 이때 더 와 닿는 기분을 느낀다. ‘너희’가 집단 전체에 초점을 두는 데 비해 ‘너희들’은 개개의 구성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복수 접미사 ‘-들’은 이처럼 단순히 복수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우리말의 ‘-들’은 영어의 ‘-s/es’와 달리 더 다양하게 쓰인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중복 표현이라고 ‘-들’을 무조건 뺄 일은 아니다. “그는 농담으로 더위에 지친 청중들을 위로했다.” “청중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들’이 빠지면 대상은 좀 흐릿해진다. ‘-들’이 집단성보다 개별성을 드러내 주다 보니 대상을 선명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보다 많은 청중을 확보하기 위해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청중’이면 족해 보인다. 강조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광장을 메운 청중들은 그의 노래가 주는 감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에서 ‘청중’이라고 했으면 밋밋한 느낌을 줬을 것이다. 다음 문장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국악을 신세대 감각으로 재해석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청중들’이라고 표현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미가 더해져 더 살아 있는 문장이 됐겠다. 다른 집합명사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들’은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개별성을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진’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사람의 무리’ 또는 ‘집단’의 뜻을 더한다. ‘의료진, 임원진, 취재진, 간부진, 투수진.’ “정부에서 의료진을 보내는 게 어렵다면 비정부기구에서 보내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의료진들’이라고 하면 어색하다. 개별성을 표시할 대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두에 두는 상황이라면 ‘의료진들’이 더 어울린다. 여러 의사, 간호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치료 받은 사람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그는 의료진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단’도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단체의 뜻을 더한다. 그래서 ‘선수단’ ‘기자단’ ‘회장단’은 집합명사가 된다. 굳이 ‘-들’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많다. 그러나 다음 문장에서는 ‘-들’을 빼버리면 복수의 의미가 없어진다. 즉 각각의 여러 선수단을 일컬을 때다. “프로 스포츠 선수단들도 반대운동에 동참할 태세다.

    ‘-들’은 주어, 목적어, 부사어 등 문장 성분 어디에나 붙는 특징이 있다. 생략되기도 하지만 덧붙어서 다른 의미를 전하기도 한다.

    이중 주어와 서술절 관련 메모


    1. 교수학습센터: 문장: 문장의 짜임 (웹자료는 시기를 찾기 참 어렵다.)
    2. 네이트백과: 주어 (네이트백과의 본래 출처는 어디인지 확인해야 한다)
    3. 우리말 사랑 누리집: 겹문장의 짜임새

    2010년 5월 2일 일요일

    Capital Gain/Loss 에 대하여

    자료: Royal Accounting Group, http://royalaccounting.ca/system/newsletterView.php?newsletterIndex=44&page=3&searchTitle=


    2004-06-18Capital Gain/Loss 에 대하여

    자본 재산의 처분시에 발생하는 Capital Gain/Loss 에 관하여


    지난호에 주택과 관련한 세금에 대하여 기술하였는데 몇분이 추가적인 내용을 질문해 왔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알아두면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얘기로서, 오늘은 자본 재산의 처분시에 발생하는 Capital Gain/Loss 에 관하여 얘기하고자합니다.

    Generally, when you dispose of a property and end up with a gain or a loss, it may be treated in one of two ways:
    - as a capital gain or loss (Capital Transaction); or,
    - as an income gain or loss (Income Transaction).

    일반적으로 하는 상거래에서 이익이 나거나 손해가 나면,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capital gain or loss 아니면, income gain or loss 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파는 즉, 처분하는(Dispose) 대상에 따라 하나는 “자본거래”(Capital Transaction), 다른 하나는 “수입거래”(Income Transaction)로 나누어서 세금계산도 다르게 합니다.

    제조업자로부터 상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일이나, 도매상에서 물품을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끊임 없이 이루어지는 상거래입니다(Income Transaction). 한편 자동차를 사거나 건물을 파는 일 등은 규모가 큰 재산을 마련하거나 처분하는 대규모의 거래이지요(Capital Transaction). 그래서 이러한 종류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익에 대하여는 Capital Gain or Loss로 분류하여 과세하는 방법에도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Capital Property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주택, 자동차, 기계장비, 건물, 채권, 주식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대체로 이러한 것을 처분할 때 Capital Gain/Loss가 발생하는데, 처분하는 경우 이외에 증여, 이전, 상속 등의 경우에도 발생하며 Capital Gain은 전체의 50%에 대하여만 과세합니다 단, 주 거주용 주택(Principal Residence)의 처분시에는 양도 차익이 생기더라도 과세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Capital Gain/Loss는 언제 CRA(Canada Revenue Agency)에 보고해야 할까요?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발생한 것을 연말기준으로 보고합니다. 회계와 세무보고 주기를 1월부터 12월까지가 아닌 다른 회기말(예를 들면 7월초에서 6월말까지)을 관리하는 사업체나 파트너쉽이라 할지라도 꼭 12월말 기준으로 보고한다는 것입니다.

    Capital Gain/Loss는 어떻게 계산 할까요? 이 계산에 필요한 금액은 다음 세가지 입니다.
    가) 처분 대금(the proceeds of disposition)
    나) 처분 비용(the outlays and expenses incurred to sell the property)
    다) 조정 원가(the adjusted cost basis)

    가)에서 나)와 다)를 합한 금액을 빼서 0보다 크면 즉 이익이 생기면 Capital Gain, 0보다 작으면 즉 손해가 나면 Capital Loss가 됩니다. 다)는 약자로 ACB로 많이 표현하는데 구입가에서 추가되거나 차감된 금액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건물을 산 후에 증축공사를 하면 건물값이 추가되고, 세월이 지나 낡아지는 부분 만큼 감가상각을 하면 건물값이 그만큼 차감되지요. 그러니까 시세에 따라 값이 오르고 내리는 건 처분대금을 좌우하고, 구입후 추가 투자한 금액이나 감가상각 비용으로 회수한 금액은 조정원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Capital Transaction과 관련하여 유의할 점은 Capital Property의 구입으로부터 처분까지 이르는 동안 소요된 금액과 지출 비용, 수납 대금 등은 거래자료 및 계산근거와 함께 잘 보관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 물체가 생겨나서 사라질때가지의 역사적 기록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Capital Gain/Loss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인회계사 윤만호)

    2010년 5월 1일 토요일

    第三十事, 勉强

    勉强, 誠之不息 二十五用

    勉强者 勉自强也

    自强者 克圖進向

    無岐隅趦趄之端 畢竟困而得之也

    勉强則 誠本深固

    不治强而能强 無何而能成也


    ***

    학이시습: 갈림길(기) 모퉁이(우) 머뭇거릴(자); 머뭇거릴(자); 머뭇거릴;뒤뚝거릴(저) 마칠(필) 다할(경)

    참전계경(參佺戒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