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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수요일

쳐먹고 돈 내고 꺼져

그지 같은 편집은 정말 그지 같다.

'니들 쳐먹고 돈 내고 꺼져' 식 태도로 싸구려 짜장면을 만드는 주방장이 재료(원고), 조리 과정(원고를 이해하고,원고 생산자와 토의하면서 다루는 과정), 고객(독자)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게 없다.

재료와 절차에 충실하지 않은 주방장이 화학 조미료로 고객의 미각을 속이려고 하듯이, 재료-조리-고객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에 대한 책임감도 목적의식도 없다.

"짜장면을 많이 팔면 된다."

이거 하나밖에 없는 건방진 돌대가리들이다.

2017년 2월 5일 일요일

언어를 존중해요? 언어라는 도구를 값어치 있게 쓸 마음이 있습니까?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어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말을 내가 했다. 개인의 문제에서나 친구와의 문제에서나, 집단의 문제에서나 더 넓게는 사회와 나라의 문제에서나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복리를 증진하기 위한 도구로서 언어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솔직하게 거울 앞의 자신을 보면서, 나를 존중하여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언어를 값진 도구로 여기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희망(혹은 그 무엇)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예전의 생각이 갑자기 또 들었다. 사람들은 언어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하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유행하길래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 중에 자기 주변의 일상에서나 깊이 있는 미래에 대한 추론에서나 '혁명'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뭐, 혁명이 본인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자신에게 모종의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인 의미로 다가와요? 
어느 책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백여 년이 흐르는 시간 중의 한 시점, 1776년에 국부론을 쓰고 그 후로도 오래 살았을 아담 스미스가 정작 자신이 살던 시대에 산업혁명이란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그는 후대의 역사가들이 설명하게 될 그 혁명의 내용을 자기 주변에서 면밀하게 관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자기 주변도 관찰하지 않으면서 해외에서 수입된 말을 앵무새처럼 블라블라하는 게 아닌가 또 다시 의심하게 된다. 

... ...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동상이몽의 (사회적, 개인적) 현실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 누워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얼마 전 어렵게 마음 먹고 몇몇 선후배와 동기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느꼈던 마음자리의 일부분이 이것이다.

이걸 좀 즐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 차이를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배우자고 마음 먹는다.

... ...

2017년 1월 11일 수요일

My thankfulness with apology


Thankful for you to create excellent experience while growing up. 
Seeing you make your own valuable stories and history gives me immeasurable happiness,
At the same time making me feel very sorry not to be near you while you grow up and create your identity.
But I would say ..., I will say,
It's true that I am always with you, at least deep down my heart,
Though I couldn't be so, most of the time.
... 


2017년 1월 4일 수요일

[발췌: 정희진 선생, 강연] "사랑받을 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받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출처: 경향신문, 2015년 4월 29일.

여성학에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아주 빨라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있어서 언제 다시 읽어보려고 급하게 발췌식으로 메모해 둔다.

* * * 

( ... ) 굳이 말한다면, 사랑에서의 성공은 상호 성장을 의미하는데, 매일 매력을 갱신하는 사람은 드물죠. ( ... ) 게다가 동시에 두 사람이 일신우일신, 발전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오래가는 게 사랑이 '잘 된' 걸까요? 오래가는 사랑도 없어요. 회자정리(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를 거스르는 관계는 없습니다. 우선, 누구나 죽잖아요?

그래서 전, 사랑에 대해 고민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랑이 뭐가 새삼스럽습니까. 다 안 되잖아요. 그냥 욕망이 있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사랑이라는 제도를 작동시키죠.

사랑은 일단 '제도'입니다. 제도에는 규범이 있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또한 강제가 있고요. '이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그리고 구속력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랑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있습니다. ( ... ) 세 번째로 사랑에는 '윤리학'이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 폭력, 착취의 관계죠.

( ... ) 비정상은 '변태'가 아니라 제도 밖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 ... )

( ... ) 사실, 사랑의 범위와, 실제 행위는 엄청나게 넓지만 규범적으로 용인하는 사랑은 매우 협소합니다. 제도 밖의 사람이 힘들면서도 열정적인 이유는 규범을 거스르는 용기와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 ... )

( ... ) 연애 중인 많은 젊은이들이 '밀당'에 대해 관심이 많죠. 저는 밀당을 아주 싫어합니다. 일단, 밀당의 전제는, 더 사랑하는 쪽이 더 헌신하는 쪽이 약자라는 거죠. 연애에서조차 권력자가 되고 싶은 거죠. 연애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밀당이 있잖아요. ( ... ) 저는 밀당 대신 협상을 제안하고 싶어요. 제가 밀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해요. ( ... )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밀당에 힘을 쏟는 대신에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거죠. 밀당은 굉장한 여성성을 필요로 해요. 여자들이 대체로 잘하죠. 밀당의 핵심은 이중성과 모순성인데요, 왜 여성이 강하냐면 ( ... ) 여성의 성역할 노동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 ... ... )

저는 '밀당을 잘 해야 연애를 잘한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명언이 있어요. '남자들이 말이 없는 것은 과묵해서가 아니라 화제가 없어서 혹은 무식해서다'. 말 많은 남자가 훨씬 낫습니다. 말 없는 남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위험한 남자입니다.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을 많이 하다 보니 '누가 안 때릴 남자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그건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어떤 남자랑 식당을 갔는데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감은 잡히죠. 제가 맨날 주장하는 게 '사랑'보다는 '존중'이거든요. 존중이 훨씬 어려워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밀당엔 더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라는 전제가 있어요. 실연의 고통을 인격이 성장이나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사랑한 사람과 사랑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성장할 것 같아요? 사랑한 사랑이 성장하죠. 모든 문학 작품은 '그가 나를 떠났도다, 내가 남겨졌다' 이렇게 남겨진 사람의 시점이죠. '내가 너를 버렸도다' 이런 관점으로 쓰인 작품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은 받은 사람은 언어가 없어요,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언어를 가질 가능성이 높죠.

( ... ... )

( ... ... )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

1. 사랑은 권력 관계, 즉 힘의 관계다. 이 얘기는 사랑은 정치적 관계이고 정치적 의제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인권,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거지요. 사랑 나쁘게(?) 하는 남성이나 여성은, 윤리의식이 낮은 사람이고 인권 의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권력을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랑은 곧 '자원 혹은 매력의 교환'을 의미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눈이 먼다는 건, 신화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 배타적 1:1 사랑은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입니다. 생긴 지 200년밖에 안 됐어요. 개인이란 개념이 생기면서 연애라는 개념도 생겼죠. 사랑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자원과 매력이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많은 남성과 여성이 고통을 받습니다. 보통 남성의 매력은 돈과 짛식, 여성의 매력은 외모라고 여겨지죠. ( ... ) 그만큼 사람의 성립 자체가 사회적 행위라는 겁니다.

제가 사랑은 '자원'의 교환이라고 말했는데 자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캐릭터, 인격, 여러 가지 그 사람만의 고유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유성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고요,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고유성은 이것(남자는 돈과 지식, 여자는 외모)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상대에게 대체되지 않는 고유성을 원하지만 그런 사랑 주실 분은 신밖에 없어요. '법 앞에 평등', '신 앞에 평등' 이게 그런 뜻이거든요. 내가 어떤 모습을 가져도 사랑한다? ( ... ... ) 제 얘기는, 우리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자체를 당연시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상대방한테 사랑이나 매력을 느낄때, 그건 '순수한' 감정이 아니에요. 사랑이 순순하다고만 생각하면 사랑의 어려움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순수한 게 원래 없는데, 특히 사랑이 제일 순수하지 않아요. 젊은 이성애의 경우 더욱 더 그래요. ( ... ... ) 사랑이 '힘의 관계'라고 얘기하는 건 그것에 대한 성찰을 해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나는 이 사랑을 순수하게 생각하는데 '과연 상대가 10살 많아도 좋아했을까'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유한 그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 조건의 산물입니다.

2. 인간의 인격은 사랑받을 때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태도는 늘 고귀합니다. 그런데, 사랑받을 때는 어떤가요. 특히 내가 사랑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태도가 중요합니다. ( ... ... ) 제가 사랑은 권력 관계라고 강조했지만, 이건 새삼스러운 상투적인 말이죠. 다들 사랑받으면 권력을 부리잖아요.

3. 자기 모멸감으로만 안 끝나도 성공한 사랑입니다.

상처가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나요. 문제는 상처로 계속 갖고 갈 것이냐 아니면 성숙의 자원으로 삼을 것이냐 입니다. ( ... ... )

제 생각에는요, 그래도 상대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정도면, 헤어져도 '대성공'이라는 겁니다. 자기 모욕만으로 끝나지 않아도 성공한 사랑이에요. 특히 여성에게 이성애는 동일시 감정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가 괜찮았다면 상처가 덜해요. 그런데 '거지 같은 남자'였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상처가 깊죠. 저런 인간을 사랑하다니 ... 수치심이 남죠. 실연의 추억이냐, 악몽이냐. 그게 나한테만 달린 문제가 아니므로 행운을 빌어야죠.

<질의응답>

질문: 강의 초반에 헤어질 때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헤어질 때 성숙하다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답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두 가지. 끝났으면 끝났다고 얘기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취할 게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사람이 있어요. 상대를 희망 고문과 미스터리로 고민하게 하는 게 가장 저질입니다. 또 하나는 좋은 이미지로 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여자, 나쁜 남자 되기 싫어서 질질 끄는 경우 있잖아요. 이별은 정산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데, 이익만 남기려고 하는 것은 망상이죠. 이성 관계에서 좋은 인상으로만 남으려는 것, 이것은 인간의 가장 추잡한 욕망입니다. 저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할 것,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을 버릴 것, 이렇게 두 가지 꼽고 싶네요.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지척이 지옥, 지척이 천국


아침이 열리고 태양이 대지를 비추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다람쥐 쳇바퀴가 지겨운 멍에 같아도
세상사의 굴곡에 치이면, 오히려 ‘제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라도 굴러가 달라’고 애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게 도대체 뭔가...

세상사의 복잡다기한 사태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괴물들을 보면
지척이 다 지옥이고, 아귀들 천지다.

마음 한 사위 내둘러 내 심소에서 날려 버리면
또 바로 지척이 천국일진데
요새는 그곳이 아주 멀다.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When something happens, it just happens.


Oh, what is this? What life of this time is this?

When something happens, it happens.

I don't know why it happens, I just see it happen.

It's the thing, without me knowing anything about it.

So happen many unexpected affairs in life ...
including, you know, really many things: of course my and everybody else's births and deaths, growing-up, competitions, and surely love affairs, finding some meaning in life, and just living up to these days.

Reaching some target I defined abruptly turns into a delusion,
then a torture, agonizing, trying to find another meaning, and something happens again ...

Some delight encountered in the way is no longer a happiness, it's becoming yet another happening.

What's this?

2016년 11월 19일 토요일

친구

친구가 누구와 대화한다.
그러다 상처를 받았는지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달려가 부둥켜 안고 같이 운다.
엄마가 이런저런 와중에 운전하느라 힘들다고 한다.
운전하며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
구경꾼이 더 있었는데...기억나지 않는다.

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My friend to sail through in this sea of world


I always feel you not as my part that I can command

But as a friend to sail with

To sail through in this sea of world

...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Christophe ?


Je te vois, Christophe.
C'est bien longtemps que je t'ai vu.

C'était un rêve.
Choi aussi était là ; elle était avec toi.

Tous les deux et moi volent, en prenant un avoin.
Un avion, tout petit et léger, sans toit ni portes, mais qui avait de très longue ailes.
Nous nous amusons à un vol ; tu étais le pilote.

Après un atterissage forcé, sain et sauf, nous nous donnons du bon temps.
En nous relaxant, nous bavardant, nous promenant.


2016년 8월 25일 목요일

알려지지 않은 의도와 부정확한 판단의 무한 고리 [에서 벗어나기]


우울증 인지치료 연구한 뉴저지 의과대학의 아서 프리먼 교수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모욕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자초한 것이다."라 했다. 누군의 말이나 행동에서 메타태그를 읽어내는 예민함과 눈치를 가졌다고 믿기전에 생각해볼 말.
자아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한 신문 스크랩을 모두 믿지 않는다. 추종자들이 완벽하다고 칭찬해준다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지도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서 프리먼, 뉴저지 의과대학 교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임의로 읽는 데 의존하지 말고, 상대방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 때 첫 단계가 가장 어려운데,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는 것이다." ─아서 프리먼, 뉴저지 의과대학 교수
당신이 모든 이에 대해 완벽하게 언제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믿을 때, 당신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은 몇몇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가끔씩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서 프리먼, 뉴저지 의과대학 교수

2016년 8월 18일 목요일

동시에 엄습하는 기쁨과 슬픔


기쁘면서 동시에 슬픈 감정.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아무리 초라하면 어떨까, 아무리 없다한들 어떨까


권위.

그리고 내가 무언가─너에게도─의미 있는 걸 했다거나 하고 있다는 의견이나 암시.

그를 통해 존중받고 싶어하는 마음 일으킴.

그런 게 왜 필요할까?

그것은 어떤 두려움의 반영.

그러나 그 두려움을 애써 꼭꼭 숨기고 다른 문화적 장치로 덮어 가리려고 한다.

보수주의자는 자기가 보수(保守)하려는─지키려는─무엇을 왜 지키려고 하는지 생각해 봤을까.

자신이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자신이 부수고 싶어하는 울타리와 제약이 자신의 내면에까지 파고들어 있음을 생각해 봤을까.

자신의 내면과 생활에 파고든 적을 외면화하기 바쁘다.


2014년 3월 5일 수요일

[자료] J.S. Mill의 자서전에서


" J.S.밀의 자서전을 그가 받은 천재교육과 젊은 시절부터 이룩한 학문적 성취로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은 듯하다그러나 내 생각에 그보다 더 중요하게 읽어야 할 부분실제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남들보다 뛰어났던 자신의 앎에 관한 밀의 고백과 그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그동안의 삶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게 한다. ... "

자료: 링크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사십 년 만에 뵌 할아버님

간밤의 꿈자리에서 할아버님을 뵈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어머님과 형님과 같이 김치 비빔밥을 먹을 때 돌아가셨던 때가 1974년인데, 그때 마지막으로 뵌 지 근 40년 만에 처음으로 할아버님을 뵌 셈이다. 물 좋고 물이 흐르는 사이사이 바위가 아름다운 어떤 계곡에서 푸짐하게 차려놓은 잔치상 같은 것들이 이곳저곳에 널리 마련되어 있는 자리가 보이는 와중에 할아버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어릴 적에 뵈었던 기억밖에 없어서인지 할아버님의 얼굴은 근엄하시기만 했다.가까운 일가친척을 포함해 그 자리에 아버님도 계셨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님과 이모님이 잔치상에 들여갈 음식을 분주히 만드시는 모습도 기억난다.

* * *

꿈은 지나고 나면 잊히지만, 아무 단서 없이 내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풍경이기도 하면서 나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을 기록하고 싶어 몇 자 적어놓는다. 2013년 3월 28일 새벽에 꾸었던 꿈이다.

2013년 3월 3일 일요일

[책에서 만나는 얄팍한 인연] 하이에크의 ‘순수’와 ‘실질’


20세기 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순수(pure)’라는 형용사를 자신의 지적 작업(주로 경제학)과 관련해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무렵에 그와 다른 사람들(예컨대, 케인스)도 이 형용사를 종종 활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이에크처럼 ‘순수(pure)’라는 표현에 거의 형이상학적이라고도 할 만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pure’라는 말을 아주 여러 번에 걸쳐 ‘화폐적 개입을 걷어냈다’는 뜻의 ‘real’과 같은 의미로 썼던 것 같다. 그렇게 그가 사용한 용례를 찾는 게 무슨 의미나 쓸모가 있을지 의심스러워서 다시 찾아볼 용기를 낼 수는 없고 다만 사례 하나를 적어본다.

If, on the other hand, we decide to measure demand in real terms, as we clearly ought to do so long as we treat the proposition as one of pure theory, (...) [The Pure Theory of Capital (Hayek, 1941)중에서]
* * *

아무튼 어떤 시기에 사람들이 각자의 ‘무리(circles)’와 어울리면서 어떤 말에다가 어떤 주관적이거나 간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양상은 참으로 다양함을 느낀다. (오늘의 작업 중 넉두리.)

여담이지만 그가 LSE에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기 전에 지금과 같이 발달한 영어 글쓰기 교육 과정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훨씬 더 많은 독자를 얻었을 것이고 케인스와의 논쟁에서도 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OMG.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아쉬운 해우

간밤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꿈에서 또 만났다. 꿈의 도입부가 늘 그렇듯이 현실(이승)에서 접한 어떤 장소, 내 뜻을 찾아 멀리 유학을 떠난 이국 땅이다.

거처할 방을 구해야 하는 나는 그곳의 여러 거리를 헤매다가 ‘저기 대문이 큰 저 집에 가서 세 놓는 방이 있는지 물어볼까’ 망설였다. 아주 대문이 큰 그 집을 멀리서 지켜보니 일군의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리로 걸었다.

서너 사람들이 그 대문에서 나오더니 내 쪽으로 걸어온다. 차츰 그들과 가까워지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중 한 분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 여긴 어떻게 오신 거에요?” 내가 여쭈어 보았다. 무언가 스치는 답변을 하셨는데, 너무 빠르게 지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다음 말씀을 하셨다.

“여기 나와서 고향에서 알던 사람들 전부 다 만났다.”
“참, 잘된 일이네요.”
나는 이렇게 답하면서 박수를 치고  기뻐하다가, 갑자기 아버님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아버님도 우시는 듯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님과 동행하던 연로하신 두세 분이 부둥켜 안은 아버님과 나를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부둥켜 안고 울다가 바로 꿈에서 깨버렸다. 속상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린 아쉬운 만남.

* * * * *

제작년 겨울에 아버님을 여의고 두 번째로 뵌 꿈이다. 그간에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꿈속의 내 의식이 직접 대면한 게 아니라 꿈속에서도 멀리 계신 모습을 아주 찰나에 뵌 것이라서 ‘공식적인 꿈’으로 치지는 않는다. “여기 나와서 고향에서 알던 사람들 전부 다 만났다”는 말씀이 지금 이 글을 쓸 때까지도 선명하게 귀에 울린다.

* * * * * * *

나를 아껴주는 사람은 내가 꿈속에서 엉엉 우는 바로 그 순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음을 자각하는 현실(나는 이승으로 해석)의 내 의식’이 꿈의 상황에 강력히 개입했기 때문에 두 세계가 충돌하면서 꿈에서 깨어났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 그 두 세계는 존재의 형식도 의식의 차원도 다를 터. ...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캄캄한 밤바다에서 배들은 서로 지나치며 얘기해

인용된 영시 한 대목의 출처를 찾아보니,
서로 다른 삶과 입장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옛 벗들과의 관계가 지은이의 정서와 교차한다.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and speak each other in passing;
Only a signal shown and a distant voice in the darkness;
So on the ocean of life we pass and speak one another,
Only a look and a voice; then darkness again and a silence.
Henry Wadsworth Longfellow, "The Theologian's Tale", 
published in Tales of a Wayside Inn, 1873.
http://www.bartleby.com/100/437.html


19세기 말 지은이의 정서와 교감하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우리말로 옮겨본다.

캄캄한 밤바다에서 배들은 서로 지나치며 얘기해.
암흑 속에 보이는 신호와 아득한 목소리밖에 없지.
그처럼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는 서로 지나치며 얘기하는 거야.
그냥 한 번 보고 한 번 듣고서, 다시 암흑과 침묵 속으로.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신학자의 이야기", 
Tales of a Wayside Inn (1873) 중에서

2012년 8월 4일 토요일

실물, 물량, 실질

실물(real) 혹은 물량(volume)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지수를 활용하여 명목 (nominal)기준의 지표(값)에서 물가변동분을 걷어낸 지표(값)을 실질(real)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표현한다.

(1) ‘실물’이나 ‘물량’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바로 그 말, ‘실물’이나 ‘물량’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관행이요,

(2) 지수를 이용하여 산출된 ‘실물 개념의 지표’를 표현하기 위해 ‘실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관행이다.

(2)의 관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1)의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난감했던 적이 있다. 지수를 활용해 산출되는 실질이라는 수식어가 애초에 머릿속에 등장한 이유는 실물 혹은 물량이라는 개념이 목적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수(index)라는 통계를 먼저 생각하고 실물이라는 개념을 생각했을까? 그럴 수가 있을까?

* * *

기표와 기의─세부적으로는 다르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원효대사의 언상(言相)과 언의(言義)─를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인간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 중에는 뿌리부터 말할 때도 있고 뿌리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면서 가지를 얘기할 때도 있는 것이다.

2012년 8월 2일 목요일

말? 의미?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기는 사람은 기표와 기의를 수없이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의미를 되씹는다.

의미를 찾는 과정이요, 동시에 의미를 표현할 소리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꼴통들은 그 떼었다 붙이는 생각의 노동을 거부한다.

축하한다. 세상에 아주 잘 적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