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책에서 만나는 얄팍한 인연] 하이에크의 ‘순수’와 ‘실질’


20세기 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순수(pure)’라는 형용사를 자신의 지적 작업(주로 경제학)과 관련해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무렵에 그와 다른 사람들(예컨대, 케인스)도 이 형용사를 종종 활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이에크처럼 ‘순수(pure)’라는 표현에 거의 형이상학적이라고도 할 만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pure’라는 말을 아주 여러 번에 걸쳐 ‘화폐적 개입을 걷어냈다’는 뜻의 ‘real’과 같은 의미로 썼던 것 같다. 그렇게 그가 사용한 용례를 찾는 게 무슨 의미나 쓸모가 있을지 의심스러워서 다시 찾아볼 용기를 낼 수는 없고 다만 사례 하나를 적어본다.

If, on the other hand, we decide to measure demand in real terms, as we clearly ought to do so long as we treat the proposition as one of pure theory, (...) [The Pure Theory of Capital (Hayek, 1941)중에서]
* * *

아무튼 어떤 시기에 사람들이 각자의 ‘무리(circles)’와 어울리면서 어떤 말에다가 어떤 주관적이거나 간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양상은 참으로 다양함을 느낀다. (오늘의 작업 중 넉두리.)

여담이지만 그가 LSE에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기 전에 지금과 같이 발달한 영어 글쓰기 교육 과정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훨씬 더 많은 독자를 얻었을 것이고 케인스와의 논쟁에서도 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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