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9일 금요일

기간 vs 동안: 그 중복 표현의 삭제와 활용에 대해

1. "기간"과 "동안"의 중복

자료: 한겨레신문, 김형배의 어법특강 중에서,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29853.html

다음에 위 출처의 우리말 어법 강의 내용을 붙인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의미상 불필요한 단어가 사용된 표현을 ‘잉여적 표현’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엄밀한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다.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관용적 표현이나 뜻을 강조하여 되풀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문장에서 같은 단어, 구절, 어미, 조사 등을 되풀이하여 쓰지 말아야 한다.

※ 예문 (1): 방학 기간 동안에 컴퓨터 게임을 실컷 해서 좋았다.
※ 예문 (2) ~ (9): 생략

(1)에서 ‘기간’이라는 말은 ‘어느 때부터 다른 어느 때까지의 동안’이라는 뜻으로, 이 말이 이미 ‘동안’이라는 말이므로 뒤에 오는 ‘동안’이라는 말과 의미상 중복된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한 셈이다. 필요 없는 군더더기는 없애야 문장 표현이 간결하고 명료해진다.
언어 표현에서 명료성과 경제성은 둘 다 중요하다고 본다. 위 예문에서 "기간 동안에"는 "기간에"로 줄이는 것이 명료성도 잃지 않고, 경제성을 높이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중복 표현의 삭제가 항상 기계적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말들의 어울림에 따라서 중복이 아닌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국어사전 하나에서 "기간"과 "동안"을 찾아보자.

2. 사전 참조


자료: 네이버국어사전(원출처: 국립국어원),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5512800

※ 기간(期間): [명사] 어느 일정한 시기부터 다른 어느 일정한 시기까지의 사이.

(용례들) 단속 기간/ 불조심 강조 기간 / 재학 기간 / 접수 기간 엄수 / 체류 기간 / 휴가 기간 /
이 기간 동안 맡은 일을 다 끝내 주세요. / 그는 시험 기간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
그는 위염으로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았다. / 전세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문화재 발굴 작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 동안: [명사] 1 어느 한때에서 다른 한때까지 시간의 길이. (용례) 사흘 동안 / 사 년 동안의 대학 생활 / 며칠 동안을 두고 생각했다. / 내가 없는 동안 집을 잘 보아야 한다.
[명사] 2 두 사람 사이의 떨어진 촌수나 두 지점 사이의 거리. (용례) 우리 집은 가게에서 동안이 멀지 않았다. / 과부가 천방지축하고 내빼는 것을 멀찍이 바라보고 달음질쳐서 그 뒤를 쫓아갔다. 예사 말소리가 들릴 만큼 동안이 가까워졌다.≪홍명희, 임꺽정≫

3. 중복과 수식 관계

다음 예문을 보자 (모두 번역 작업 중에 만든 문장으로 이 번 기회에 어법을 검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예문 가) 같은 기간 동안 배당은 100% 넘게 증가했다.
이런 경우는 위 어법특강의 지적대로 고치는 게 합당하다.
(예문 가:수정) 같은 기간(에) 배당은 100% 넘게 증가했다.
여기서 "기간(에)"에 붙은 조사 "에"는 써도 좋고 안 써도 좋다고 본다. "기간"이라는 명사를 "증가했다"는 동사를 꾸미는 부사로 활용해도 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 (예문 다)의 [1]과 [2]를 검토해 보자.
(예문 다)

현실적인 위험의 정의는 물가상승과 세금으로 인해 투자원금을 잃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을 포함해야 한다.

[1]. 투자수단이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기간 동안 투자원금을 보존하게 될 확률
[2]. 투자자가 선정한 투자수단이 이 보유기간 동안 다른 투자수단보다 나은 실적을 거두게 될 확률
위 예문 중에서 [1]과 [2]를 보고 중복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기간"과 "동안" 중에서 "동안"을 삭제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1-수정]. 투자수단이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기간 (혹은 보유 기간) 투자원금을 보존하게 될 확률
[2-수정]. 투자자가 선정한 투자수단이 이 보유기간 (혹은 보유 기간) 다른 투자수단보다 나은 실적을 거두게 될 확률

참고로, 이 번역서는 투자전문 서적인데, 갖가지 투자수단을 매수한 뒤 매도하기 전까지 "보유하는 기간"을 뜻하는 "보유 기간"이 굳어진 의미로 자주 활용되어 "보유기간"으로 붙여 쓴 표현을 택했었다. 하지만 "동안"을 제거해버리면, "보유 기간"으로 띄어 써야 할 것 같다.

예문 [1-수정]에서, 조사 "에"를 쓰지 않는다고 가정해서 읽어보면, 동사 "의도하는"의 꾸밈을 받는 명사로는 우선 "보유"가 먼저 읽히고, 그 다음에 "기간"이 읽힌다. 또 두 개의 명사 "보유"와 "기간"까지 읽었을 때는, 동사 "의도하는"의 꾸밈을 받는 게 "보유"와 "기간" 둘 다인 것 같기도 하다. 자, 일단 이 문제를 염두에 둔 채 "동안"을 제거한 예문을 다시 읽어보자.
투자수단이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 기간 투자원금을 보존하게 될 확률
읽어가는 순서대로 읽는이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의미의 흐름과 꾸밈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나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
(2)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 기간"
(3)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 기간"
(4)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 기간 투자원금"
...
여기서 위 (예문 1)과 (예문 가)에서 나온 "기간"이나 "기간 동안"과 (예문 다-[1])에서 나온 "기간"과 "동안"은 문장 내에서 쓰임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전자에는 "기간"을 꾸미는 동사적 표현이 없는 반면, 후자에는 "의도하다"라는 동사가 뒤에 나오는 명사 어구들을 꾸미는 관계가 발생한다. 위 (1)~(4)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꾸밈 관계는 "의도하는"이 "기간"을 꾸미는 관계다. 이런 용례에서는, 비록 "기간"과 "동안"에 중복된 의미가 있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동안"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여기서 "기간"은 동사 "의도하는"의 꾸밈(의미상 목적어)을 받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문장 내 역할로 체언(명사)의 지위를 부여해야지, 용언(형용사나 동사)를 꾸미는 부사의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 예컨대, "의도하는 시기(명사)"는 어울리는 꾸밈이 되지만, "의도하는 일찍(부사)"은 어울리는 꾸밈이 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둘째로, "기간"이 뒤에 나오는 다른 동사 "보존하다"를 꾸미는 부사적 역할을 홀로 수행하기에는 "보존하다"의 목적어로 쓰이는 다른 명사 "투자원금"과의 어울림이 부드럽기 힘들다. 즉 "보유" + "기간" + "투자원금"으로 명사 어휘가 세 개 이어지는 동안, 각 명사의 "격"(동격, 주격, 목적격, 처소격 등)이 전혀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읽는이의 의미 파악은 문장을 다 읽고 재해석(스스로 문장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생각하에 필자는 (예문 다-[1])를 다음과 같이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하나. 투자수단이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기간 투자원금을 보존하게 될 확률
둘. 투자수단이 투자자가 의도하는 보유기간 동안 투자원금을 보존하게 될 확률

조사 "에"를 붙여서 "보유기간에"가 '시간'의 부사 어구로 쓰이도록 윤활유를 쳐줌과 동시에 "의도하다"의 목적어 관계에 있는 "보유기간"에 명확한 명사 지위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동시에 조사 "에"는 시간의 길이와 시점, 또 장소 모두를 가리켜서 그 쓰임이 넓은 반면, "동안"은 시간의 길이를 바로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글 쓰는 이에 따라서 조사 "에" 대신에 "동안"을 쓰는 게 좋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예문 다-[2])는 다른 예문들처럼 "기간"을 수식하는 동사가 없다. 그래서 "동안"을 제거하는 게 일견 좋을 것 같다. 즉,

투자자가 선정한 투자수단이 이 보유기간(혹은 보유 기간) 다른 투자수단보다 나은 실적을 거두게 될 확률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보유라는 명사를 제거하면 좀 다르게 읽힌다. 즉,
투자자가 선정한 투자수단이 이 기간 다른 투자수단보다 나은 실적을 거두게 될 확률
의문점이 좀 남는다. 여기서는 "기간" 뒤에 다른 명사구 표현 "다른 투자수단"이 나오기 때문에, 조사 "에"가 들어가지 않고는 장애가 생기는 용례 같다. 또 "보유기간"으로 붙여 쓴 명사를 책의 전체 맥락에서 특화 용어로 채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개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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