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1970년대 이전에는 인수합병이 한 기업(혹은 이 기업을 대변하는 은행가)이 다른 기업에게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 인수하는 측은 좋은 조건을 제시해 인수표적인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했고 구슬리고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일도 없었고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부터 미국의 주력 기업들과 이들의 주거래 투자은행들은 인수합병은 우호적인 쌍방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10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인수합병을 대하는 투자은행업계의 점잖은 관행은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이렇게 변하기 전의 상황을 보이시가 들려줬다. “어느 기업을 인수 표적으로 삼아 공격한다는 생각은 극히 점잖지 못하고 몰상식한 짓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은행가가 최고경영자에게 기업 매각을 권유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고경영자에게 자식을 팔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으니까요. 매각 제의는 은행가가 할 수 있는 제안 가운데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1974년 7월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모건스탠리가 바로 이 일을 시작하는 첫 포성을 울렸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때 캐나다의 고객회사인 인터내셔널니켈International Nickel(보통 INCO로 통하는 회사였다)을 대신해 세계 최대의 배터리 제조업체였던 일렉트릭스토리지배터리Electric Storage Battery(ESB)을 표적으로 적대적 인수공격에 나섰다. INCO는 인수공격을 결정하고 모건스탠리를 찾아가 지원과 자문을 구했다. 모건스탠리는 이 이례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오랜 고객을 지원할 뿐이라는 말로 정당화했다. 제이피모건은 그 옛날부터 거대한 단골 기업고객들이 많았던 터라, 모건스탠리는 1935년 모기업 제이피모건에서 나와 투자은행으로 독립하기 전부터 철통같은 기업고객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작되면서 전통적인 업계판도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ESB의 최고경영자 프레드 포트Fred Port는 모건스탠리가 인수공격에 발 벗고 나섰음을 알아채고, 당시 골드만삭스의 인수합병 부문장을 맡고 있던 스티븐 프리드먼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공격이 시작됐던 날, 프리드먼이 자정에 집에 도착해 보니 포트의 긴급 전화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시간은 개의치 마시고 전화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날 오전 9시에 프리드먼은 포트의 필라델피아 사무실로 찾아가 그와 마주 앉았다. ESB는 공개서한에서 모건스탠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프리드먼은 인수 제시가격이 최근 주가보다 9 달러 높은 주당 28 달러라는 사실을 접하고, 포트에게 INCO에 맞서 싸울 방편으로 “백기사white knight”(인수표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매수 경쟁에 참여하는 우호적인 매수자)를 동원하거나 반독점 소송을 권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백기사로 참여한 유나이티드에어크래프트United Aircraft를 등에 업고 주가를 끌어올려 주당 41 달러를 지불하지 않고는 매수할 수 없도록 장애물을 쳤다. 더불어 ESB 주주들에게 100 퍼센트의 프리미엄을 벌어준 셈이다. 이날 이후로 인수합병 전쟁의 전선이 드러나게 됐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모건스탠리와 곧이어 퍼스트보스턴까지 인수 공격자 측에 섰고, 골드만삭스는 피인수 표적기업 측에 섰다. ... (생략)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리사 엔드리치Lisa Endlich, "World-Class Player," 《Goldman Sachs: The Culture of Succes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