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1장. 속병 앓는 장인

Chapter 1. The Troubled Craftsman

장인(匠人)이라고 하면 곧바로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창문 너머로 목수의 작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이 든 사람이 보이고 그 주위로 견습하는 도제들과 작업도구들이 보인다. 질서정연한 실내에는 의자 부품들이 죔쇠로 나란히 고정되어 있고 나무 깎는 생생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목수는 작업대에 몸을 기울여 상감(象嵌) 세공에 쓸 정밀한 칼집을 내고 있다. 지금 이 작업장은 길 아래쪽 가구 공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어느 실험실에서도 장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의 젊은 실험조교는 탁자 옆에서 눈썹을 치켜뜬 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죽은 토끼 여섯 마리가 절개된 복부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그녀가 양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토끼들에게 주사를 놓은 뒤로 뭔가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실험 절차를 잘못 수행했는지, 아니면 실험 절차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알아내려고 고민 중이다.

시내 음악 공연장에 가보면 세 번째 장인의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초빙 지휘자와 함께 리허설을 하고 있다. 이 지휘자는 현악기 파트에 바싹 다가서서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활 긋는 속도가 딱딱 맞아떨어지도록 한 악절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연주자들은 지쳐가지만, 그들이 내는 소리가 혼연일체를 이뤄감에 따라 기쁨이 배어난다. 오케스트라 관리자는 초조한 안색이다. 초빙 지휘자가 더 연습해야 한다고 고집해 리허설이 약정 시간을 넘기면, 그에게 추가 수고비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수고비 따위는 아랑곳없이 연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훌륭히 해내는 데 전념하고 있는 이들 목수와 실험실 조교, 지휘자는 모두 장인들이다. 이들이 공들여 하는 일은 생활과 직결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목적이 따로 있는 수단인 것은 아니다. 목수는 좀 더 빨리 일해서 더 많은 가구를 팔 수도 있을 것이고, 실험실 조교는 보고서 한 장으로 상사에게 문제를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초빙 지휘자는 시계를 눈여겨보다가 리허설 초과 시간에 대해 재계약을 할 수도 있다. 그리 몰두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실제적인 일에 임하여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이와 같은 장인의식을 목공이 하는 일처럼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생각이다. 장인의 노동을 가리키는 말로, 독일어의 ‘한트베르크(Handwerk)’는 ‘손(Hand)’과 ‘작업(Werk)’이 합성된 말이고, 프랑스어의 ‘아르티장(artisan)’도 손과 수작업 도구를 써서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영어의 ‘크래프트(craft)’는 쓰임이 좀 더 포괄적이어서 정치적 수완을 뜻하는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란 말에도 장인의 흔적이 스며들었다. 러시아의 의사 겸 작가였던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의사와 작가의 일을 둘 다 “마스쩨르스보(mastersvo)”라고 해서 장인적 실기로 취급했다. 손으로 하는 일이든, 정치나 의술 혹은 글쓰기든, 이런 구체적인 일들 하나하나를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감과 생각을 탐구할 수 있는 실험실로 다뤄보는 게 내 욕심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목표는 손과 머리, 기술(technique)과 표현(expression)[*], 실기(craft)와 예술(art)이 분리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그럴 때 머리가 어떻게 병드는지 밝힐 것이다. 사고력과 표현력, 둘 다 손상된다. ...(생략)

[*] 저자에게 전자우편으로 문의해서 원저 20쪽의 “기술과 과학”은 “기술과 표현”의 오기임을 확인했으므로 바로잡는다(옮긴이).


※ 다음 자료에서 일부을 발췌: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The Troubled Craftsman," 《장인 The Craf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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