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4일 토요일

바이올린, 왼손, 하이페츠

자료: http://blog.daum.net/kyrie-eleison/7354967


※ 메모: 

◆ 하이페츠의 손가락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좋은 왼손이란 어떤 것인가? 우선은 짧은 손가락보다는 긴 손가락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거미 다리처럼 길기만 한 손가락은 불리하다. 적당한 손가락의 길이에 더하여 넓고 평평한 손바닥을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에 더하여 특정 손가락의 왜곡이 없어야 한다. 예컨대 왼손 새끼손가락이 안으로 굽는 굴곡이 있다든지 특정 손가락이 짧다거나 혹은 3, 4번 손가락의 근육이 약하다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데 있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상기 열거한 장점들을 고루 가지고 있으면서 단점은 찾을 수 없는 손이 바로 하이페츠의 왼손이다. 이에 더하여 하이페츠는 어린 시절의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각 손가락의 독립을 이뤄내어 특정 코드, 혹은 특정 손가락의 운지나 비브라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강철같은 손가락을 갖게 된 것이다. 이착 펄만처럼 크고 두꺼운 손을 가진 이들이라면 E현의 높은 음들을 세밀히 짚을 때 손가락들을 비켜가며 짚는 수고를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에 두 줄을 동시에 짚는 이중 주법의 연주나 풍부한 비브라토, 울림을 넉넉히 하는 핑거링은 수월히 해낼 수 있다. 반면에 미도리처럼 가는 손가락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정교한 음정의 컨트롤이 수월하겠지만 대신에 풍부한 소리라든지 줄을 옮겨갈 때에는 펄만의 경우보다 불리할 것이다. 하이페츠가 바이올린의 제왕이 된 데 있어서 그의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적 장점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상기 열거한 두꺼운 손과 가는 손의 장점을 고루 가진 것이 하이페츠의 손이다. 그는 E현의 하이 포지션에서 몹시 좁혀 짚어야 하는 운지에서도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빠르게 진행하는 찌고이네르바이젠의 마지막 부분을 들어 보라). 반대로 바흐의 푸가나 그 자신이 편곡한 쇼-피스들에서 보여주는 풍부한 다성 효과는 실로 매력적이며 막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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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페츠의 왼손 운지법 
 
 
 
 
 
극단적으로 말해 왼손 핑거링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왼손을 거의 평평하게 뉘여 짚음으로써 다른 줄까지 덤으로 얻게 되어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경제적인 핑거링을 선호하는 부류와, 왼손을 세워 짚음으로써 앞의 장점은 줄어들지만 대신 정확한 센터 음정을 통해 톤의 순도를 높이고 나아가 보다 기민한 핑거링을 선호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이페츠는 물론 양자에 능통했다. 그는 곡에 따라 적절하게 오른손/왼손의 변화를 시도할 줄 아는 전천후 연주자였다. 하지만 굳이 그의 손 모양을 한쪽으로 평가하자면 그는 세워서 짚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정확한 음정을 내기 위해서는 손보다는 귀가 중요하다. 아무리 수십 시간을 연습하더라도 둔한 귀로 행한 연습은 예민한 귀로 30분간 연습한 것에 결코 미칠 수 없다. 하이페츠와 더불어 실내악을 연주한 동료들의 증언-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연습함으로써 귀를 예민하게 유지하려 했다는-역시 하이페츠가 탁월한 귀의 소유자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의 왼손 역시 하이페츠 식의 정확한 음정에 일등 공신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평생을 통해 스케일 연습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이페츠가 스케일을 통하여 왼손의 음정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교훈이  되고    있다.
 

그의 운지법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면, 다소 ‘세워 짚는’ 그의 운지법 외에도 하이페츠 핑거링의 비밀은 바로 왼손 엄지에 있다. 보통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1번 손가락과 만나는 위치(혹은 조금 뒤)에 엄지가 위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손 모양에 따른 편차-아시아인들에 비해 손이 큰 유럽인들이 좀 더 깊숙이 엄지를 집어넣는 등-와 특정 코드를 짚을 때 엄지가 좀 더 뒤로 가는 융통성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이페츠는 악상의 요구에 따라 엄지를 더 빼기도, 더 집어넣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는 1번 손가락 조금 뒤에 엄지를 위치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손 모양을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엄지를 1번 손가락에서 멀어지게 쥔다든지(케네디), 혹은 지나치게 당겨 짚음으로써 엄지가 2-3번 손가락 사이에 위치하는 경우(라츨린)에 반해 하이페츠는 가장 이상적인 엄지의 셋-업을 통해 누구나 경탄하는 무서우리 만치 정확한 음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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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페츠의 비브라토 
 
널리 알려진 대로 하이페츠의 비브라토는 강렬하고 빠르며 비르투오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음반 혹은 영상물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그 이상의 것을 얻어낼 수가 있다. 첫째로 그의 비브라토는 그 빠름에 비해 진폭 또한 대단히 넓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연주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그것과는 몹시 다르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보통 느리고 유유자적한 비브라토의 소유자는 폭이 넓고, 빠른 비브라토의 소유자는 그 폭이 좁다는 게 통념이지만 하이페츠의 비브라토는 그러한 상식을 넘어선다. 시각적으로 열심히 움직이는 것에 비해 그 효과가 적은 비브라토의 소유자도 많이 있으며 혹자는 그것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한계   때문이라고 치부하지만, 하이페츠의 비브라토는 그러한 관념을 거부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손목, 혹은 팔 비브라토 중 하나를 택해 자신의 주력 비브라토로 삼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이페츠는 이 모두를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손가락 그 자체로 일궈내는 손가락 비브라토에 능했기 때문에 각 줄의 하이 포지션에서도 마치 제1 포지션에서 비브라토를 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풍부한 비브라토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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