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4장. 물질의식

Chapter 4. Material Consciousness

의사와 간호사들의 복받치는 감정이 끓어올랐던 2006년 영국의학협회 총회 때 사람들이 넘쳐나서 총회 강당으로 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의료진과 기자, 그리고 나 같은 일반회원들이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방에서는 바로 전에 무슨 의학 관련 발표가 있었던 모양이다. 방 앞 정면의 커다란 화면에 수술 장갑을 낀 손이 외과수술을 받는 어느 환자의 대장 일부를 꺼내 올리는 총천연색 장면이 보였다. 기자들은 이 대문짝만한 영상을 흘깃거리다가 너무 끔찍해 보였는지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하지만 그 방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들은 관심 있게 화면을 쳐다봤다. 특히 실내 스피커에서 개혁에 대한 정부 공직자들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눈을 점점 더 크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지 화면이었기 때문에 대장을 집어든 그 손이 취하려는 조치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워도, 그게 무엇이든 눈앞의 그 광경에 빨려 들어가듯 주목하는 관심이 바로 물질의식(material consciousness)이다. 모든 장인들은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희귀 예술이라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식이 살아있다. 화가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언젠가 그가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보게. 뭔가 시가 될 만한 근사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네.” 말라르메의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보셔요, 에드가르. 시는 생각이 아니라 말로 쓰는 것이랍니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물질의식’은 철학자들에게 생각의 침을 샘솟게 하는 말이다. 사물을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은 그 사물 자체와는 별개의 것인가? 우리가 아랫배를 만지면서 어느 부위의 내장을 느낄 때처럼 말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그런 것일까? 이러한 철학의 숲에서 길을 잃느니, 어느 대상에 관심이 쏠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장인 본연의 의식이 항상 맴도는 영역이다. 질 좋은 작업을 해내려고 애쓰는 그의 정성은 모두 그 주변의 물건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대상에 몰입하는 물질의식을 고찰하기 위해 아주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각별하게 쏠리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 있을 때다. 인간의 내장을 화면에 비춘 거대한 이미지가 호기심을 끄는 이유는 그 손의 주인공인 외과의가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손에 쥔 내장에 뭔가 범상치 않은 조치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물에 생각을 투자하고 집중한다. 그렇게 활성화되는 의식은 세 가지 핵심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생략)

***
[*] 이 두 사람이 잠시 동문서답을 나눴는지도 모르지만, 드가는 인상파 화가답게 그림처럼 시상이 떠올랐을 수도 있고, 말라르메는 상징파 시인답게 상징으로 쓸 말이 없으면 인상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옮긴이).

***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Chapter 4, "Material Consciousness," 《장인 The Craftsman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