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6일 목요일

이중 주어와 서술절 관련 메모


1. 교수학습센터: 문장: 문장의 짜임 (웹자료는 시기를 찾기 참 어렵다.)
2. 네이트백과: 주어 (네이트백과의 본래 출처는 어디인지 확인해야 한다)
3. 우리말 사랑 누리집: 겹문장의 짜임새

댓글 3개:

  1. 위 출처1의 일부분이다.

    P. 165 ≪탐 구≫

    ① 다음 문장에서 서술절을 가려 내어 보자.

    · 집은 우리집이 제일 좋다.
    · 나는 네가 좋다.
    · 의자가 다리가 있다.
    · 토끼는 앞발이 짧다.

    서술절은 중주어문, 주격중출, 이중주어 등의 이름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다. 학교 문법에서는 서술절로 취급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은데, 남기심(2001)은 여러 가지 난제가 있기는 하지만 서술절로 처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였다.
    서술절은 지금까지 보아온 명사절, 관형절, 부사절과 다른 점이 있다.
    첫째, 그것이 절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표지가 없다. 명사절 표지 ‘-(으)ㅁ, -기’, 관형절 표지 ‘-(으)ㄴ, -는, -(으)ㄹ, -던’, 부사절 표지 ‘-이, -게, -도록’을 보아 왔는데, 서술절이라는 것에는 그러한 표지가 없는 것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안은 문장에서는 주절의 어떤 요소도 안긴 문장 안으로 옮겨 갈 수가 없다.


    나는 그가 범인임을 알고 있다. → *그가 나는 범인임을 알고 있다.
    경찰은 죄수가 탈옥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 *죄수가 경찰은 탈옥한 사실은 모르고 있다.
    옛 사람들은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성벽을 쌓았다. → *적이 옛 사람들은 쳐들어오지 못하게 성벽을 쌓았다.


    그런데 서술절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집은 우리 집이 제일 좋다. → 우리 집이 집은 제일 좋다.
    나는 네가 좋다. → 네가 나는 좋다.
    의자가 다리가 있다. → 다리가 의자가 있다.
    토끼는 앞발이 짧다. → 앞발이 토끼는 짧다.


    이런 차이는 서술절을 명사절, 관형절, 부사절과 같은 다른 절과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따라서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학습을 제대로 밟아왔다면, 서술절을 대하고 다소간 당황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교사는 서술절이 보통의 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으므로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언급해 주어야 한다. 다른 절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임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주어가 두 개인 것처럼 보이는 이 문장에 대하여 지금으로서 가장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서술절의 설정이라는 언급하여 주고 앞으로 다른 방식의 설명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언급도 필요하다면 해 줄 수 있겠다.
    문제에서 서술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 집이 제일 좋다, 네가 좋다, 다리가 있다, 앞발이 짧다


    서술절은 절 전체가 서술어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문제에 주어진 문장의 서술어는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만약 서술절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첫째 문장에서 ‘좋다’가 서술어가 된다. 그 주체는 무엇이 되는가? ‘우리 집이’가 될 수도 있고, ‘집은’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문장에서도 ‘좋다’가 서술어가 되는데, 그러면 그 주체는 ‘나는’이 되는가 ‘네가’가 되는가? 만약 주어를 ‘나는’이라고 한다면 ‘좋다’는 주체의 행위를 나타낸 것이 되고, ‘네가’라고 한다면 ‘좋다’는 주체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 된다. 주어가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서 ‘좋다’의 의미에 미묘한 차이가 생기지만, 어느 것도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어느 것도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사실 문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간의 주변에 존재하는 일 중에는 결정될 수 없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알아두어야 할 점은 보편적인 학계의 관습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구심을 떨치지 않으며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좋게 여긴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떤 진리도 구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서술절의 문제는, 굳이 서술절을 정하지 않고 어느 것을 주어로 하든 서술부 용언의 의미에 약간씩의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만 고려하고, 다만 주어는 어느 것으로 하든 ‘괜찮다’로 머물러 두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왕에 서술절을 정해 놓은 것은 설명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학자들의 성실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학생들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궁극을 향하여 감으로써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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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위 출처 1의 일부분이다.

    제7차 문법 교과서에서 부사형 어미란 하나의 문장을 문장 내에 부사절로서 주절에 안기도록 해주는 어미를 말한다. 즉 한 문장을 안긴 문장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한편 종속적 연결 어미란 한 절을 주절에 종속적으로 이어지게 해주는 이어주는 말을 뜻한다. 그러면서 제7차 교과서는 ‘-게, -도록’을 종속적 연결 어미로 보고 있으나 교사용 지도서 202쪽에서는 부사형 어미라고 해도 무방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게, -도록’이 붙는 문장을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으로 보느냐 아니면 부사절(내포문)로 보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게, -도록’이 붙은 문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접속문과 안은 문장의 개념에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통적인 분류 체계에서 문장은 일단 중문과 복문으로 구별되었다. 중문은 교과서의 용어로는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이고, 복문은 한 문장이 다른 문장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문장을 말한다. 이러한 중문과 복문의 구별은 의미론적인 방식에 의한 것이다.

    문장은 이렇게 두 절이 선행절과 후행절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하나의 절이 다른 절의 문장 성분으로 안기기도 하는데, 이렇게 안기는 방식을 학문 문법에서는 내포라고 한다.

    일군의 학자들은 이러한 문장의 연결 방식을 접속과 내포라는 용어로 구분한다. 이 때 접속에는 학교 문법에서의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이 해당하며, 내포는 학교 문법의 주절이 안긴 문장을 안아서 안은 문장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나 대등적으로 이어진 문장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두 절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학교 문법의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으로 다루는 것을 학문 문법에서는 접속으로 다루어지 않고 내포로 다룬다. 즉 하나의 문장이 주절에 안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 내포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 근거를 보면 다음과 같다.


    키가 크면 사람이 싱겁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께서 건강해지시니 식구들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사람 수가 차지 않더라도 행사는 시작되어야 한다.


    이 문장들에 쉼표를 찍으면 선행절과 후행절이 분명해지며, 이들은 틀림없이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지 내포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키가 크면, 사람이 싱겁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께서 건강해지시니, 식구들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사람 수가 차지 않더라도, 행사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도 말이 된다.


    사람이 키가 크면 싱겁다는 말이 있다.
    식구들은 어머니께서 건강해지시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행사는 사람 수가 차지 않더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에서 종속문이 주절 속의 문장 성분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 내포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국어의 종속절을 이끄는 어미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것이 종속절이냐 부사절이냐를 논의하는 것보다는 그 어미의 의미 특성을 구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편의상 종속절을 부사절로 보아 내포로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학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이제 그것이 종속절이냐 부사절이냐를 정의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제7차 문법 교과서가 ‘-게, -도록’에 대해서 보이는 모호한 처리 방식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게, -도록’은 종속적 연결 어미로도 볼 수 있는가 하면 부사절을 만드는 부사형 어미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학문 문법의 체계대로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을 부사절로 처리하게 되면, 종속적 연결 어미와 부사형 어미는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한편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보조적 연결 어미 ‘-아/어, -게, -지, -고’이다. ‘먹어 보았다, 나가게 되었다, 쓰지 않았다, 앉고 싶다’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본용언과 보조 용언을 이어주는 어미를 보조적 연결 어미라고 한다.

    학문 문법에서는 이들 보조적 연결 어미와 내포문의 부사형 어미가 동형인 관계로 부사절에 쓰였을 때는 부사형 어미로 보고 보조용언 구문에 쓰였을 때는 보조적 연결 어미로 본다는 데 대하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문장의 한 구문에 용언이 두 개가 연달아 쓰였다는 점에서 두 절의 연결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만도 하였다. 그래서 이 구문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었다.

    첫째, 보조 용언 ‘보다, 되다, 않다, 싶다’ 등은 ‘먹다, 나가다, 쓰다, 앉다’ 등이 사용된 절을 안은 상위문의 용언으로 보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는 이들 보조 용언이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않으므로 상위 서술어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본용언과 보조 용언이 연결된 이 구문을 대등적으로 이어진 문장, 즉 접속문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일단 보조 용언의 의미 기능이 독자적이지 않으며 이 구문이 둘로 나뉘기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셋째, ‘본용언-보조 용언’을 합성 동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떤 것에 손을 들어 주어야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학문 문법에서는 내포문으로 처리한다. 그러므로 학문 문법의 입장에서 ‘-아/어, -게, -지, -고’는 보조적 연결 어미가 아니라 부사형 어미이다.(제5,6차 교육과정에서의 처리 문제는 이 자료의 ‘학교 문법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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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역시 위 출처 1의 일부분이다.

    어간에 붙어 부사절을 만드는 문법 요소는 어미인가 접사인가?

    일반적으로 관형절을 만드는 어미가 관형형 어미(-은/-는/-던/-을)이므로 부사절을 만드는 것도 부사형 어미라고 추측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부사절을 만드는 것은 이전 교육과정까지, 학교 문법에 의하면 파생 접사였다. 제7차 교과서에서는 이들이 접사인지 어미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제5차와 제6차에는 이들을 접미사라고 밝혔었다.(한편, 이미 앞서 설명하였다시피, 종전의 종속적 연결어미로 보던 것을 제7차에서는 안긴 문장을 이루는 부사형 어미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을 기억하여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시 학교문법은 파생부사로 끝난 절만을 부사절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으로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은 그와는 반대로,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도 모두 부사절로 보려는 추세이다. 오늘날의 추세와 과거 학교 문법의 차이점은 ‘없이, 같이, 달리, 몰래’ 등과 같은 부사에 붙은 ‘-이’를 접사로 처리하고, 이 접사가 붙어서 부사절로 안긴 문장의 경우에만 부사절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나머지는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사절을 만드는 문법 형태소들을 접미사라고 하였을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접사는 단어를 파생시키는 것인데, 부사절을 만드는 역할도 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5,6차 문법에 따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어서, 부사절이 아닌 것을 고르라고 하였다면 네 번째 예문을 선택했어야 했다. 네 번째 예문은 부사절이 아니라 종속적으로 연결된 문장이 주절 속으로 끼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게’가 접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① 산 그림자가 소리도 없이 다가온다.
    ② 우리는 남의 도움 없이도 그 일을 할 수 있다.
    ③ 영희는 나의 옛날 생각과는 달리 매우 침착하였다.
    ④ 철수는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에서 ‘-게’는 접사가 아니므로, 따라서 문장을 종속적으로 이어주는 것이지 부사절로 안기도록 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나머지는 ‘없이, 달리’와 같이 용언에서 파생된 부사가 서술어 역할을 하여 절 전체가 부사어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는 상당히 복잡한 문법적인 논쟁이 결부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 편에서 간략하게 밝혀 놓았는데, 일단 학교 문법이라는 틀에서의 제한적인 설명은 가능하다.

    오늘날 교사용 지도서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문장의 접속과 내포를 보는 학문 문법의 관점에 학교 문법이 많이 접근해 있음을 시사한다.

    ‘-게, -도록’은 ‘없이, 달리’의 ‘-이’와는 다른 점이 있다. 즉 ‘-이’는 완전히 다른 단어로 파생시키는 한정된 기능을 하고 있으나, ‘-게’는 쓰임이 광범위하여 거의 무제한적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없이’의 ‘-이’가 ‘-게’, ‘-도록’과 함께 부사절을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하면, 이들 모두를 부사형 어미라고 부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이’를 부사형 어미로 본다면 부사 파생 접미사 ‘-이’와는 구별하여 ‘-이1’, ‘-이2’를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위 진술에 따르면 이전 학교 문법에서 부사를 파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와 부사형 어미의 ‘-이’가 구별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부사형 어미가 인정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과 같은 입장의 장점이라면 문장의 연결을 접속과 내포라는 두 가지의 큰 기제로 묶어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과거에는 문장의 연결이 지금보다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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