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발췌: 한국은행] 생산 및 자산의 범위, 재고자산, 재고증감


출처: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국민계정 체계. 2015년 11월.
자료: http://ecos.bok.or.kr/ 에서 주요 경제통계 해설책자를 탐색.


그중, 

II장 국민계정 체계와 기초 개념
  • 제1절 국민계정의 기본 체계
  • 제2절 생산 및 자산의 범위
  • 제3절 경제주체의 분류와 거래항목
  • 제4절 거래의 기록원칙과 평가방법
  • 제5절 가격과 물량의 측정

그중, 제2절 생산 및 자산의 범위
  • 1. 생산의 범위
  • 2. 자산의 범위

중에서,

※ 발췌: 42쪽 ~

2. 자산의 범위


SNA에서 자산(assets)은 제도단위가 소유하고 일정기간 보유 및 운용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대상물로 정의되어 있다. 즉 소유권의 확립과 경제적 이득의 존재 여부가 어떤 대상물을 자산으로 인식하는 데 필요한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국민계정에서는 자산을 크게 비금융자산과 금융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 비금융자산(non-financial assets)

비금융자산은 생산과정을 통해 산출된 것이냐의 여부에 따라 생산자산(produced assets)과 비생산자산(non-produced assets)으로 나누어진다. 


(1) 비금융생산자산(produced non-financial assets)

비금융생산자산이란 생산과정을 통해 산출물로 만들어진 비금융자산을 말하는데 고정자산, 재고자산 및 귀중품으로 구분된다.

  고정자산(fixed assets)이란 생산과정에서 1년 이상 반복적 또는 지속적으로 생산에 사용되는 자산으로서 건물 및 구축물[주31], 토지개량[주32], 기계 및 장비, 무기시스템[주33], 육성자산[주34](cultivated assets)은 물론 연구개발, 광물탐사 및 평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오락·문학작품 및 예술품 원본과 같은 지식재산생산물[주35](intellectual property products)도 포함한다. 

  재고자산(inventories)이란 금기 또는 전기에 생산되어 미래에 판매, 생산 또는 다른 용도에 사용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재화이며 원재료와 소모품, 재공품, 완성품, 재판매용 재화 등으로 구성된다. 즉, 소유자가 판매 및 재판매하거나 자신의 생산과정에 중간투입으로 사용하려는 자산을 말한다.

  귀중품(valuables)이란 생산이나 소비를 1차적인 사용목적으로 하지 않고 실질가치가 상승하거나 최소한 하락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여 가치저장 목적으로 취득 또는 보유하는 생산자산이다. 귀중품은 귀금속 및 보석, 골동품 및 기타 예술품, 기타 귀중품으로 구분되며 정상적인 조건하에서는 장기간 동안 질적 저하가 나타나지 않는다.


(2) 비금융비생산자산(non-produced non-financial assets)

국민계정 체계에서 비금융비생산자산(비생산비금융자산이라고도 함)이란 생산과정을 통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토지자산, 지하자원 및 입목자산 등 자연자원과 계약·리스·면허권, 영업권 및 마케팅자산 등의 무형자산[주36]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자산은 주거 및 비주거용 건물의 부속토지, 구축물 부속토지, 농경지, 임야, 문화오락용 토지 및 기타토지로 분류하고 있다. 지하자원은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하여 추계하며 금, 은, 연, 아연, 철 같은 금속광물 및 천연가스와 석회석, 납석, 규석, 장석, 고령토, 활석과 같은 비금속광물을 포함한다. 입목자산은 임야에 서 있는 나무를 말하며 침엽수림, 활엽수림, 혼효림으로 구분한다.


나. 금융자산(financial assets)

( ... ... )

* * *

II장, 제3절 경제주체의 분류와 거래항목

  1. 경제주체의 분류
  2. 주요 거래항목
     가. 생산계정
     나. 소득계정
     다. 자본 및 금융계정
         (1) 총고정자본형성
         (2) 재고증감

중에서,

※ 발췌: 55쪽~

(2) 재고증감

경제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재고(자산)은 원재료 및 소모품, 재공품(work-in-process), 완성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재고증감은 회계기간 중의 재고 취득액과 재고 처분액의 차이를 의미한다. 총고정자본형성과 재고증감은 모두 장래의 수익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같으나, 총고정자본형성은 여러 회계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익을 발생시키고 재고증감은 그 수익이 어느 한 시점에 실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면 도축용 가축은 재고로 분류되나 젖소나 면양과 같은 우유, 양모 생산용 가축은 총고정자본형성으로 처리한다.

  한편 생산자가 보유하고 있는 부분적으로 완성된 건물 및 구조물의 경우 사전에 매매계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법적 소유권을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처리하여 구매자의 단계별 지급금액을 총고정자본형성으로 기록할 수 있으며, 사전에 매매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소유권이 최종사용자에게 이전되기 전까지는 재공품 또는 완성품 재고로 기록하고 있다가 소유권이 이전되었을 때 총고정자본형성으로 기록한다.


《좀 더 알아보기》 재고자산의 형태(목적)별 분류

(1) 원재료 및 소모품

원재료 및 소모품(materials and supplies)은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중간 투입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재화를 말한다. 그 일부는 물리적 훼손, 경상적 사고손실 등으로 생산에 사용되지 못하게 되나 이러한 손실은 실제로 원재료 및 소모품이 출고되어 생산에 사용된 것과 같이 평가한다.

(2) 재공품

재공품(work-in-progress)이란 기업이 생산한 산출물 중 다른 제도단위에게 정상적으로 공급하기에는 아직 생산과정을 충분하게 거치지 않은 상태의 것을 의미한다. 재공품은 모든 산업에서 발생하며 특히 완성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산업(예: 농업, 선박, 건물 및 구축물, 컴퓨터 소프트웨어 또는 영화산업)에서 중요하다. 재공품은 다른 제도단위에게 정상적으로 제공될 수 없는 상태의 산출물이지만 필요시(예: 기업 청산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 그 소유권의 이전은 가능하다
  • 육성자산의 재공품: 육성자산(cultivated assets)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한 유형은 1회용 식물, 벌목용 나무, 도축용가축 등과 같이 생산에 단 한 번 사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일, 고무, 우유, 양모 등을 생산하기 위하여 1년 이상 반복적·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유형의 것이다. 단 한번 사용되는 육성자산의 경우 회계기간말 현재 수확되지 않은 작물이나 도축되지 않은 가축은 재공품으로 처리한다. 생산에 반복적·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육성자산은 이를 판매목적으로 육성하는 전문 생산업자의 경우에만 재공품으로 계상한다.
  • 기타 고정자산의 재공품: 선박 등과 같이 생산에 장기간 소요되는 구축물과 기타 고정자산의 경우 각 회계기간중 생산된 산출물은 생산자가 최종 사용자가 아닌 경우에만 생산자의 재공품으로 분류한다.

(3) 완성품

완성품(finished goods)이란 생산자가 다른 제도단위에게 공급하기 전에 더 이상 가공할 의사가 없는 산출물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는 다른 생산과정에서 중간투입으로 사용될 수도 있으나, 그 생산자가 추가적인 가공을 하지 않고 생산을 완료한 때에는 완성품이 된다.

(4) 재판매용 재화

재판매용 재화(goods for resale)란 도매상 또는 소매상과 같은 기업이 고객에게 재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한 재화이다. 재판매용 재화를 구매한 기업은 동 재화를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재판매하기 위해 운송, 보관, 등급 구분, 분류, 세척, 포장 등의 업무를 수행할 뿐 추가로 가공하지는 않으며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지 않는다.

[발췌: J.S. Landefeld et al.'s] Taking the Pulse of the Economy: Measuring GDP (2008)


출처: J. Steven Landefeld, Eugene P. Seskin, and
Barbara M. Fraumeni. “Taking the Pulse of the Economy: Measuring GDP,”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 22, vol. 22, no. 2 (2008): 193-216.



※ 발췌 (excerpts): 

( ... ... )  So, what exactly does GDP measure? How is it constructed? Why do the GDP and other national accounts estimates sometimes present a different picture of the economy than other economic indicators? This article is intended to help answer these questions by providing a broad overview of the measurement techniques used in estimating GDP and the national accounts in the United States.

In the United States, the GDP and the national accounts estimates are fundamentally based on detailed economic census data and other information that is available only once every five years.  ( ... ... )


How the GDP Estimates Evolve Over the Estimation Cycle

Estimates of GDP begins with a "benchmark" (or "comprehensive revision") estimate, sometimes called a "best-level" estimate, which is usually produced once every five years with the reference year usually several years in the past. ( ... ... )


Final Demand or Expenditure Approach

Consumer Spending

For benchmark years, the finaal expenditures method used in the national accounts is based largely on business records. The Bureau of Economic Analysis uses a "commodity-flow" method to develop estimates of the "best levels" for all final sales to consumers of goods and services by product category. 
The commodity-flow method starts with total sales (or shipments) by producers of final goods and services. Then, using this estimate of total sales, the bureau adds (a) transportation costs, (b) wholesale and retail trade margins, (c) sales taxes, and (d) imports. It then deducts (e) changes in inventories, (f) exports, (g) sales to business (because these are intermediate goods), and (h) sales to government. The method produces consistent estimates of the value of final sales to consumers and their allocation across product categories. 
Table 3 summarizes the methods and data used in the final expenditures approach.

( ... ... )

To illustrate the relative magnitudes embodies in the calculation, in 1997, shipments by domestic apparel manufacturers were $66 billion. Imports added $56 billion, while transport, trade markups, and sales and other taxes added another $99 billion. Exported apparel and production that went to inventories subtracted $12 billion. Sales of apparel to government (mainly military uniforms) and to business(mainly service-worker uniforms) subtracted another $12 billion for a residual value of consumer spending on apparel of $197 billion. ( ... ... )

[발췌: 한국은행] 지출국민소득과 상품흐름법


출처: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국민계정 체계. 2015년 11월
자료: 자료: http://ecos.bok.or.kr/ 에서 주요 경제통계 해설책자를 탐색.

그중,

III장 국민소득 통계 추계 방법과 기초 자료
  • 제1절 개관
  • 제2절 생산국민소득
  • 제3절 지출국민소득
  • 제4절 분배국민소득
중에서,

※ 발췌: 156쪽~

제3절 지출국민소득


1. 개요


지출국민소득은 소득의 순환과정[주80] 중 경제주체에게 분배된 소득이 최종수요 측면에서 어떻게 처분되는가를 파악하는 것으로 개념적으로는 최종생산물에 대한 수요로 나타나게 된다. 즉 가계의 소비, 정부 등 공공부문의 구매, 기업의 투자, 국외부문의 순수출(수출-수입), 그리고 재고증감 등을 더하면 한 나라가 생산한 최종생산물(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이 되는데 이를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또는 지출국민소득이라고 한다. 지출국민소득을 구성하는 각 부문은 경제활동 수준을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거시경제지표로서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및 사후평가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데 그 구성내욕은 <표 III-3-1>과 같다.


지출국민소득을 추계하는 방법에는 수요접근법과 공급접근법이 있는데 이중 어느 한 방법을 전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부문별 기초자료 사정을 고려하여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OECD 회원국 등 대부분 통계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가계소비, 정부소비, 건설투자, 지식재생산물투자, 재고증감 및 귀중품순취득, 수출입은 수요접근법으로 추계하고 설비투자는 공급접근법인 상품흐름법으로 추계하되 세부적으로는 품목의 특성에 따라 수요접근법과 공급접근법을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요접근법을 지출국민소득의 주된 추계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공급접근법은 설비투자 등과 같이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항목에 한해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요접근법은 최종생산물을 직접 구입하는 최종수요자인 가계, 기업, 정부 등을 대상으로 이들의 지출현황을 조사한 자료 등을 바타으로 지출국민소득을 추계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생산(또는 공급) 측면에서 누락되기 쉬운 비관측경제[주81]를 일정 부분 포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관련분야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통계가 작성됨에 따라 현실반영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다.


《좀 더 알아보기》상품흐름법

생산자로부터 최종수요자에게 이르기까지 상품의 유통과정을 추적하여 지출항목을 추계하는 방식을 상품흐름법(commodity flow method)이라고 한다. 상품흐름법은 미국의 쿠즈네츠 교수에 의해 발전된 대표적인 공급접근법으로 이는 수요측면의 기초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설비투자, 재고증감 등을 추계할 때 주로 이용된다.

상품흐름법에 의한 추계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기초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국내 총산출을 계산한다. 그리고 국내 총산출에 수입을 더하여 총공급을 계산하고, 중간소비와 수출을 차감하여 국내 최종수요를 구한다. 그 다음 기준년의 산업연관표에서 산출된 설비투자율 등 지출항목별 배분비율을 국내 최종수요에 곱하여 설비투자 등의 지출항목을 산출한다.

총공급 = 총산출 + 수입
  = 중간소비 + 수출 +국내최종수요
  = 중간소비 + 수출 + 최종소비지출 + 총자본형성 = 총수요




...

[자료] 역외 인민폐 시장(CNH)


자료 1: [국문 번역] 역외 중국 인민폐 시장(CNH) (CME Group, 2014년 3월)
         [영문] Offshore Chinese Renminbi Market (CNH) (CME Group, 2014년 3월)


자료 2: The Difference Between The Confusing Onshore And Offshore Renminbi Market (Business Insider, Feb 2013)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자료: 통계청] 한국의 국민계정 이해

자료: 통계청 경제통계국, 2007년 9월
  • 2011년 12월 29일 최초 접속. 2015년 12월 28일 다시 읽기.

※ 발췌: 


국민계정이란 국민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경제주체들(가계, 기업, 정부 등)이 일정기간중 행한 다양하고 복잡한 경제활동의 결과와 일정시점에서의 국민경제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부채상황을 정리해 보기 위하여 정해진 회계기준(국민계정체계: A System of National Accounts)에 따라 작성한 통계로 국민경제의 종합재무제표라고 할 수 있음.

기업의 재무제표가 손익계산서, 제조원가명세서, 현금흐름표, 대차대조표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계정도 이에 해당되는 국민소득통계, 산업연관표,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 국민대차대조표의 5대 국민경제통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국민경제전체에 관한 재무제표를 국민계정이라 부른다.


국민경제통계                        재무제표

         국민소득통계   ----------------  손익계산서 
         산업연관표     ----------------  제조원가 명세서
         자금순환표     ----------------  현금흐름표
         국제수지표
         국민대차대조표 ----------------  대차대조표

(...) 

2. 5대 국민경제통계 

 (1) 국민소득통계

『국민소득통계는 일정기간 동안 경제주체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한 결과 창출된 국민소득이 어떻게 분배되고 어떻게 처분되는지를 나타내는 통계』로서 국민경제의 손익계산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소득이란 한 나라 안에 있는 가계, 기업, 정부 등의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에 새로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 합산한 것을 말한다.

재화와 서비스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 등의 생존적 욕망과 정신적․문화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되는 것으로 재화는 쌀, 의복, 자동차, 건물처럼 물질적 형태를 가진 것을 말하며 서비스는 통상 용역이라고도 하는데 의료, 교육, 문화활동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노력을 의미한다.

일정기간이란 통상 1년을 말하며 일정시점과는 다르다. 새로이 생산한 가치는 공장에서 만든 물건의 판매수입과는 다르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원재료는 이미 다른 데서 생산해 낸 것으로서 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새로운 가치는 아니므로 물건의 값에서 이 원재료 투입비를 뺀 나머지만이 이 공장에서 새로이 생산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물건의 판매수입을 산출액이라 하고 원재료비를 중간투입액, 새로이 생산한 가치를 부가가치라고 한다.

국민소득에서의 생산액이란 이와 같이 산출액에서 중간투입액을 공제한 부가가치를 뜻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공장에서 500만원짜리 승용차 1대를 만드는데 원재료비가 300만원 들었다고 하면 이 공장의 대당 산출액은 500만원, 중간투입액은 300만원, 그리고 부가가치는 산출액(500만원)에서 중간투입액(300만원)을 뺀 나머지 200만원이 된다.

 (2) 산업연관표

『산업연관표는 일정기간 동안 특정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어떤 상품이 얼마나 투입되었는지(투입구조)와 특정 상품이 어떤 부문에 중간수요 또는 최종수요의 형태로 팔렸는지(배분구조)를 보여주는 통계』로서 국민경제의 제조원가명세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산업연관표는 일정기간(보통1년)동안 국민경제내에서 발생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처분과 관련된 모든 거래내역을 일정한 원칙과 형식에 따라 기록한 종합적인 통계표로서 산업연관표에는 국민소득에서 나타나지 않는 중간투입의 내역이 상세히 나타난다. 
이 표의 세로방향은 각 산업부문에서 구입한 원재료, 노동, 자본의 투입을 나타내는 비용구성을, 가로방향은 각 산업부문에서 생산된 생산물이 중간재나 최종재로 판매된 내역을 나타내는 판로구성을 각각 의미하며 이 표를 통해 그물과 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든 산업부문간의 상호 연관관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3) 자금순환표

『자금순환표는 일정기간 동안 국민경제 안에서 발생한 다양한 금융활동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금융활동이 생산․지출 등 실물활동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통계』로서 자금순환표를 보면 실물부문의 경제활동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금융시장의 변화가 재화 및 서비스의 수요와 저축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국민소득통계와 산업연관표가 실물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라면 자금순환표는 자금의 흐름을 기록한 통계표이다. 자금의 흐름은 소득처분이나 자본축적과 같은 실물의 흐름에 수반되어 이루어지기도 하고 실물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부족자금의 조달이나 여유자금의 운용과 같은 독립적인 금융거래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자금순환표는 이같은 자금의 흐름을 실물과 금융의 양 측면에서 기록한 국민경제의 자금흐름표인 것이다. 
자금순환표는 경제부문별 자금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므로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 운용패턴 등 금융행태분석은 물론이고 한 나라의 금융구조분석에도 유용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4) 국제수지표

『국제수지표는 일정기간 동안 국가간에 일어난 실물과 자금의 흐름을 기록한 통계』이다. 국제수지표는 한나라가 외국에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서 어느 정도 외화를 벌어들였고 외국으로부터 상품과 서비스를 사들이기 위해 얼마의 외화를 썼고, 그 결과 부족하거나 남는 외화가 어느 정도이며, 만약 부족했다면 그 부족한 외화를 어떻게 조달하고 외화가 남았다면 어떻게 운용하였는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외화수지계산서라고 할 수 있다. 즉 국제수지표란 일정기간 동안 자기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경제적 거래를 종합적으로 기록한 통계표로서 외국에 재화나 서비스를 사고 파는 경상거래와 외화를 빌려오거나 빌려주는 자본거래로 나눌 수 있으며, 국제수지표는 두 거래의 결과가 각각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로 기록된다.

 (5) 국민대차대조표

『국민대차대조표는 일정시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유형의 실물자산(생산설비, 토지, 건물 등), 무형의 비금융자산, 대내외 금융자산 및 부채를 모두 기록한 통계』로서 국민경제의 대차대조표라 할 수 있다. 위의 4대 국민경제통계는 모두 일정기간 중에 일어난 경제의 흐름을 기록한 플로우(flow) 통계이며 국민대차대조표는 일정시점에서의 국민경제의 재무상태를 나타내는 스톡(stock)통계이다.


(...)

4. 경제주체의 분류와 거래항목

 가. 경제주체의 분류: (...)
 나. 거래항목

 (1) 총산출

총산출(gross output)이란 일정기간 동안 생산된 산출물인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 판매한 가격으로 평가한 것으로 기업회계의 매출액과 유사함.

산출물은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물물교환, 현물지급, 재고증가, 자가 최종소비 또는 자가 고정자본형성 등의 형태로 사용. 
  • 시장산출물, 자가 최종사용 목적의 산출물, 비시장산출물로 구분  


 (2) 중간소비

중간소비(intermediate consumption)란 생산과정에서 투입물로서 소비된 재화 및 서비스의 가액으로, 생산을 위해 투입된 재료비 뿐만 아니라 상품판매를 위해 쓰여진 광고선전비, 접대비 등도 포함됨
  ․ 중간소비와 최종소비지출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에 투입되는가 또는 소비주체인 가계에 의해 소비되는가에 따라 구별
  ․ 중간소비와 자본형성은 생산자가 구입한 재화가 회계기간 중 소진되는가 또는 회계기간 이후에도 이익을 발생시키는가로 구분
  ※ 수선비 : 고정자산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소요된 것 중간소비
             고정자산의 내용연수를 연장시키거나 생산성의 현저한 증가를 가져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본형성으로 분류
  ※ 군사장비 : 생산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므로 최종소비지출의 성격을 띠지만 계정처리상 정부의 최종소비지출로 직접 처리하지 않고 일단 정부의 중간소비로 처리하여 총산출에 계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부의 최종소비지출에 포함되도록 하고 있음
  ※ 도로, 활주로, 수송장비 등 민간의 사용이 가능한 군사용 고정자산은 중간소비가 아닌 총고정자본형성으로 처리

 (3) 부가가치

부가가치는 생산활동 결과 새로이 창출된 가치이며 총산출에서 중간소비(중간투입)를 차감한 것으로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고정자본소모, 순생산 및 수입세(생산 및 수입세-보조금)으로 구성되며 이중 고정자본소모는 자본축적을 위한 재원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각 제도단위의 소득으로 분배됨

  ㅇ 피용자보수(compensation of employees)는 일정기간동안 피고용자가 수행한 업무의 대가로 고용주로부터 받은 현금, 현물형태의 급여는 물론 피용자를 위한 사회보장기금 연금기금 및 보험에 납부한 고용주분담금도 포함
    - 현금급여 : 피용자가 노동의 대가로 받은 일체의 금전을 의미
       ․ 실제 수취한 금액(원천과세액 포함), 건강보험료와 같은 사회보장기금이나 연금기금에 대한 피용자 분담금도 일단 피용자보수로 받은 다음 지출한 것으로 봄
       ․ 고객이 서비스업 종사원에게 직접 지급한 봉사료(tip)도 고용주가 서비스의 판매대가로 일단 수취하였다가 현금급여 형태로 종업원에게 지급한 것으로 처리함 
    - 현물급여 : 고용주가 피용자에게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 재화와 서비스로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피용자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것   
       ․ 피용자에게 혜택을 주긴 하지만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작업복의 제공, 직원휴게실의 마련, 정기건강진단 등에 대한 지출은 피용자보수로 계상하지 않고 고용주의 중간소비로 취급
       ․ 건강보험에 대한 고용주 분담금과 공무원 및 군인연금기금에 대한 정부분담금도 피용자보수에 포함, 일반회사의 경우 종업원의 퇴직금 지급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충당금을 설정․적립하는 경우 이에 대한 고용주 전입금도 피용자보수로 처리
          
  ㅇ 생산 및 수입세(tax on production and imports)는 생산물세와 기타생산세로 구분된다.
     - 생산물세는 생산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배달, 판매, 이전 또는 기타 용도로 사용하였을 때 동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
     - 기타생산세는 생산에 사용된 토지, 건물, 기타 자산의 소유 또는 이용에 대한 조세와 고용된 노동력 또는 피용자보수에 대한 조세

  ㅇ 보조금(subsidies)은 산업진흥 또는 제품의 시장가격 인하 등 정부의 정책목적을 위하여 정부가 생산자의 생산비용 일부를 부담한 것
     - 정부의 양곡관리특별회계에 대한 적자보전과 석탄생산에 대한 보조금
     - 기업이 정부로부터 받은 교부금 가운데서도 생산활동과 관계없이 수취한 부분은 경상이전으로 분류
     - 투자의 목적이나 수해, 화재 등에 따른 자본재 손실보전을 위한 이전은 자본이전으로 처리
     - 가계 및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가 정부로부터 수취한 교부금은 보조금이 아닌 경상이전으로 분류

  ㅇ 영업잉여(operating surplus)는 부가가치 총액에서 피용자보수, 고정자본소모, 순생산및 수입세를 차감한 것으로 각 산업부문의 기업잉여, 순지급이자, 토지에 대한 순지급임료 등 재산소득의 형태로 나타나며 비시장생산자인 정부 또는 NPISHs가 생산한 비시장산출물은 시장가격이 아니라 생산비용에 의해 평가되므로 영업잉여는 영(零)이 됨
     - 93SNA에서는 가계비법인기업의 경우 영업잉여 대신에 혼합소득(mixed income)을 사용하도록 권고, 이는 가계 비법인기업의 생산활동 결과 발생한 소득에는 피용자보수와 영업잉여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 즉 비법인기업의 소유주는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로서의 역할과 노동을 투입하는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임

  ㅇ 고정자본소모(consumption of fixed capital)란 고정자산이 일정기간동안 생산에 사용됨으로써 발생하는 물리적인 감모, 진부화 및 일상적인 손실 등에 따른 가치감소로서 고정자산의 가치가 모두 소모될 경우 새로운 고정자산으로 대체하여 현 수준의 생산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부가가치의 일부를 비축하게 됨
     - 국민계정에서의 고정자본소모는 경제적 의미의 자산가치 감소로 투자촉진, 조세감면 등의 목적으로 기록하는 기업회계에서의 감가상각(depreciation)과는 차이가 있다.

   ※ 도로, 댐, 방파제 등에 대해서도 수리비, 유지비 등에 의해 그 원상이 유지된다고 보아 고정자본소모를 계상 

(4) 최종소비지출

최종소비지출(final consumption expenditure)은 가계, 정부 등 소비주체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지출로서 가계최종소비지출,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의 최종소비지출, 정부최종소비지출로 구분됨

 ㅇ 가계최종소비지출 : 통상 가계가 소비를 목적으로 구입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액을 의미
     - 가계가 구입한 중고품은 다른 가계가 이를 최초로 구입할 때 이미 가계최종소비지출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제외
     - 가계의 주택구입은 주택이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화라 할 수 있으므로 총고정자본형성으로 처리
     - 농가가 생산하여 소비한 곡물, 자가소유자가 스스로 최종사용할 목적으로 생산한 주거서비스(귀속임대료) 등은 가계가 실제로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구입한 것으로 가정하여 가계최종소비지출에 포함

 ㅇ 정부와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의 최종소비지출 : 소비지출의 대상이 비상품이라는 점에서 가계최종소비지출과는 성격상 차이
   생산주체를 겸하고 있는 정부나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가 구입한 재화와 서비스는 최종소비지출에 계상하지 않고 정부서비스나 민간비영리서비스의 생산을 위한 중간소비로 처리
   정부와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의 최종소비지출은 이들이 생산한 서비스의 자가소비를 의미하는데 이는 생산에 투입된 경비 중에서 서비스 판매수입으로 충당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정부와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는 국민에게 공공 및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품 및 비상품 판매수입보다는 훨씬 큰 비용을 투입하게 되는데 그 차액(총투입비용-판매수입)을 자신이 생산한 서비스의 최종소비지출로 계상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로서 여권비용, 면허수수료, 공항세 등과 같이 정책적 목적에 의해 그 구입이 강제성을 띠는 것과 단순히 재정수입원으로서 마련된 자동차세, 소득세 등의 부과금은 가계가 정부서비스를 구매한 것으로 보지 않고 소득이 단순히 이전되는 것으로 취급

 (5) 총고정자본형성

기업 등 생산주체가 당해기간에 소진되지 않고 여러 회계기간에 걸쳐 생산에 이용되는 재화(자본재)를 구입하는 것을 총고정자본형성 또는 총고정투자라고 함 
   ㅇ 기업 등 생산자는 지속적인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후설비를 새로운 설비로 대체하기도 하며 신규사업에의 진출을 위해 공장도 짓고 기계도 구입함 
     - 제도단위의 생산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유형고정자산의 가치증가액은 총고정자본형성에 포함
     - 토지의 취득 및 처분은 비생산자산의 매매에 해당하므로 제외
     - 생산자가 고정자산을 구입할 때 상품가격 이외로 부담한 설치비용이나 취득세, 등록세 등의 부대비용은 총고정자본형성에 포함
     - 주택, 점포, 공장, 기계설비, 운수설비 등 내용연수 1년 이상의 내구재 취득에 대한 지출
       ․ 가계가 구입한 주택가액을 총고정자본형성으로 계상 이는 주택도 주거서비스를 생산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보기 때문임
       ․ 토지 등 비생산자산과 군사용 무기취득에 대한 지출은 불포함
     - 생산성을 현저히 향상시키거나 내용연수를 연장시킬 수 있는 내구재의 개조 또는 개량에 대한 지출, 즉 자본적지출은 총고정자본형성에 포함되나 경상적지출에는 불포함
       ․ 아파트 신축시 내용연수 연장을 위해 외벽에 페인트칠을 한 경우 이 비용은 총고정자본형성에 포함되나 그 이후 보수공사의 일환으로 동질의 페인트를 다시 칠한 경우는 총고정자본형성에 대한 지출로 보지 않고 경상지출로 보아 중간소비로 처리
     - 토지의 개간과 개량, 임야․광산․대규모농장 등의 확장이나 개발 등 비생산자산의 가치증가를 위한 지출은 총고정자본형성에 포함
     - 번식용 가축, 젖소, 운반수단으로 사용하는 동물 등을 취득하기 위한 지출은 총고정자본형성으로 본다.(총고정자본형성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기계설비처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1년 이상의 기간동안 반복적․지속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임)

     - 토지․광산․임야 등 재생산이 불가능한 비생산자산의 경우 그 거래액 자체는 총고정자본형성으로 계상되지 않지만 동 거래에 따르는 수수료, 이전비용 등의 지출은 고정자본형성의 범주에 포함

  ※ 93SNA에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광물탐사 등 무형고정자산의 취득과 민간사용이 가능한 군사용 자산(활주로, 부두, 도로, 병원 등)의 건설도 총고정자본형성으로 처리

  (6) 재고증감 

    재고는 경제주체가 보유하는 원재료, 소모품, 재공품(work-in-process), 완제품 등으로 생산활동에 투입되거나 소비, 투자 등 최종수요 되지 않은 재화로서 재고증감은 회계기간 중의 재고취득액과 재고처분액의 차이를 의미함
    총고정자본형성과 재고증감은 모두 장래의 수익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같으나, 총고정자본형성은 여러 회계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익을 발생시키지만 재고증감은 그 수익이 어느 한 시점에 실현된다는 점이 다름
   ㅇ 도축용 가축은 재고증감, 젖소, 면양과 같은 낙농축은 총고정자본형성
   ㅇ 현재 공사기간이 상당히 길어 회계기간 중 미완성 상태에 있는 선박 등 중기계장비는 재고증가로, 건물․도로․댐․항만시설 등의 구조물은 총고정자본형성으로 분류
     - 다만 주거용 건물에 대해서 소유권이 최종사용자에게 이전되기 전에는 재공품 또는 완성품 재고로 기록
     - 선박 등과 같이 생산에 장기간 소요되는 구축물과 기타 고정자산의 경우 각 회계기간 중 생산된 산출물은 생산자가 최종 사용자가 아닌 경우에만 생산자의 재공품으로 분류

  (7)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국내에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이중 일부는 수출되어 외국에서 사용되는데,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중 비거주자에게 파는 것을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 외국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중 거주자가 구입되는 것을 재화와 서비스의 수입이라 함
   ㅇ 외국인 관광객이나 주한외국대사관, 주한미군가족, 외국기관이 국내에서 소비한 재화와 서비스는 수출에 포함
   ㅇ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여행중 소비한 외국의 재화와 서비스, 정부기관의 국외지출은 수입에 포함 

  (8) 저축

    저축은 각 경제주체가 받은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생산세, 수취재산소득, 경상이전수취 등 경상적 수입에서 최종소비지출, 지급재산소득, 경상이전지급 등의 경상적 지출을 공제한 것으로서 자본형성의 재원으로 사용됨 
   ㅇ 저축은 소득처분의 한 항목임과 동시에 자본조달의 원천항목으로서 소득계정과 자본계정을 연결시켜주는 역할

  (9) 국외수취(지급)요소소득

    국내 생산요소(노동, 자본 등)가 외국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대가로 받은 소득을 국외수취요소소득이라 하며, 반대로 외국의 생산요소가 국내에서의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외국에 지급한 소득을 국외지급요소소득이라 함
   ㅇ 국외수취요소소득 : 우리나라 국민이 국외 또는 주한미군부대나 외국대사관에서 근무하여 받은 임금을 나타내는 국외수취피용자보수와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 직접투자 하거나 국외차관 등 외국에 자본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배당, 이자 등 국외수취 기업 및 재산소득으로 구분
   ㅇ 국외지급요소소득 : 국내기업이 외국인 피고용자에게 지급한 임금, 외국인이 국내에 직접투자 하거나 차관 등 외국에서 자본을 도입한 대가로 지급받는 배당, 이자 등을 포함

  (10) 국외수취(지급)경상이전

    해외교포들이 국내친지에게 보내는 송금, 외국 종교단체에서 국내 종교단체에 보내는 선교지원금 등 외국으로부터 아무런 대가없이 받는 소득을 국외수취경상이전이라 하고 해외 친지에게 보내는 송금, 외국에 보내는 사랑의 쌀이나 대한적십자사의 이재의연금 등 우리나라 국민이 아무런 대가없이 외국에 보내는 소득을 국외지급경상이전이라 함.

2015년 12월 27일 일요일

[발췌] 법구경

출처: https://twitter.com/Dhammapada_Bot


405

갈애와 애착을 없애고
옛 경전의 글귀와 그 깊은 뜻을 체득하며
그 앞뒤를 꿰뚫어 여실히 회통한 사람
그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몸이니
그를 위대한 성인,
진정한 대장부라 하리라

368
백조가 해처럼 높이 떠 날아가 버리듯
깨달은 이들은 자취 없이 열반에 이른다
반야를 얻은 이들은 마와 마군을 떨치고
윤회의 세계를 단숨에 벗어난다

367
칠각지(七覺支)로 잘 닦인 마음은
모든 집착을 끊어
무욕의 즐거움을 누리네
번뇌가 다하여
이 세상에서 이미 반열반을 성취하나니
참으로 거룩한 지고의 존재 

331
이 몸뚱이 잘 살펴 그 부정함을 정관(正觀)하며
능히 육근을 다스려 안으로 거둬들이고
음식을 잘 가리고 때와 양을 조절하며
늘 힘써 정진하기를 좋아하는 자라면
삿된 마도 결코 뒤흔들 수 없으리
거센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는 바위산처럼

287
어디 있어도 변함없이
홀로 좌정하고 홀로 자고...
결국, 자아를 굴복시키는 사람은
스스로 갈애가 소멸되는 즐거움을 누리리라
숲속의 수행자와 다를 바가 없으리

8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자기야말로 자신이 돌아가 의지할 품
그러니, 너의 고삐를 네가 잡으라
말 주인이 말의 고삐를 잡듯

352
떨치고 일어서야 할 순간에 일어서지 않고,
젊음과 건강이 남아있을 때
게으르고 의지와 뜻이 약한 사람은
그 방일한 마음으론 도를 결코 깨닫지 못하리라

344
정념수행을 즐거워하고
늘 나태와 방종을 경계하는 수행자를 보아라
크고 작은 장애를 뚫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온갖 것을 사르며 번지는 불길같지 않으냐

330
부정한 이 몸뚱이 깨끗하고 좋은 것이라 잘못 알고
육근(六根)을 거두지 않고 되는대로 방종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나태하고 나약하여 용맹심이 없으면
머잖아 삿된 마에 꺾이기 쉬우니라
마치 연약한 초목이 폭풍에 쓰러지듯

301
오, 비구여, 그대가 탄 배를 비울지니라
애증을 비워버린 빈 배는 가벼워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리니
잠깐 사이에 그대를 열반의 저 언덕에 데려가리라

300
욕망의 밀림에서 모든 나무를 남김없이 제거하라
한두 그루 베어 넘기는 것으로 그치지 말지니
비구여, 그 밀림에서 두려움이 일지 않더냐
욕망을 자취 없이 근절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293
현상계의 선과 악을 초월하여
범행(梵行)을 갖추고
지혜로써 세상을 지나는 나그네
그를 진정 비구라 하네

...

2015년 12월 23일 수요일

[발췌] The "Marshall Plan" speech at Harvard University, 5 June 1947


출처: http://www.oecd.org/general/themarshallplanspeechatharvarduniversity5june1947.htm


( ... ) But to speak more seriously, I need not tell you, gentlemen, that the world situation is very serious. That must be apparent to all intelligent people. ( ... )

In considering the requirements for the rehabilitation of Europe, the physical loss of life, the visible destruction of cities, factories, mines and railroads was correctly estimated but it has become obvious during recent months that this visible destruction was probably less serious than the dislocation of the entire fabric of European economy. For the past 10 years conditions have been highly abnormal. The feverish preparation for war and the more feverish maintenance of the war effort engulfed all aspects of national economies. Machinery has fallen into disrepair or is entirely obsolete. ( ... ) But even given a more prompt solution of these difficult problems the rehabilitation of the economic structure of Europe quite evidently will require a much longer time and greater effort than had been foreseen.

There is a phase of this matter which is both interesting and serious. The farmer has always produced the foodstuffs to exchange with the city dweller for the other necessities of life. This division of labor is the basis of modern civilization. At the present time it is threatened with breakdown. ( ... ) The modern system of the division of labor upon which the exchange of products is based is in danger of breaking down.

The truth of the matter is that Europe's requirements for the next three or four years of foreign food and other essential products - principally from America - are so much greater than her present ability to pay that she must have substantial additional help or face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deterioration of a very grave character.

The remedy lies in breaking the vicious circle and restoring the confidence of the European people in the economic future of their own countries and of Europe as a whole. The manufacturer and the farmer throughout wide areas must be able and willing to exchange their products for currencies the continuing value of which is not open to question.

Aside from the demoralizing effect on the world at large and the possibilities of disturbances arising as a result of the desperation of the people concerned, the consequences to the economy of the United States should be apparent to all. It is logical that the United States should do whatever it is able to do to assist in the return of normal economic health in the world, without which there can be no political stability and no assured peace. Our policy is directed not against any country or doctrine but against hunger, poverty, desperation and chaos. Its purpose should be the revival of a working economy in the world so as to permit the emergence of political and social conditions in which free institutions can exist. Such assistance, I am convinced, must not be on a piecemeal basis as various crises develop. Any assistance that this Government may render in the future should provide a cure rather than a mere palliative. Any government that is willing to assist in the task of recovery will find full co-operation I am sure, on the part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Any government which maneuvers to block the recovery of other countries cannot expect help from us. Furthermore, governments, political parties, or groups which seek to perpetuate human misery in order to profit therefrom politically or otherwise will encounter the opposition of the United States.

( ... ... )

[J. Steven Landefeld's] GDP: One of the Great Inventions of the 20th Century

출처: J. Steven Landefeld, “GDP: One of the Great Inventions of the 20th Century,” in Bureau of Economic Analysis, Survey of Current Business, January 2000.



※ 발췌 (excerpt):

( ... )

History of the NIPA's.─Prior to the development of the NIPA's, policymakers had to guide the economy using limited and fragmentary information about the state of the economy. The Great Depression underlined the problems of incomplete data and led to the development of the national accounts:

One reads with dismay of Presidents Hoover and then Roosevelt designing policies to combat the Great Depression of the 1930's on the basis of such sketchy data as stock price indices, freight car loadings, and incomplete indices of industrial production. The fact was that comprehensive measures of national income and output did not exist at the time. The Depression, and with it the growing role of government in the economy, emphasized the need for such measures and led to the development of a comprehensive set of national income accounts.  ─ Richard T. Froyen

In response to this need in the 1930's, the Department of Commerce commissioned Nobel laureate Simon Kuznets of the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to develop a set of national economic accounts. [n.1] Professor Kuznets headed a small group within the Bureau of Foreign and Domestic Commerce's Division of Economic Research. Professor Kuznets coordinated the work of researchers at the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in New York and his staff at Commerce. The original set of accounts was presented in a report to Congress in 1937 and in a research report, ^National Income, 1929–35.^

Early in 1942, annual estimates of gross national product were introduced to complement the estimates of national income and to facilitate war time planning. Wartime planning needs also helped to stimulate the development of input-output accounts. Nobel laureate Wassily Leontief developed the U.S. input-output accounts that subsequently became an integral part of the NIPA's. In commenting on the usefulness of the national accounts, Wesley C. Mitchell, Directo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said:

“Only those who had a personal share in the economic mobilization for World War I could realize in how many ways and how much estimates of national income covering 20 years and classified in several ways facilitated the World War II effort.”

( ... ... )


CF. other sources: A New Architecture for the U.S. National Accounts

2015년 12월 22일 화요일

[발췌: Mitra-Kahn's Redefining the Economy] 8. Keynes convinces Britain to re-define the economy, 1930-1945


  • 출처: Benjamin H. Mitra-Kahn, “Redefining the Economy: how the ‘economy’ was invented in 1620, and has been redefined ever since,” Unpublished Doctoral thesis, City University London. September 2011.
  • 자료: http://openaccess.city.ac.uk/1276/
  • REF: GDP Translation. p. 17 and many.


OF WHICH

Chapter 8_ Keynes convinces Britain to re-define the economy, 1930-1945

   8.1 Getting away from Clark's 1937 Marshallian economy
   8.2 Where GNP does not come from...
       8.2.1 Why James Meade did not invent GNP
       8.2.2 And why Richard Stone did not invent GNP either
   8.3 Keynes needs to convince the Treasury
       8.3.1 Keynes's continued involvement in National Accounting
   8.4 The importance of Keynes's redefinition of the economy


OF WHICH

※ 발췌 (excerpts): pp.210~...

* * *

Chapter 8

Keynes convinces Britain to re-define the economy, 1930-1945


( ... ... ) In this chapter I argue that Stone and Meade were not responsible for the GNP economy but that it was Keynes who re-defined the Marshallian economy, convinced Stone and Meade to change their opinion, and then convinced the Treasury to introduce his definition of the economy as the official one. In the next chapter I will reject the contradictory claim that GNP was invented by Kuznets for the US government. ( ... ... )

   While the current literature agrees that Stone and Meade developed GNP accounting (see Comim 2001, Vanoli 2005 or Vines and Weale 2009), the argument is primarily based on secondary sources and interviews made 40 years after the fact (as in Meade 1981 or Stone and Pesaran 1991). There does not seem to be any systematic primary source study of who developed GNP and it became the government's preferred definition by 1941. This chapter uses primary sources to follow that development through Cambridge in the 1930s and Whitehall during the war to paint a completely new picture not only of GNP, but of Keynes the economist, the civil servant and person. In that process I re-introduce a young Richard Stone and James Meade to the history of economics, both hired to implement Keynes's definition of the economy.

   Tily (2009: 352) argues that Keynes was an inspirational force in developing British national accounting, setting out the first sector accounts, as "a leading and demanding advocate, user, and producer, of economic statistics." I go a lot further in this chapter, arguing that Keynes rejected Clark's Marshallian economy, convinced Stone and Meade to change their opinion on the economy, convinced the government to change its position on the publication of national accounts, and in so doing, he changed the official British definition of the economy.


8.1 Getting away from Clark's 1937 Marshallian economy  (p. 211)

Collin Clark had published the standard work on national income estimation in 1937 defining the economy along Marshallian lines.
  • National income was the total income of private individuals from market activity, or the expenditure of private individuals on investment and consumption.
  • This was consistent with the work of Bowley, Stamp and Flux, 
  • and it excluded government activity quite explicitly.
This section argues that while Keynes used Clark's empirical estimates he disagreed with Clark's definition of the economy, in particular that idea that government expenditure was not a final output. Keynes formulated his argument with the assistance of a young German scholar whose "contribution─modest it is true─to British national accounting seems to have been forgotten" (Cuyvers 1983: 629). On 2 October 1939 Keynes wrote the Cambridge Statistician Erwin Rothbarth [n. 4] asking him to collect data on national income, and savings in particular, to argue for the need for better war financing, possibly through forced saving (Cuyver 1983: 630, footnote 1). [n. 5]  Keynes used these figures in "a brilliant lecture," according to his wife's diary (Moggridge 1992: 629), to the Marshallian Society Lecture (20 October 1939) and in his articles for ^The Times^ on the 14, 15 and 28 November 1939 (Cuyvers 1983: 630). Rothbarth found that the saving figures and the total investment figures clashed with some of Clark's definitions (Rothbarth 1939, 29 Nov). This problem was caused by the increased share of government in national investment.

   Rothbarth and Keynes started a very active correspondence on the definition of savings and investment in relation to Clark's focus on the private market. Based on this correspondence, Rothbarth published an articel in ^The Economic Journal^ only a month later, undersigned by Keynes. [n.6]  This article (Rothbarth and Keynes 1939) used the data collected by Rothbarth, as well as Clark, but departed from Colin Clark's definition of national income in a significant way. Rothbarth and Keynes argued that the real point of national income was to estimate the total taxable income in the economy, not just private income earned for consumption and investment. In discussions with Kaldor, as noted by Marcuzzo and Rosselli (2005), Keynes reiterated his "hostility to [Clark's] Gross National Income. But it is only through conversations with you and Rothbarth that I have been forced to try and diagnose clearly, exactly why my intuition was so much revolted by it." (Keynes 1940, 25 Feb).

   Keynes was so much revolted because he needed to estimate the government's revenue required for the military effort, not private consumption and investment. Clark's procedure for calculating national income did not include final government expenditure.
  • As Kaldor wrote Keynes, "you [Keynes] mentioned that one of your reasons against this procedure is that it overestimates the extent to which a reduction in consumption, or private investment, 'releases' resources for other purposes" in particular "equipment goods for War purposes" (Kaldor 1940, 6 Feb). 
  • If government expenditure was not included in the national income, then investment for the war effort would officially count against economic growth. The more the government spent, the less was available for private consumption and investment, thereby reducing national income. For Keynes, the ability to tax and fund the war was of paramount importance, and to him, the government seemed a valid consumer of final output. So government should be considered part of the economy.

   What mattered for taxable income was the total expenditure on goods, of which government spending formed a large part, esp. in times of war. Keynes and Rothbarth carried on an extended exchange of letters from December 1939 and December 1940 to make this point empirically (KCA W/4/17-75). They debated the exact shape and form of a national account in terms of equations for the total national income and expenditure accounts. ( ... ... )

   Rothbarth and Keynes (1939) broke away from Colin Clark in their national income estimate of £5,700m. This £5.7bn included investment in new capital (£250m) and investment to maintain current capital(£420m) just as Clark's figures had. Unlike Clark's national income, the account added "government expenditure, central and local, including 'transfer' incomes such as pensions, unemployment relief, and the interest on the national debt" totaling £1,300m (Rothbarth and Keynes 1939: 626). The final stone of the now familiar C+I+G+(X-M)=Y was laid out, and government spending was part of the economy and national income. Colin Clark had worked with a definition of the economy approximating C+I+(X-M)=Y,[.] Keynes and Rothbarth added the government.They reasoned that this total signified "Gross taxable income... [and] it is the most useful concept for our present purposes," as opposed to Clark's focus on private expenditure, national income should include all potential output that could be taxed and this included the government's own expenditure (Rothbarth and Keynes 1939: 627). Keynes himself noted that the reason for the difference between him and Clark's results were not statistical, but conceptual:
The difference between the figures [Clark's and Keynes's] are often due, not to discrepant statistical estimation, but to different ideas of what it is convenient to mean by 'national income.' It is therefore of more practical importance than usual to distinguish the differences of logic and definition, some of which hark back to old-established controversies, from real discrepancies in statistical estimation. (Keynes 1940b: 60)
   Keynes and Clark had different ideas of what national income meant. Where "Colin Clark's Gross National Income is most misleading for most purposes and not practically useful for any," Keynes's national income could, according to him, be used in a practical manner to prepare for the war (Keynes 1940, Feb 25). In March 1940 Keynes published "The Concept of National Income: A Supplementary Note" as "Mr. Clark's Gross National Income seems to me to lead us into water which is unnecessarily deep" (Keynes 1940b: 65). The paper delineated Keynes's difference from Clark, and ( ... ...). [n. 7]

   ( ... ... )

   ( ... ... )

   Keynes distinguished between the National Output and Taxable Income concepts, moving away from Clark's concept of national income.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was simple arithmetic as the taxable income of £5,300 equalled the "National output £4,850 million plus transfer income £500 million minus Government trading profits £50 million" (Keynes 1940b: 61). With these published clarifications, Keynes wrote and published ^How to Pay for the War^(1940), thanking Rothbarth for his contribution in the introductin. Here Keynes outlined the double entry national accounting system which included now familiar equalities defining national income: C+I+G+(X-M).

   Tily (2009) notes that the 1940 accounts were also split into the now familiar sub-accounts of government tax and spending (G=T), investment and savings (I=S), and the international balance (X=M) and used the income method of national accounting. This analysis "broke new ground ... [and] amounded to 'GDP at factor cost', the measure that would underpin the National Accounts for the next 50 years" (Tily 2009: 350). Keynes had gone from being a supporter to a creator of national accounts, and while he was not the only person supporting national accounting, he was the only person to define the national income and economy in this manner in 1940.


8.2 Where GNP does not come from...  (p. 215)

   It would be another two years before the American government published a GNP account (Gilbert, M. 1942a) and another year before the British Government released its first official GNP account (HM Treasury 1941). ( ... ... ) This section will argue that, in fact, neither Meade nor Stone developed GNP as a concept or an accounting framework. Instead they were hired to implement Keynes's framework; they discarded their own theories and adopted Keynes's definition of the economy.

   ( ... ... ... ... )


8.4 The importance of Keynes's redefinition of the economy  (p. 232)

   ( ... ... ... )

[발췌: J. Lacey's] Keep from All Thoughtful Men: How U.S. Economists Won World War II (2011)


  • 출처: James Lacey, Keep from All Thoughtful Men: How U.S. Economists Won World War II, Naval Institute Press, 2011.
  • 자료: 구글도서
  • REF: GDP Translation. p. 15.


주요 차례(Contents)
Chapter 1,  Economics and War   (1)
Chapter 2,  Unmaking the Victory Program   (8)
Chapter 3,  The Real Victory Program   (19)
Chapter 4,  The Economist's War   (32)
Chapter 5,  The Production Organizations   (50)
Chapter 6,  The War Production Board and Two Wars   (70)
Chapter 7,  War and Feasibility   (86)
Chapter 8,  The Great Feasibility   (86)
Chapter 9,  Marshall's Commitment to a 1943 Invasion of Europe   (117)
Chapter 10,  Why Marshall Changed His Mind   (p. 133)
Appendix 1~8 (p. 137~202), Notes (203), ...  Index (253)

OF WHICH

※ 발췌 (excerpts): pp. 32 ~

* * *

CHAPTER 4

THE ECONOMIST'S WAR


( ... ... )

How economists infiltrate into almost every area of the federal government is a story in itself. For our purposes, it is sufficient to state that it was rapid and pervasive. Just 50 years before World War II there had been only one individual in the government with the title of economist, and that person was listed as an "economic ornithologist." World War I saw a few trained economists brought to Washington in policy position, but their influence remained constrained to providing advice on price administration and shippling. They had little impact on mobilization planning. It was the Great Depression that brought economists into Washington policy circles, fist by the hundreds and then by the thousands. By the time World War II began, the federal government employed an estimated 5,000 economists.[n. 3]

   These economists made two major contributions that had a significant impact on World War II. 
  • First, they completed the financial revolution begun by the British in their wars with France, a revolution that made it possible to fund a war waged on an unprecedented scale.
  • Second, they created the concepts of national income accounts, GNP and GDP, which together provided the statistical basis for determining the growth and production potential of the American economy. [n. 4] Admittedly, their figures and calculations remained inexact, but, when put in the context of the scale of what the government would demand for mobilization in a global war, they sufficed.

   Moreover, World War II was the first war where money was truly no object. While there were a number of practical concerns about the best method of financing the conflict and the inflationary impact of massive spending policies, there was never any concern the US about the nation's ability to finance the war. Everything American industry could turn out the government could afford to buy. This was also true of Britain, which instituted similar policies in purchasing all the munitions produced by its industry. The financial crisis in Britain came in 1940, when the industry could no longer meet wartime production requirements and the need arose to tap American industrial potential. [n. 5]  Within months, Britain had shipped its entire gold reserve to New York and exhausted its credit. To alleviate this payment crisis, Roosevelt pushed Lend-Lease through Congress just in time to avert a financial disaster that could possibly have forced Britain's withdrawal from the war. [n. 6]


   4.1 The Financial Revolution  (p. 33)

The Roman statesman Cicero once noted, "Endless money form the sinews of war." [n. 7]  It was not until the 20th century, however, that governments discovered how to tap their economic systems to provide "endless" streams of money. Although the three historical methods of financing government spending (raising taxes, borrowing, and printing money) remained, governments had become more sophisticated in the employment of these tools.  ( ... ... )

   Orthodox economic thinking at the beginning of WWII held that taxes should finance wars on a pay-as-you-go basis. [n. 9]  This viewpoint had wide support across the political spectrum since most politicians considered the printing of money as inflationary and debt financing as a burden on future generations.
  • Moreover, most believed that adding additional debt to the national balance sheet was particularly reprehensible because the initial burden of paying it off would fall on the same young men who had fought the war. [n.10]
  • Economist also believed that turning on the printing presses would at best represent an emergency stopgap measure that would rapidly lose its effectiveness as hyperinflation outpaced the presses. [n. 11]

   An examination of WWII's financing, however, indicates that the printing press played a much greater role than commonly assumed, particularly in the early war years. [n. 12]  Although this rapid expansion of the monetary base would have crippled the economy if it had continued for too long, it was at the time critical to jump-starting rapid increases in production. [n. 13]  ( ... ... ) In short, the in-circulation monetary base in 1941 was too small to support the daily activities of the massive American economy as it mobilized for war. [n. 15]  Unless government added cash to the system quickly, there was a real possibility the entire mechanism would seize up. [n. 16]

   The ^Federal Reserve Bulletin^ for December 1942 noted that the government had financed 75% of its expenditures in the first year of the war through borrowing, with the remaining 25% financed through taxation. [n. 17]  This is somewhat disingenuous because it fails to reflect on how the Federal Reserve System creates money. Since the start of Federal Reserve System, the primary method of adding liquidity to the monetary system was by altering the reserve requirement that members of the system had to keep on deposit with the Federal Reserve. In peacetime this is a highly effective method, but in a crisis several overlapping factors often led to lag times between reserve rate changes and expansion of the monetary base. In the emergency of global war, when the funds necessary to finance rapid expansion are needed immediately, the government could not tolerate this lag. [n. 18]

   In the spring 1942 the Federal Reserve's principal method of adjusting the monetary base became a fixed buying rate on Treasury Bills. Under this policy, as the ^Federal Reserve Bulletin^ stated, "Member bank reserves are almost automatically supplied, with the initiative being taken by the member banks rather than by the Federal Reserve System." [n. 19]  The importance of this policy lay in the fact that, in effect, it authorized the member banks to purchase any volume of US government securities, purchase other securities, or make loans as they desired, provided that among these securities they acquired sufficient Treasury Bills to exchange at Federal Reserve banks for whatever additional reserves may be needed becasue of the accompanying expansion in reserves. [n. 20]  ( ... ... )

   How did this work in practice? As the public purchased government securities, the payments were credited to US government accounts in various commercial banks. This process automatically reduced the amount of reserves that banks were required to hold on hand. Treasury transferred these excess reserves to the various regional Federal Reserve banks, which used them in payment for the purchase of war supplies and other government expenditures. ( ... 국채 거래와 지준금 조정의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 ... )

   In short, the Federal Reserve gave the banks a license to print money. Two things, however, stopped the banks from undertaking an unbridled monetary expansion that could have led to hyperinflation and financial return.
- First, ( ... ... )

   What the government was doing was issuing debt in quantities so huge that it would be impossible for the economy to digest those sums without massive interest rate increase to make bond purchase attractive. To clear the debt, the Federal Reserve became the buyer of last resort and purchased as much as the debt as necessary to keep the price and interest rate at a previously agreed pegged rate: this is called monetizing debt. [n. 24]  These purchases created government-owned deposits on the books of the central bank, which equated to the banking system receiving additional reserves; banks then used those reserves to expand their asset holdings while creating additional deposit money. [n. 25]  Thus, one must consider the portion of the debt issued by the government that banks or private investors, using bank financing, bought back as printed money, although the Federal Reserve resisted such thinking at the time.

   This means that 75% of the government's expenditure in 1942 were not, in reality, financed through debt securites. Instead, the government funded a substantial portion of its purchases through money creation. [n. 26]  ( ... ... )

   If politicians and economists agreed that money creation was the worst possible measure to finance the war and taxes were the best, how did the reverse become policy, at least in the US during the early war years? ( ... ... )

   For example, the most historians agree that Germany's failure to adequately address its war financing needs was a contributing factor to the general disruption of its economy in the aftermath of WWI. By failing to adequately tax its economy to meet wartime expenditures, the Germans left it up to their central bank to raise the necessary funds on a credit basis. This negligence, plus military defeat, contributed to the ruinous inflation that wiped out the vaue of most of German society's economic assets in the early postwar period. [n. 29]

   ( ... ... )

   In the process, the Federal Reserve confronted a dilemma. On the one hand, the system had to supply the banks with the reserves required to support credit expansion. On the other hand, it was the system's responsibility to neutralize the inflationary potential of newly created money. There was no satisfactory way to neutralize the money that would not raise the cost of debt substantially or contract available credit. The most the Federal Reserve could do was go about its business with sufficient care to slow the impact. [n. 32]

   That inflation remained low, or at least within reasonable limits, was the result of three realities. ( ... ... )

   ( ... ... )

   So why did the government not raise tax levels to cover the expense of war? ( ... ... )

   ( ... ... )

   ( ... ... )

   ( ... ... )

   ( ... ... )

   ( ... ... )


4.2 The Statistical Revolution  (p. 40)

      ( ... ... )

   Simon Kuznets was the recipient of the 3rd Nobel Prize in economics and was a pivotal figure in the transformation of economics from a speculative and ideologically driven discipline into an empirically based science. [n.46]  ( ... ... )

   From 1932 to 1934 he served in the Department of Commerce, where he constructed the first official estimates of US national income and laid the basis for the department's national income section. ( ... ... ) It is almost impossible to overestimate the effect of Kuznets's work on the planning and conduct of America's wartime mobilization. While the US would still have undertaken the production miracle that swamped the Axis, it would likely have taken years longer and been accomplished only after a great waste of resources.

   To see why and how this was so one must understand what national accounts are, how the came into being, and what they were designed to accomplish. 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s are the comprehensive set of accounts measuring the total value of final goods and services (often called GDP) produced by the US economy and the total incomes earned in producing that output. This integrated set of accounts and similar detailed sets of regional and industrial accounts allow for the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impact of alternative policy actions, or external events, on the economy, as well as on detailed components of final demand, income, and regions of the country. [n. 48]  ( ... ... )

   The concept of national income goes back to Sir William Petty and Gregory King, who developed estimates of English national income during the 17th century. Later economists, including Adam Smith, debated the concept of national accounts and how economists could measure them. Economists were not, however, able to create practical methods to determine or influence government policy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 ... ... ) [n. 49]

   Prior to WWI, published national income estimates were the work of individuals. [n. 50]  Most of these attempts were not rigorous and primarily concerned collection of data on the burden of the public debt or on various taxation schemes. It took the exigencies of a world war to prompt the first American attempts at national product estimates for senior government officials to analyze and use. Adolf C. Miller, an economist with the Federal Reserve Bank of NY, prepared estimates to evaluate the "surplus over necessary consumption and maintenance of capital that could be devoted to the war effort." [n. 51]  Moreover, during the war the NBER undertook its first project to study national income─its size, year-to-year variation, and distribution. ( ... ... ) [n. 52]

   It was not until 1926, however, that the first official government estimates, from the Federal Trade Commission, were presented. These estimates, prepared by Francis Walker, showed the value of national product produced by US industry for the years 1918-23. Unfortunately, after completion of this first report the government halted all follow-up work due to a lack of funding. Washington bureaucrats realized the need for such reports only several years later as the economy sank into the Great Depression and the government began to feel the keen lack of a suitable statement on national accounts that politicians could use to guide their efforts to rehabilitate the sinking economy.

  • The NBER (a private organization) tried to provide the required data for policy makers, but it failed to update its earlier estimates and it took many months to calculate new ones. 
  • Congress became fully aware of the extent of the problem when in 1931 it called government and private experts to testify on the current economic crisis. Congress was astounded to discover that no expert could provide any national account figures more recent than 1929. [n. 53]


   ( ... 대공황기 중 1930-31의 경제 위축의 통계 ... )  Neither the public nor elected officials understood the workings of an economy that appeared to be perpetuating the crisis, nor did they know quantitatively its scale and scope. The most up-to-date estimates of national income─that is, economy-wide income─were for 1929, a boom year, that had been marred only by October stock market "crash,", after which the economic slide began.

   Realizing that it was trying to direct economic policy without the necessary tools, in June 1932 Congress passed a law ordering "That the Secretary of Commerce report estimates of the total national income of the United States for each of the calendar years 1929, 1930, 1931, including estimates of the portions of the national income originating from agriculture, manufacturing, mining, transportation, and other gainful industries." [n. 54]

   ( ... ) and the Commerce Department borrowed Simon Kuznets from the NBER to take over. ( ... ... )

   Almost a year to the day after assuming control over the project, Kuznets provided Congress with the Commerce Department's first complete set of estimates. These estimates indicated that [:]
  • between 1929 and 1932 national income had dropped by more than 50%.
  • Incomes in manufacturing had dropped by 70%, while incomes in construction had dropped by more than 80%.
  • Government was the only industry that had grown over the period, although the federal government remained relatively small─federal tax receipts claimed only 3% of GDP in 1932. [n. 56]
The finished product, ^National Income, 1929-32^, was printed as a Senate document in 1933. [n. 57]  The report─261 pages of tables and explanation─was the Senate's first bestseller, and the initial run of 4,500 copies immediately sold out at 20 cents a copy.

   The report also found that between 1929 and 1932 national income had fallen by more than 50% and national income paid out had fallen by 40%, while business savings had become negative in 1930 and remained negative through 1935 as business drew down their financial reserves or borrowed to remain in operation, when fixed costs and wages exceeded revenues. In terms of the new statistics, this meant that national income paid out exceeded national income produced. [n. 58]  The US was, in economic terms, a losing proposition.

   ( ... ... )

   Economic historians credit Kuznets with transforming the field of national income accounting by bringing a far greater precision to the task than economists had ever achieved before. He accomplished this by rooting his estimates firmly in classical economic theory and by solving numerous problems related to using imperfect raw data to create the theoretical conception of "national income." [n. 60]  ( ... ... )

   During the 1930s, national income statements became regularly issued products of the Department of Commerce and were generally accepted as the broadest readings on US economic conditions. [n. 62]  ( ... ... ) By the time Commerce first provided GNP figures in 1942, ( ... ... ).

   ( ... ... )

   Too see just how valuable a policy instrument they proved, one can note the long-term effects engendered by these estimates. According to the U.S. Bureau of Economic Analysis, the national accounts contributed to a reduction in the severity of business cycles and a post-World War II era of strong economic growth. ( ... ... )

   ( ... ... )

   ( ... ... )

   ( ... ... )



4.3 Gross National Product and World War II  (p. 45)

The Department of Commerce launched GNP statistics to answer a policy question for which the national income accounts undertaken by Kuznets and Nathan were providing inadequate. Could the nation meet the Victory Program requirements? If so, at what costs would it be to the civilian standard of living and price stability? As was the case for national income accounts in 1932, the GNP concept elucidated in 1942 was not new, having been discussed and partially formulated during the 1930s. While economists made progress in developing theoretical and statistical standards for GNP, it took a policy requirement (the requirement for economic information during world war) to push the US government to develop an authoritative, consensus-based statistical measurement. When finished, GNP made up the other side of the national income equation─the production side, to match the income-earned side (approximated by national income). It thus helped provide a more complete picture of the economy.

   In his budget message to Congress in January 1940, four months after Germany invaded Poland, Roosevelt asked for a modest defense supplemental appropriation for fiscal year 1940 and a likely increase in defense spending for fiscal year 1941.
  • In 1940 defense expenditures had reached more than $1 billion, approximately 14% of the budget. In his January 1941 budget message, Roosevelt asked for $25 billion in defense expenditures, 62% of the budget, reflecting a "world at war."
  • In his January 1942 budget message, President Roosevelt asked for $53 billion for defense, 90% of the budget, reflecting "a nation at war in a world at war."  
It was the computations of the economists creating national income and GNP accounts that provided the president and his advisers with the basis for estimating what the US was capable of supporting in terms of rapid and massive growth in military spending.

   During the week before the January 1942 budget message and shortly after the attack on Pearl Harbor{1942년 12월 7일}, the president announced the goal of increasing the share of national income spent on war production from the current 17% to 50% by 1943. Such an increase in the speed and scale of the mobilization program was beyond experience, and was "A national effort of gigantic magnitude," according to the president. To accomplish this task the US would have to sustain major economic dislocations as it readjusted to a wartime economy.

   The US rearmament program, begun in 1940, had already boosted national income above the 1929 level for the first time, to achieve an almost 25% increase before Pearl Harbor. The rise was steep, and by December 1941 national income was almost 40% above its level of less than two years earlier.
  • Putting the country on full war footing would boost income even more, but purchases of consumer goods and services, which had boomed in 1941, would find themselves stymied because the country would need to cut back production for civilian purposes to make way for the war's programs. 
  • Rationing, wage and price controls, and other consumption-damping regulations were on the table. 
  • Statistics measuring the total amount as well as the composition of goods and services being produced were a base requirement for evaluating the risks of shortages of civilian goods and services and the bidding up of prices, but those statistics were not available in the US at the beginning of 1942
  • National income sufficed at that time as an informed measure of the economy's size, but it was not up to the task of evaluating production constraints and trade-offs because it measured only the income earned in production and not the greater market value of the goods and services produced
  • In these early days, using current economic statistics for mobilization planning was akin to a corporation bidding on contracts without knowing the capacity of its factories or the financial facilities at its disposal.

   Within two months of the January 1942 budget message, the Department of Commerce produced the first GNP statistics.
  • These figures distinguished only among major categories of expenditures, but they succeeded in bringing the war-production trade-offs into the picture. 
  • Earlier statistical analyses tended to provide overly grim assessments of the risks of shortages of civilian goods and inflation because, among other errors, they underestimated the productive capacity of the US
  • When first published in March 1942, GNP offered a new framework for assessing the feasibility of the 1943 war program by comparing it with 1941 national output. Two months later, the Commerce Department provided historical GNP statistics for 1929-41. [n. 71]  The January 1942 budget message had foreshadowed the new statistical terms presented in the GNP, mentioning for the first time in a fiscal policy context "consumer durable goods" and "industrial plant and equipment."

   Understanding the pressures of the proposed huge war expenditure program required consideration of competing expenditures in the economy─most simply, expenditures for the war versus expenditures for everything else. The expenditure components of GNP provided the material for that comparison.
  • Because economists measure GNP in market prices and therefore include taxes and depreciation allowances, not included in national income, this estimate exceeded national income in 1941 by 25% ($23 billion) and provided a better approximation of aggregate US productive resources
  • The inclusion of business taxes and depreciation resulted in a production measure that was more appropriate for analysis of the war program's burden on the economy, in part because those flows were potential sources of program funding. For example, during wartime, business might delay spending for the replacement of capital goods (i.e., old factories, machine tools) to free up resources for the production of more war materiel.

   Economists define GNP as a comprehensive measure of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in the economy valued at market prices. In addition to being measured as the sum of production components, one can measure GNP as the sum of expenditures on goods and services for final uses, plus the change in business inventories. Put in other terms, GNP represents the sume of value added by all industries in the economy.

   Because data on expenditures were not fully available in early 1942, Nathan and Kuznets had to use other estimates to approximate GNP figures in their early feasibility estimates. They accomplished this by adding business taxes and depreciation to the existing national income statistics, using the budget and other government sources to obtain approximations of government spending. They estimated investment ("gross private capital formation") from business records, including tax returns, and estimated durable goods sold to consumers from census bureau and other government data.

   Before GNP became available, analysts sometimes erroneously subtracted projected defense expenditures from projected national income, producing a residual that was interpreted as the amount of production left for nonwar goods and services.
  • For example, in early 1942 analysts subtracted the president's proposed 1943 defense expenditures of $56 billion from projected 1943 national income of $110 billion, leaving a residual of $54 billion. Comparison of the 1943 residual with the same residual for 1941, $81 billion, indicated that the government would have to find a way to cut income by a third if the resources required for the war program were to be available. 
  • The assessment was overly grim: national income fell short of the total market value of goods and services produced, of which defense spending was a component.

   Substitution of GNP for national income in such an analysis revealed that the effect of war mobilization on living standards would be less dire than predicted and that an even larger war program might be attainable.
  • This was true not only because GNP was larger in value than national income (because analysts measured it at market prices, not factor costs), but also because the expenditure composition of national product showed how the income generated from national production was being spent. 
  • The expenditure composition of GNP suggested that, despite a potentially large forced reduction in nonwar spending, the nation could absorb much of the decrease by reductions in private investment and consumer purchases of durable goods rather than in consumer purchase of nondurable goods and services─purchases of food, clothing, and shelter─in other words, basic needs. 
  • The analysis suggested that only a 4%, price-adjusted reduction in the consumption of nondurables and services below the 1941 level would be required to meet the president's war program goals for 1943, while private investment would have to decline by 80% and the consumption durables by 70%
  • Put another way, the GNP analysis showed that economic growth brought about by the increases in employment and productivity spurred by the war program and the diversion of heavy industry from civilian to war production could provide more than 90% of the additional resources needed for the 1943 program. [n. 72]

   This put the final nail in the coffin for the idea that the US paid for the Victory Program by reducing the amount of resources available for consumer purchases. As the consumption of nondurable would only be reduced by 4%, the president and his economic team knew early in the war that mobilization would require little consumer sacrifice and that they could achieve virtually all required production by economic expansion. Almost all that was asked of consumers was that they postpone purchases of large durable items such as cars and washing machines. [n. 73]  Furthermore, economic statistics for the war indicate that consumer spending in the US actually increased throughout the war. [n. 74]

   In summary, the revolution in economic statistics reached a point in 1940 where those few economists intimately familiar with their intricacies could use them to determine, with a considerable degree of accuracy, how much and how fast US industry could expand to meet wartime demands. It was a truly remarkable coincidence that such a valuable statistical tool was created and perfected in the decade just before it was needed to help win humanity's greatest struggle. ( ... ... ) p. 49.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발췌: 한국은행] 고정자본소모


출처: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국민계정체계. 2015.11.
자료: http://ecos.bok.or.kr/ 에서 주요 경제통계 해설책자를 탐색.


※ 발췌: 

(4) 고정자본소모

고정자본소모(consumption of fixed capital)란 고정자산이 일정기간 동안 생산에 사용됨으로써 발생하는 물리적인 노후화, 경상적 진부화 또는 일상적인 사고, 손실 등에 따른 가치의 감소분을 말한다. 즉 유형고정자산의 경우 생산과정에서 사용되거나 시간의 경과 및 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마모, 진부화 등으로 가치가 감소하게 되는데 그 가치감소분의 화폐평가액이 고정자본소모이다. 일반적으로 고정자산을 생산에 사용하는 제도단위는 현재의 고정자산 가치가 모두 소모될 경우 현 수준의 생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고정자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부가가치의 일부를 비축해 두고 있다. 이러한 국민계정에서의 고정자본소모는 경제적 의미의 자산가치 감소로 투자촉진, 조세감면 등의 목적으로 기록하는 기업회계상의 감가상각(depreciation)과는 차이가 있다.


고정자본소모와 감가상각

국민계정에서는 기업회계상의 감가상각(depreciation)과 구분하기 위해 고정자본소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정자산의 가액은 잔존 내용연수 동안 고정자산을 보유함으로써 발생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득(소득)의 현재가치로 측정되며, 고정자본소모는 동 현재가치의 감소분으로 측정된다. 즉 고정자본소모는 미래소득의 측정치(forward-looking measure)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회계상의 감가상각은 과거에 투입된 비용(historic costs)을 회계기간 동안 배분하여 계산한다. 따라서 고정자본소모는 과거의 구입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감가상각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발췌: David Bonifacio's] Moments─Prologue: Days Dark and Bright


자료: http://dbonifacio.com/moments-prologue-days-dark-and-bright/

※ 발췌 (excerpt):

( ... ) The young man stood in the same place for a few minutes. Without realizing, his right fist clenched, snapping the stem of a single rose he had been holding. He brought his hands to wipe the tears now mixing with the rain on his face. After a little more than a minute, he stopped. He did not cry anymore after that. He would never cry again. He turned and walked away, his own shadow becoming a blur, then a dot, and smaller it become until it too was gone into that dark night.

...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발췌] Benford's Law


자료 1: Tim Harford, The Undercover Economist

※ 발췌:

( ... ... ) Benford's Law was discovered in 1881 by the astronomer Simon Newcomb, and then again by Frank Benford, a physicist at General Electric, in 1938. The law is a curious one: it predicts the frequency of the first digits of a collection of numbers. For example, measure the lengths of the world's rivers, and see how many of the digits begin with "one" (184 miles; 1,543 miles) versus "three" (3,022 miles) or "nine" (985 miles). Newcomb and Benford discovered that the first digit is usually a "one"─fully 30 per cent of the time, over six times more common than an initial "nine". And the result is true whether one counts the numbers on the front page of the New York Times or leafs through baseball statistics.

Nobody seems sure why so much data has the Benford distribution. We do know that exponential growth produces it. To move from a GDP of one billion Flainian Pobble Beads (a unit of currency in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to billion Flainian Pobble Beads requires cumulative growth of 100 per cent, which will take a while. But to move from a GDP of 9 billion to 10 billion Flainian Pobble Beads requires only 10 per cent growth. Benford distribution are, uniquely, scale-invariant─in other words, if one measures GDP in dollars instead of Pobble Beads, the Benford property remains.

Manipulated data often fail to satisfy Benford's Law. A manager who must submit receipts for expenses over £20 may end up filing claims for lots of £18 and £19 expenses─and the data will then contain too many ones, eights and nines. A forensic accountant can easily check this, and while not an infallible check (fraudster Bernard Madoff files Benford-compatible monthly returns), it's an indicator of possible trouble. ( ... ... )


자료 2: The Curious Case of Benford's Law

When you roll dice, all numbers have the same probability to show up (assuming that the dice aren't loaded in any way).

... ...

However, the leading digits of numbers in very large accumulated datasets─for example, the amount you pay for each household bill over the course of a year─follow a very different pattern. In such cases it is much more likely that a given number will start with one, with decreasing probability for each higher digit up to nine. This statistical pattern is called Benford's law.

Benford's law arises naturally if the data under consideration span several orders of magnitude─for example, the first digits of the powers of two obey Benford's law:

... ...

This plot shows the frequency of initial digits for every number from 2^1 to 2^1000:

... ...

Benford's law seems to apply to a broad variety of datasets, not just pure mathematical progressions, and it has a number of serious applications.

  • it is often used to detect anomalies in datasets, including income taxes; most people don't know about Benford's Law, so when they fill out fraudulent tax forms, they tend to choose numbers with higher leading digits. If the distribution of leading digits in a given return doesn't closely follow Benford's predicted distribution, that could be a sign that the return should be pulled for additional review.
... ...




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발췌] Bank of America: The 'Great Divorce' Between The World's Two Largest Economies Will Drive Currency and Rates Markets in 2016


출처: Luke Kawa, Bloomberg, Nov 23, 2015
자료: Bank of America: The 'Great Divorce' Between The World's Two Largest Economies Will Drive Currency and Rates Markets in 2016


※ 발췌 (excerpt)

"On the eve of the December FOMC meeting, we think the question is not whether the U.S. economy can live with higher interest rates and a higher U.S. dollar. The question is, given the semi USD/RMB peg and China's increasing open capital account (which come at the expense of China's monetary independence), whether China can live with higher U.S. interest rates and a higher U.S. dollar. We are skeptical. This why we think the USD/RMB peg, a marriage of convenience that has been the anchor for the global growth model for the better part of the last 15 years, is headed for a divorce, and we think the RMB devaluation on Aug. 11 was a first small step in this direction."


cf. China Spotlight: What is a "Basically Open Capital Account, Chinese Style?" (Feng Guo & Jean-Charles Sambor | IIF, June 2015)

cf.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Theory, Evidence, and Speculation (Peter Blair Henry | FRB SF, Nov 2006)

2015년 12월 8일 화요일

[Nordhaus & Tobin's] Is Growth Obsolete? (1972)

  • 출처: William D. Nordhaus and James Tobin, “Is Growth Obsolete?” In ^Economic Research: Retrospect an Prospect^, vol 5, ^Economic Growth^, ed. William D. Nordhaus and James Tobin (New York: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1972)
  • 자료: http://papers.nber.org/books/nord72-1


※ 발췌 (excerpt):


A long decade ago economic growth was the reigning fashion of political economy. It was simultaneously the hottest subject of economic theory and research, a slogan eagerly claimed by politicians of all stripes, and a serious objective of the policies of governments. The climate of opinion has changed dramatically. Disillusioned critics indict both economic science and economic policy for blind obeisance to aggregate material "progress," and for neglect of its costly side effects. Growth, it is charged, distorts national priorities, worsens the distribution of income, and irreparably damages the environment. Paul Erlich speaks for a multitude when he says, "We must acquire a life style which has as its goal maximum freedom and happiness for the individual,
not a maximum Gross National Product."

  Growth was in an important sense a discovery of economics after the Second World War. Of course economic development has always been the grand theme of historically minded scholars of large mind and bold concept, notably Marx, Schumpeter, Kuznets. But the mainstream of economic analysis was not comfortable with phenomena of change and progress. The stationary state was the long-run equilibrium of classical and neoclassical theory, and comparison of alternative static equilibriums was the most powerful theoretical tool. ( ... ... )

[용어] capital widening/deepening


자료 1. EconomicsHelp: capital widening and capital deepe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