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7일 수요일

위기 대응 투자의 위험


위기를 맞아 투자하기로 했다면, 특히 어떤 위험 요인들을 눈여겨봐야 할 것인가? 이렇게 위험 요인을 찾아서 판단하는 일을 일컬어, 나를 포함한 가치투자 펀드매니저들은 보통 ‘위험을 가늠한다measuring risk’고 한다. 이에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지만, 위기 때는 그 변수들 각각이 특히 더 중요하다.

1. 위험을 가늠하는 첫 번째 변수는 회사의 재무 건전성이다. 회사가 혹독한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제약회사들처럼 자금력이 튼튼한 주식들을 매수하면 회사의 자금 문제로 투자자가 투자원금을 상실할 위험은 아주 작아진다. 내가 대차대조표는 물론, 부채비율을 비롯한 재무 건전성 지표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나칠 정도로 유행했던 1980년대 차입매수leveraged buy-out(LBO) 사례만 봐도 재무 건전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2. 두 번째 변수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충분한 위험 분산이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산업도 분산해야 하지만, 기업도 분산해야 하고, 산업보다 넓은 개념인 부문도 분산해야 한다. 어느 기업이나 산업이 지나치게 폭락한 뒤에도 새로운 악재는 언제고 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서 설명했던 은행위기에서 우량 지방은행들이 헐값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개별 은행에 대한 투자비중은 아주 작게 유지했던 것이다. 은행업종 전체가 터무니없이 하락한 데다 헐값의 우량은행들이 널려있어서 개별 종목에 큰 위험을 떠안지 않고도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 은행산업이나 더 넓게는 금융부문 전체가 “폭탄 세일” 중이었다고 해도, 이들 종목군에 투자자금을 집중하지는 않았다. 만약 이때 금융부문이나 은행산업에 투자를 집중했었더라면 훨씬 파격적인 수익률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달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3. 위험을 가늠하는 세 번째 변수는 주가, 즉 가격이다. 당연히 위기 중에는 가격의 중요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느 회사의 자금력이 탄탄하다고 해서 그 회사의 주가가 매수 가격으로 비싸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황 때는 특히 그렇다. 앞에서 본 것처럼, 위기 때는 정상적인 시기보다 훨씬 저렴한 주가평가배수(PER, PBR, PCR, PDR 등)를 요구해도 좋다. 더 좋은 가격에 살 여지는 충분이 있다. 따라서 주가가 자유낙하로 추락할 때 매수하려고 안달하지 말라. 더 이상 떨어질 여지가 없을 정도로 폭락한 것 같아도 다시 20~30%의 추가 하락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내가 퍼스트피델리티 은행을 매수했던 사례를 상기하자.

위험을 가늠하는 이러한 척도들은 시장이 웬만할 때도 손실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지만, 위기 대응 투자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무기다. 공황 때는 위험 경보가 평소보다 몇 배나 크게 들리기 때문에, 시야를 제대로 겨누려면 다양한 가늠쇠를 갖춰둬야 한다. 일단 공황이 터지고 특정 기업이나 개별 산업이 공황의 표적이 되면, 이런 종목들은 거의 황폐화된다. (중략...)

마지막으로 지적할 중요한 사항은 위험의 심리적 측면이다. (...중략...) 투자를 판단하는 가장 명료한 잣대가 있다고 해도, 공황 중에는 이 잣대 자체를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변하기 쉽다.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재무비율과 같은 지표는 모두 거의 확정된 객관적인 정보로 간주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런 정보들도 불안이 유발되는 상태에서는 투자자들에게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불안과 근심이 증폭되는 시기에는 여러 가지 의혹이 일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근거 있는 걱정일 때도 있지만, 겁에 질린 반응으로 표출될 때가 더 많다. 재고나 설비, 기존 제품군, 그리고 회사의 수많은 변수들을 두고, 그 가치를 불안해하다 보면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이 유발될 수 있다.

위기 때 어느 PC 업체가 오래된 재고상품 일부의 평가액을 줄이는 일이 생기면, 이 회사가 보유하는 재고 가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컴퓨터산업 전체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탄탄한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이던 대차대조표가 갑자기 의혹거리로 비치거나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주가가 흔들거리며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신뢰감trustworthiness은 사회심리학자들이 대인 인지interpersonal perception 분야에서 연구주제로 다뤄왔지만, 투자나 자산 가치의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신뢰성credibility은 획득하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는 사실이 계속 입증돼왔다(신뢰감을 더해주는 일이 여러 번 되풀이되어야만 신뢰성을 획득하게 된다). 폴 슬로빅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신뢰를 획득하는 문제는 평평한 시험장을 달리는 게 아니라, 이미 불신 쪽으로 기울어있는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것과 같다.”

투자 문제에서도 위험을 대하는 우리의 지각은 아주 사소한 증거에도 난폭하게 돌변한다. 소규모 회사 하나가 배당제한금reserve[주#]을 증액해야 한다거나 현금흐름이 악화됐다는 뉴스가 나가면, 같은 산업에서 대차대조표와 제품군이 탄탄한 회사들마저 주가가 크게 흔들거릴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퍼스트시카고NBD(First Chicago NBD)는 신용카드 부실채권의 회수불능추정액을 1996년 2분기에 약간 증액한다고 발표하자, 이 회사 시가총액이 주식시장에서 10억 달러 이상 날아갔다. 엄청난 수익원으로 간주됐던 신용카드는 갑자기 의혹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신용카드 채권 손실은 얼마나 나쁜 것인가? 이 손실이 1990년대 초의 부동산 문제에 버금가는 위기로 불거질 만한 것인가? 시장의 과민 반응은 여러 달 동안 이어졌다. 그 무렵 퍼스트시카고NBD 은행은 회수불능추정액 증액은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고, 사실 그렇게 확인됐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금융주 전망을 불안해하자, 사소한 문제에 대해 투자자들이 느끼는 위험은 극적으로 증폭됐다. 이렇듯 보통 때는 단순해 보이는 문제들이라도 사람들의 인식은 심리에 의해 크게 변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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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우리 상법상 “준비금”(및 기업회계상 “적립금”)을 가리키는 “reserve”는 회사에 유보함으로써 배당을 제한하는 이익을 뜻한다. 하지만 국어대사전을 보면 준비금이나 적립금의 의미가 이와는 전혀 달라 혼동을 유발한다. 즉 '준비금'은 사전적 어의상 '기업이 일정 목적을 위해서 미리 마련하거나 갖춘 현금'을 뜻하고, '적립금'은 사전적 어의상 '기업이 일정 목적을 위하여 모아서 쌓아 둔 현금'을 뜻한다. 이와 같이 회계상 정의와 말의 상식적인 의미가 어긋나는 문제를 바로잡자는 서강대 이대선 교수의 연구를 받아들여 “reserve”의 역어로 “배당제한금”을 택한다 --옮긴이. 다음 자료를 참조. 이대선, “틀린 재무제표 용어 정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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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자료의 일부를 발췌. "Chapter 12. Crisis Investing," 데이비드 드레먼David Dreman,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 Contrarian Investment Strategy: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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