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5일 월요일

금융위기를 앞둔 약세장 투자 자세(4): “항상 새로운” 시장에 반하거나 놀라서는 안 된다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을 곱씹어볼 기회이고, 그 교훈에 미래 수익률이 달려 있다

- 글싣는 차례 -
  1. 약세장은 입에 쓴 약이다.
  2. 시황과 투자자: 친해져봐야 좋을 게 없는 사이
  3.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4. “항상 새로운” 시장에 반하거나 놀라서는 안 된다
  5. “언제나 새로운” 금융위기의 공포는 아주 쉽게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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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언제나 새롭게 투자자들에게 다가온다. 강세장 때는 언제나 새로운 상승 요인이 영원할 것처럼 언론과 입소문이 떠들어댄다. 약세장 때도 언제나 이전에 없던 겁나는 요인들이 투자 분위기를 압도한다.


2008년 직전에 3,000 포인트를 전망했던 증권사들

일례로, 2007년 말에 나왔던 우리나라 모든 증권사들의 2008년 시황 전망을 비교해 본다면 지금 시점에서 너무도 실망스러울 것이다. 필자 기억에는, 2008년이 바로 코앞인데 주가지수 3,000 포인트를 서슴없이 전망했던 증권업계 선두를 다투던 회사의 보고서가 기억난다. 아마도 그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다. 이것만 믿고 막연하게 2008년에는 수익이 날 거라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금년에 얼마나 놀랐을 것이며, 그 돈으로 2009년에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낼 생각이었다면,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전문가들이 내는 보고서들은 겉모습도 "화려"하지만, 결정적인 변곡점에서 "화려"하게 빗나간다.

앞에서 최소한의 시간 지평으로 5년을 예로 들었다(최소한이 좋다는 생각은 아니다). 왜 5년이라고 생각했을까? 필자가 우리 시장의 자료를 직접 검증해보지는 않았지만, 자본시장의 역사도 길고 그에 대한 폭넓은 연구도 많이 나와 있는 미국 시장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고수익을 위해 고위험을 수용했다면, 그 위험의 확률 구간을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1900년~2000년 기간과 1926년~2005년 기간을 대상으로 한 통계적 분석 결과를 보면 그렇다. 투자 보유기간을 1년, 5년, 10년, 15년, 20년, 25년으로 구분하고, 투자 시작연도와 완료 연도를 이 보유기간에 맞게 여러 가지 표본으로 지정해서 과거 100년(및 80년)의 수익률을 뽑아보는 방법이다. 그 결과에 따르면, 보유기간이 5년을 넘어서 10년부터는 위험(수익률의 표준편차)을 포함한 수익률이 확실하게 플러스로 나온다. 보유기간 5년인 경우에는 수익률 분포가 손실 구간에 걸치기는 해도 물가상승을 공제한 실질 수익률은 연복리 10% 수준이다. 10년 이상부터는 실질 수익률이 손실 구간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연복리 10% 이상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배당을 전액 재투자한다는 가정이다). 주 1)

이렇게 위험을 고려한 수익률 분포가 투자기간 10년 이상부터 안정적이라는 경험적 근거에서 주식의 장기투자가 “편안한” 것이고, 장기간에 걸친 복리증식의 “어마어마한 위력”이 장기투자의 매력이다. 또 진지한 계획 하에 인생을 건 투자 목적에 딱 맞는 시간 궁합이기 때문이다. 연복리 10% 대 수익률은 장기투자를 관철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수익으로 불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에 대한 장기투자의 효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증권회사에 오래 다닌 필자의 친구도 번번이 한 달짜리 코스피 200 옵션에 도박을 하면서도, 10년 이상의 주식 투자에 대해서는 유달리 회의적이다. 이 친구에게 바로 앞서 들었던 미국 주식시장 통계를 일러주며, 매번 지기 십상인 게임을 10년 반복하느니 10년을 묻어두는 한 번의 투자가 훨씬 보람 있다는 이야기로 설득을 시도했다. 그 친구의 반응은 이랬다. “우리나라는 다르지 않을까?”

정말로 답답했다. 통계의 신빙성은 모집단이 클수록 확실해진다. 미국과 우리나라 주식시장 제도에 얼마나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별로 크지 않다. 주식시장의 공통적 속성이 훨씬 크다. 미국의 보다 큰 모집단(시가총액의 규모와 종목수, 거래량)과 보다 긴 시간의 통계에서 나온 결과는 남의 나라 자료라고 우습게 볼 성질이 아니다. 일단 자본주의인 것이고, 주식시장은 "자본주의라는 DNA가 피우는 꽃"이다. 우리나라 시장에 대해서 긴 시간에 걸친 일관된 통계분석 결과가 얼마나 나와 있고 신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내용이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면, 나라는 달라도 자본주의라는 DNA의 동일성을 믿고 위와 같은 미국의 경험적 결과에 무게를 더 두고 싶다.

장기 투자에 대한 회의, 물론 이유가 없지는 않다

장기 주식 투자에 대한 이러한 회의주의에는 두 가지 근거 없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기다림의 답답함을 못 견디는 조기 승부사 근성이다. 당장 내 자산과 가족까지 결딴날지 모르는 과도한 위험을 계획 없이 수용하면서 금방 결과를 봐야겠다는 성급함이다. 다른 하나는 “매번 새롭게” 나타나는 시장위험에 대한 공포다. 지금과 같이 국제경제 전반에 걸쳐 거시경제 차원의 금융위기가 잠재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한두 가지 재료만 나타나면, 시장은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3일 후에 세상이 망하기 전에 오늘 당장 매도하는 게 낫다는 공포 분위기에 휩쓸린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실제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로 투자자들에게 보람 있는 수익을 안겨준 자산운용의 사례를 자산운용업계 자체가 만들지 못했거나,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비교될 만한 선례가 있어야 생각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장기적인 투자 정책으로 훌륭한 수익을 추구하겠다는 펀드들을 자세히 검증해 개인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금융감독원의 실사 보고서가 필요한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과연 투자설명서에서 장기 투자를 한다는 펀드들의 연간 포트폴리오 회전율은 얼마나 될까? 회전율이 높다면 장기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 정책은 거짓말이다.

주식시장의 위험을 긴 시간으로 용해할 수 있는 장기 투자가 성공하려면 골고루 아주 폭넓게 투자 종목을 분산하는 자산배분이 필수다. 이러한 폭넓은 자산배분과 투자를 묻어두는 긴 시간 지평을 투자자들에게 약속하고(동시에 펀드를 팔기 전에 투자자들의 동의나 약속을 받고), 실행에 옮기는 믿을 만한 펀드들이 나와야 투자자들 생각에 르네상스가 일것이다. 잘 나가는 펀드라고 돈을 맡겼더니, 일부 종목군이나 일부 해외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 투자해서 그 뻔한 위험 분산에 실패해 망가지는 펀드들과는 달리, 아주 우수한 실적을 내기에 충분한 평범한 투자 정책을 일관하겠다는 "이성"과 "양심"과 "뚝심"을 가진 자산운용가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에 없다면, 수입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주: 1) Charles D. Ellis, Winning the Loser's Game, 4th edition, 2002, Figure 8-1, p. 53. Burton G. Malkiel,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9th edition, 2007,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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