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4일 목요일

금융위기를 앞둔 약세장 투자 자세(2): 시황과 투자자, 친해져봐야 좋을 게 없는 사이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을 곱씹어볼 기회이고, 그 교훈에 미래 수익률이 달려 있다

- 글싣는 차례 -
  1. 약세장은 입에 쓴 약이다.
  2. 시황과 투자자: 친해져봐야 좋을 게 없는 사이
  3.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4. “항상 새로운” 시장에 반하거나 놀라서는 안 된다
  5. “언제나 새로운” 금융위기의 공포는 아주 쉽게 넘길 수 있다

***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투자해놓은 뒤 약세장을 만나면, 지나치게 “시황”에 민감해진다. 인터넷 정보를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가 하면, 밤이면 밤마다 이런저런 투자클럽들에 들락거리면서 다양한 시황 분석에 목말라하는 반면, 자신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은 되돌아보지 못한다. 필자는 2004년의 쓰라린 경험 뒤에 개인적인 투자 정책 상 시장에서 물러서 있는 상태다(물러설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한발 물러서서 시장을 관망하다 보니, 약세장 특유의 시황 분석에서 눈에 드러나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내로라하는 주식분석가(애널리스트Analyst)이든, 시장전략가(스트래티지스트Strategist)이든, 아니면 언론사가 애용하는 전용 이코노미스트이든, 약세장에서 나오는 모든 시황 분석은 다음 세 박자로 진행된다.
  1. 우선,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을 나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2. 둘째로, 상승 요인이 실현될 개연성과 하락 요인이 실현될 개연성을 풀어놓는다.
  3. 셋째로는, 상승 요인이 하락 요인보다 강하면 상승할 것이며, 하락 요인이 상승 요인보다 강하면 하락할 것이라는 언급이다.
위 1번은 잘 알려진 사항들을 정리하는 차원이다. 그래서 도움이 좀 된다. 그리고 2번 분석은 개연성을 언급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다. 주목할 것은 3번이다. 시장이 변곡점을 막 지난 후에 나오는 "시황 분석" 혹은 "향후 투자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핵심 포인트가 바로 이 3번이다. 즉 <올라가는 힘이 내려가는 힘보다 강하면 올라갈 것이요, 그 반대이면 내려갈 것>이라는 동어반복이다. 그 표현은 외교문서를 뺨칠 정도여서, 동어반복임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기묘한 순서로 어구들이 배치되어 있다(물론, 노골적으로 동어반복임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동어반복의 정신병리 내지는 언어병리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인터넷과 "메타 밸류에이션"의 추억(3):정보와 지식, 상편"을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주목할 최근 동향 한두 가지를 부각시킨 다음, 결론이라고 밝히지 않은 이런 식의 결론이 나온다.
  1. “신중히 시장을 관망해야겠지만, 저점 매수를 노려보는 것도 좋다”, 혹은
  2. “여유 있는 투자자라면 저점 매수를 시도해봐야겠지만, 적절한 현금 비중을 유지하자”
독자 분들은 위 1과 2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런 표현들로 아주 다채로운 변종들이 등장한다. 물론, 각각의 약세장 때마다,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의 내용도 달라지고, 유행하는 투자 용어도 달라진다. 그래서 “시황”이란 것은 항상 새로운 것 같지만,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다. 따져 보면, 이런 유형의 “시황”은 강세장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적극적인 표현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차이밖에 없다. 즉,
  1. “적극적으로 매수에 가담할 때다. 그러나 최근 상승률을 볼 때 추격 매수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혹은
  2. “최근 상승률을 감안할 때 ‘눌림목’을 기다려 주식 비중 확대를 적극 고려할 때다”
독자 분들은 위 1과 2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와 유사하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는 표현들이 여러 가지 구색으로 조합되어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순회공연을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순회공연을 한다. 그래야 뭔가 다채롭지 않겠는가? (이렇게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시황 분석은 강세장이 뻗어가는 한가운데 "허리 구간"에서 나오는 유형인데, 특이한 점은 강세장 마지막의 상투 구간에서는 이렇게 애매모호한 시황은 종적을 감추고 "강력 매수"만 등장한다는 점이다).

독자 분들은 전형적인 시황 “분석”으로 위에 소개한 유형들 속에 어떤 결론이 담겨 있다고 보는가? 필자는 그 안에 아무 결론도 없다고 본다. 그뿐 아니라, 사실 이런 부류의 시황 분석 속에 숨어 있는 진짜 결론은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유명해진 J.P. 모건의 말이 있다. “주식시장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모건의 답변은 “오르내릴 것이다(It'll fluctuate)”였다. 수백만 가지 시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와 봐야, 모건의 이 답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필자의 전자우편이나 이 게시물에 의견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 하나는 시황에 목말라하는 심리 자체가 투자 목적이 불분명하고, 투자 정책이 허약하다는 반증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수익을 벌어주는 것은 언제나 “명확한” 투자 목적과 “건실한” 투자 정책이지, “명석한” 시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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