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0일 목요일

인터넷과 "메타 밸류에이션"의 추억(3):정보와 지식, 상편

인터넷과 "메타 밸류에이션"의 추억(3): 정보와 지식. 그 상중하 중 상편.

3.1. 말과 넋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집단이 입으로 지르는 소리와 그 소리에 담아주는 뜻이다. 즉 소리와 뜻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쓰면서 "그들"의 생활과 가치를 도모하는 집단이 언어 공동체요, 새로운 뜻을 도모하려고 그 규칙을 깨면서 말이라는 도구를 새롭게 쓰는 주체도 이 공동체다. 말을 구성하는 소리와 뜻은 어느 한 사람만 쓰자고 있는 게 아니니, 분명히 사회적인 것이다. 종종 예전에 잘 안 쓰던 말이 갑자기 사회 전면에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런 현상은 어느 언어 공동체가 그들의 생활에 무언가 새로운 뜻을 부여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변화가 일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화"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 때였고, 코스닥 주가가 치솟을 때이기도 했다. 지금은 신문 방송을 잘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 말이 그때처럼 유행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보화"라는 유행성 냄비가 식어버린 탓일 것이다. 지금 유행의 바람은 아마도 다른 냄비를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넋이야, 신앙이나 초자연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할 문제라고 하더라도, 어느 사회의 넋은 그 언어 공동체가 쓰는 말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꽤 오래전부터 우리 언어 공동체가 말에 부여해 주는 뜻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말이 마구 돌아다녀도, 세부적으로 그 의미와 의의를 '주관적으로 점검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관적'인 모습이 없다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리키는데, 아마도 우리 사회에는 일종의 증후군으로 뿌리를 내린 것 같다.

그 하나는, "그건 그런 것 아니야?", "곱창은 그냥 곱창이지", "그건 바로 거시기라니까"라는 식의 언표에서 생각이 끝나는 사고방식이다. 필자는 이런 "사고" 유형을 '동어반복 사고마비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즉 더 할 말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더 따지지 말자"는 결론이다. 즉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토론을 중단시키고,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를 보면 이런 현상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바로 논쟁하는 쌍방이 이미 자기 결론을 내놓고, 서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증상이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는 식의 동어반복은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동어반복은 말 그대로 같은 말의 반복이기에, 인과 관계나 주술 관계가 아무렇게나 뒤집혀도 말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런 말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어있지 않다. 또 이런 유형도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입니다." 동어반복을 강조로 위장해서 무언가 의미를 전달하는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둘째는 '앵무새형'이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던데?"라는 "사고" 유형이다. 즉 머리는 빈 채, 귓속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무언가 뜻이 있는 말이려니 생각'하면서, 스스로 뜻도 부여하지 않은 채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경우다. 누가 뭐라고 말하면, 그냥 따라서 말하는 태도인데, 특히 해외의 유명 인사가 무슨 용어를 사용하면 말 그대로 앵무새처럼 그 소리를 따라하는 증후군이다. 우리 언어 문화에 외래어가 유달리 많은 이유 중에는 우리말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우리 주변의 변화가 급격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외국인들이 지르는 소리를 무작정 따라하는 '앵무새형' 언어 사용자들이 많다는 점도 꽤 크다.

3.2. 아무 뜻도 의지도 없는 말: "정보화"

"정보화"라는 무언가의 뜻이 담긴 듯한 용어는 아마도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듯하다. 보통 '○○으로 되다' 또는 '○○으로 만들다'는 뜻으로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사용해 왔던 "○○화"라는 어법은, "정보화"라는 용례에서 우리 언어 공동체로서는 큰 곤욕을 자초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라든지, "언어화", "민주주의화"라는 용례에서는 어느 정도 '산업', '언어',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나 사회적 통념이 자리 잡고 있기에 문리, 즉 글자의 이치가 통한다. 즉, "산업이 아닌 것을 산업으로 만들다(산업화)"라거나,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말로 나타내다(언어화)"라거나, "민주주의가 아닌 상태를 민주주의로 만들다(민주주의화)"라고 생각하면 뜻이 통한다.

그런데 "정보화"라고 하면 문리가 막힌다. '정보'라고 하는 용어 자체에 대한 정의나 사회적 통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화"라고 해서 한 글자를 더 붙인 탓에 말이 가리키는 의미를 더욱 묘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앞의 다른 용례들처럼, '정보가 아닌 것이 정보로 되다'라든지, '정보가 아닌 것을 정보로 만들다'라는 어법으로 "정보화"를 이해하려고 들면, 미궁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정보인 것은 무엇이고, 정보가 아닌 것은 또 무엇인가?"라고 자문할 때,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론적인 점검에서 볼 때도 (그 취지는 다르겠지만) 소영진 교수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보다는 "정보 사회"라는 용어가 덜 혼란스럽다고 본다. 주1) '정보'라는 것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면, 쓸데없이 '화'라는 글자를 하나 더 붙여봐야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3.3 정보화에 대한 공식적 정의

"정보화 촉진 기본법"에서 "정보화"에 대한 명언적 정의를 추출할 수 있다. 주2) 이 법안에서 시도한 "정보화"의 정의를 재구성하면, "전자적 매체로 표현한 자료를 활용하여 사회 활동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또 "정보"의 정의는 "전자적 매체로 표현한 모든 자료"가 된다. 냉정하게 점검하자면, '효율화'라는 표현에는 가치판단 요소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하고 그 정의를 재조립하는 것이 지적인 자세다. 즉 "전자적 매체로 표현된 자료를 사용함에 따른 무언가의 변화"가 이 법안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중립적인 정보화의 정의다. ('어떻게 효율화하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효율화라는 요소를 포함시키는 것은 '정의'하는 지적 작업이 아니라, '판단'하는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화는 무슨 변화일까? 이 대목에서 미래학자들과 비즈니스 스쿨의 신조어 사업가들이 별 위험 없이 사업할 수 있는(즉 책을 써서 팔고 비싼 강연료를 받을 수 있는) 지적 공간이 발생한다. 무언가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한참 지나봐야 그 내용이 드러날 것이니 앞으로의 역사가 밝혀줄 문제이지, 자신이 책임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지적인 틈새시장'에서는 먼저 말하는 게 장땡이다. 그게 아니라고 우길 근거도, 옳다고 우길 근거도, 먼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 창조자로 위장한 신조어 사업가들은 '남보다 먼저 말하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


※ 필자 후기 및 다음 차례에 대한 소개:

근 한 달 전부터 이 글을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족족 실패하다가 이제 일곱 번째 시도로 글을 쓰게 됐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참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이번 연재에서 정보와 정보사회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지식과 지식사회에 대한 정의와 견주어 볼 때에만 의미가 살아나는 부분이라서 분량은 길어지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그래서 다음 번 글에서 이 주제를 다루면서 정보와 지식에 대해 좀 건조한 논의를 시도하고자 한다.

주: 1) 소영진, "정보사회의 개념 정립을 위한 시론", "정보의 개념과 정보사회의 의미"(출처: 대구대학교 자치행정학과 및 소영진 교수 웹사이트). 2002년 본 주제를 연구할 당시 참조했던 자료다.
2) "정보화 촉진 기본법" 제2조에는 정보와 정보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정보'라 함은 자연인 또는 법인이 특정 목적을 위하여 광 또는 전자적 방식으로 처리하여 부호, 문자, 음성, 음향 및 영상 등으로 표현한 모든 종류의 자료 또느 지식을 말한다. '정보화'라 함은 정보를 생산, 유통 또는 활용하여 사회 각 분야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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