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을 곱씹어볼 기회이고, 그 교훈에 미래 수익률이 달려 있다
- 약세장은 입에 쓴 약이다.
- 시황과 투자자: 친해져봐야 좋을 게 없는 사이
-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 “항상 새로운” 시장에 반하거나 놀라서는 안 된다
- “언제나 새로운” 금융위기의 공포는 아주 쉽게 넘길 수 있다
***
필자는 번역가로서 우리나라 시장의 “시황”에 대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투자와 금융시장에 대한 지혜와 철학을 전하는 좋은 책들이 꽤 있지만, 우리나라 투자자들에게 소개되지 못한 양서들이나 번역이 엉망이어서 읽을 수 없는 양서들을 옳케 번역해 소개하려는 사람으로서 가끔 우리 시장을 보면서 남다른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2002년이었나 보다. 종합주가지수가 당시 940대 언저리까지 오르며 대여섯 달 상승을 이어가면서, 30년 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던 1,000 포인트 저항선을 향해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 무렵, 우리나라 일위를 달리는 자산운용회사의 주식형 펀드 두 개에 50 대 50으로 투자했다. 곧이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외국인의 매도와 함께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상투를 잡은 것이다. 이어서 기관의 매도가 이어졌고, 개인투자자들의 매도 물결이 뒤따랐다. 그러더니 얼마 뒤에 시장은 다시 살아나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을 중심으로 상승장이 출현했다. 그리고 2004년 상반기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 포인트를 넘지는 못했을 때였다. 집안의 누군가가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이 펀드를 매도하라고 필자를 압박했다. “부동산 불패”의 드센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 투자의 보유 기간은 2.2년 정도였고, 기간 총수익률은 15%, 복리 수익률로 환산해보니 연 6.6% 정도였다. 아주 높은 수익률은 아니어도 짧은 보유 기간에 비하면 운 좋은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손해도 보지 않은 데다, 괜찮은 수익률이 아닌가? 요즈음같이 국제경제의 위험 요인까지 가세한 폭풍 전야의 약세장 분위기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전혀 좋은 투자 실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던 투자였다.
첫째로, 실적 면에서 봐도 그렇다.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빼고 나면 별로 남은 게 없으니, 실질 수익률은 제로에 가깝다. 또 명목 수익률 상으로도 정기예금이나 국채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무위험 수익률에 비해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수익률을 거두었다.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의 판매보수와 운용회사의 운용보수까지 공제해서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였을지도 모르겠다.
투자실적 상의 중요한 실패는 "무위험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정기예금이나 국채에 비해 위험이 높은 주식형 펀드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에 대한 보상을 전혀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쓸데없는 위험을 수용했던 셈이다. 정기예금을 들었었다면, 수시로 시세를 확인하느라 밤잠을 설치거나, 약세장 구간 동안 귀 따가운 집안의 불평을 듣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다음으로,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 면에서는 어떠할까? 주택 구입을 2~3년 앞두고 주택구입 자금을 주식에 투자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당장 2년 뒤에 쉽게 뒤집힐 투자 목적을 설정했다. 또 투자 정책은 어떠했던가? 투자 정책이랄 게 없었다.그냥 남들이 좋다는 펀드회사를 찾아가 객관식 답안을 "찍듯이" 펀드 두 개를 “찍은” 게 자산배분 정책의 전부였다. 목적을 오인하고 정책도 없었으니, 직전 하락장에서 상당 기간 지속됐던 펀드 평가손실이 수익으로 돌아서자마자 “부동산 불패” 논리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이렇게 시장에서 나오고 나니, 지수는 1,000 포인트를 넘었고 2,000 포인트도 넘나들었다. 지금은 그 후의 약세장 국면을 맞고 있지만 말이다. 어느 투자자나 과거를 후회하기는 쉽듯이, 만약 3년만 더 투자를 유지해서 보유기간을 5년으로 잡았었다면, 아주 좋은 투자실적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부동산 시장은 꽤 오래 끌고 있는 불안 국면에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계채무 상황에 더하여, 최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긴 하락장을 예고하고 있다.
약세장은 입에 쓴 약이다: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을 곱씹어볼 기회이고, 그 교훈에 미래 수익률이 달려 있다
어쩌면 이런 필자 사례는 우리나라 펀드 투자자들이 경험하는 공통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필자처럼 보유기간이 짧았던 경우는, 주식형 펀드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정작 펀드를 구매할 때는 판매회사로부터 단 한 마디도 그러한 투자자문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강세장 마지막 판에 "눈 먼 투자자들"의 "돈을 쓸어 담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투자자의 수익이야 어쨌든, 펀드를 판매하는 회사(증권사 및 은행)가 챙기는 수수료는 펀드를 많이 팔수록 늘어난다. 또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 투자하는 자산운용사의 수익은 투자자의 수익률로 결정나는 게 아니라, 투자액 그 자체로 결정난다. 투자자야 수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일단 돈을 많이 받아둘수록 운용보수는 늘어난다. 투자자산에 대한 일정 비율로 보수율을 떼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투자자 개개인의 투자 목적과 그에 합당한 투자 정책이 투자회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이치다.
이와 같은 필자의 시시콜콜한 투자 사례에서도 그렇지만, 약세장은 투자자들에게 입에 쓴 약이다. 사기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이미 투자 포지션을 취한 투자자이든, 앞으로 투자를 망설이는 투자자이든, 자신의 투자 목적과 투자 정책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강세장일 때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도, 숫자 상으로는 수익이 나니 자신을 되볼아보기가 어렵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의 목적과 그에 기초한 투자 정책이며, 투자 정책에 근거한 포트폴리오 구성(자산 배분)이다. 이 문제는 투자자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펀드매니저나 그들의 펀드를 판매하는 증권사가 해결해줄 일이 아니다. 오히려 투자자의 목적이 불투명하다는 "단서"를 노출하면, 그들은 더욱 과감하게 달려들어 투자를 권유한다. 그러고 나면 항상 약세장이 우리 뒤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