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2일 일요일

[발췌: W. 이스털리, 세계의 절반 구하기] 1장, 계획가 대 탐색가

출처: 《세계의 절반 구하기》 윌리엄 이스털리(지음), 황규득(옮김). 미지북스. 2011.
원제: The White Man's Burden: Why the West's Efforts to Aid the Rest Have Done So Much Ill and So Little Good


※ 발췌식 읽기 메모:

제1장 계획가 대 탐색가

pp. 32~ 59 :

* * *

사회 변화의 철학

서구의 원조에서 계획가와 탐색가 간의 논쟁은 사회 변화에 관한 서구 지성사에서 오래 지속되어온 철학적 분열 가운데 가장 최근의 논쟁이다. 위대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이를 두고 '유토피아적 사회 공학utopian social engineering' 대 점진적 민주개혁piecemeal democratic reform으로 묘사했다.[주]19 이는 에드먼드 버크가 18세기 후반에 '혁명' 대 '개혁'으로 묘사했던 것과 같다(프랑스 혁명은 유토피아적 설계의 잔인한 실험이었다.). 사회 공학 실험은 그 이후 탄자니아의 강제 정착촌을 국영 마을로 만들거나, 소련과 동유럽 산업화를 위한 공산주의의 5개년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되어왔다. 역설적이게도 사회 공학은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과도기(5개년 계획이 실패한 이후)에서 '충격 요법'으로 떠올랐다. 이는 '점진주의gradualism'라는 대안을 회피한 것이다. 사회 공학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했는데, 이는 '구조 조정'으로 불리는 IMF와 세계은행이 후원한 포관적 개혁으로 드러났다. 극악한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다른 국가의 사회를 서구의 민주적 자본주의를 반영하도록 개조하려는 군사 개입은 현대의 유토피아적 사회 공학의 극단적 형태이다. 세계 빈곤 종식 계획은 유토피아적 사회 공학의 모든 주장을 보여준다.
The debate between Planners and Searchers in Westen assistance is the lastest installment in a long-standing philosophical divide in Western intellectual history about social change. The great philosopher of science Karl Popper described it eloquently as "utopian social engineering" versus piecemeal democratic reform.[n.19] This is pretty much the same divide as the one Edmund Burk described in the late 18th century as "revolution" versus "reform" (the French Revolution was a bloody experiment in utopian engineering). Social engineering experiments have been applied since then in such diverse contexts as compulsory resettlement of Tanzanians into state villages and Communist 5-year plans to industrialize in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Ironically, social engineering surfaced again as "shock therapy" in the transition from communism (after 5-year plans had failed) to capitalism, which eschewed the alternative of "gradualism." Social engineering showed up in Africa an Latin America in the 80s and 90s as IMF/World Bank-sponsored comprehensive reforms called "structural adjustment." Military intervention to overthrow evil dictators and remake other societies into some reflection of Western democratic capitalism is the extreme of contemporary utopian social engineering. The plan to end world poverty shows all the pretensions of utopian social engineering.

민주주의적 정치는 점진적 해결책을 찾는 것에 관한 것이다. 즉 지역 단체는 쓰레기 수거와 같은 공공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캠페인을 펼치기 위해 정치 활동에 관여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특정 단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
Democratic politics is about searching for piecemeal solutions: a local group engages in political action to campaign for a missing public service, such as trash collection; and a politician recognizes an opportunity for political gain from meeting these needs and winning over this particular group.
우리 주변의 정치인들이 반드시 그 역할을 가장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는 그 풍요성으로 인해 어느 정도 유지된다. 정치학자인 찰스 린드블롬Charles Lindblom은 그의 뛰어난 논문에서 부유한 국가의 정치를 '헤쳐 나가는 과학science of muddling through'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그는 부유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실제 정치 관행이 비교 대상을 제한하는 개별적 과정이자, 시도를 수정해가면서 겪는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과거 경험에 대한 의존"[주]20이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부국의 정치인들은 자국에서는 탐색가들이라는 뜻이다.
Even when our politicians are not exactly the sharpest tools in the shed, rich democracies somehow work. Political scientist Charles Lindbolm in a classic article described rich-country politics as "science of muddling through." He noted that in rich democracies "actual policy practice is a piecemeal process of limited comparisons, a sequence of trials and errors followed by revised trials, [and] reliance on past experience.[n.20] In other words, politicians in rich countries are Searchers at home.

버크와 포퍼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복잡성에 주목했다. 이 복잡성은 계획을 통해 빈곤 퇴치를 달성하려는 시도에 이르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을 퇴치한 부유한 사회는 없다. 부유한 나라의 정치인들은 비서구 지역의 유권자들을 응대할 때에만 계획가로 변한다. 이는 계획의 양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실마리이다. 문제의 외부에 있는 자들은 계획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문제의 내부에 있는 자들은 동료 내부자들에 의해 탐색가가 되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Burke and Popper recognized the economic and political complexity of society. That complexity dooms any attempt to achieve the end of poverty through a plan, and no rich society ended poverty in this way. It is only when rich-country politicians gaze at the non-voters in the rest of the world that they become Planners. This is another clue to the likelihood of planning: outsiders are more likely to be Planners, while insiders are forced by their fellow insiders to be Searchers.


피드백과 책임

피드백과 책임accountability은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이것이 없을 경우 계획 수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탐색가들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는 경우에만 일의 진행 상태를 알 수 있다. 성공적인 탐색가들이 세계의 상층을 조사하기보다는 가장 밑바닥의 소비자들과 밀접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이 상품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회사에 말해준다. ( ... ... )
Two key elements that make searches work, and whose absence is fatal to plans, are feedback and accountability. Searchers know if something works only if the people at the bottom can give feedback. This is why successful Searchers have to be close to the customers at the bottom, rather than surveying the world from the top. Consumers tell the firm that "this product is worth the price" by buying it, or they decide the product is worthless and return it to the store. [ ... ... ]

피드백의 부족은 현재 진행되는 원조에서 가장 중대한 결함 중 하나이다. 이는 세계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원조 기관들의 노력과 그로 인한 결과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러한 결점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아보려 한다. ( ... ... )

물론, 피드백의 수집은 누군가 듣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피드백은 언젠가 보았던 대형 트레일러 트럭의 범퍼 스티커와 같다. '내 운전이 맘에 들지 않나요? 1-800-SCREW-YOU로 전화하세요.'(1-800은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를 뜻하고, SCREW-YOU는 '망할 놈' 정도의 의미이다.─옮긴이) 탐색가들은 탐색의 결과를 실행하기만 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수요가 많다고 생각하는 상품을 만들지만 이에 대한 책임도 진다. ( ... ... )

모든 정부에는 관료제가 구축되어 있지만, 발전된 민주 정부의 관료들은 국민들에 대한 특정 결과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이고 책임이 있다 (비록 신은 그들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관료들은 린드볼름의 '해체된 점진주의disjointed incrementalism'를 통한 점진적 개선을 추구한다. 적극적인 시민 단체와 정치적 압력 다체는 지도자들과 관료들의 실수를 교정하고 긍정적 성과들에 대해 보상해 주는 한편, 지도자들과 관료들이 밑바닥에서부 상향식으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 ( ... ... ) 피드백은 민주 정부가 시장이 공급할 수 없는 서비스와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제공할 수 이끌어준다.
Although all governments include bureaucracy, in well-developed democratic governments, the bureaucrats are somewhat more specialized and accountable for specific results to the citizens (although God knows the try hard not to be). The bureaucrats gradually make improvements through what Lindbolm called "disjointed incrementalism." Active civic organizations and political lobbies operate from the bottom up to hold leaders and bureaucrats accountable, correcting missteps and rewarding positive ones. ( ... ... ) Feedback guides democratic governments toward supplying services that the market cannot supply, and toward providing institutions for the markets to work.
더 높은 수준에서, 책임은 전체 조직 또는 정부가 탐색가들을 활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계획가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 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다시 말하면 국외자들은 많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이들은 계획가이다. 내부자들은 더 많은 책임을 지며, 이들은 탐색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At a higher level, accountability is necessary to motivate a whole organization or government to use Searchers. In contrast, Planners flourish where there is little accountability. Again, outsiders don't have much accountability, and so they are Planners; insiders have more accountability and are more likely to be Searchers.
우리는 권력이 계획가에서 탐색가로 이동하면서 책임이 증가될 때 원조를 이행하는 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유익한 변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원조 기관들은 미약한 동기를 가지고 광범위한 목적을 위해 집단적 책임을 추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원조 기관 직원들은 비효율적인 만능인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책임 부여를 통해 이들을 좀 더 효유적인 전문인으로 만들 수 있다.
We will see some of the helpful changes that can happen in aid when accountability is increased, shifting power from Planners to Searchers. Aid agencies can be held accountable for specific tasks, rather than be given the weak incentives that follow from collective responsibility for broad goals. Aid workers now tend to be ineffective generalists; accountability would make them into more effective specialists.

간단히 말하면 부유층의 필요가 충족되는 이유는 부유층이 정치 경제적 탐색가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때문이며, 그들은 탐색가들에게 특정 행동에 따르는 책임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빈곤층의 필요는 잘 채워지지 않는데, 이는 빈곤층이 자신들의 필요를 알리기 위한 자금력 또는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들은 그 필요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획가들에게 억지로 떠맡겨져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비극은 계속된다.


왜 계획가들은 인기를 누리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 중에서 생활에 필요한 각종 요금을 납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대외 원조와 관련된 대문제Big Problem와 비서구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서구의 노력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요구 납부자들이 부유한 사람들이며, 빈민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 대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규모의 행동을 요구한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동정 어린 행동이다. 대계획 가장 높은 위치에서 부자들을 계속 즐겁게 하는데, 이는 세계 빈곤과 같은 비극에 대해 '무언가 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뉴욕 타임스>는 '그냥 뭔가 해라'라는 제목으로 아프리카를 위한 대계획을 옹호하는 사설을 실은 바 있다. 라이브 에잇 콘서트의 책임자인 밥 겔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일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실행 가능하든 실행 가능하지 않든."[주]21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모든 대계획은 빈민들의 핵심적 필요를 처리하는 데 부유층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 참으로, 비효율적인 대계획이 빈민을 돕기 위해 부유층의 부담을 덜어준다면 여기에 두 번째 비극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효율적인 점진적 행동이 취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In any human endeavor, the people paying the bills are the ones to keep happy. The big problem with foreign aid and other Western efforts to transform the Rest is that the people paying the bills are rich people who have very little knowledge of poor people. The rich people demand big actions to solve big problems, which is understandable and compassionate. The Big Plans at the top keep the rich people happy that "something is being done" about such a tragic problem as world poverty. In June 2005, the New York Times ran an editorial advocating a Big Plan for Africa titled "Just Do Something." Live 8 Concert organizer Bob Geldof said, "Something must be done; anything must be done, whether it works or not."[n.21] Something, anything, any Big Plan would take the pressure off the rich to address the critical needs of the poor. Alas, if ineffective big plans take the pressure off the rich to help the poor, there's the second tragedy, because then the effective piecemeal actions will not happen.

비효율적인 계획의 우세는 서구 원조의 결과가 서구 대중의 시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원조의 결과가 더 가시적이라면 비효율적인 접근 방법은 더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대계획은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정치인, 유명 인사, 행동가 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러나 서구의 대중은 최상층의 이러한 계획이 밑바닥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The prevalence of ineffective plans is the result of Western assistance happening out of view of the Western public. Fewer ineffective approaches would survive if results were more visible. ( ... ... )

( ... ... )

우리는 선택 받은 자가 되고 싶어 한다. 대계획이 서구에서 지지받는 것의 부분적 이유는 부유한 서구가 주연을 맡아 비서구 세계를 구하는 선택 받은 자가 되기 위함이 아닐까?

계획가 대 탐색가의 구도는 좌파 대 우파의 구도와 같지 않다. 대계획은 부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좌파는 지구의 빈곤에 맞서기 위해 국가 주도의 대대적 노력을 선호한다. 우파는 서구의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 서구에 대한 반대 세력을 불식시키기 위해 호의적인 제국주의를 선호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비록 좌파와 우파는 각각 상대 세력을 부인하려 하겠지만 우리는 좌파의 대외 원조와 우파의 군사 개입이 기이한 방식으로 결합됨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운동가들 또는 대외 원조 지지자들은 해리 포터 역할을 하고 싶은 유혹을 부인하기 어렵다.
The Planners-versus-Searchers divide is not equal to Left versus Right. The Big Plans show remarkable bipartisan support from both the rich-world Left and the rich-world Right. The Left likes the idea of a bid state-led effort to fight global poverty. The Right likes the idea of benevolent imperialism to spread Western capitalism and subdue opposition to the West. So, as this book will explore, we get bizarre conjuncture of foreign aid on the left and military intervention on the right (although each might disavow the other). Few military crusaders or aid advocates can resist the temptation to play Harry Potter.

이와 마찬가지로 대계획 주류에 대한 비판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의 반대자들도 한다. 우파 반대자는 빈민의 희망이 국내에서 자생한 시장과 민주주의에서 주로 싹틀 것이라고 말한다. 좌파 반대자는 빈민들을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로 바꾸려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파와 좌파 반대자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 서 있다. 그 중간에 있는 탐색가들은 좌파의 대계획이나 우파의 대계획이나 (대외 원조나 해외 군사 개입이나) 모두 비서구 세계에서의 빈곤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 빈민들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일들을 살펴보자.
Likewise, the critique of the Big Plan mainstream comes from dissidents on both the Left and the Right. The right-wing dissident says that hope for the poor will come mainly from homegrown markets and democracy. The left-wing dissident doesn't like the Western imperialist trying to remake the poor in the West's image. Both right-wing and left-wing dissidents are on the right track. The Searchers in the middle agree that neither the Big Plans of the Left nor those of the Right (neither foreign aid nor foreign military intervention) can end poverty in the Rest ( ... ... ).

분명한 사실은 세계 빈곤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공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빈민을 돕기 원하며 자신들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획가들의 양상은 아주 다양하다. 이들은 종종 극명하게 의견이 대치하기도 하고, 이 중 다수는 이 책에 소개된 극단적 사례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목표Big Goal와 대계획을 선호하는 흐름은 놀랄 정도로 많이 확산되어 있다. 부유한 자들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빈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더라도, 결국 비효율적인 경로를 통하게 된다는 것은 두 번째 비극의 일부분이다.

( ... ... )


유토피아니즘

19세기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은 산업 혁명에 열광했다. 그는 한 세기 반 이후 세계 지도자가 할 새 천년 선언을 예측하면서, 1857년에 낸 책에서 "세계의 주도 세력들이 어떤 길을 채택해야 할지 더 이상 주저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들이 올바른 계획을 수용하다면 "인류는 순조롭게 출생하고, 식품을 섭취하며, 옷을 갖춰 입고, 잠자리를 제공 받고, 훈련 및 교육을 받을 것이며, 취업을 하고, 휴식을 취하며, 지역적 및 전체적인 통치를 받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삶을 영위하고, 사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화에 대해 잘 준비할 수 있게 할 것이다."[주]22 ( ... ... ) 그가 19세기에 썼던 수사와 제프리 삭스와 같은 현대의 계획가들이 쓴 수사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하단 참고). 유토피아는 오늘날 재등장하고 있다.
( ... ) Anticipating the world leaders' Millennium Declaration a century and a half later, he said in a book in 1857, "Let not the leading powers of the world longer hesitate what course to take." If only they embrace the right plan, "the human race shall be perpetually well born, fed, clothed, lodged, trained, educated, employed, and recreated, locally ad generally governed, and placed to enjoy life in the most rational matter on earth, and to best fit them for whatever change many occur after death."[n.22] ( ... ... ) there are strong parallels between his 19th-century rhetoric and that of a modern Planner such as Jeffrey Sachs (see box) Utopia is making a comeback today.

절박한 필요 ( ... ... )


백인의 의무

로버트 오언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비서구 세계의 문제에 대한 유토피아적 해결책을 선호하는 현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는 서구와 비서구 세계의 역사에서 일관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대외 원조와 군사 개입으로 드러나는 대계획은 18세기부터 이미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식민주의에서 대외 원조로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호의적인 군사 개입에 강조점을 둔다. 물론 서구의 태도와 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빈민들의 이익은 그 시작부터 부자들의 허식에 비해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 백인의 의무는 서구의 자아도취적 공상에서부터 등장했다. 즉 '우리'가 비서구 세계를 구원할 선택 받은 자라는 것이다. 백이은 구(舊) 해리 포러 시리즈에서 주연을 자처했다.
As the example of Robert Owen shows, the fondness for utopian solutions to the Rest's problems is not new─it is a theme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West and the Rest. The Big Plans that would one day become foreign aid and military intervention appeared as early as the 18th century. Most accounts stress an abrupt transition from colonialism to foreign aid and benevolent military intervention, and of course there were major changes in the attitudes and policies of the West. Yet it is instructive also to see the themes that persist. From the beginning, the interests of the poor got little weight compared with the vanity of the rich. The White Man's Burden emerged from the West's self-pleasing fantasy that "we" were the chosen ones to save the Rest. The White Man offered himself the starring role in an ancient regime version of Harry Potter.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비서구 세계를 서구 세계가 자신의 우월적 이상을 새길 수 있는 빈 서판blank slate─의미 있는 역사나 자체 제도를 갖지 않은 상태─으로 보았다. 뷔퐁Comte de Buffon이 기록한 것처럼 "문명이 도래한 것은 ... 유럽인들을 통해서이다. ... 그들의 우월성이라는 정확한 이유 때문에 문명화된 민족은 진화하는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진다." 콩도르세는 말하기를 "이 광대한 땅은 문명화되기 위해 우리의 지원만을 필요로 한다.."[주]30고도 했다.
The Enlightenment saw the Rest as a blank slate─without any meaningful history or institutions of its own─upon which the West could inscribe its superior ideals. As the Comte de Buffon putit, "It is through the European that civilization arrives ... precisely because of their superiority, the civilized peoples are responsible for an evolving world." Marquis de Condorcet said, "These vast lands ... need only assistance from us to become civilized."[n.30]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노예 무역 반대 운동과 같은 유익한 점진적 개혁을 할 때에도 백인들의 오만은 곧 수그러들지 않았다. ( ... ... )

( ... ... ) 제임스 밀James Mill은 1810년에 인도의 "원주민들을 위해" 영국이 "그들을 자신들의 길로 가도록 내벼려 둘 수 없었다."[주]33고 말했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한 1885년의 베를린 회의에서도 ( ... ... ) 서명국들은 "원주민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문명의 축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주]34 모였었다.

( ... ... )

1차 세계 대전 이후 채택된 국제연맹 규약은 "아직 자립할 수 없는 국민들"에게, "이러한 국민들의 복지와 발전은 문명에 대한 신성한 신뢰감을 형성한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들의 보호는 선진국에 위탁되어야만 한다."[주]36 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소수만이 이러한 보호가 대상 종족들에게 "좀 더 원시적인 ... 형식의 착취라기보다는 더 큰 시험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 했다."[주]37
The covenant of the League of Nations adopted WWI promised the "peoples not yet able to stand by themselves" that " the well-being and development of such peoples form a sacred trust of civilization." Therefore, "the tutelage of such peoples should be entrusted to advanced nations."[n.36] Only a few doubters wondered whether such tutelage might be "a greater trial to subject races than a more primitive ... form of exploitation."[n.37]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람들의 언어에서 (그리고 생각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인종적 우월성, 후진적 민족들에 대한 보호, 스스로를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민족에 대한 용어들은 폐기되었다. 대신 자치와 탈식민화decolonization가 보편적 원칙이 되었다. 서구는 낡은 인종적 조어를 새로운 조어와 맞바꾸었다. "문명화되지 않은"은 "저개발"이 되었다. "야만족들"은 "제3세계"가 되었다. 인종주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평등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되었으나, 대신 온정주의와 강박적 기류는 살아남았다. 이 책의 뒷장에서는 오늘날 "국가 건설"에 대한 식믹사적 교훈을 고찰해볼 것이다.
A shift in language (and also in thought) occurred after WWII. Verbiage about racial superiority, the tutelage of backward peoples, and people not ready to rule themselves went into wastebasket. Self-rule and decolonization became universal principles. The West exchanged the old racist coinage for a new currency. "Uncivilized" became "underdeveloped." "Savage peoples" became the "third world." There was a genuine change of heart away from racism and toward respect for equality, but a paternalistic and coercive strain survived. Later chapters of this book will examine the lessons of colonial history for today's "nation-building."

한편, 비서구 세계를 변화시키려 했던 서구의 사업은 해외 원조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해외 원조는 해리 S. 트루먼의 포인트 포 계획Point Four Program(저개발국에게 기술 지원과 경제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계획. 1949년 트루먼 대통령 취임식에서 네 번째 정책 사안으로 발표되어 포인트 포 계획으로 불린다.─옮긴이)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9년 1월 20일의 취임 연설에서 그는 (반세기 뒤의 제프리 삭스와 유엔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예감한 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저개발 지역의 개선과 성장을 위해 대담무쌍한 신계획에 착수해야만 합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소유하였습니다." 트루먼은 과거의 서구화 시도를 마치 파크 애비뉴에서 치러진 결혼식에 참석한 시골뜨기 친척처럼 무시해버렸다. 즉 "역사상 처음으로" 그들은 비서구 세계의 사람들("이러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한 것이다.
( ... ... ) "We must embark on a bold new program for…the improvement and growth of underdeveloped areas. More than half the people of the world are living in conditions approaching misery….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humanity possesses the knowledge and the skill to relieve the suffering of these people." Truman ignored past Westernization attempts as if they were hick relatives at a Park Avenue wedding: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we know how to help the Rest (“these people”).

트루먼은 사업에 착수했다. 곧이어 선교사와 식민 관리의 후임 격인 개발 전문가가 탄생했다. 트루먼 집권 2년 후, 유엔의 전문가 집단은 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 증가"하려면 "매년 약 30억 달러"의 대외 원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60년, 월트 로스토Walt Rostow는 베스트셀러 <경제 성장의 단계>에서 "외부 원조external aid의 경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모두의 고른 성장을 위해 1인당 국민소득이 연간 1.5% 정도 증가하는 것을 목표로 할 때, 약 4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자신들을 위한 이익 추구가 깔려 있다. 로스트는 그의 책의 부체로 '비공산주의자의 선언'이란 말을 붙여놓았다. 서구(제1세계)는 제3세계에 유일한 길One Path을 제공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제2세계)과 경합했다. 서구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보다 자유주의 체제(사유 재산, 자유 시장, 민주주의)하에서 물질적 풍요를 더 잘 이룰 수 있음을 비서구 세계에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때때로 서구의 군대는 비서구 세계가 번영으로 가는 길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냉전은 (테러와의 전쟁이 오늘날 대외 지원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서구의 노력에 영향을 끼쳤다.
( ... ... ) The West strove to convince the Rest that material prosperity was more feasible under freedom (private property, free markets, and democracy) than under communism. Sometimes the West’s military had to make sure the Rest stayed on the path to prosperity. The cold war would influence the Western effort for decades to come (just as the war on terrorism influences foreign assistance today).

로스토는 존 F. 케네디의 (국가안보전략회의─옮긴이) 고문이었다. 케네디는 1961년 말하기를 "현존하는 해외 원조 프로그램과 개념은 대부분 불만족스럽다. ... 우리는 대외 원조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 최후의 날을 바라보면서 향후 몇 십 년간 저개발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는 발전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 ... ... ) John F. Kennedy, who declared in 1961 that “existing foreign aid programs and concepts are largely unsatisfactory…we intend during this coming decade of development to achieve a decisive turnaround in the fate of the less-developed world, looking toward the ultimate day…when foreign aid will no longer be needed.”

이러한 개혁 운동을 실행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알파벳 약자로 지칭되는 여러 기구가 생겨났다. IMF, 세계은행, 미국구제개발처USAID, 영국 국제개발부DFID, 미주개발은행ID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아시아개발은행ADB,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보건기구WHO, 식량농업기구FAO, 국제노동기구ILO, 유엔아동기금UNICEF를 비롯해 다수가 생겨났다.

( ... ... )

한편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 분야가 고안되기도 했다. 폴란트 태생의 경제학자인 폴 로젠 스타인-로단은 1940년대에 제3세계를 제1세계로 편입시키는 "빅 푸시"를 촉구했다. 한편 정치학, 사회학 미 기타 많은 분야의 학자들은 빈국의 "개발"에 대해 연구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우에 노벨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은 1956년에 빈곤에 대한 해답은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저개발 국가는 반드시 ... 선진국들의 격려와 축하의 박수 속에서 ... 국가의 전면적 통합 계획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현재 공통적으로 합의된 것이다." 뮈르달은 이러한 계획을 옹호하는 데에서 지금까지도 반향을 일으키는 극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영웅적 시도에 대한 대안은 경제적 및 문화적 침체 또는 후퇴를 계속 묵인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강조는 원저자)."[주]38 그의 말에 기독교식으로 "아멘"할 수는 있지만 그 영웅적 계획은 경제 침체를 종식시키거나 더 단순한 필요를 처리하기 위한 잠재성 실현에도 실패했다.
( ... ) Gunnar Myrdal said in 1956 that the answer to poverty was a plan: “It is now commonly agreed that an underdeveloped country should have…an overall integrated national plan…under the encouraging and congratulating applause of the advanced countries.” Myrdal used dramatic language in favor of such plans, language that echoes today’s (italics in original): “The alternative to making the heroic attempt is continued acquiescence in economic and cultural stagnation or regression which is politically impossible in the world of today.”[n.38] Amen to that, except that the heroic plan failed to end economic stagnation or even to realize its potential to address simpler needs.

빈민은 스스로 돕는다

( ... ... )

계획가들에 대해 가장 화가 나는 일은 (대부분 무의식 중에) 그들이 선심 쓰는 척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 ... ... )
The most infuriating thing about the Planners is how patronizing they are (usually unconsciously) [ ... ... ]

( ... ... )

( ... ... ) 우리는 이 책에서 그들[서구인]의 은인인 체하는 사고방식을 버린다면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변화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즉 원조와 IMF 차관에 붙은 조건의 폐기에서부터 군사 개입의 종식, 그리고 나쁜 정부의 응석을 받아주기보다는 개개인의 기회를 증대시킬 수 있는 적합한 장려금 지급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We will see in the rest of the book the refreshing changes that can happen once the patronizing mind-set is abandoned—from ending conditions placed on aid and IMF loans, to ending military interventions, to giving matching grants that increase the opportunities of individuals rather than coddle bad governments.

세계의 빈민들은 서구가 그들을 구해줄 때까지 소득적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서구의 도움을 그렇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빈민들은 그들 스스로가 최고의 탐색가들이다. 서구의 계획ㄱ가들이 모든 빈국을 위한 대외 원조를 500억 달러로 증가시킬지 여부를 논의하는 동안 두 거대 빈국─중국과 인도─의 국민들은 그들 스스로 매년 7150억 달러씩의 소득 증대를 이루어내고 있었다.[주]41  4인방─홍콩, 한국, 싱가포르, 대만─은 지난 40여 년간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동했다. 중국, 인도와 4인방은 그들의 수입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서구의 지원 없이도, 자국 정부의 노력으로, 서구가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피드백과 책임의 이상적 수단인) 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분산된 기관들의 노력을 통해 제1세계로 이동을 이뤄냈다. 원조액이 소득의 1%로 원조 수령액 측면에서는 최하위에서 네 번째인 개발 도상국들은 건전한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 국가들은 지난 40여 년 도안 연간 2.5배의 소득 증가를 맛보았다.
( ... ... ) China, India, and the Gang of Four did this through the efforts of many decentralized agents participating in markets (the ideal vehicle for feedback and accountability) without significant Western assistance as a share of their income, with some efforts by their own governments (at their own top), and without the West telling them what to do. The developing countries that are in the bottom fourth in terms of aid receipts as a percent of their income have had no trouble achieving healthy growth rates, seeing a 2.5-fold increase in income over the last four decades.
토착 개발homegrown development은 세계 여러 지역의 빈곤과 정치적 혼란이 보여주듯이 늘 잘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 ... ... )

빈민들은 계획가들이 빈민들을 위해서 이루어낸 업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미 스스로 이루어냈다. 이에 대해서는 '토착 개발'에 대한 장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만일 서구 세계가 원조 기관에 있는 탐색가들과 에테네시 아옐레와 같은 현지인들에게 좀 더 의존했다면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훨씬 더 많이 덜어줄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세계는 비서구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서구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복잡한 사회들을 또 다른 이미지의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 빈민들이 서구에서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합한 시점에 빌려 와 자신들이 스스로 탐색가들이 되도록 하는 데 빈민을 위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 ... ... ) Although the West could help alleviate more of the poor’s sufferings if it relied more on Searchers in aid agencies and those on the ground such as Etenesh Ayele, the West cannot transform the Rest. It is a fantasy to think that the West can change complex societies with very different histories and cultures into some image of itself. The main hope for the poor is for them to be their own Searchers, borrowing ideas and technology from the West when it suits them to do so.

우리는 주로 하나로 뭉뚱그려지던 두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서구의 원조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비서구 세계에서의 번영이 얼마나 더 지속되겠는가? 이 책은 서구의 원조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 외에는 첫 번째 질문을 위한 책이다.
We have to separate two questions that are usually lumped together: What can Western aid do? How can long-run prosperity be achieved in the Rest? This book is only about question one, except to argue that Western aid is not the answer to question two.

두 번째 질문 역시 제기할 가치가 있다! 이는 계속 연구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모색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분야가 될 것이다. '번영을 누리기 위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큰 질문에 대답할 여유가 없는 독자들을 위해 과거 50여 년간의 연구로도 간단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겨 한다. 만약 이에 대한 간단한 해답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개발 성공 신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대질문Big Question의 특정 부분에 대한 수많은 작은 해답들이 있어 왔고,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더욱 많은 진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통해서가 아니다. ( ... ... )
( ... ... ) For readers understandably impatient to answer the Big Question of “What can we do now to achieve prosperity?” let’s just note that the previous fifty years of research
have not yielded any simple answers. If there were such simple answers, there would be many more development success stories than there are now. There have been many little answers to particular parts of the Big Question, and further progress is likely to continue in the same way—not through a frontal assault on the Big Question. ( ... ... )

보기 드문 성공 신화로 1960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동아시아가 아니라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이다. ( ... ... ) 더욱이 빈국으로서 보기 드문 사실은 보츠와나가 민주주의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전진

( ... ... )
( ... ... )
( ... ... ) 유일한 대계획은 대계획을 중지하는 데 있다. 유일한 대해답은 대해답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 ... ...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