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9일 일요일

[발췌: 아마티아 센, 자유로서의 발전] 옮긴이의 말(김원기)

출처: 《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아 센(지음)/김원기(옮김)/유종일(감수·해제). 갈라파고스(2013)

※ 발췌:

옮긴이의 말

김원기 지음

( ... ... ) 센은 단순히 빈곤과 재분배만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인간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빈곤과 성장의 문제도 다루었는데,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저서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다행히도 아마티야 센의 저서들 상당수가 번역되어 있다. 『불평등의 재검토』 『윤리학과 경제학』 『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야 센, 살아 있는 인도』 외에도 논문 모음집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이 있다.

그의 많은 저서들 중 이 책 『자유로서의 발전』은 흔히 경제의 (양적) 성장, 말하자면 GNP 혹은 GDP의 성장을 경제발전과 동일시하는 관점에 집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세계은행 총재 초빙 강연의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발전이란 결국 다양한 실질적 자유의 확장'이라는 명쾌한 명제가 가진 다양한 함의를 탐구한 명저다.

센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입장에서 더욱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 독립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높은 수준으로 성취한 전무후무한 나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른바 '개발독재'라는 어두운 시기가 있었고, 이 시기의 독재권력과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발전경제학 전체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센은 한국을 종종 언급하지만, 주로 다루는 것은 자신에게 친숙한 인도의 사례이며 한국의 경우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의 논의를 한국의 사례에 적용해보고,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우리 독자들의 몫이겠다.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독재와 발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센이 말하는 것처럼 '다양한 자유들과 권리들'의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센이 자유라는 개념을 매우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때, 독재 혹은 권위주의 시대라고 하더라고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 외에 다양한 자유가 실질적으로 신장되었고, 그거싱 경제성장과 상승효과를 가져왔다고 (그러니 센의 관점에서 볼 때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독재와 부정부패가 판을 쳤던 이승만 대통령 치하에서도 교육과 언론의 자유는 점점 확장되었는데, 그것이 4·19로 이어진 시민의 역량을 배양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는 (유신 시대의) 정치적 자유를 담보로 한 중공업 육성책으로 이어졌지만 당시 교육, 복지, 의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결국 1980년의 봄과 1987년 6월을 거쳐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킨 저력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독재의 억압과 자유의 증대 사이에는 이렇게 단순하지 앟은 인과가 숨어 있다.

( ... ... )

참고로 지금까지 모두 '자유'라고 옮겨진 liberty와 freedom의 구별에 대해서 부언해야겠다. 이 두 단어는 우리말로는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번역에 어려움을 겪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센은 liberty와 freedom을 의식적으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political liberty제약이 사라진 (형식적인) 상태를 의미하고, political freedom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의미한다. 두 단어가 함께 나오거나 꼭 구별을 해야 할 곳에서만이라도 문맥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전자를 '무제약'으로, 후자를 '자유'로 옮기려고 애썼다.

2013년 10월
김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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