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9일 일요일

[발췌: 아마티아 센, 자유로서의 발전] 해제: 아마티야 센, 경제학의 양심(유종일)

출처: 《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아 센(지음)/김원기(옮김)/유종일(감수·해제). 갈라파고스(2013)


※ 발췌:

* * *

아마티야 센, 경제학의 양심 [주]1

유종일 지음


( ... ... ) 내가 한국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센 교수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열린 어떤 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라면서 북한 대표가 강력히 항의하는 바람에 발표문을 고쳐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학술대회 발표문도 사전에 검열하고 통제했던가 보다. 당시 세계 경제발전학회 회장이었던 센은 발표문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발전의 성과를 평가하였는데, 경제성장을 한 축으로 하고 소득분배나 교육, 건강 등 삶의 질의 개선 등을 포괄하는 사회발전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평가하면서 두 가지를 다 잘 한 나라의 예로 한국을 적시했다가 결국 발표문에서 한국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볍게 웃어넘기라고 들려준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당황했다. 나는 한국경제는 모순덩어리고 박정희 체제하의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은 민중의 희생 위에 쌓아놓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한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싱을 모르고 경제성장도 사회발전도 모두 잘한 나라라고 보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고 항의했더니 센 교수는 "그러냐, 사실 난 잘 모른다. 그런데 통계를 보니까 실질임금도 많이 올랐고, 평균수명이나 건강상태도 만힝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이것만 보고 그랬는데, 그럼 이 통계들은 다 틀린 거냐?" 매우 겸솜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대응했다. 난 일순간 당황했지만, 폐병에 걸리고도 공장에서 해고될까봐 병을 숨기고 다니던 한 여공을 떠올리며 "그따위 통계 다 엉터리다"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말았다. 마마도 센 교수에게 내 꼬락서니는 베이징에서 항의하던 북한대표와 별로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제3세계의 현실을 폭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인식하게 되었도, 한국에서 일어난 경제발전의 진보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센의 지도교수였던 로신슨Joan Robinson의 유명한 표현을 빌자면, 착취도 당하지 못하는 비참함은 착취당하는 비참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센의 시작에도 문제는 있어 보였다. 아무리 결과가 비교적 괜찮았다고 하더라도 박정희 정권 아해서 있었던 독재와 인권유린과 노동탄압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년 후 센이 드레즈Jean Drèze와 함께 기아와 공공정책에 관한 책을 집필할 때,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한 저항과 투쟁이 박 정권의 타락을 막고 어느 정도의 진보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논점은 누구보다 천박한 결과주의를 뛰어넘고자 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깊은 성찰을 유지해온 센이 흔쾌히 인정하고 책에 반영해주었다.[자료]7

( ... ... ) 1998년, 출범한 지 얼마 안 되는 김대중 정부가 한편으로는 외환위기와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확립하고자 해쓰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주제하에 국제회의를 세계은행과 공동주최해서 열기로 했다. KDI가 그 준비를 맡았는데 우연히 매우 보수적인 인사들이 초청대상으로 되어 있는 초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이건 안 되고 이러이러한 분들을 초청해야 한다고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어 국제회의 준비에 간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주제강연을 센 교수에게 부탁해서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그렌데 그해 가을 노벨경제학상으로 받고 극도로 바빠진 그가 1999년 1월에 예정된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친서를 포함하여 만방으로 노력한 끝에 결국 오게 되었다.[주]2 국제회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때 강연주제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였다.[자료]11 사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이 두 가지는 센이 평생을 두고 고민하고 성찰해온 핵심적 연구주제였다.


2.

센은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 ... ) 박사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불과 23세에 자다브푸르 대학의 교수가 외어 경제학과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런던 정경대학, 옥스퍼드, 하버드, 케임브리지에서 차례로 교수직을 역임했고, 2004년부터는 다시 하버드에 재직 중이다. 센은 사회선택이론, 후생경제학,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고, 도덕철학이나 정치철학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 ... ) 센은 오늘날 경제학계에서 보기 드문 르네상스형 지식인이다. ( ... )

센이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인도에서는 그를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라고 부런다. 그의 경제학이 가난한자들의 문제를 항상 중심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은 자신은 마더 테레사와 같은 자기희생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더 테레사라는 비유를 거부한다. 그러니 그를 '경제학의 양심'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노벨상위원회는 센이 "경제학과 철학의 도구들을 활용하여 핵심적 경제문제들에 관한 논의에 윤리적 고려를 복원하였다'고 수상자 발표문에서 말한다.

1933년 벵골에서 태어난 센은 아홉 살 때 벵골 기근을 경험한다. 기근이 하층계급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을 보았꼬, 40일을 먹지 못했다는 한 걸인과의 대화는 센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 )

사회정의와 평등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진 센은 캘커타의 명문 프레지던시 칼리지Presidency College에 다닐 당시 대학을 휩쓸던 좌파 정치운동에 대해 강한 동지의식을 느끼면서도 또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민주적 절차와 다원주의 같은 것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치부하며 당 중앙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풍토는 그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 ... ) 그리고 종교분쟁을 보면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센의 정치적 성향은 평생 좌파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자유주의적 취향은 고이 간직했다. 그가 사회선택론에 깊은 흥미를 느낀 것도 정치과정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바탕이 되었다.

센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이른바 자본논쟁을 둘러싸고 케인스주의적 좌파와 신고전파 사이에 치열한 대결이 벌어졌다. 센은 마르크스주의자인 돕Maurice Dobb의 아이디어를 살려서 개발도상국에서의 기술선택 문제를 학위논문의 주제로 삼았지만 분파적 논쟁을 멀리 했다. 센은 이때부터 좌파적 관심을 가지면서도 주류 이론을 배척하지 않았고, 신고전파 경제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방법론을 수용하여 내저적 비판을 전개했다. ( ... )

센의 학문적 성과는 세밀한 경제이론 탐구와 심중한 경제현실 연구를 포괄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결코 상아탑의 논쟁 속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의 근본적 의미,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등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집요하게 추구했다는 점이다. ( ... ) 그는 항상 주류사회가 무시하기 어려운 학문적 권위와 엄밀한 논리에 기초하여 주장을 전개하며, 열정적인 대결의 언어보다는 차분한 설득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영향력을 더했다. 그는 2011년 환경보전과 지구적 차원의 분배정의 실현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한 '스톡홀름 메모랜덤'에 서명한 2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3.

센이 초창기에 가장 역점을 두고 연구한 분야는 사회선택론이다. 사회선택론은 사람들의 선호와 견해가 서로 다를 때 집단적 선택의 규칙을 다루는 분야로서 1950년대 초 애로우Kenneth Arrow의 그 유명한 불가능성 정리가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되어 있었다. 센은 이와 관련하여 다수결의 문제, 개인의 권리, 개인 간 효용수준의 비교 등의 주제로 주목받는 연구논문들을 발표했다.[자료]1 
  • 특히 개인의 권리와 관련해서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입장만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경제학이 신성시하는 파레토 효율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 나아가 애로우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어떠한 집단적 선택의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 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인 간 효용 혹은 후생수준은 비교 불가능하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전통적 가정을 공격한다. 이 가정을 받아들이면 불평등에 관해서 제대로 논의할 수 없을뿐더러 집단적 선택 혹은 사회적 평가의 룰을 도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선택론에 대한 센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개인 간 효용의 비교 가능성을 전제로 하면 불가능성 정리를 극복하고 일관성 있는 집단적 선택의 룰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예를 들어 집단적 선택을 위한 사회적 후생의 평가에서 흔히 활용되는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혹은 '각 개인 효용의 총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개인 간 효용수준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음을 가정해야만 성립한다. 반면에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은 사회적 후생을 그 사회에서 가장 후생수준이 낮은 개인의 후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자료]18 이러한 기준은 모든 개인의 효용수준을 비교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 센은 공리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각 개인의 효용의 총합만을 따지는 것은 분배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주]3
  • 나아가 센은 개인의 생활수준이나 사회현실을 평가하는 데 효용utility 혹은 후생welfare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 효용이라는 게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효용에 관한 정보를 얻기고 어렵고 개인 간 비교의 난점도 있거니와, 설사 그러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효용은 사회적 평가의 좋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생경제학에 대한 센의 가장 독특한 공헌은 평가의 기준으로서 효용, 소득 또는 상품 등을 넘어서서 건강이나 수명, 교육수준, 정치적 자유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할 것을 주장하고 그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 센은 개인의 역량capability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역량이란 한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기능functioning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정의된다.[자료]5 예를 들어 자전거라는 물건은 교통수단으로서의 틍성이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일정한 이동 기능을 달성할 수 있는 바, 자신의 판단에 딸 이러한 기능을 달성할지 안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량이다. 따라서 음식이 없어서 굶는 경우와 종교적 실천으로 금식하는 경우 결과는 같지만 역량은 다르다. 역량접근법의 장점은 객관적 정보에 기초해서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량접근법을 취하면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개념을 통합할 수도 있다. 역량이라는 면에서 빈곤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그러한 빈곤선을 가능하게 하는 상품묶음은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이 된다. 예를 들어 '남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 갖추기'라는 사회적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상품묶음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매우 다를 것이다.[자료]9

이렇게 센이 역량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이론을 위한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후생 혹은 소득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을 때 가난한 나라드릐 과제는 경제성장이 최우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센은 사람들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곧 자유의 확장이고 이것이 바로 경제발전의 요체라고 설파한다.[자료]10 그리고 기대수명이나 문자해독력literacy 등 역량 측정 변수들을 직접 살펴보는 방법에 의해 매우 다른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 센이 자주 거론하는 예가 있는데 케랄라 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인데도 다른 주에 비해 이렇게 측정된 사회적 상취가 훨씬 높고,
  • 중국이나 스리랑카의 경우 유사한 소득수준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높은 사회적 진보를 이룩했다.
  • 또 영국에서 20세기에 기대수명이 증가한 것을 연대별로 분석한 결과 경제성장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기간에 기대수명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센은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사회정책이 강력나라들이나 사회정책이 확대된 시기의 성과를 뚜렷이 부각함으로써 공공정책의 중요성을 지적하고자 했다.[주]4 즉 가난한 나라도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높아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공공정책에 의해 삶의 질을 급격하게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울하크Mahbub Ul-haq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센을 설득하여 작업한 결과가 오늘날 발전에 관한 국제비교의 가장 권위 있는 척도로 여겨지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다. HDI는 역량접근법의 현실적용 사례라 할 수 있다.

불평등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센은 소득불평등도의 측정에 관해서도 많은 공헌을 했고, 한 국가의 실질적 소득수준을 소득×(1-G)로 평가해야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주]5 불평등 문제에 대한 센의 관심은 이른바 '사라진 여성'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자료]8 중국, 인도,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에서 매년 수백만의 여성이 사회적 파별로 조기에 죽어가고, 그에 따라 인구 구성에서 남여의 성비가 자연적 비율ㅇ 비해 여성이 부족하게 나타난다는 그의 지적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  ... ) 센은 기근이 식량부족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과거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식량 생산이 줄어들지 않더라도 불평등한 사회구조 때문에 특정한 처지의 사람들이 식량 '획득권한entitlement'을 잃게 되면 기근이 일어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자료]4 센의 영향으로 인해 기근에 대응하는 정책에서도 단순히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 것보다는 공공근로사업 등을 통해서 소득보전을 하도록 해주는 등 식량획득권 확보를 도와주는 접근법이 유행하게 되었다. 센은 또한 20세기에 들어선 후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고 하더라고 민주주의 국가인 경우에 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는 기근이 그만큼 방지하기 쉬운 것이며 민주주의하에서는 기근을 방지할 강력한 정치적 인센티브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 ... ) 한 인터뷰에서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민주주의의 등장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센은 민주주의를 중시한다.[자료]23 민주주의는 기근을 방지한다는 데서도 보이듯이 정부로 하여금 민중의 소리를 어느 정도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하는 도구적 기능이 있을뿐더러, 정치적 자유는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인 정치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역량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가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시민들이 서로 배우면서 지적 및 윤리적 발전을 이루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건설적 혹은 구성적constitutive 역할을 한다고 본다.[자료]11

따라서 민주주의는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기회와 더불어 경제발전의 기본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센이 민주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한 인도에 기근이 없었고 공산당이 장악한 중국에 대기그니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도에 온존하는 만성적 빈곤과 문맹을 비롯한 사회적 차별을 사회주의 중국은 급격하게 퇴치해나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지적한다.[자료]14 센은 인도의 경우 토지개혁 등 필요한 개혁조치까지 이를 수 있으려면 민주주의의 작동과 관련한 다양한 제도의 기능이 강화되어 민주주의가 심화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특히 센이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건설적 역할, 즉 공론을 통해서 시민들의 가치형성에 기여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개혁개방 이후에 경제성장이 매우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평균수명의 연장은 매우 더딘 것을 지적하면서 이를 민주주의 결여에서 오는 한 단점으로 파악한다.


4.

센은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는 도덕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후생경제학과 사회선택론 분야의 연구성과를 기초로 사회적 평가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개입하였다. 주로 롤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라는 관념Idea of Justice』은 이러한 성과를 집대성하고 있다.[자료]17

센의 정의론이 강조하는 바는 '완전한 정의'라는 개념적으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현실에서 실현하기는 더욱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잣대에 입각해서 명백한 부정의를 제거하고 극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롤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추상적인 논리에 입각해서 정의로운 사회의 모형을 정치한 수학공식으로 도출하려고 한 노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센이 보기에 그런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센은 '완전한 정의'의 기준이 없이도 사회적 결과를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다는 것, 즉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여전히 평가의 기준이 필요한데, 이를 뛰어난 철학자의 완벽한 공식에서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이고 오히려 대중이 참여하는 공론의 역할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자 센의 입장이다. 기본적인 정의의 기준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세계는 기아와 빈곤, 억압과 폭정, 다양한 종류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명백한 부정의가 넘쳐나고 있으며 이런 문제에 대한 분노를 촉구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센의 정의론에 매우 깊게 공감한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반면,[자료 23] 센의 정의론이 거의 소개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샌델 또한 센과 마찬가지로 하버드대 철학과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하는 롤스의 제자인데, 내가 보기에 그는 뛰어난 선생이기는하지만 학문적 성취 면에서는 센과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센의 『정의라는 관념』을 읽기 전에 샌델의 저서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서평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나와 센의 관점이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자료]24  참고로 나의 서평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대사회,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정의의 문제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합의가 어려워서 발생하는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 ... ... )

문제는 도덕적 딜레마와는 무관할뿐더러 심각한 불의가 이러한 고상한 논의의 장막에 가려져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샌델이 제시한 도덕적 딜레마 하나를 보자. 정보당국이 시한폭탄을 설치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으려고 하는 테어 용의자를 검거했다. 용의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시한폭탄의 시계는 째깍째깍 가고 있다. 많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용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그나 혹은 그가 사랑하는 딸을 고문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현실에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면서 한결 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재산을 빼앗는다고 하자. 거짓으로 구실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약탈적 대출과 위험성을 숨긴 난해한 파생상품 판매로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여기에 찬반논란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필자는 미국사회에서 정의를 논하면서 소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공권력의 행사가 왜곡되어 명백한 불의가 행해지고 있으며 더구나 이것이 매우 구조적으로 공공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현란한 지적 논의의 장막 뒤에서 거대한 불의의 구조가 온존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 ... ... )

도덕과 정의의 문제에 무슨 수학 문제처럼 유일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인정된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정의와 불의의 기준은 존재한다. 딜레마를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더욱 공고한 기준에 입각해서 불의한 사회구조를 분석하고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상상하는 작업을 좀 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현실의 문제가 단지 예화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분석되는 정의론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필자는 우리나라의 정책논의와 관련하여 센의 정의론이 시사하는 바를 지적하기도 했다.[자료 25]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복지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각에서 복지보다 정의가 우선이며, 복지 이전에 시장과 사회의 불공정을 개선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정의우선론이 가진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 정책구상의 차원에서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싱 나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완전한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 ... ) 따라서 정의실현부터 먼저하고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그보다는 복지확대를 하면서 끊임없이 정의를 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센이 완벽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제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보다는 삶의 현실 또는 사회적 결과에 더 관심을 갖자고 주장하는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센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며, 그의 지적 영웅은 애덤 스미스다. 그러나 센의 자유주의는 강한 사회적 관심과 평등지향을 수반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이고, 그는 스미스의 이론 사상이 자유방임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로 곡해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흔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스미스만을 생각하지만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철학자였다. 센 또한 궁극적으로 도덕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 ... )  『국부론』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이기적 동기에서 영위하는 개인의 경제활동들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조정되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했지만, 『도덕감정론』에서는 이기심과 더불어 동정심sympathy 또한 인간의 근본적 동기임을 인식한다. 센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원칙의 고수commitment가 또 하나의 동기임을 주장하였다.[자료 3] 그리고 동정심이나 이타심은 효용함수에 타인의 효용을 한 변수로 집어넣음으로써 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용극대화 가설에 통합할 수 있으나, 원칙 때문에 명백하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는 도저히 효용극대화론의 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센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 즉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은 도저히 사회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합리적 바보'라고 풍자하면서 이러한 인간상으로 전제로 구축된 신고전파 이론을 비판하였다.

( ... ... )

센은 일부 진보적 이론가들이 시장의 자유에 반대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적절한 정부규제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며 스미스자 자유방임주의나 자유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도잇에 스미스가 권력과 유착하고 경쟁을 억제하려는 자본가들이야말로 시장의 적이라고 본 사실을 또한 부각시켰다. 센을 시장을 반대하는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 사실은 특권적 자본가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비난한다.[주]5

물론 센은 시장의 순기능과 버둘어 그 한계 또한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는 결코 시장만능주의자나 세계화예찬론자가 아니다. 특히 빈곤으로 인하여 건강과 교육과 최소한의 자본도 결여된 경우나 사회적 차별로 인하여 경제적 기회가 박탈된 경우 시장의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세계화에 대한 센의 비판도 기초교육이나 의료, 양성평등, 토지개혁 등 보완적인 정책의 결여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대만큼 큰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제 집중된다.[자료]12 시장경제 한다고, 세계화 한다고 무조건 발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은 다양한 사회제도들 중 하나일 뿐이며, 다른 제도들의 발달도 시장 못지않게 중요한데 특히 민주주의 발달이 중요하다고 본다.[주]6

시장경제나 민주주의에 대한 센의 견해는 그의 자유주의적 신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가 이 책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체계적으로 주장하듯이 그에게는 개인의 자유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가치다.[자료]10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시장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한다. 시장의 자유가 단지 효율적 자원배분이나 경제성장을 가져다준다는 도구적 역할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로서 귀중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단 이 자유freedom는 단순히 행동이 구속받지 않는 무제약liberty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하며, 따라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자유란 사회현실의 토대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센의 자유는 형식적 자유가 아닌 실질적 자유이며, 그는 모든 이가 가급적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는 사회정의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나는 센의 자유주의를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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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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