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함과 현실 적합성
워런 베니스(Warren G. Bennis)
다음 역서의 서문을 발췌:
아무리 봐도 피터 드러커를 대신할 만한 사람은 없다. 드러커 같은 사람은 없었고, 드러커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그만의 전형으로 살았다. 그 전형의 모습이란 대단한 능력,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자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숙달의 경지다. 이따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를 보고 그가 있다는 게 복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우리들이 보기에 드러커의 미덕은 언젠가 뉴턴이 말했던 그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우리 난장이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멀리 볼 수 있는 큰 복을 받았다.”
드러커와 인연을 맺은 지는 꽤 오래됐다.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 더글러스 맥그레거Douglas McGregor가 나를 드러커에게 소개해줬다. 내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막 마치고 맥그레거의 주선으로 드러커를 만난 뒤부터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내가 캘리포니아 남부로 거처를 옮긴 것은 1980년의 일인데, 그때 드러커와 그의 아내 도리스는 클레어몬트에서 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로 간 직후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드러커가 나를 불렀는데, 그날 오후 그 집 수영장 곁에서 보내다가 드러커 부부와 저녁을 나누기도 했다.
내 느낌에는 드러커가 꼭 형제 같아서 그와 같이 보낸 나날은 늘 재미있었다. 어언 20여 년을 같이 지내다보니 꼭 큰형 같은 느낌이어서 기회가 날 때마다 형제사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드러커에게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부드럽게 답하려는 태도였지만 딱 잘라 말하는 답을 들으면 항상 야릇했다. 드러커의 대답은 이런 식이었다. “음... 워런, 그렇지는 않아.” 드러커는 늘 내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다.
이 책 《매니지먼트 사례집》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경영학 교육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지금 놀랄 만큼 흥미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경영학(특히 경영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가르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지켜보노라면 그러한 생각이 든다. 수많은 논문이 쏟아지고 있고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거반이 현실과 별 관련이 없다. 경영학 교육의 번창을 생각해보라. 지난 5년만 따져보아도 124 퍼센트나 성장했다. 당연히 학교가 커지고 많아졌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195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학 박사과정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이때 그 유명한 포드재단 보고서가 나왔고, 이 보고서로 인해 여러 경영대학원의 사정이 확 바뀌었다. 포드재단이란 곳에서 보고서를 냈다는 사실에 더하여 큰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돈 덕분에 경영대학원 여러 곳이 새로 생겼다.
내가 경영학 교육에 몸담은 지는 꽤 오래됐다. 그동안 엄밀함과 현실 적합성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었다. 법과대학원이든 경영대학원이든 의과대학원이든, 모든 전문교육기관은 현업 실무자와 연구자 간의 긴장을 다룬다. 이 쌍방의 긴장에서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것이 나올 수 있다.
이 문제는 꽤 오래된 해묵은 문제다. 한참 전인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의 일이 생각난다. 연구자 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는데 하버드경영대학원에 아주 유명한 경영학 교수 한 분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하워드 라이파Howard Raiffa가 그인데, 경영학뿐 아니라 수학과 통계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당시 라이파는 인기 절정이었고 오라는 데도 많았다. 의사결정모델이 그의 연구 분야이고, 라이파 의사결정모델Raiffa Decision Model로 유명한 분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는 스탠포드대학교로부터 매우 매력적인 제의를 받고, 하버드경영대학원 학장을 찾아가 말했다. “스탠포드로부터 어마어마한 제의가 왔습니다. 도무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군요.” 학장을 맡고 있던 조지 베이커George Baker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하워드, 의사결정모델을 많이 만들었잖소. 그걸 당신 사례에 적용해보면 되지 않겠소?” 하워드의 답은 이랬다. “물론 그렇겠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예요!” 이 일화에서도 드러나듯이, 학문에서 엄밀함과 현실 적합성 사이의 긴장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과업, 책임, 실무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는 경영학 교육의 엄밀함을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현실 적합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금 새로 편집해 펴내는 《매니지먼트 사례집Management Cases》은 현실 적합성을 엄밀함에 더 근접시킨다는 점에서 앞의 교과서 《매니지먼트 개정판》을 보완한다. 이제 개정판으로 다시 세상에 나온 《매니지먼트 개정판》과 《매니지먼트 사례집》 이 두 권은 21세기를 맞은 학생과 경영자들이 엄밀함과 현실 적합성의 긴장을 풀어가는 데 훌륭히 쓰일 것이다.
워런 베니스Warren G. Bennis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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