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찰스 폰지: 그 유명한 폰지 수법의 원조


찰스 폰지가 월스트리트 최초의 전과자는 아니었다고 보지만, 가장 큰 성과를 기록한 사례였다. 일확천금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대단한 비책이 속임수로 드러나자, 세상은 그의 이름을 “사기”의 동의어 반열에 올려줬다! 그는 수백 명의 투자자들에게서 수백 만 달러를 가로챘는데, 그 방법은 이 사람의 돈으로 저 사람의 이자를 주는 수법으로 예탁금을 불려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을 사취하는 방식이었다. 요즈음도 종종 되풀이되는 이 사기 수법은 그래서 “폰지 수법Ponzi Scheme”으로 불린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폰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어느 부류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가장 특이한 배경에서 성장했다. 저자가 보증한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폰지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42세에 금융에 뛰어들기로 마음먹기까지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 막노동에서부터 점원과 과일 행상뿐 아니라, 밀수에도 가담했으며, 식당 점원으로도 일했었다. 152의 작은 키에 제 잘난 맛에 사는 스타일이었던 폰지는 괜찮은 외모에 날씬한 체구로 단정했으며, 당당하고 순발력 있는 재치가 뛰어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가 그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자 매력 포인트였다.

1920년대 초에 그가 벌였던 사기는 “구식민지 외국환 회사Old Colony Foreign Exchange Company”라는 곳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50 달러를 들여서 45일에 50 퍼센트, 90일에 100 퍼센트의 이자를 지불해준다는 광고를 냈다. 폰지의 시점 선택은 아주 잘 들어맞았다. 때는 바야흐로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미국에서 재즈 음악과 찰스턴 춤이 대유행하던 시대)가 막 시작할 때였다. 그 무렵 사람들은 약간의 여윳돈을 손에 쥐고서 무언가 좋은 기회만 있다면 기꺼이 뛰어들 자세였다. 대단한 영업력을 타고난 폰지는 장황한 말재간으로 그의 사업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확실한 돈벌이처럼 들리도록 꾸며댔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이자를 지불해주겠다고 하면서, 우표와 교환이 가능한 국제우편연합International Postal Union의 쿠폰을 해외에서 매입하는 게 그 비법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 그 쿠폰을 통화가 고평가돼있는 나라의 우표로 교환해서 다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국제적인 우표 교환과 외환거래를 활용하는 일종의 차익거래로 그럴 듯하게 꾸며댔다.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들고 폰지를 찾아왔다. 증권 브로커와 그 보조인들도 그에게 돈을 맡겼고, 미망인들과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들도 돈을 들고 달려왔다. 처음에는 돈이 띄엄띄엄 들어왔지만, 신문들이 이 사실을 취재해 금융의 귀재가 나타났다는 홍보까지 해주자 뭉칫돈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현금이 폰지의 조그만 보스턴 사무실 책상서랍 속에 수북이 쌓이다가, 이내 1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 매주 들어왔다! 끊어준 영수증이 휴지통 꼭대기까지 차오르더니, 사무실 바닥을 발목 높이까지 덮었다! 현금이 쉴 새 없이 밀려들다 보니, 안달하는 투자자들에게 그 비싼 이자를 지급해주고도 남을 만큼 현금이 남아돌았다.

폰지 수법이 돌아가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현금 유입이었다. 즉 예탁금이 많아질수록 그가 갚아야 할 채무도 늘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현금 유입이 필요했다. 그는 결국 초기 투자자들에게 지불할 이자를 그 다음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지불했고, 또 나중에 합류한 이 투자자들에게 지불할 이자는 다시 그 다음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지불하는 식으로 해결했다. 어쨌든 돈이 계속 유입되는 한, 그는 약속한 금액을 계속 지불했고, 그렇게 자금조달의 순환은 계속 이어졌다. (중략...)

사람들이 “당신은 내가 본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인입니다!”라고 합창하면서 구름처럼 폰지에게 몰려들 때, 보스턴 지방검철청과 《보스턴 포스트Boston Post》지가 각각 은밀히 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폰지의 말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가 1920년 한여름이었는데 폰지가 이 일을 벌인 지 서너 달 뒤였다. 국제우편연합이 매년 찍는 쿠폰은 보통 75,000 달러어치에 불과하고, 그 한 해 전인 1919년에는 56,000 달러어치밖에 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폰지는 이미 수백 만 달러를 받았다. 발행되지도 않은 국제우편연합의 쿠폰에 수백 만 달러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종말을 재촉한 그 다음 계기로, 13년 전에 그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가명으로 송금사기 사건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보스턴 포스트》에 밝혀졌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폰지의 “투자자들” 사이에 공황 상태가 촉발될 수도 있었는데, (중략...)

(... 중략) 어수룩한 탐욕을 등쳐먹는 폰지와 그의 아류들은 주식시장에 내려오는 다음 속담을 사회에 되풀이해서 가르쳐준다. “황소bulls(강세장)는 돈을 번다. 곰bears(약세장)도 돈을 번다. 그러나 돼지pigs(탐욕장)는 도살된다!”


출처: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Charles Ponzi: The Ponzi Scheme", Chapter 7. Crooks, Scandals, and Scalawags. Kenneth L. Fisher, One Hundred Minds That Made the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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