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8일 목요일

Re: Re: 환원론과 유물론은 전혀 다른 동네에 있다



메모: 

☞ 환원론이 유물론과 비슷한 동네에 있다는 가정???

답변===> 환원reduction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유물론이란? 환원론과 유물론은 과연 비슷한 동네에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짧은 글로 답하기 어렵다. 환원과 유물론의 개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백팔십도 다른 답변이 여러 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을 주신 절대주의 님의 유물론을 편의상 물리주의로 보겠습니다.) 영미의 분석적 과학철학 혹은 심리철학 혹은 인지과학에서 환원론reductionism과 물리주의(physicalism≒물리론, 물질론, 물질주의)는 아주 가까운 친연관계를 이루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배척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그 간단한 예가 환원적 물리주의reductive physicalism와 비환원적 물리주의non-reductive physicalism다. 두 진영은 세계의 궁극적 기본 구성요소는 물리적인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두 편 모두 물리주의를 기본 신조로 삼지만), 물리적인 것에서 창발된 마음 혹은 의식이 물리적인 궁극 요소로 환원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환원 가능과 불가능으로 대립한다. 그러므로 환원론이 물리주의(유물론)와 비슷한 동네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환원과 물리주의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거나, 매우 불완전하고 어렴풋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퀄리아Qualia가 말한 꿈 얘기와 관련된 문맥에서 절대주의 님이 그 어떤 환원론과 유물론을 읽어내고, 그 둘이 비슷한 동네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혀 뜬금없는 소리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유물론이라는 용어 사용이다. 대체 무엇이 유물론唯物論이란 말인가? 머티리얼리즘materialism인가, 퓌지컬리즘physicalism인가? 유물론(유물주의)은 물리주의(물리론)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추정하건대, 우리나라 대부분의 인문학자(뿐만 아니라 많은 경험과학자들까지도)들은 초보적인 선입견에서 환원론(환원주의)과 유물론을 거의 동의어로 보고 환원론과 유물론을 싸잡아서 평가절하하는데, 절대주의 님도 그런 선입견에(엄밀한 논증은 전혀 없는!)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인문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잘못) 통용되고 있는 유물론materialism과 (영미의 분석적 전통의) 물리주의(physicalism, 물리론, 물질주의, 물질론)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유물론을 들먹이며 과학철학/심리철학/인지과학적 문맥의 환원론과 물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올바른 것이 아니다. 물론 영미의 과학철학/심리철학/인지과학자들조차도 머티리얼리즘materialism과 퓌지컬리즘physicalism을 혼용한다. 어떤 학자는 머티리얼리즘을 선호하고, 어떤 학자는 퓌지컬리즘을 선호한다. 하지만, 적어도 과학철학/심리철학/인지과학적 문맥 안에서 그 두 개념의 내포는 대동소이하다. 개념의 착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국내 인문학자들의 유물론 비판은 심각하게 착종돼 있다. (게다가 유물론 비판이 물리주의 비판이 될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댓글 2개:

  1. 재미있는 글이군요, 물리주의가 reduction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둘로 갈리는 군요. 몰랐습니다.

    사실, 이분야를 하지 않고 경험과학을 하는 사람은 크게 관심이 없을 수 있고, 그래서 무지할 수 잇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논쟁으로 밥벌어 먹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전혀 몰라도 인지과학자로 사는데 지장없으니. 그보다 지금 당장 해야하는 연구가 더 급한거죠.

    실험하고, 논문쓰고, 발표하고, 등등.

    - 뉴욕 연구실에서.

    답글삭제
  2. 흥미로운 글이라 저도 찾아 메모해둔 것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심리학 인지과학 게시판에 실린 어느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유물론"이란 말을 저도 썼다가, 또 잊었다가, 번역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써야 할 때가 다시 생겼었죠. 이 말이 몹시 마음에 안 들어서, 검색하던 차에 이런 시사점을 주는 글을 찾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먹고 사는 일이 시간을 압박하기에 마음껏 탐구해보기가 어렵습니다.

    "인지과학자"라 말씀하신 걸 보니, 혹시 인지심리학이나 그 인접 분야에서 연구하시는 걸로 짐작됩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