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제2기: 고뇌기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가속적인 인플레이션은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고, 증권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중반에 인플레이션은 거의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연 1 퍼센트 남짓한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증폭되면서 고전적인 “수요 견인형demand-pull”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즉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풀렸다. 이윽고 인플레이션은 4~4.5 퍼센트대로 뛰어올랐다.

그러고 나서 1973~1974년에 석유파동과 식품파동이 경제를 덮쳤다. 머피의 법칙(잘못될 만한 일은 기어이 잘못되고 만다)이 현실로 나타나는 고전적인 사례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으로 석유 공급이 부족해진 데다, 대자연마저 경제에 등을 돌렸다. 북미 지역에서는 곡물 흉작으로 식량이 부족해졌고, 구소련과 사하라 사막 이남 지대의 흉작은 재앙적이었다. 페루 앞바다에서 잘 잡히던 멸치들(어분을 비롯해 단백질이 풍부한 원료로 쓰인다)마저 불가사의하게 사라졌을 때, 오툴O'Toole의 유명했던 말이 나왔던 것 같다(“머피는 낙천주의자였다”고 한 오툴의 말이 기억날 것이다). 그러더니 인플레이션은 6.5 퍼센트로 뛰어올랐다. 이어서 1978~1979년에 (일부 산업에 대폭적인 초과수요를 유발한) 정책 착오에다 125 퍼센트의 추가적인 석유가격 상승까지 겹쳐서 물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했고, 임금도 함께 오르게 됐다. 1980년대 초에 인플레이션은 10 퍼센트를 넘어섰고, 경제가 손댈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다.

마침내 폴 볼커Paul Volcker 의장의 지휘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과감한 조치를 내놓았다. 경제 운영의 고삐를 조이고 인플레이션 바이러스를 박멸하가 위한 초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취해졌다. 과연 인플레이션은 오래지 않아 가라앉기 시작했으나, 경제 역시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로 위축됐다. 1930년대 이래 가장 급격한 경제침체가 들이닥쳤고, 실업이 급증했다. 1981년 말에 미국 경제는 두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두 자리 수의 실업률로 고통을 겪었다.

아래 표에는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안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입은 후유증이 잘 나타나 있다. 주식 보유자와 채권 보유자가 얻은 명목 수익률도 미미했지만, 7.8 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뺀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반면, 금이나 귀중품, 부동산과 같은 고정자산에서는 풍족한 두 자리 수의 수익률이 실현됐다. (중략.....)

예상 밖의 사태였던 인플레이션이 기초의 수익률에 반영돼있지 않았던 탓에, 채권 투자자들은 재앙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예를 들면, 1968년 30년 장기 채권의 만기 수익률은 약 6 퍼센트였다. 6 퍼센트는 당시 3 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공제하고 실질 수익률 3 퍼센트를 지킬 수 있는 수익률이었다. 그러나 1969~1981년 사이의 실제 인플레이션은 8 퍼센트에 육박했기 때문에, 실질 수익률은 모두 날아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소식이다. ...(중략)...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처분하려면 자본손실을 입고(즉 원금을 까먹고) 팔아야 했다. 즉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채권 수익률이 높아져야(즉 채권가격이 떨어져야) 살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심해진 가격 변동 때문에 위험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채권 수익률은 더 올라갔다. 설상가상으로 세금 문제가 채권 투자자들에게 고약한 일격을 안겨줬다. 왜냐하면 채권 투자자들은 세전 실질 수익률도 마이너스였을 뿐 아니라, 만기 전에 쿠폰이자를 지급받을 때마다 일반 소득세율에 따라 세금을 물었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때 채권이 투자자들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주식에서도 수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사연이 다른 이야기였다. 주식은 회사의 실물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뜻하고, 실물자산 가치는 물가 수준과 같이 오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주가도 같이 올라야 맞다. 이것은 미술관에서 난생처음으로 추상화를 보고 꼬마가 던지는 질문과 비슷한 문제다. 어느 유명한 추상화가 말(馬)을 그린 것이라고 들은 그 꼬마는 아주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그림이 말이라는데, 왜 말이 아니죠?” 주식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수단이라는데, 왜 그러지 못했는가?

배당과 이익의 성장이 부진했던 현상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었지만, 신중한 분석을 결여한 것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설명 하나는 인플레이션이 기업이익을 대폭 축소시켰고, 회계상 이익에서 인플레이션을 공제하면 더욱 심각했다는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틀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이익이라는 생기(生氣)만 파괴시키는 재무적인 중성자탄처럼 묘사됐다.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장치가 점점 말을 듣지 않아서, 월스트리트에 (랜덤워크 방식이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든)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될 거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1980년대 초 금융계 일각의 생각처럼 “가차 없는 인플레이션의 위력에 기름칠한 전봇대에서 미끄러지듯” 기업이익이 떨어졌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바로 앞의 표에도 나오듯이 기업이익은 1969~1981년 동안 연 8 퍼센트의 속도로 성장해서 인플레이션을 사뿐히 앞질렀다. 또 배당도 인플레이션과 거의 같은 속도로 늘었다.

영화광들은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화약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손에 든 채 독일 공군 소령의 시체 곁에 서있다. 프랑스 식민지의 경찰 역할로 나왔던 클로드 레인스Claude Rains의 시선이 보가트를 거쳐 그의 권총을 지나 쓰러져 있는 소령으로 갔다가, 이윽고 달려오는 그의 부하들에게 향한다. 레인스가 말한다. “슈트라서Strasser 소령이 총격을 당했다. 평소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자들을 검거하라.” 금융계에서도 평소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피의자들을 잡으러 다녔지만, 우리는 정말로 누가 주식시장에 총을 쐈는지를 눈여겨봐야 하겠다.

1970년대 주식 수익률이 저조했던 주된 이유는 배당과 이익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즉 배당과 이익 1 달러에 대해 투자자들이 지불하고자 했던 금액)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식이 투자자들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방어해주지 못한 이유는 기업이익과 배당의 성장이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기간에 주가수익비율이 말 그대로 붕괴됐기 때문이다.

S&P 주가지수의 주가수익비율은 1969~1981년 동안 거의 3분의 2나 날아갔다. 이렇게 주가수익비율이 줄어든 것이 1970년대에 주식 투자자들에게 저조한 실적을 안겨준 요인이었고, 기업들 대부분의 이익과 배당은 실제로 성장했음에도 주가에 반영되지 못한 이유였다. 어떤 금융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주가수익비율이 너무 심하게 무너졌다며, 한마디로 시장이 비합리적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1980년대 초 주식 투자자들의 비관적 자세가 비합리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60년대 중반 투자자들의 낙관적 자세가 모름지기 비합리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시장이 항상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나더러 주식시장과 경제학 교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주식시장에 돈을 걸겠다. 주가수익비율을 크게 떨어뜨린(즉 배당 수익률을 너무 높게 밀어 올린) 주식 투자자들의 행동이 비합리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들은 겁을 먹었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인플레이션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했고, 투자자들은 경제전문가들이 마침내 심각한 경기후퇴를 막을 처방을 찾아냈다고 믿었다. 즉 소소한 경기후퇴도 정책의 “미세 조율”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는 아무도 두 자리 수 실업률이라든가 두 자리 수 인플레이션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더욱이 이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벌어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분명히 그때 우리는 경제가 이전에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주식은 ‘가치증서securities’가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위험증서insecurities’로 전락해서 훨씬 위험하다고 인식됐고, 그로 인해 더 높은 위험보상이 필요했다. 주 *)

주식시장이 위험 프리미엄을 높여주는 방법은 이익과 배당에 대한 주가의 비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조정을 통해서 위험이 높아진 새로운 환경에 걸맞도록 미래 수익률이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내내 수익률을 아주 낮게 떨어뜨렸던 바로 그 조정 덕분에, 1980년대 초에 주가 수준은 아주 매력적인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이 책의 이전 판에서 언급했던 사항들이다. 즉 이러한 경험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10년을 두고 주식 수익률의 변천을 설명하는 일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를 인정해주는 평가 비율의 변화라는 점이다. 1969~1981년 동안 기업이익이 실현한 성장은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보상해줬다. 이 기간에 주식시장을 죽인 범인은 주가수익비율의 하락(배당 수익률의 상승)이다. 시장은 높아진 위험을 반영하기 위해 주가수익비율을 떨어뜨린 것이다.


출처: 다음 자료의 일부를 발췌. "Chapter 13. Handicapping the Financial Race: A Primer in Understanding and Projecting Returns from Stocks and Bonds,", 버튼 맬킬Buton. G. Malkiel,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 랜덤워크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9th edi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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