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경멸했던 자들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1930년대 뉴딜정책New Deal을 실행한 개혁의 기수들은 주식시장을 혁신하는 규제 혁명을 주도했다. 그들이 만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SEC)의 설립이다. 이들은 정치적 야심이 컸고 권력에 목마른 관료들로, 일련의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함으로써 우리 금융시장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다. 이 점에서 이들은 시장을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 개혁가들은 1929년 주가폭락과 그에 뒤따른 대공황을 무대로 등장했다. 그 잔해와 파편의 험악한 모습에 놀란 미국인들은 자유시장이라는 것을 겁나는 경제 시스템으로 봤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의심스러운 제도로 여기게 됐다. 이로 인해 예전에는 당연시됐던 관행들을 악습으로 보기 시작했다. 투기와 내부자거래, 합동자금(pool: 개인이나 집단이 주가 조작이나 특수한 거래 목적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설 기금), 신용거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겸업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관행들은 항상 불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범죄와 다름없다는 시선으로 보게 됐다.
군중심리는 모든 잘못을 과도한 투기 탓으로 돌렸다. 정치인들은 악습을 영구적으로 뿌리 뽑기 위한 새로운 규제와 법률 제정을 선포하면서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 무렵 널리 퍼져 있던 이러한 공감대가 나중에 등장하는 개혁 세대들의 밑바탕을 이뤘지만, 그 공감대는 사실 틀린 생각이었다.
만약 개혁가들의 정책이 봉쇄됐다면, 금융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장은 어떻게든 진화했을 것이고, 전혀 다른 과정을 밟았을 것은 분명하다. 또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의 개혁이 정말로 필요했는가도 불분명한 점이다.
우선 지적해둬야 할 점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대공황이 1920년대의 투기가 낳은 부정적인 반작용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거의 모든 이들이 투기가 원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이다. 세상은 납득이 안 가고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희생양을 찾는다. 또 돈 많고 공명심 많은 사람들은 감정이나 도덕에 비추어 봤을 때 쉽게 욕할 수 있는 사악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통념과는 반대로, 주가폭락과 대공황은 외국에서 시작되어 결국에는 미국에까지 파급된 세계적인 사건이었다는 게 실제 사실이다. 둘째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난리법석은 미국 중앙은행의 참담한 통화정책과 조치들 때문에 더 악화됐었다. 연방준비제도는 1928년에서 1938년까지 통화공급량을 30 퍼센트나 줄였다. 진지한 경제학도 중에서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의 고삐를 조이지 않고 풀어주었을 경우에도 1929년에 뒤따랐던 후폭풍이 실제만큼 심각했을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29년 주가폭락 후의 후폭풍이 비슷한 낙폭을 기록했던 1987년 검은 월요일 직후의 후폭풍에 비해 더 심각하지도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1987년에는 연방준비제도가 더 현명하고 기민하게 대처한 덕분에 시장붕괴의 후폭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셋째로, 대공황은 명확하게 미국 안팎의 각국 정부가 만들어놓은 무역장벽 때문에 생긴 반작용이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1930년대 긴 불황의 원흉은 1920년대 투기였던가? 아니다! 정부가 원흉이었다. 샘 아저씨Uncle Sam(머리글자 US가 미합중국United States과 같아서 흔히 미국 연방정부를 가리킴)가 워싱턴에서 뿌려놓은 문제를 두고 기업을 탓하며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결국, 실제 전개된 모습대로 규제 감독이 필요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첫째로, 개혁을 목표로 법률을 새로 만들었지만,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골을 완화하는 데는 별 약효가 없었다. 둘째로, 사기(詐欺)를 막는 방패 역할로 보자면 규제 감독은 경기침체를 막는 일에서보다 훨씬 더 무력했다. 1930년대 개혁 전이든 후든 사기꾼과 협잡꾼들은 마를 날이 없도록 출몰했다. 사기와 부정행위자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며, 법률이 늘어날수록 법률을 피해 가려는 사람들도 더 영리해질 것이다. 과연 누가 사기를 순전히 부정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독자들은 사기범, 부정행위, 불한당을 다룬 7장에서 그 고약한 내용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중략)... 만약 개혁가들이 정치권에서 무력화됐다면, 시장은 지금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만약 이들의 시장개입이 없었다면 자율 감독과 자율 감독 기구들이 더 많아졌을 게 분명하다. 또 모름지기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보다 주정부 차원의 규제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결국 똑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서 작용하는 경쟁이야말로 시장을 규제하는 진정한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 세기 말에 보았듯이경쟁이 없으면 체제 자체가 와해된다. 금융시장에서 실적이 저조한 사람들을 솎아내고 우수한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경쟁이다. ...(중략)
출처: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Chapter 6. New Deal Reformers: No Better Than Those They Despised", Kenneth L. Fisher, 《시장을 뒤흔든 100명의 거인들One Hundred Minds That Made the Market》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