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3일 토요일

국제박람회: 1851년 런던 대박람회(Great Exposition), ...

자료: http://www.opentory.com/index.php/국제박람회


l851년에 열린 런던 대박람회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누구나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거의 전면을 유리로 덮은 거대한 건물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때문이다. 크리스틀 팰리스(수정궁)는 이처럼 사람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고 또 이 박람회의 대명사가 됐다. 이 수정궁에 쓰여진 유리는 모두 3만장. 당시 영국의 연간 유리 생산량의 3분의1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철골을 얽고 유리를 덮는 이 건물의 공법은 건축기술의 일대혁신으로서 오늘의 프리패브 건축의 선단을 보여주었다. 이 런던 대박람회가 바로 국제박람회의 효시다. 런던에선 1756년에 벌써 소규모 박람회가 열린 역사가 있다. 그러나 런던의 대박람회(great exhibition)는 세계각지의 뛰어난 문물이 전시되고 당시 최첨단의 과학기술성과를 전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국제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건 1855년 파리국제박람회. 국제박람회가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선도해온 역사는 화려하다. 1867년 파리국제박람회엔 수압식 엘리베이터와 볼 베어링이 나타났다. l876년 필라델피아 미 독립 1백년 박람회엔 「그레이엄·벨」의 전화기와 자봉톨이 등장했다. 1889년 파리박람회엔 당시 고층건ㅐ?시범인 에펠탑이 나타났고,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엔 플라스틱과 나일론이 첫선을 보였다. 특히 우주시대의 과학기술을 국력과 함께 전시한 두개의 사건은 중요하다. 1958년 브뤼셀엔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전시되었으며 1970년 대판엔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싣고온 월석이 관객을 모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생활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케하는 점에서 박람회는 유용하다. 전시경쟁을 통해 과학의 진보와 기술개발도 자극하며 거기서 새로운 성과도 거둔다. 지금가지 입장자수가 가장 많았던 박람회는 1964년의 뉴욕 세계박람회. 무려 5천1백만명이었다. 그전까진 4천7백만명의 인파를 모았던 1900년의 파리박람회가 최고기록이다. 뉴욕박람회는 다른 기록도 가졌다. 민간기업의 독립관이 이때 비로소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람회의 유행에 따라 1928년엔 국제박람회 개최를 규제하기 위해 국제박람회조약도 체결되었다. 우리나라 박람회의 효시는 1907년 경성박람회다. 일본 통감부가 침략의 한 수단으로 계획한 잔치였고 국제박람회는 아니었다. 그로부터 75년, 우리는 국제규모의 서울국제무역박람회를 얻게 되었다. 나라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새시대를 기약하는 잔치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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