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7일 수요일

20장. 사회보장 논쟁의 난맥상


폴 크루그먼


부시 행정부가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민영화를 일 순위 과제로 잡은 뒤부터 《뉴욕타임스》칼럼에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는데, 서너 달 사이에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다. 하지만 700 단어짜리 토막글로 쪼개서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루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현 상황을 보는 그대로 이 문제를 한목에 풀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보장을 둘러싼 토론에서 아주 헷갈리는 문제로 세 가지가 있다(이러한 혼란은 의도적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거론하지 말자). 즉, 다음 문제들이다.

  • 연방예산에서 차지하는 사회보장기금의 의미: 민영화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사회보장기금을 실체가 있는 기금으로 보기도 하고 또 실체가 없는 기금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때그때 위기감을 조장하기 편리한 대로 보고 있다.
  • 개인연금계좌에 붙는 미래의 기대 수익률: 민영화 진영에서는 개인연금계좌를 도입하면 앉은자리에서 큰 수익이 거저 생기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거저 생긴다는 그 수익은 미래 주식 수익률을 가리키는 아주 의심쩍은 것이다.
  • 먼 미래에 정부가 지급해야 할 미확정 부채implicit liabilities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사회보장 민영화론자들은 민영화 이행기의 단기간 동안 재정수지가 엄청나게 악화되는 문제를 별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수십 년 후에 지급해야 할 사회보장 급여를 낮춰서 절감한 돈으로 당장 구멍 날 적자가 해결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다른 문제들은 놓아두고, 이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연방예산에서 차지하는 사회보장기금의 의미

사회보장은 “고속도로관리세highway maintenance tax”처럼 용도가 지정된 특별세를 재원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명목으로 거둬들인 세금을 어떤 프로그램의 용도로만 쓰겠다고 지정하는 것은 (그 세금이 그 용도로 집행되기 전까지는) 약속에 지나지 않는 만큼 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용도 지정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효력도 막강하다. 꽤 오래전인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세금을 인하하면서 “주로 노동 계층에 부과되는 역진세(逆進稅)를 인상하고, 주로 고소득층에 부과되는 세금을 인하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면, 정치무대에서 총알받이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역진세 성격의 고용세payroll tax[주#] 인상안은 사회보장기금을 강화하자는 그린스펀위원회Greenspan Commission의 권고로 나온 것이어서, 레이건의 세금 인하와는 정치적인 주소가 전혀 다른 문제로 다루어졌다(아예 정치 밖의 문제가 됐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금 인상의 취지는 사회보장으로 용도가 지정된 특별세의 살림을 먼 미래까지 잘 꾸려가자는 것이었다. (중략...)

(... 중략) 현재 잉여금을 쌓아가는 중인 사회보장기금의 재정은 상당히 건실하다. 이를 두고 민영화론자들은 이 잉여금은 미국 국채에 투자되기 때문에 사회보장기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보면, 이 말의 진의는 미국 국채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아니라, 사회보장으로 용도가 지정된 별도 예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즉 이들의 논점은 미국 국채에 투자하든 뭐에 투자하든 사회보장기금이란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 말이 옳다면, 정부 전체의 살림은 적자이면서, 동시에 정부 안의 어느 한 부분(예컨대 사회보장기금)이 흑자일 수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마저도 기괴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보다 민영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지적해야 할 문제는 다음 두 가지다.

우선, 작은 문제부터 짚어보자. 사회보장기금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은 고용세와 미래에 지급할 사회보장 급여 사이에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주장과 똑같은 것이다. 과연 이 말이 옳다면, 지난 1980년대에 그린스펀위원회 사람들은 사기를 친 셈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에게 이 기금의 실체가 없다는 “진실”을 가린 채, 부유층의 세금은 낮추면서 노동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높이는 역진세 부과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사회보장제도에 필요한 돈이라고 해서 인상된 고용세를 20년 동안 납부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 이야기 모두가 그저 농담이었다고 말한다면, 국민 모두를 상대로 아주 커다란 약속 위반을 범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더 심각한 문제를 짚어보자. 사회보장제도의 미래가 위태롭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더 큰 자가당착은 이것이다. 즉 사회보장제도의 살림이 연방정부 통합예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의 별도 예산(즉 사회보장기금)이란 것의 실체가 없다는 말이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사회보장기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연방예산의 일부일 뿐이니, 결국 사회보장기금의 위기란 것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위기는 포괄적인 재정위기뿐이다. 사회보장 급여 지출의 증가가 그러한 재정위기의 한 원인이 될 수는 있어도, 포괄적인 재정위기의 중심적인 문제가 이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사회보장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기를 만들어내느라 두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로, 사회보장기금은 물론, 연방예산에 속하는 “정부기금trust fund”[주##]이란 것의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통합예산unified budget 개념을 들고 나온다. 즉 정부기금이 의미 없다고 주장하려고 정부기금을 정의하는 규칙을 바꿔놓고 나서, 정작 그들이 들고 나온 통합예산 개념을 근거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거부한다. 그 대신에 그들이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근 15년 전 사회보장세를 인상할 때 만들어둔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사회보장 급여로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사회보장세가 더 많은 지금, 이들은 이러한 흑자 상태는 의미 없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2018년이든 그 후이든 사회보장 급여 지출이 사회보장세보다 많아질 때가 되면, 이건 어째서 위기인가? 그들 스스로 의미 없다고 한 마당에 위기일 이유가 무엇인가?

이게 모순이라는 점을 그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다음 말을 되풀이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무언가를 누구에게 이해시키려 해도, 그걸 몰라야 월급 받기가 편안해진다면 그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지금 문제에서는 스스로의 모순을 몰라야만 그가 속한 정치 클럽의 회원자격이 유지되나 보다. 그래도 다음 질문을 던지며 한 번 더 노력해보기로 하자. 2018년이고 언제고 간에 사회보장 급여 지출이 사회보장세 수입보다 많아지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가?

그 답은 아주 분명하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 중략 ...) 지금 닥친 진짜 문제는 확대일로에 있는 연방정부 일반회계General Fund의 적자 문제다. 사회보장제도는 그 자체 용도가 지정된 세금을 바탕으로 건실한 운영을 해왔다. 운영이 건실하지 못했던 것은 정부의 다른 부문들이다. 그런데, 왜 사회보장제도에 위기가 닥칠 거라고 들먹이는 것인가?

일반회계가 건실하게 운영되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됐을지 따져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일반회계는 일반회계대로 수지 균형을 유지하면서 사회보장기금의 잉여금은 “금고”에 잘 보관해왔다면, 어떤 상황이 됐을 것인가? 이 경우에, 불어나는 사회보장기금은 미래에 돌아올 각종 급여 청구에 대한 정부 전체의 지불 능력을 강화하는 탄탄한 안전판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보장기금 잉여금이 국채에 투자되는 만큼, 민간에 대한 정부의 채무 부담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정부 부문 안에서 소화되는 국채 발행 비중이 높을수록 대 민간 국가채무는 줄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만큼 정부 예산에서 이자 지출로 나가는 비용도 줄게 된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흘러왔다면, 계속 늘어나는 사회보장기금의 잉여금으로 국채 발행 물량이 흡수됨에 따라서, 결국에는 채권 유통시장에서 살 수 있는 국채가 거의 남지 않는 지점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민간에 대한 국가채무가 거의 청산됐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 지점을 건너왔다면, 불어나는 사회보장기금 잉여금을 민간부문 금융자산에 투자해야 했을 것이다. 이때는 이 공적기금을 민간부문의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큰 현안으로 부상했을 것이고, 투자 운용에 대한 정치적 입김을 막기 위해 광범한 인덱스펀드 투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도달했을 때에도, 사회보장기금은 미래에 돌아올 급여 청구에 대하 정부의 지불능력을 한층 더 강화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을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4년 전(2001년 1월) 과도한 재정흑자를 낮춰야 한다며 세금 인하를 의회에 촉구했었다. 현재 우리가 미래에 돌아올 미확정 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불능력을 그때보다 훨씬 더 우려하게 됐다면, 그 이유는 사회보장 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사회보장기금은 재정 상태가 향상됐다(기금 고갈 시점은 그린스펀의 의회 증언 이래 5년 더 미래로 늦춰졌다). 그 이유는 연방정부의 일반회계가 거대한 적자에 빠져들었기 때문이고, 적자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은 부시의 세금 인하였다.

필자는 순진한 낙관론자가 아니다. 앞으로 재정위기는 충분히 발생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 재정위기를 두고 사회보장위기라고 한다면, 문제를 완전히 엉뚱한 쪽으로 오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개인연금계좌의 투자 수익률

민영화론자들은 사회보장을 민영화하면, 세금을 올리거나 급여를 삭감하지 않고도 정부의 장기 재정을 개선할 수 있으며, 손해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한다. 이들은 정부가 보증하는 최저보장급여는 줄겠지만, 개인연금계좌에 발생하는 투자 수익이 급여 감소분을 메워줄 거라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그들 이야기는 개인연금계좌의 일정 비중이 투자될 주식은 장기 위험을 최소한으로 가져가면서 국공채보다 수익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이 과거에 아주 좋은 수익률을 낸 것은 사실이다. 불변가격으로 연 7 퍼센트 가량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주식은 채권보다 위험은 높았지만, 그 위험을 보상하고도 남는 수익을 실현했다.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즉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를 비롯해서 한때는 진중했던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제안서들의 내용이 만고불변의 경제법칙과도 같이 주식 수익률이 채권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쳤다. 그 제안서들은 연 7 퍼센트의 수익률을 빛의 속도와도 같은 자연법칙의 상수(常數)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경제학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이와는 정반대다. 즉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자연법칙이 있다면, 쉽게 버는 수익은 경쟁을 통해 소멸되는 탓에, 거저 생기는 수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기투자의 현자 제레미 시걸Jeremy Segel이 전하는 이야기를 경청하자. 주식이 지금까지 장기 투자자들에게 낮은 위험으로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법은 없다는 게 그의 가르침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주식 수익률이 높았다면 과거에 주식이 과소평가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시장은 조만간 ‘그 오차를 교정(즉 과대평가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기대하는 게 합당하다.

사실, 큰 폭의 주가 조정이 이미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주가수익비율price-earnings ratio(PER)의 평균 수준은 14 배가량이었다. 지금은 약 20 배이다. 제레미 시걸에 따르면, 주식의 실질 수익률은 대개 주가수익비율의 역수에 근접한다. 이것을 평이한 말로 풀어보면, 어느 자산이고 사람들이 가격을 높게 쳐줄수록, 다가올 수익률은 그만큼 낮아진다는 뜻이다. 지금 대표적인 주가수익비율이 20 배이니, 앞으로 다가올 주식의 실직 수익률의 추정치로 삼아야 할 값은 5 퍼센트(1/20=0.05)이지 7 퍼센트가 아니다.

주식 수익률을 추정할 또다른 방법을 취해도 결과는 같게 나온다. (...중략...) 주식의 장기 실질 수익률을 추정하는 규칙은 배당 수익률(3%)에 성장률(2%)을 더하는 것이므로, 주식의 실질 수익률은 역시 5 퍼센트로 나온다.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로 5 퍼센트라고 하면 꽤 괜찮은 수익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연금계좌를 놓고 계산을 해보자.

개인연금계좌는 당연히 주식 비중을 100 퍼센트로 운용하지 않는다. 주식 비중은 보통 60 퍼센트로 잡는 게 관행이고, 나머지 40 퍼센트는 채권에 투자된다. 채권의 실질 수익률을 2 퍼센트로 치면, 이 계좌의 실질 수익률은 3.8 퍼센트로 내려간다(5%×0.6=3.0%, 2%×0.4=0.8%, 3.0%+0.8%=3.8%).

이 수익률에서 공제해야 할 것으로 운용보수가 있다. 사회보장에 민영화를 도입한 영국 사례에서 확인되는 운용보수가 1.1 퍼센트이니 이 숫자를 쓰자. 그러면 수익률은 다시 2.7 퍼센트로 내려간다. 이 수익률 수준은 현재 사회보장기금의 암묵적 수익률보다 나을 게 없다. 반면, 사회보장기금보다 위험은 대폭 불어나 있는 상태다. 이건 그야말로 운용보수를 챙기는 금융가 말고는 모든 사람이 손해 볼 게 자명한 공식이다.

민영화론자들 말로는, 개인연금계좌의 투자를 몇몇 인덱스펀드에 국한해서 운용보수를 아주 낮게 유지할 거라고 한다. 자, 두 가지 점만 지적하겠다.

첫째, 나는 그 말을 못 믿는다. 12월 21일자 《뉴욕타임스》에 바로 이 말의 본색이 무언지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개인들에게 제한된 투자 수단들이 제공될 것이다. 그 대부분은 비용이 저렴한 인덱스펀드들이다. 얼마 후에는 한 차원 높은 적극적 운용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이런 펀드들은 좀 더 다양한 자산들에 투자함으로써 고위험과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운용보수가 높아질 수도 있다”(강조는 필자가 표기한 것이다).

지금 “처음에는”이라고 했는가? 흠. 이걸 보면, 저비용이라는 것은 계속될 게 아닌 모양이다. 민영화가 도입되고 나면 몇 년을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몇 달 내에 개인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선동이 시작될 것이다. 민영화를 먼저 경험한 영국 사례를 볼 때, 일단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막대한 돈이 운용보수로 새나갈 것이다.

둘째, 개인연금계좌의 돈을 정부 공직자들이 선정하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도록 법규를 만든다고 치자. 그렇다면 도대체 이렇게 운영할 계좌를 개인계좌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보장기금이 직접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면 되는 일이니, 바로 앞 소절에서 필자가 지적했던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여기에 나중에 민영화하자는 사람들이 꺼내들 비장의 묘수가 하나 더 있음이 분명하다. 일단, 개인연금계좌라는 이름을 얻고 난 뒤에는 정부가 투자를 정치 문제로 다루려고 할 때마다, 민영화론자들은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반칙이라면서 수많은 가입자들이 들고일어날 거라고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주주총회 때 수많은 소액 주주들이 몰려가 의사결정구조 문제를 감시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마지막의 이 비유는 웃자고 한 이야기이니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우리가 사회보장에 쓸 돈을 주식에 투자하게 되면 주식시장의 위험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사회보장을 개인연금계좌 방식으로 민영화해놓고 나서, 다시 그 투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가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시장위험에다 정치적인 위험까지 끼어들게 된다. 그 정치적 위험이란, 금융가의 로비스트들이 민영화된 개인연금계좌의 투자시장을 그들을 위한 거대한 수수료 창출 기계로 변질시키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불 보듯 뻔한 위험을 심사숙고한다면, 사회보장 목적의 공적기금 투자를 아예 정부가 도맡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고 보는 게 맞다.

자, 이 소절의 결론을 요약하자. 첫째로, 주식이 항상 낮은 위험으로 높은 수익을 낼 거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경제논리이다. 둘째로, 사회보장에 쓸 돈을 수천만 개의 소액 개인계좌로 분산시켜서 투자한다는 것은 주식시장 수익률이 얼마이든 아주 나쁜 투자방법이다. 셋째로, 금융시장에서 거저 생기는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더욱이 사회보장을 개인연금계좌로 민영화한다고 해서 거저 생기는 수익이란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먼 미래의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아주 먼 미래가 현재 민영화를 둘러싼 토론에서 이상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끔직한 사태에 처할지 보라면서 민영화론자들이 꺼내드는 숫자가 있다. 즉 사회보장과 의료보장 각각이 미래에 지급해야 할 미적립 부채unfunded liabilities를 구분하지 않고 합산해서 숫자를 불릴 뿐 아니라, 그 미래를 무한정한 시간으로 늘려 잡아 제시한다. 그 위태롭다는 사태에 대한 그들의 해결책은 이들 공적기금(사회보장과 의료보장)에 들어가는 고용세의 일부를 민영화된 개인연금계좌로 돌리기 위해 수 조 달러의 돈을 정부가 차입하는 것이다. 차입이 필요한 이유는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기로 접어드는 세대에게 당장 사회보장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개인연금계좌로 들어가는 돈만큼 현 사회보장기금에 결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민영화 이행기에 걸친 세대의 급여 부족액은 일단 정부 차입금으로 해결하자는 게 그들의 논리다. 그 다음에는 개인연금계좌에 붙을 높은 주식 수익률의 마법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것이다(주식 수익률 이야기의 허구성은 바로 앞 소절에서 밝혔다). 민영화론자들은 수 조 달러의 돈을 차입해도 전혀 해로울 게 없다면서, 연방정부의 장기 재정수지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한다. 앞으로 30년, 40년, 50년 후의 사회보장 급여를 줄여나가면, 이 누적적인 지출 감소 효과가 당장 민영화 이행기에 차입해야 할 수 조 달러를 충분히 상쇄할 정도의 현재가치가 된다고 주장한다.

먼 앞날을 내다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나 또한 이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 논리 대부분에서 이만저만 잘못된 게 아니다. (... 중략 ...) 정녕 그 모든 비용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걱정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 발명도 되지 않은 의료 요법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처방하는 데 들 비용이 오늘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끼어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사회보장제도가 맞을 먼 미래는 이렇게 의료비용만큼 자의적이지는 않아도 상당히 불확실한 것은 맞다. 2105년에 세상이 어떻게 될 거라고 보는가?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때가 되면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져서 컴퓨터에게 인간이 해야 할 일들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티끌만큼도 안 된다. 우리가 장기 전망의 관행으로 삼아온 75년의 시간 지평을 넘어서까지 내다봐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심스럽다. 75년이 넘는 초장기적 시간 지평은 아주 최근에야 유행을 탔다. 그 이유는 문제를 더 끔찍하게 묘사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상과학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로 돌아와서, 다음 문제를 생각해보자. 지금부터 수십 년에 걸쳐 절감할 비용을 저축으로 취급한다고 칠 때, 이게 과연 오늘 당장 발생하는 거대한 차입을 상쇄할 만한 성질의 것인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단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즉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는 행위는 상환을 약속한다는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미래에 지급할 사회보장 급여를 변경하겠다는 것은 지금부터 수십 년 뒤에 국가를 경영할 사람에게 건네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부시의 계획대로 30년 뒤에 최저보장급여를 낮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때 가서 급여가 부시의 일정대로 인하될지도 모르지만, 인하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가면 65세 이상의 유권자 층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혹시 사회보장기금의 살림살이가 조여들어서, 지금 부시가 무얼 하든 간에 급여가 인하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급여 인하가 부시의 계획에 따라 절감된 돈인가? 부시가 지금 무슨 계획을 세우든, 그 계획은 그의 임기 밖 시기에 발생할 비용을 정책 변수로 삼을 권리가 없다. (중략...)


민영화는 문제만 자초하는 대안이다 (중략...)

***

[주#] 미국의 모든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에서 원천징수되는 갖가지 세금을 총칭해서 "고용세payroll tax"라고 부른다. 고용세에 포함되는 세목에는 일반적인 소득세(우리나라의 갑근세에 해당)가 있고, 사회보장Social Security과 의료보장Medicare 명목의 세금(과세소득 62,700 달러까지는 7.65%를 뗀다. 고용주도 이와 똑같은 세율로 납부해야 해서, 근로자와 고용주가 사회보장 및 의료보장 용도로 내는 세율은 총 15.3%다), 그리고 실업보험세Federal Unemployment Tax(과세소득 7,000 달러까지 1%를 떼고, 고용주는 납부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이 책의 원문에 등장하는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는 고용세 중에서 사회보장 용도로 내는 세목을 가리킨다--옮긴이(다음 자료를 참조: U.S. payroll tax: Definition from Answers.com, 2008년 8월 21일 접속).

[주##]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되는 미국의 사회보장기금은 “Social Security Trust Fund”로 불린다. 이 기금은 다른 수많은 연방정부 기금과 마찬가지로 ‘예산외off-budget’ 항목으로 연방정부의 “통합예산unified budget”에 포함된다. 따라서 명칭에 “기금Fund”이란 말이 들어가지만, 우리나라의 각종 공적 “기금”들과는 달리, 연방정부의 통합재정수지에 포함된다. 또 “신탁Trust”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민간부문에서 쓰는 신탁과는 그 의미가 달라서, 기금(즉 그 수입과 지출)의 용도가 “법률로 지정된 정부기금”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정부가 일반회계 예산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없는 정부기금이란 뜻으로, 그러한 정부기금들 중의 하나가 “Social Security Trust Fund”다. 이와 같은 사정을 감안해서 “사회보장기금”이라는 역어를 사용한다. 한편, 이러한 정부기금들을 통칭하는 “trust fund”는 “정부기금”이라는 역어를 택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 즉 연방예산Federal Budget은 크게 연방펀드Federal Funds와 트러스트펀드Trust Funds로 나뉜다. 연방펀드는 다시 일반펀드General Fund와 특별펀드Special Funds, 회전형펀드Revolving Funds로 나뉘며, 트러스트펀드는 비회전형 트러스트펀드Nonrevolving Trust Funds와 회전형 트러스트펀드Revolving Trust Funds로 나뉜다--옮긴이(다음 자료 참조: 옥동석, 인천대학교, “기금제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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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Paul Krugman, "Confusions about Social Security," in Joseph E. Stiglitz, Aaron S. Edlin, J. Bradford DeLong eds., 《경제학자들의 목소리The Economists' Voice》. 한국어판 20장(원서 13장).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에는 불완전 경쟁과 국제무역에 대한 학문적 기여로, 2년마다 경제학자 한 명을 골라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락John Bates Clark 메달”을 수상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고 아울러 국제문제도 가르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1977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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