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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C. Gee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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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생의례 연구의 한계와 전망
그 동안 일생의례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어왔다. 그 한 갈래는 '관혼상제'라는 이름으로 주자가례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예서들을 자료로 삼아 의례 절차를 정확하게 알리고 그 뜻을 해설하는 예학적 연구이다. 예학적 연구는 유학자들에 의하여 유학 연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면서 중국의 주자학을 추종하는 사대부들의 예서와 의례를 자세하게 따지는 데 기능적이다. 그 두 갈래는 '통과의례'라는 이름으로 예서의 기록과 실제 관행을 함께 다룬 인류학적 연구이다. 인류학적 연구는 반 게넵의 이론을 적용하여 분리기와 전이기 통합기를 분석하면서 그 의미를 서술하거나 아니면, 의례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모았다.1) 따라서 어느 쪽의 연구도 우리 일생의례가 지닌 민족적 독창성과 민중적 신명성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민속학적 연구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게다가 한결같이 의례의 분석보다는 의례의 절차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데 치우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자료 중심 내지 자료의 해설 차원에서 만족하는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자연히 논지는 두드러지 지 않고 의례의 차례를 쫓아가며 서술하는 작업 수준에 머무르기 일쑤였다.1) 장례 연구라고 해서 그리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장례 연구의 경우는 다른 의례와 달리 문학적 연구와 고고학적 연구가- 더불어 상당히 진행되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들 연구는 우리 민족의 묘지 양식과, 민중의 소리가 지닌 신명성 및 세계관까지 검토하였다는 사실에서 별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문학적 연구들은 현장에서 수집한 상여소리와 덜구소리를 구비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가운데, 장례의식과 소리의 기능 및 사설의 의미를 여러 모로 검토하였으며,1) 고고학적 연구는 고분 발굴을 통하여 각종 무덤의 양식과 매장 방식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부장품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추론하는 연구 성과들을 올렸다.1) 그러나 장례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의 민속놀이들은 어느 경우에도 주목할 겨를이 없었다.1) 그 결과 적어도 민속학에서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할 부분들은 상대적으로 소흘히 다루었을 뿐 아니라, 민속학다운 연구의 개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민속학을 표방하면서 쓰여진 장례 연구보고서나 논문이든, 또는 스스로 민속학 전공자를 자처하는 이들에 의한 장례 관련 연구물이든 어느 것이나, 민속학 다운 장례 조사와 연구에 이르지 못한 까닭은 어디 있을까. 그것은 장례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민속학이 아닌 인접 분과학문의 전공자로서 자기 학문의 관점에서 장례 연구를 한 까닭이다. 뒤늦게 민속학을 표방하면서 민속학의 한 대상으로 장례를 다루고자 했으되, 기존 분과학문의 연구 경향에 자기도 모르게 끄달려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결과이다. 민속학을 표방하면서도 민속학 다운 장례 연구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민속학이 어떤 학문인가 하는 데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기 인식없이 민속학에 뛰어든 까닭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민속학이 지배층 중심의 기존 분과학문과 달리 피지배층에 속하는 민중의 문화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며, 다른 나라로부터 전래되어온 외래 문화보다 우리 겨레 고유의 토착문화라 할 수 있는 민족문화를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어도,1) 인류학적 연구와 유학적 연구에 감염되지 않은 채 민속학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서처럼 문자에 의하여 기록된 문헌으로 전승되고 계획적으로 가르쳐진 지식은 민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관혼상제에 관한 문헌연구를 민속연구로 간주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연구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각기 유학의 한 분야인 예학으로서 또는 인류학의 한 영역인 통과의례 연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관점의 연구가 곧 민속학적 연구인양 행세하는 바람에, 민속학 연구로서 장례 연구의 독자적 길을 개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국문학자들에 의한 상여소리의 연구는 민속문학의 한 영역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고학자들에 의한 고분 연구는 고대 민중의 생활사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의례의 절차 분석에 매달려 있는 위의 두 연구와 다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상여소리와 같은 민요연구와 고분발굴에 의한 고대인의 생활 복원이 온전한 장례 연구라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한결같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일생의례의 민속학적 연구 가능성을 생산적으로 전망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전승되는 장례 관련 민속놀이들을 주목하여 그 전승양상과 다양한 구실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위로부터 주어진 주자학적 의례의 규범을 적극적으로 거스르면서 인간적인 삶의 본성을 추구하는 민중적 세계관을 여러 모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장례 현장에서 주목해야 할 민속 현상들
우선 장례 관련 민속놀이들을 주목하기 위해서는 장례가 상례와 변별성을 지닌다는 사실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상례가 초상에서부터 소대상까지 거치는 모든 의례를 포괄적으로 뜻한다면, 장례는 상례 가운데에서 특히 주검을 묘지까지 운송하여 매장하는 데 관계되는 일련의 의례를 구체적으로 뜻한다. 상례의 세 대상인 주검, 혼백, 상주 가운데에서 혼백과 상주는 각각 이승에서 분리되었다가 전이과정을 거쳐서 각각 저승과 이승에 통합된다. 그런데 주검은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통합되지 못하고 산에 묻혀서 자연으로 되돌아 간다. 한 마디로 일상적인 삶의 세계도 초월적인 저승세계도 아닌 공간에 유폐되는 것이 주검이다. 상주가 현실적인 세계에서 이승의 삶을 다시 계속하고, 죽은 이의 영혼은 초월적인 세계에서 저승의 삶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주검은 무덤 속에 묻혀 흙으로 썩게 되거나 불에 태워져 흩어지게 된다. 굳이 반 게넵의 통과의례 구조를 적용해 본다면 이승에서 분리되어 전이기를 거치다가 마침내 자연에 통합되는 셈이다.
주검에 관한 의례는 결과적으로 주검을 자연에 유혜시키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혼백이 저승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관념 아래 이루어지는 혼백에 관한 의례보다 한층 더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의례라는 점 때문에, 상례 가운데 특히 장례라는 이름으로 의례적 독자성을 별도로 지닌다. 혼백을 모시는 빈소는 전통적인 양식으로 꾸미지 않고 3년상을 거의 지키지 않을 정도로 그 관행이 크게 바뀌었으며, 상주가 지켜야 할 여러가지 의례도 간소화되거나 약식화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빈소가 있는지 또는 상주인지 아닌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주검을 장지까지 운반하여 산소에 묻는 일은 현실적으로 피하거나 축소시킬 수 없는 일이다. 주검을 묘지까지 운반하여 매장하는 데에는 필수적으로 주검을 운반하는 기구가 있어야하고 운반하는 사람과 운반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상두꾼이 상여를 메고 주검을 장지까지 운반한다.
문헌의 기록을 보면, 고대에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가운데 축제 분위기 속에서 주검을 운구하였음이 확인된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가운데 하나인 『수서(隨書) 』동이전 고려(고구려)조에 의하면, "장례를 하면 곧 북을 치고 춤추며 노래 부르는 가운데 주검을 묘지로 운반하였다"고1)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례풍속은 진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진도에서는 장례 행렬의 가장 앞에 풍물잡이들이 풍물을 치고 앞장을 선다. 그러면 부녀들이 춤을 추고 뒤를 따르며 부녀들의 춤패뒤에 상여가 따른다. 고구려 시대의 장례 형태인 축제 형식의 운구 풍속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축제 형식의 운구 풍속은 점차 약화 되어, 기생들의 춤이 상여를 인도하거나, 북을 치고 요령을 흔드는 가운데 상여소리를 부르며 상여를 인도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앞소리꾼 노릇을 감당할 사람들이 없어서 상여소리 후렴구만 주고 받으면서 운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도시에서는 영구차로 운구하지만, 고향 선산에 묻히는 경우에는 영구차로 고향까지 와서 다시 상여로 옮겨 운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대의 축제식 운구풍속이 최근까지 남아 있듯이, 장례와 관련된 놀이들도 지역에 따라서는 상당히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어 뜻밖의 흥미를 끌게 한다. 상례나 장례는 한결같이 죽음을 다루는 엄숙하고 경건한 의례이자,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시에는 상당히 풍자적이고 희화적인 놀이를 즐겼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 일상적인 도덕률을 뒤집어 엎는 극적인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다소 즉흥적인 것 같으면서도 여러 사람들이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꾸며서 의례의 형식과 그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도덕률을 정면으로 뒤집어 엎음으로써, 의례의 성격과는 걸맞지 않는 장난기와 웃음기를 드러내 주는 동시에 반의례적 충격을 강하게 던져 준다.
이러한 장례 놀이의 가장 본격적인 양식이 전남 진도 지역의 '다시래기'인데, 경북 지역에서는 '대돋움'이나 '빈상여놀이', 충북 지역에서는 '잿떨이', '댓떨이', 충남 지역에서는 '상여 흘르기'라고 하여, 그 명칭이나 규모, 놀이 방식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출상 전날 놀이를 한 사실이 전국적 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주검을 묘지에다가 묻는 매장의 현장에서도 각종 놀이들을 행한 사실이 여러 지역에서 보인다. 이를테면 충북의 '진사 모시기'와 충남의 '가래장구 지우기', 추자도의 '산다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 놀이들은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장례의식과 운구 및 산역에 필요한 상여와 가래, 그리고 장례에 참여하는 문상객 및 상두꾼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례에 관련한 여러 가지 민속현상들을 두루 주목해야 장례 관련 놀이들의 실상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있다. 민속놀이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장례를 민속학적으로 온전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들 민속들을 총체적으로 다를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장례와 관련되어 주목할 만한 민속들을 보면, 가례로서 거쳐야 하는 규범적 의식 절차 외에, 주검을 운반하기 위한 '상여'가 있고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과 상여를 관리하는 '소임'이 있으며, 묘터를 잡아 묘지를 쓰고 봉분을 만드는 '풍수'와 '산역'이 있다. 그리고 상여를 메고 산역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인 '상두계'와, 장례에 필요한 음식과 상포를 제공하는 '위친계', '상포계‘등 각종 계 조직이 있으며, 이웃과 친척들끼리 상가에 '부조'하고 문상객들과 상두꾼들에게 음식을 베풀어먹이는 '잔치'가 벌어진다. 주검을 운구할 때에는 상여소리 및 덜구소리와 같은 '장례의식요'와 이의 앞소리를 메기며 운구를 주도하는 '요령잽이' 또는 '앞소리꾼'이 있다. 이 밖에도 앞에서 거론한 바처럼, 출상 전날 벌이는 빈 상여 놀이와 장지에서 무덤을 마무리 한 다음에 벌이는 여러 가지 놀이들이 있다.
이처럼 장례에는 가례로서 절차나 따지고 통과의례로서 거치는 과정이나 분석하는 의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속공예·사회조직·풍수지리·공동노동·부조교환·잔치와 향연·민속문학·민속음악·민속놀이 등의 현상들이 다양하게 더불어 있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민족적 세계관과 민중의식들을 두루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일생의례라는 관점에서 널리 다루어진 연구 대상은 으레 장례 의식 절차 뿐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묘지 풍수와 상여소리가 상당 수준 연구되긴 했어도, 지리학의 관점에서 풍수지리가 거론되거나 민속문학 또는 민요학의 관점에서 상여소리가 제각기 다루어졌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장례의 민속학적 연구는,1) 이러한 민속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대상삼아 총체적으로 다룰 때, 관혼상제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다루는 예학과 통과의례의 한 양식으로 간주하는 인류학의 한계를 여러 모로 극복할 수 있다.
우선 지배층의 관점에서 사대적인 발상 아래 진행되고 있는 장례 연구의 고정관념을 효과적으로 깨뜨리기 위해서도, 사대부 중심으로 형성되어 위에서부터 밑으로 주어진 예학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밑에서부터 위로 치받치는 민중적 요소들을 주목하고, 큰 나라 중심의 관점에서 형성되어 밖에서부터 안으로 치고 들어온 외래적인 요소와 방법에 맞서서 안에서부터 맞받아 버티는 민족적 양식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한 두 가지 요소들을 함께 갈무리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장례 현장에서 연행되는 민속놀이들이다. 다시래기와 같은 장례 관련 놀이들은 유가의 선비를 표방하는 이들로부터 공식적인 항의를 받아 물의를 빛은 적이 있을 정도로1) 민중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서구적인 통과의례 구조로 분석해서는 그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는 민족적 양식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3. 축제 형식의 장례 양식과 그 역사적 모습
지역에 따라서 대돋음 또는 다시래기, 상부놀림, 상여 흘리기 등으로 일컫는 빈상여 놀이는 전국으로 분포되어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뿌리도 상당히 깊다. 앞에서 인용한 『수서』의 기록을 보더라도 고구려에서는 상례의 처음과 끝에는 곡을 하였으나, 주검을 운송할 때에는 노래와 춤, 음악이 합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와 13년 (673)에 김유신의 장례를 치룰 때 군악대들을 백 명씩이나 동원하여 북을 치며 피리를 불고 음악을 연주 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화랑이었던 해론(奚論)의 전사에 대하여서도 화랑들은 긴 노래를 지어서 조의를 표하였을 뿐 아닐, 화랑 김흠운의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사람들은 양산가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그리고 화랑 관창이 전사하였을 때 관창이 용모와 같은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문헌뿐만 아니라 고분의 벽호에서도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춘 그름이 보이는데, 이는 무덤에 묻힌 주인공에 대한 장례의식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무용총과 안악 3호 고분 벽화에 악대 행렬도와 무악도가 있다. 그리고 팔청리 고분의 벽화에 보이는 잡기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만하다. 고분벽화의 가무 및 잡기에 관한 그림들은 피장자의 장례의식에 가무와 잡기가 동원되었으며 주악 행렬과 함께 운구했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무악도와 악대 행렬이 장례 행렬을 그린 것이 아니더라도 피장자의 죽음을 춤과 음악으로 위무하거나 또는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장례 의식 때도 그러한 음악과 춤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한 전통은 고구려 및 신라 시대의 풍속에 관한 기록에서 그대로 나타날 뿐아니라, 조선조의 기록에도 여전히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5년(1474년) 정월조에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서는 장례때 운구를 하면서 음악을 베풀고 아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몄을 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을 불러서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고 노래판을 아주 성대하게 벌이다가 밤이 이슥한 저녁에 비로소 파하였는데, 이를 '오시'라 하였다. '오시'는 곧 노래와 춤으로 죽은 이를 즐겁게 하는 일종의 축제형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하여 예조에서는 이러한 관행을 금지시키고자 왕께 상계하였다. 장례시에 가무음주하며 잔치처럼 밤새워 즐기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오랜 관행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적인 도덕률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까닭에 이를 금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금령이 즉각 내려진 것은 아니다. 뒤에 부녀의 장례에 한해서만 '오시'행위를 금하게 한다. 왕조실록 성종 20년(1489) 5월초에 보면, 부녀의 장례때는 술과 음식을 많이 차려두고 마을 사람들을 널리 불러 모아 광대짓을 하고 갖가지 놀이판을 벌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유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오시'를 위한 가무 음주뿐 아니라 연극적인 광대 놀이와 각종 잡희들의 두루 베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상례는 애통한 의례로서 엄숙성을 확보하고 있는 한편, 장례는 엄숙하기보다 요란하고 떠들썩하며 춤과 음악으로써 축제처럼 행하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조선조 성종 때 까지는 축제형식의 '오시'행위가 관행으로 널리 전승되었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조정에서는 상례의 도리를 들어서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건의도 하고 유시도 내렸던 것이다. 이러한 '오시'의 전통은 진도에서 전승 되는 '다시래기'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된다. 현재 보고되고 있는 진도 '다시래기'를 보면, 상주가 부모님의 상을 당해서 빈소 앞에 곡을 하고 있는데, 늘 밤만 축내고 있던 당신 아버지가 죽어서 입하나 덜었으니 얼씨구 절씨구 할 일이 아니가, 하는 말을 드러내놓고 표현한다. 그러면 상두꾼들은 '저런 버룻없는 놈이 있어'하는 말을 드러내놓고 표현한다. 의례의 뜻과 놀이의 내용이 상반되어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상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러한 웃음과 눈물, 엄숙성과 장난기, 의례와 놀이의 대립관계와 모순 양상이 상례와 장례 전통 속에서 어떻게 왜 유지되어 왔는가 하는 것은 흥미 거리가 아닐 수 없다.
4. 출상 전날의 빈 상여 놀이와 그 반의례성
장례와 관련된 놀이들은 출상 전날 밤에 이루어진다. 출상 전날은 '장사날' 또는 '장사드는 날'이라 하여 조문객들의 문상을 받고 상례에 관련된 주요 의례들을 두루 치룬다. 따라서 이 날 밤은 출상전야로서 주검이 집에 머무는 마지막날 밤이다. 그 동안 치뤘던 번거로운 의례들을 거의 마무리하는 때이다. 이 때는 상대적으로 상주 중심의 의례에서 문상객 또는 상두꾼 중심의 의례와 놀이로 바뀌어지는 전환의 순간이기도 하다. 호상인 경우 상두꾼들이 상가집에 모여서 빈 상여를 메고 상여소리를 하며 놀이를 벌이는 가운데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이 때이다. 상두꾼들은 술과 안주, 꼬지떡, 팥죽, 닭죽 등을 대접받으며 밤샘을 하는 가운데, 사위를 상여에 태우거나 어깨에 매달아 술과 음식을 울어 내는가 하면, 장난기가 많은 상주 친구가 나서서 거짓 상주 노룻을 하며 곡을 하고 가당찮은 넋두리를 하거나, 문상을 몇차례 거듭하여 상주를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안동 지역에서 조사한 '대돋움' 사례 하나를 보기로 들고1)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다. 자료를 제공해 준 저전동의 앞소리꾼 조차기 할아버지는1) 6·25 동란 전에 마을 거리 모퉁이에 사는 의관노인과 현재 손자가 판사인 동기씨 어른댁에서 초상이 났을 때 대돋움을 했다. 그리고 동란 뒤에 대구까지 초빙되어 가서 대돋움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보고되는 자료는 앞소리꾼으로서 겪은 그의 대 돋움 경험을 구술한 것이다.
대돋움은 가정이 조금 나은 집이라야 하고 웬만한 집에서는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의 나이가 7, 80을 넘고 상주 나이가 한 50이 되며 가정이 유복한 경우에 동네 사람들이 의례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껏 놀이판을 벌인다. 출상 전날 저녁에 상두꾼들이 모여서 주검을 싣지 않은 빈 상여를 메고 앞소리를 메기며 출상할 때와 같이 상여소리를 부른다. '내가 너희들 자랄 때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가며 잘 키웠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를 섭섭히 보낼 수 있나?' 하는 그런뜻으로 대돋움을 한다고 했다. 대돋움을 하게 되면 상주와 그 친척들은 상두꾼과 마을 어른들을 정식으로 청한다. '사돈의 팔촌까지 청한다.'고 했다. 대돋움의 흥은 앞소리꾼이 하기 나름으로 신명이 나면 상여를 메고 춤을 추기도 한다. 앞소리를 들으면 우습기보다 구슬프다. 재미라는 것은 슬픈 것을 마음에 와 닿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대돋움은 순전히 웃기는 난장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울리는 정서적 공감의 재미도 함께 하는 것이다. 더러는 상주가 다른 사람들에게 재력을 뽐내려고 대돋움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돋움은 상주 치장이고 돈 자랑"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어떤 집은 하고 싶어도 재력이 없어서 못하는 까닭이다. 대돋움을 한다고 앞소리를 메겨 달라고 연락이 오면, 저녁을 일찍 먹고 준비를 한다. 상가 마당에 쳐놓은 차일 등을 치우고 상두꾼 24 명이 상여를 멘다. 대돋움때 상두꾼이 모이면 주안상을 차리고 수건·장갑·신발·담배·양말·멕고모자 등을 준다. 대돋움을 '상주치장'이라고 하는 데에는, 상주 자신이 재물을 벌어서 쓰는 경우보다 돌아 가신 어른이 벌어놓은 재물을 상주가 자기 재물처럼 혜프게 쓴다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하다. 곧 "수건 쓰고 벌어 놓으께네 쓰봉때기(양복장이) 다 쓴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아버지는 수건 쓰고 땀 흘려가며 벌어놓으니 양복 입은 아들 손자 놈들이 호강하며 흥청망청 써 버린다는 것이다.
대돋움할 때 부르는 앞소리 사설은 운상힐 때 부르는 상여소리와 같으며, 상여도 운상할 때와 똑같이 꾸미되 관만 싣지 않는다. 앞소리꾼은 처음에는 밑에서 앞소리를 메기다가 나중엔 상여 위에 올라서서 메긴다. 상두꾼들이 뒷소리 받을 때는 손을 좌우로 벌려 위로 굽혔다 펴며 춤을 추기 예사이다. 이 때 상주는 재배하고 돈을 놓고 상여 옆에 선다. 장난을 치는 사람들은, 상주가 입은 상복은 차마 뺏어 입지 믓하고 이웃에서 상복을 얻어입고 와서 상주 옆이나 앞에 서가지고서 상주 행세를 하며 넋두리를 한다. "아이구 원통치, 시원치!"하면서 엉뚱하게 넋두리를 하며 곡을 하면, 상주가 지팡이로 떠밀어 낸다. 그러면 곧장 다가와서 "내가 상주할께" 하고 거짓 상주 노룻을 계속한다. 더 짖궂은 사람은 안상주처럼 삼베 치마를 차려 입고 뒤뚱뒤뚱 걸으며 곡을 하는 척하다가 큰 소리로 넋두리를 한다.
"아이고 아이고 그나 저나 잘 죽었다, 잘 죽었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만 사랑차지 내차지래도."
"처마끝에 놋요강을 이제 누가 왜 달라노(달라고 하느냐)?"
"속이 다 선 하지!"
상주가 친구들의 곡 소리를 들어보면 웃어른들 보기에 그냥 들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민망스럽다. 마을 사람들한테는 짚었던 상장으로 밀어내거나 때려서 쫓기도 하지만, 더러는 먼 데서 온 손님이 거짓 상주 노릇을 하며 장난을 치게 되면 지팡이로 때릴 수도 없어서 손을 내저으며 만류를 한다. 그러면 "아이구 내 자슥 측은도 하지! 이렇게 헛것을 보고 손짓을 다하네" 하면서 우스개 소리를 한다. 또 정지(부엌)에 가서 쌀뜨물을 한 바가지 떠와서 상주에게 "한 잔 먹어라! 내도 상주고 니도 상주고 나도 먹어야 되고 니도 먹어야 되잖나!"하며 쌀
뜨물을 권하며 상주를 놀린다. 저녁 상식을 빈소에 차렸다가 상 아래 내려 놓으면 장난끼있는 친구들이 다 먹어버리기도 한다.
상가에 가서 장난 잘 치는 녹전사람이 있었는데, 술 잘 먹고 상주 놀리기를 즐겨 했다. 한 번은 상가에서 장난을 시작하는데, 상주가 짚었던 상장을 뺏어 짚고 두건을 빼앗아 쓰고는 빈소를 드갔다 나갔다 하며 "에고 답답워레이 이래가주고 어에 사노?"하면서 곤두박질을 치는 바람에 한편으로는 상주를 울리고 한편으로는 문상객들을 웃겼다고 한다. 또 우는 상주를 웃기려고 '청춘가'를 부르며 노랫가락에 맞추어 춤도 추었다.
노세 젊어서 놀아 늘어지면 저래 된다.
우리 신세 젊은 시절에 굽이 굽이 춤을 추고
저다지도 늙으셔서 시상만사가 다 귀찮탄데이
아이고 아이고
이히이 여- .
큰방 차지 내 차지
춤은 늘싸 좋은 춤이지마는‥‥
이러한 사설의 청춘가 가락에 맞추어 상주의 괄을 붙들고 춤을 추려고 했다. 상주가 안출려고 하는 걸 억지로 붙들고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좋지? 선하지? 어에 됐노? 이렇게 좋은 줄 난 몰랐다!" 하고 우스개를 계속했다. 상주는 같잖아서 화를 낼 수도 없고 난감해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갖은 애를 썼다. 예로 보면 참 막되먹은 짓 같지만, 호상을 당한 경우에는 상가의 어른들도 이러한 놀이를 묵인하며 은근히 즐긴다.
예에 어긋나는 놀이를 묵인하고 즐기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의례 절차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다양한 놀이를 통해서 인간적 본성을 숨죽이는 까다로운 규범과 도덕률의 역기능을 떨쳐버리고, 의례의 형식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 진실과 삶의 이치를 여러 모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공감은 다분히 반의례적인 것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식화된 의례는 어디까지나 지배적인 규범이므로 이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다. 의례 자체를 거역하거나 바꾸는 일은 쉽사리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의례를 존중하는 테두리 안에서 놀이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 때 하는 놀이는 자연히 반의례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장례에는 의례와 반의례가 양립하게 마련이다. 반의례성은 장난을 가장하거나 우스개 소리인 양하면서, 죽음 속으로 빠져드는 슬픔의 의례를 삶의 신명으로 되돌려놓는 흥겨운 놀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둔 의례의 엄숙성과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관행들의 양면성에 관해서는 기어츠(Clifford Geertz)의 주장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발리 사람들의 장례를 거론하면서, 장례식은 규범적으로 판에 박힌 의식 절차들을 자질구레하계 빠짐없이 지키고 바쁘게 구는 상주의 의례와,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일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의식이라는 이름 아래 시끌벅적한 관행들 속으로 파묻어버리려고 하는 이웃 사람들의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1) 상주는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며 엄숙한 의례를 행하고자 한다면, 상두꾼들과 조문객들은 상주의 삶을 염두에 두고 사별의 슬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놀이들을 벌이는 것이다. 상례가 의례와 반의례성을 맞서 있는 까닭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상주를 죽음의 의례에 몰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삶의 본성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사랑 차지 내 차지'라는 거짓 상주들의 넋두리는 특히 이러한 인식을 부추킨다. 부모의 생존은 기쁜 일이지만 자식으로서 정성껏 시중을 드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부모의 죽음은 슬픈 것이되 이제 스스로 가장이 되어서 부모 노룻을 한다는 것은 삶의 새로운 희망이자 보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례를 계기로 상주는 곧 자식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가장권을 획득하는 보람을 함께 누리게 된다. 반의례적인 놀이들은 상주로 하여금 이러한 기대감을 자극시키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상 전날 밤의 빈 상여 놀이는 죽음의 의례 속에서 삶의 전망을 펼쳐보이는 반의례로서 맞서는 가운데, 규범적으로 굴레지워진 의례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생산적 구실을 하는 것이다.
5. 빈 상여 놀이의 다양한 이름과 그 구실
그동안 경상도 일대를 현지조사 한 결과,1) 우선 빈 상여 놀이에 관한 명칭이 지역마다 차이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북 안동 지역에서는 '대돋움' 또는 '상여돋움'이라 하여 상여메는 일의 흥을 돋우어 준다는 뜻이 있다. '대돋움'의 '대'는 곧 상여틀을 말한다. 상여의 신명을 돋우어 주어서 비통한 상가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상두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상여를 메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는 뜻이 갈무리되어 있다. 경북 영덕 지역이나 군위 지역에서는 특별한 명칭이 없다. 영덕은 상여를 메고 놀리는 일보다 사위나 상주를 달아메는 놀이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고, 군위에서는 그런 전통이 더욱 약화되었다. 따라서 '상여 를 메는 일과 관련한 놀이 명칭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경남 남해 지역에서는 출상 전날 상여를 메고 하는 놀이를 '상부 놀림'이라고 하거나 '상부 어른다'고 하며, 서천에서는 '화이 어른다', 합천에서는 '행상어른다' 또는 '생여 어른다', 밀양에서는 '생이 어린다'는 표현을 썼다. 구체적인 표현은 다소 차이를 보이나, 한결같이 상여를 놀린다는 뜻을 지녔다는 점에서 일치를 보인다. 지역에 따라 상여를 상부·화이·행상·생여·생이라고 하며, 놀린다는 말을 '어른다' 또는 '어린다'고 하는 차이를 지녔을 따름이다. 따라서 남해의 '상부 놀림'이란 말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적절히 나타내는 명칭이다. 그런데, 어른다는 말을 순전히 놀린다는 뜻으로만 볼 수 없다. 슬픈 감정이나 화난 마음을 달래어서 기쁘게 해주는 일을 어른다고 한다. 따라서 상여를 어른다는 것은 상여를 놀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상여를 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위무하는 일이기도 하다. 상여 놀림을 통해 상주의 슬픔을 달래는가 하면 돌아가신 분의 영혼도 위무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북 지역의 '대돋움'은 상례의 침울한 분위기에 주눅들어 있는 상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신명을 되살리고 생명력을 부추기는 뜻을 갈무리하고 있다면, 경남 지역의 '상부 놀림' 또는 '생이 어름'은 상여를 타고 저승을 가는 죽은 이의 영혼을 위무하고 기쁘게 하여 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장례놀이가 가지는 의미나 기능은 어느 지역이든 비슷하지만, 특히 그 명칭에서 부각된 의미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지 어른들이 말하는 장례놀이의 의미와 정리과정에서 분석되는 장례놀이의 구실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로서 '진혼'의 뜻과 '오시'의 뜻이 있다. 그래서 '망자가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하루 잘 놀다 가라'는 뜻으로 장례놀이를 하고, '그러면 반드시 뒤에 보살핌이 있다'는 공리적인 면까지 염두에 두기도 한다. 둘째, 상주로서 '망자의 저승길을 즐겁고 기쁘게 해 주는 것이 마지막 효도'라는 뜻에서 장례 놀이를 한다. 장례놀이도 일종의 효행의 하나이되, 다만 다른 효행은 가난한 아들의 고난과 지극한 정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는 그 반대이다. 오히려 상주로서 식음을 전폐하고 곡소리를 높이는 길을 택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유복한 상주가 상두꾼을 불러다가 한바탕 놀이판을 벌이며 흥청거리는 일을 통해서 효행을 하는 셈이다.
세째, 상례 기간 계속되는 금기와 슬픔으로 억눌려 있는 기분을 운구와 더불어 해소하기 위하여, 출상 전날 장례놀이를 계기로 삶의 국면으로 전환하는 구실을 한다. 출상 전날 밤에 이 놀이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음날 아침 출상을 앞두고 상가의 국면 전환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인 것이다. 네째, 죽음에 관한 인식으로서, 죽음은 이승의 종말이라는 점에서 비통한 일이지만 저승에서 다시 나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점에서는 축복해야 할 일이다. 1) 따라서 이승의 죽음을 슬퍼만 할 수 없고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생하는 데 따른 축복의 의식도 필요하다. 빈 상여 놀이가 축제형식을 띨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수서』를 비롯난 옛 문헌의 기록들과 진도의 운구 양식을 통해서 고대의 축제식 장례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 놀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섯째,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확인하고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부추켜주는 구실도 한다. 오랜 상례 기간 줄곧 빈소를 지키며 곡을 하고 음식을 금한 채 슬픔에 빠져들게 되면 산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없다. 출상을 앞두고 산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우스개와 노래, 모의적인 성행위와 출산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삶의 욕망을 되살려 주는 것이다. 여섯째, 현실적으로 상여를 미리 꾸며서 준비를 하고 상두꾼들을 동원하여 운상 연습을 함으로써 다음날 운구에 차질이 없도록 점검하는 실제적 구실을 한다. 사전에 상여의 부품들을 점검하고 상여꾼의 동원을 확인하는 것은 다음날의 운상을 순조롭게 하는 일이다.1) 그리고 상주들로부터 돈을 뜯어 상두계의 기금을 모으는 일도 현실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이 밖에도 부모나 장인 장모가 탈 상여에 상주나 사위를 먼저 태우고 상여를 놀림으로써 노소 관계의 도덕률을 뒤집어 엎는 풍자적 구실을 하며, 유교적으로 규범화된 문상 절차나 상주의 도리를 놀림감으로 삼아 장난화함으로써 인간적 본성을 제약하는 상례의 모순을 비판적 으로 공격하는 구실도 한다.
그런데 이런 놀이를 반드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선 대돋움이나 상여 놀림을 '돈 많은 사람들의 돈 자랑'으로 인식하거나,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서 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장례놀이를 한갓 '상주들의 뽐내기'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제 부모들이 '수건 쓰고' 땀흘려 번 재물을 그 자손들이 '양복 입고' 거들먹거리며 쓰는 일이라고 혹평하는 경우도 같은 인식에 근거한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놀이나 의식에 참여하는 일 자체를 불길한 것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상여를 처음 구입해 왔을 때, 상여가 온전한가 점검하기 위하여 상여 부품들을 모두 조립해 보고 또 마을에 비명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여에다 고사를 지낸 뒤에 역시 빈상여 놀이를 한다. 이때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여에 태움으로써, 노인의 수명장수를 비록 젊은이들의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타고자 한다. 새 상여를 제일 먼저 타고자 하는 까닭이다. 어떤 노인은 새 상여를 먼저 타고자 자살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 그런가 하면 어떤 마을에서는 빈상여를 타면 일찍 죽는다고 여기며 서로 타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해석이 상반되는 것이다. 앞소리꾼들은 자식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앞소리꾼 노룻을 포기하는가 하면, 앞소리꾼 노릇을 하면 일찍 죽는다는 관념 때문에 앞소리꾼이 나서지 않는 마을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행에 대한 의미 해석은 마을과 사람에 따라서 상당히 주관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가세가 넉넉하지 못하거나 형제들이 적어서 대돋움을 할 처지가 못되는 이들의 인식은 상대적으로 비판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6. 장지에서 벌어지는 '진사 모시기'와 '산다위'
장례를 축제로 전환시키는 놀이는 주검을 땅 속에 묻는 장지에서도 벌어진다. 놀이 방식은 제법 다양하지만 주로 사위를 대상으로 놀이를 벌인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먼저 최근에 조사한 충북 제천 지역의 진사놀이를 보기로 한다.1)
장지에서 봉분을 다지며 덜구를 찧는 동안 상두꾼들이 눈짓으로 의논하여 맏사위를 '진사 모시기' 하기로 작당을 한다. 합의가 되면 봉분의 마무리 작업이 끝나갈 무렵 장정 몇사람이 지목해 둔 맏사위에게 접근해서 '진사 모시자!'면서 느닷없이 상여줄로 사위를 묶어버린다. 그리고 짚이나 새끼로 아무령게나 만든 정자관과 안경을 씌운 뒤에 '이 댁에 새로 진사 났다'면서 '진사를 모시자'고 한다. 진사 모실 준비가 다 되면 몇사람이 앞에서 결박한 사위를 새끼줄로 잡아 끌고 상가집으로 향해 간다. 진사 행차답게 상두꾼 가운데 한 사람은 길에 앞장 서서 진사 행차하신다고 길을 비키라며 소리를 지르며 길라잡이 행세를 하고, 또 한사람은 길을 치도(治道)한다면서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기도 한다. 진사 행차를 대충 꾸며 보이는 것이다.
진사 노룻을 하는 사위는 상두꾼들이 새끼줄을 끄는대로 끌려가는 까닭에 순조롭게 처가로 돌아가지 못한다. 상두꾼들에 의해 도랑에 빠지거나 풀더미 또는 가시덤불을 지나가기도 해야 한다. 상두꾼들은 도중에 주막이 있으면 진사를 그리로 끌고 가서 술을 얻어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집까지 끌고 와서는 외양간에 소처럼 들여다 메놓고 진사님 진지상 올린다면서 소죽을 퍼준다. 그러면 장모나 처가 식구들이 쫓아나와서 술상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주안상이 흡족하면 사위는 외양간에서 곧 풀려난다. 요령 좋은 사위들은 진작 술값을 넉넉하게 내놓아서 어려운 고비들을 모면하기도 한다.
충남 부여 지역에서는 장지에서 '가래장구 지우기'를 한다.1) 장례 동안 쓸데없이 거드름만 피우며 사위 노룻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위를 지목해 두었다가 골려주는 놀이로서 '가래장치 지운다'고도 한다. 장지에서 하관을 하고 봉분을 만들며 회다지기를 하는 동안 상두꾼들은 사위 노룻에 충실하지 않는 이를 한 사람 정해 둔다. 이를테면 돈깨나 있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거드름만 피우며 절을 잘하지 않고 돈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앞소리꾼이 회다지 소리를 메기면서 사위를 여러 차례 찾아도 모른 척 외면하는 사위가 있다면 이 놀이의 대상자로 지목되게 마련이다. 늘 딴전을 피우며 손님처럼 어울리지 않고 장지 바깥으로 돌며 뺏뻣하게 구는 사위를 골라서 산역할 때 사용하던 가래를 사위 등 뒤에다 거꾸로 세우고서 가래줄로 꽁꽁 묶어버린다. 가래 양쪽에는 긴 줄이 달려 있으므로 가래자루를 대고 사람을 묶기 안성마춤이다. 그러면 사위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가래자루가 등을 지탱하고 있으므로 꼼짝거릴 수 조차 없다. 허리를 굽히거나 걸을 수도 없으므로 아무리 장사라도 곧 항복하게 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가래를 가로로 대고 팔을 벌려 묶기도 한다. 이런 경우 마치 십자가를 진 것처럼 보이는데, 운신하기에는 훨씬 좋다. 상두꾼들은 상위로 부터 술과 안주를 넉넉히 확보한 뒤에 가래줄을 풀어준다.
장지에서 벌어지는 이들 놀이는 주검의 매장과 함께 장례를 끝내면서 규범적 의례의 국면을 일상적인 삶의 국면으로 바꾸는 구실을 한다. 상두꾼들이 운구와 때나 다질 때에는 그래도 앞소리에 따라 후렴도 부르며 신명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해체한 상여 부분품들을 나누어 메거나 산역에 쓴 괭이와 삽들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내려와야 한다. 이 때 진사 모시기를 하면 그러한 무료함을 싹 가시게 하며 상가에 가서 한판 놀이와 술판을 즐길 수도 있다. 상가에서 초상을 치른 상주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장례까지 끝냈지만 그 동안 치루었던 엄숙하고 경건한 죽음의 의례에서 쉽사리 벗어날 계기가 없다. 그러나 사위를 진사 꾸민다며 새끼줄로 정자관을 만들어 치장하고 끌어다가 상가의 외양간에 들여다메는 등 짖궂은 행위를 하게 되면, 상가의 며느리와 딸들은 그 행색과 장난질을 보고서 곧장 웃음을 터뜨리게 마련이다. 이 놀이는 대돋움과 같은 빈 상여 놀이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가능하므로 상가를 초상집 분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다음으로 이 놀이의 대상이 사위에 한정되어 있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사위는 아무래도 처가 마을 사람들과 깊은 친교를 가질 기회가 적다. 사위의 인성에 따라 누구든 허물없이 사귀며 처가 사람들과 곧잘 장난을 즐겨, 쉽게 친숙해지는 사람도 있으되, 그렇지 못해 점잖만 빼는 사위가 있게 되면 서로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가까운 일가 친척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장가 들어서 초행길에 동상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친숙하게 되긴 했어도 동상례에 참여하는 시기나 범위를 고려하면 그 효과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거드름을 피우며 장지 바깥으로 돌고 있는 사위라면 더욱 친교가 문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진사 모시기나 가래장구 지우기 놀이를 벌이게 되면 처가마을 사람들과 곧장 익숙하게 되고 허물없는 사이로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장지에서 벌어지는 놀이들은 사위와 처가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허물없는 사이로 친숙하게 해주는 구실을 한다.
이 밖에도, 왜 하필 '진사 났다'고 하면서 진사를 꾸며서 모시는 놀이를 하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진사는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는다. 진사가 되면 관계 진출의 발판을 확보할 뿐 아니라, 지방의 유지로 존경받으며 지도자로서 군림할 수 있다. 따라서 진사가 났다는 것은 마을과 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장인 영감의 묘를 쓰자 그 자리에서 곧장 진사가 났다며 진사 놀이를 하는 것은 묘를 아주 대단한 명당에 썼다는 주술적 의미와 가족의 결손을 보완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유감주술의 하나로서 '묘를 쓰자 마자 진사가 났다'는, 명당의 금시발복 관념속에서 모의적인 진사 모시기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면서 집안의 가장이 죽은 데서 비롯되 가족적 상실감을, 진사 모시기 놀이를 통해서 회복하고자 하는 뜻도 갈무리 되어 있다. 가문을 이끌어 갈 젊고 유능한 인물 곧 진사를 새로 모셔옴으로써 죽음에 따른 결손을 충분히 메꾸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이는 금시발복의 명당에 묘를 썼으므로 가문에 큰 영화가 있을 것이라는 주술적 기능과 가족의 결손에서 오는 상실감을 극복시켜 주는 상징적 기능도 함껴 발휘 하는 것이다.
전경수 교수가 보고한 추자도의 '산다위'는1) 여자들에 의해 벌어지는 한층 적나라한 놀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추자도의 경우 장례 의식이 거의 여자들에 의해 치뤄지는 까닭에1) 장지에서 벌어지는 놀이도 여자들 몫이다. 부인들로 이루어진 상포계원들이 아침 일찍 장지에 모여서 지관의 지휘 아래 산역을 한다. 상포계원들은 세 갈래의 줄을 이루어 경쟁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노랫가락을 부르는데, 이것을 산다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남자 운상계원들이 운구를 해 와서 하관을 하고 상주들의 제사에 이어 봉분 작업을 마무리할 무렵이면 상포계의 부인들에 의한 산다위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이 때는 운상계의 남자들은 하나 둘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 상주들이 마지막 제사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상포계의 계장이 장지에 온 남성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목하면,1) 행동대원으로 약속된 건장한 여성 넷이서 달려들어 각기 남자의 사지를 하나씩 잡아챈다. 그러면 나머지 여성들이 우루루 달려들어서 남자를 쓰러뜨리고 몸부림치는 남자의 몸을 여기저기 다투어 만지는 것이다. 남자의 성기를 만진 여자는 "이 물건은 내꺼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여성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적 희롱의 말과 몸짓을 하며 한껏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위에 걸려든 남성은 여성들에 의해 거의 공중에 들려진 상태이므로 저항할 처지가 못된다. 계속해서 비명만 지를 따름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상포계의 계장이 놓아주면 얼마나 줄 것인가 하고 흥정을 한다. 말이 흥정이지 실제로는 계장이 요구하는 금액으로 정해지게 마련이다. 산다위에서 풀려나는 보석금이 결정되면 비로소 땅에 내려지고, 그와 함께 약속한 돈을 계장에게 건네줌으로써 산다위는 끝난다. 장례의 마지막 순서인 평토제와 산신제가 올려지는 동안 약 30분간에 걸쳐 산다위가 진행된다.
산다위를 직접 겪기까지 한 전경수 교수는, 산다위를 한 남자와 여러 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상징적 의미의 윤간 행위로 해석한다. 이것은 곧 죽음과 장례를 통해 잃어버린 공동체 성원을 대체하는 상징적 생명 생산 행위로 이해되며, 장례식이 한 개인의 인생 고비에서 겪는 통과의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의식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세계관적 인식 아래 공동체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생산적 구실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1) 장례식과 같은 죽음의 의례에서 남녀의 성행위를 노래하고 출산을 연출하는 일은 산다위에서 새삼스럽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다시래기의 보고와 덜구소리의 분석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거론한 연구가 있으므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7. 죽음의 의례를 극복하는 성적 욕망의 상징
정병호 교수에 의해 보고된 진도의 다시래기는1) 한층 적극적으로 성회를 즐기고 새 생명의 출산 과정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놀이를 펼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다시래기의 첫 거리인 '거짓 상주 놀이'는 다른 고장의 문상놀이를 한층 극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전개한다는 수준이지만, 둘째 거리인 '거사사당 놀이'는 거사의 마누라인 사당을 둘러싸고 남편인 거사와 중이 함께 성적 관계를 가지는 데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 형식과 내용이 모두 파격적이다. 사당은 봉사 남편 몰래 중과 관계를 맺어서 아기까지 배게 되며, 사당이 아기를 낳으면 그러한 내연의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마침내 중과 거사는 아기를 두고서 서로 자기 아기라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인다.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몸짓들이나 주고받는 사설들이 아주 원색적이어서 여성들은 구경꾼으로 참여하기 거북스러을 정도이다. 몇 대목 보기를 들어보면 남녀간의 성적 희롱이 어느 정도 노골적인가 짐작할 만하다. 사당이 소대변을 가린다는 핑계로 장님 남편 몰래 중을 만나려고 들락날락거리다가 거사 남편이 이를 두고 채근하여 따져 묻는다. 그러면 사당이, '오줌은 앞구멍으로 나오고 똥은 뒷구멍으로 나오는데 어찌할 것이요.'하고 변명을 하고, 거사는 '참 그놈의 구멍 묘하게도 생겼다.'하고1) 응수를 한다. 거사 남편을 억지로 내쫓은 사
당은 중을 불러들여 포옹을 하고 중은 사당의 배를 어루만지며 뱃속의 아이를 확인하는가 하면, 사당은 중을 끌어안고서 "낮에 보아도 내 이삐/ 밤에 보아도 내 이삐 이삐 이삐/ 내 이삐 그란에도 이쁜 것이 그것할라 달려갔고"라며 노래를 부르다가 중의 성기를 슬쩍 만 지기까지 한다.1) 이러한 성희는 산다위에 비하여 한층 적극적이자 노골적임을 알 수 있다.
무덤의 봉분을 다지면서 부르는 덜구소리의 내용도 다시래기의 사당 거사 놀이와 같은 성회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차기 할아버지는 덜구소리로 '훗사나 타령'을 부르는데,1) 행실 나쁜 여자가 남편이 외방 장사 나간 사이에 이웃에 사는 간부 곧 훗사나를 불러들여 정사를 벌이다가 이를 눈치챈 남편에게 들켜 용서를 받는 서사적인 내용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간부가 뒤주 속에 숨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대목은, 마치 배비장전에서 계교에 빠진 배비장이 애랑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넋이 빠져 그녀와 사랑을 즐기려다가 알몸으로 피나무궤에 숨었다가 혼줄이 나는 내용과 홉사하다.1) 훗사나 타령에서 여자가 간부와 놀아나는 순간을 읊은 대목을 옮겨 보자.
무자비개 도둠놓고/ 인조법단 전주세루/ 훌훌이 벗어놓고/ 분통같은 젖을쥐고
/ 전통같은 팔을비고/ 원앙금침 잣비개에/ 둘이몸이 한몸되어/ 장포밭에 금자라
가놀듯이/ 아기자기자기자기 도등실 잘도논데이1)
조동일 교수는 훗사나 타령을 희극적 서사민요의 갈래로 다루면서 장례가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에서 거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희극적인 노래가 필요하다는 역설이 성립된다면서, 지나치게 엄숙하고 침통해지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좋지 않은 일이므로 산 사람을 살리는 삶의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훗사나 타령과 같은 삶을 다루는 민요를 부르는 것은 장례가 죽음 위한 것으로만 이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한다.1) 그런데 삶의 노래가 성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특히 주목을 끈다.
성과 죽음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성은 생명을 잉태하지만 죽음은 생명의 상실이다. 동시에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의 성적 결핍을 초래한다. 부부간에 어느쪽이 죽든 살아남은 쪽으로 봐서는 성의 상실을 가져온다. 따라서 성적 욕망에 따라 도덕률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고 적나라한 성행위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죽음의 절망을 삶의 신명으로 바꾸어놓고 성적 결핍을 충족시키며 성의 상실을 보완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덜구소리로 훗사나 타령을 부르는 것은 다소 엉뚱한 짓처럼 보이지만 죽음의 슬픔에 몰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고양시키며 생명의 기쁨을 되찾아주는 격조높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1) 마이어호프(Barbara Myerhoff)는 기어츠(clifford Geertz)의 연구를 거론하면서, 장례식이 인간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일반적 관점을 거부하며 주검과 그 운명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해방되어 우리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1) 죽음의 숙명을 거부하고 생명의 길을 환기시켜주는 것이 장례식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장례식에서 성이 노래되고 연행되는 것은 가장 장례식다운 것이라 해도 좋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아 장례 현장에서 성을 구가하며 생명의 기쁨을 즐기는 양식은 실제 장례에서뿐 아니라 허구적으로 형상화된 탈춤 속에서도 두루 보인다.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긍정하는 것은 탈춤의 한결같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탈춤에서 노장과 취발이, 샌님과 포도부장, 할미와각시의 대결에서 취발이와 포도부장, 각시가 승리하는 것은 곧 겨울과 여름의 싸움에서 여름이 승리하는 굿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겨울과 여름은 곧 죽음과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삶을 긍정하는 의미를 지닌다.1) 한층 구체적으로 죽음의 현장에서 성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탈춤으로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신할애비 과장을 들 수 있다. 신할애비는 미얄할미 주검을 앞에 두고서도 적극적으로 성을 밝힌다. 이를테면 다음 대목 같은 것이 좋은 보기이다.
도끼: 이왕에 나 누님 맹길라구 아버지도 옹색 풀던 구녁은 시방 입때 살았어.
신할해비: 뭐 거기 살았어. 어디 만져보자 어디 만져봐.1)
아들 도끼와 신할애비가 죽은 미얄할미의 성기를 보고 대화를 주고 받은 대목이다. 다른 채록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부자간에 대화를 나눈다.
도끼: 아버지- 여기는 아즉까지 따뜻하구려
신할애비: 어데 보자
도끼: 여기가 아버지 좋아하던 데구려
신할애비: 암- 너이들이 나온 데로구나.1)
아내와 어머니의 주검을 앞에 두고 부자는 오직 성기와 성행위에만 관심이 있다. 뿐만 아니다. 아들 도끼는 누이에게 찾아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러 가서도 줄곧 성적 수작만 한다. 누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머니의 붐을 전하러 온 남동생을 두고서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 석 삼년이 되어서 생과부 노룻을 할 수 없어, 이웃집 남정네들과 여러 차례 바람을 피우며 옹색을 풀었다는 것이다. 도끼는 "아이구 그 개평이면 날 좀 주지, 시방 대볼랴오" 하면서 누이에게 성행위를 하려고 대들기까지 한다. 이처럼 미얄의 죽음을 두고 또는 장례를 치르면서 줄곧 성기와 성행위만을 거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와중에 부자간 및 남매간에 성적 욕망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다. 어느 쪽도 도덕적으로 용납할 일이 못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할애비는 할미를 잃었고 누이는 남편이 가출하였으므로 한결같이 옹색을 느낀다는 점이다.
할미의 죽음을 통해서 영감과 누이는 물론, 도끼까지 성적 결핍을 새삼 느끼며, 성을 충족시키려는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실은 무엇 때문일까. 죽음이 단순히 성의 상실로 인식되는 까닭만은 아니다. 죽은 할미를 앞에 두고서 도끼가 "나 누님 맹길라구 아버지도 옹색 풀던 구녁은 시방 입때 살았다"고 하거나, 할미의 샅을 가리키며 "여기는 아즉까지 따뜻하구려, 여기가 아버지 좋아하던 데구려" 하자, "암- 너이들이 나온 데로구나" 하는 말들은 얼핏 허튼 수작이자 반도덕적 노닥거림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죽음의 그늘 속에서 삶의 생명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할미는 죽었는데 성기만 아직 살아 있다거나 따뜻하다는 것은 허튼 수작일 수 있다. 그러나 할미의 성기는 아들 도끼와 도끼의 누이를 만드려고 신할애비와 성행위를 하던 곳이자, 신할애비가 자녀들을 두고 이르는 말처럼 도끼 남매들을 출산하던 곳이므로 별도의 의미를 지닌다. 도끼와 도끼 누이는 아직 살아있을 뿐 아니라, 서로 성적 욕망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할미는 죽었지만 그가 출산한 생명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결국 할미의 생명은 자신이 낳은 자녀들을 통해서 계속 되는 것이다.1)
스완톤(J. R. Swanton)이 보고한 하이다(Haida)족의 장례를 보면, 죽은 자의 아내는 장례를 마친 뒤에 다른 씨족의 아이들을 모아서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는 혼인을 위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하이다족은 족외혼을 하는 까닭에 다른씨족의 아이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이 잔치는 좀더 재산이 많은 사람과 혼인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의 새 남편과 오랜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은 목적 때문이다. 이 때 남편의 장례를 치른 부인은 마치 사춘기의 소녀처럼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신할애비 과장을 분석한 조동일 교수는 죽음과 성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포착 한다. 죽음은 생을 파괴하고 성은 생을 창조하므로 죽음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이기 때문이다. 도끼는 어머니가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 어머니의 성기는 살아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결국 어머니의 죽음과 자기생명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끼나 도끼 누이는 어머니의 성행위로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 성적 충동을 강하게 느끼고 있으므로, 어머니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1) 결국 성이야 말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을 창조한다. 성적 욕망이 곧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장례 현장에서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죽음을 부정하고 생명을 긍정하는 것이자, 죽음에 의해 초래된 인명 손실을 왕성한 성적 욕망을 통해 여러 자녀들을 생산함으로써 충분하게 보완하고자 하는 뜻이 갈무리되어 있다. 전경수 교수가 추자도의 산다위라는 것은 죽음과 생명을 연결한는 장례과정의 공동체적 메카니즘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한 남자와 여성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윤간의 특수성을 들어서, 한층 풍요로운 생산성을 기약하는 산다위의 상징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고1) 한 해석도 결국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진도 다시래기의 '거사 사당 놀이'에서도 단순한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상징적 성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아기의 생산과정을 직접 연출하며 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싸움으로까지 발전한다는 사실을 별도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당과 중이 놀아나다가 남편인 거사가 돌아와서 중놈냄새가 난다며 앞못보는 눈을 희번득이며 중을 찾는 절박한 상황에, 사당은 진통을 시작한다.
사당: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거사: 왜 갑자기 배가 아픈가
속이 꾀잉께 꾀배가 아픈 것 아닌가.
사당: 산기가 있나봐요.
(워매워매 신음한다. 거사 허등지등 어쩔 줄을 모른다. )
가상제: 사정없이 찢어져나 버려라!
사당: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가상제: 한꺼번에 쌍등이나 두서넛 쑥 빠져 버려라.
사당: 영감 어서 애기낳게 문이나 좀 하시요. 아이고 아이고!
거사: 그래 그래.1)
사당이 배가 아프다며 진통을 하자 거사는, 중을 숨겨 놓고 뒤가 캥기니 꾀배를 앓는것이 아닌가 의심을 한다. 사당의 방에서 중의 신을 찾아들고서 중을 찾아내기만 하면 담뱃대로 눈을 쑤셔버리겠다며 분기충천하던 거사로서는 사당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므로 그런 의심을 품을 만하다. 그러나 해산 기미가 있다는 말에 태도가 돌변한다. 해산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몰라 허등대며 쩔쩔 매다가 사당이 애기낳게 경문이나 좀 외우라고 하자 즉 석에서 동의하며 경문을 외운다. 이런 와중에 상주 노룻을 하는 가상제의 태도는 아주 냉정할 정도로 딴판이다. 그들의 사랑싸움에는 거의 끼어들지 않다가 해산 기미가 있다고 하자 적극 개입을 하는 것이다. "사정없이 찢어져나 버려라"하는 걸 보면 사당이 겪는 해산의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기만 얼른 나오라는 재촉이다.
게다가 "한꺼번에 쌍등이나 두서넛 쑥 빠져 버려라."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출산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이다. 죽음이 초래한 인명 손실에 대한 과도한 보상욕구가 몇 쌍등이를 한꺼번에 낳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기의 부모인 사당과 거사 또는 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가상제에 의해서 그러한 다산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소흘하게 다루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가상제에 의한 다산의 기대는 죽음의 손실을 직접 겪은 당사자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도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아기가 출산하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당:애기 낳다. 애기 낳다!
중 : 이것이 바로 내 새끼다
거사:여기 애기 도둑놈 있구나. 너는 누구냐. 내 새끼다 이놈아.
거사와 중이 애기를 가지고 옥신각신한다.
가상제: 사람죽은 집이서 애기나 둘러 가지고 도망가자.
(이로써 거사 사당놀이가 끝난다. )1)
아기가 출산하자 산모의 산후 조리에는 아랑곳 없이 거사와 중이 서로 자기 아기라면서 다투는 상황이 벌어진다. 잡기만 하면 중의 눈을 멀게 하겠다는 거사의 간부에 대한 분노도 사라지고, 사당과 놀아나다가 남편인 거사에게 꼬리가 잡혀 벌벌 떨고 있던 중의 본 남편에 대한 공포도 싹 달아나버린다. 오직 아기에 대한 욕망만 거칠게 부각된 것이다. 다시래기에서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아기다툼은 죽음의 현장에서 갓 태어난 생명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 놀이의 결정적인 의도는 아기 차지가 다툼의 주체인 거사와 중이 아니라 가상제의 몫이라는 사실에서 밝혀진다. 거사와 중이 서로 아기의 아비임을 들어 아기를 차지하고자 다투지만 이도 저도 아닌 가상제가 아기를 차지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사람 죽은 집이서 애기나 둘러 가지고 도망가자"고 하면서 가상제가 아기를 안고 가는 데에서 이 놀이는 끝이 난다. 사당을 두고서 거사와 중이 벌이는 삼각관계의 사랑 다툼은 순전히 상가의 침울한 분위기를 명랑한 놀이판으로 전환시키거나 사람들의 성적 욕망을 대리 충족시키고자 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 죽은 집에 아기를 태어나게 해 줌으로써 죽음의 결손을 새 생명의 출산으로 극복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가상제가 차지하는 데서 놀이가 끝난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분명해진다. 새 아기가 누구의 것이든 죽음의 손실을 당한 상주의 몫이라는 점에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다시래기는 '다시 나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도 이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
8. 죽음의 그늘을 걷어버리는 삶의 놀이
장례는 죽음의 의례이다. 그러나 장례와 더불어 즐기는 놀이들은 의례와 함께 드리워진 죽음의 그늘을 걷어치우고 삶의 신명을 부추켜주는 구실을 한다. 다시래기에서든 산다위에서든 죽음의 자리에서 성을 즐기고 생명의 출산을 연출한다.1) 성은 인간의 생명력을 가장 활성화시키는 행위이자 새 생명을 공급하는 생산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죽음의 침울한 상황과 엄숙성으로 일관하는 의례의 경건함을 깨뜨리는 역설적인 놀이 행위를 통해서 죽음의 분위기에 몰입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더욱 건강하고 명랑하게 활성화시켜주는 구실을 한다.
질병과 죽음이 나약한 늙은이들의 것이라면 성행위와 아기의 출산은 생명력이 왕성한 젊은이들의 몫이다. 성행위와 새 생명의 탄생은 낡은 세대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뜻한다. 죽음은 상실이고 절망이지만 죽음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세대 교체는 곧 생산이고 희망이다. 낡은 세대가 차지하고 있던 가장의 자리를 젊은 세대가 물러받으면서 묵은 가풍을 혁신하고 집안을 활기차게 되살리는 생산적 계기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상놀이 가운데 '아부지 돌아가시면 사랑 차지 내 차지: 아부지 죽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지?'라고 하는 따위의 담론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순 있다. 유교적 의례에 맞서는 역설적 담론들은 상주들이 부모를 잃어버린 절망감에 빠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주체적인 집안 경영의 전망을 일깨워줌으로써 일정한 기대감 속에 삶의 의욕을 충전시켜주는 동시에, 도덕성을 표방하는 의례적 형식의 허울 속에 가려져 있는 생명 본성과 삶의 이치를 자각시켜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주를 웃겨야 문상을 잘한다"며 흉사에서 오히려 웃음을 부추키는가 하면, "혼례를 올릴 때 웃으면 딸을 낳는다"며 길사에서는 거꾸로 웃음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흔례 현장인 대례판에서는 이런 옛말의 논리를 파괴하고자 갖은 농지거리로 신랑신부를 웃기고자 애쓴다. 또 한번의 역설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의례 관련 옛말들과 관행들이 지닌 역설적 이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헌팅톤(Richard Huntington)의 다음 말을 새겨둘 만하다.
의례적 행위의 여러 요소들을 더 이상 옛날 미신 시대(superstitious era)의
유풍이라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생활이 지닌 보편적 논리
를 푸는 열쇠들이다. 혼례 식장에서 짐짓 싸우는 일들(mock battles)은 무지
한 과거 시기가 남긴 찌꺼기 문화들이 아니라 분리 기능을 담당하는 극적
표현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1)
그러므로 울음판을 웃음판으로, 침울함을 명랑함으로, 엄숙함을 익살스러움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죽음의 아픔을 해산의 진통으로, 주검의 매장을 아기의 출산으로 전환시켜 마치 장례 의식을 곧 아기의 출산 상황처럼 신바람나는 삶의 국면으로 뒤집어 놓는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장례놀이의 본디 뜻이자 건강한 삶의 슬기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 관련 놀이들은 유교적 도덕률에 입각해 보면 인륜에 어긋난다고 그 부당성을 지적할 만한 부분이 한둘 아닐 성 싶다. 그령지만 이 전통은 유교문화가 이 땅에 자리잡기 전부터 있었던 우리 민족 본디의 것일 뿐 아니라, 죽음을 극복하고 삶에 적응하는 인간 본연의 슬기에 토대를 둔 것이므로, 중세 이후에 형성된 도덕률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유교적 의례 전통에 따라 식음을 절제하고 삼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거나, 삼년 동안 빈소를 차려두고 상주 노릇을 하며 죽은 이와 더불어 죽음의 생활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사별의 슬픔을 웃음과 신명으로 바꾸어 놓는 이들 놀이들은 산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문화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1)
이제 장례 연구는 유교적 의례 절차의 규범성과 엄숙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반가에서 거행되던 전통 가례의 절차를 모르거나 그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여러 가지 의례 관련 정보들을 다양하게 일깨워주려는 지식 전달자 노룻에서 만족해서는 의례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다. 우리 겨레가 본디부터 지녀온 고유한 장례 민속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민중적 신명성과 민족적 삶의 슬기를 조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한층 긴요한 과제인 것이다. 지배층에 의해 바깥에서 들여온 외 래적인 의례의 규범과1) 달리, 자생적으로 형성 전승되어온 장례 관련 민속은 민족성과 민중성을 지니면서 한층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문화임을 새삼스레 인식할 수 있다.1) 자유와 풍요의 문화는 곧 삶의 문화이자 생명의 문화이다. 죽음의 의례인 장례민속을 통해서도 우리 민속은 생명문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1) 장례 놀이에는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명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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