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경제학의 역사] 7장 한계효용학파: 신고전학파의 시작

지은이: 홍 훈
자료: 《경제학의 역사》 (2007, 박영사)

※ 발췌식 읽기와 부분적 요약 등:

한계효용학파는 1871년에 한계효용 개념을 중심으로 가치이론을 다시 구축함으로써 현대경제학을 지배하고 있는 신고전학파에 초석을 제공한 경제사상이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신고전학파는 한계효용학파의 등장을 한계혁명으로 칭송하고 있다.

(...)

7.1 공리주의

한계효용학파의 핵심 개념은 한계효용이다. 우선 효용은 원래 상품이나 물체가 가진 객관적 유용성으로도 이해되다가 한계효용학파에 이르러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주관적 쾌락으로 그 의미가 정착되었다. 이 개념은 거슬러 올라가 에피쿠로소 등의 쾌락주의와 친화력을 갖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19세기 초 벤담의 공리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주2]

공리주의는 발라스나 멩거보다 제본스에서 두드러지지만, 한계효용학파 전체의 저류를 이루고 있다. 사실 한계효용학파와 신고전학파로 이어지는 주류경제학은 현재까지 사회철학 중에서 공리주의를 가장 절친한 반려자로 삼고 있다. 영미지역의 보수적 사회과학을 경제학이 대변해 왔듯이, 영미권의 보수적인 사회철학을 공리주의가 대표해 왔다.

  • 이런 이유로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를 부르짖은 롤즈(J. Rawls)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을 제시하면서 공리주의를 본격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 약간 이례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쎈(A. K. Sen)이 공리주의에 대한 대안 모색에 골몰한 것도 보수적인 사회과학에서 공리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반증한다.
벤담은 저서 《윤리와 법의 원리》에서 각 개인이 느끼는 쾌락과 고통을 사회 전체적으로 합산해 윤리 및 도덕, 법, 그리고 정책 등 개인의 행위나 사회적인 조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쾌락은 양(+)으로, 고통은 음(-)으로 계산된다. 이런 이유로 공리주의는 쾌락과 고통의 산술(calculus of pleasure and pain)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쾌락의 대상은 자동차나 아파트에서부터 국방이나 마음의 평온함 등 갖가지이며, 고통의 대상 역시 노동, 공해, 질병, 이별 등 다양하다.

노동가치이론이 객관적인 가치이론이라면, 공리주의와 한계효용이론은 주관적인 가치이론이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 차이점을 잠시 접어두면, 가치이론으로서 공통점이 있다. 노동가치이론이 모든 생산물을 노동으로 동질화한 것처럼, 공리주의와 효용이론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재화들과 악재들을 개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효용으로 동질화했다.

(...)

공리주의와 전통적 윤리의 가장 큰 차이는 쾌락이나 고통에 우선하는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이나 덕성의 존재를 공리주의가 거부한다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나 미덕 혹은 도덕 등을 옮고 그름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라는 감정들로 환원해 선험적인 도덕률의 존재를 부정한다. 고대로부터 이성과 감성, 윤리와 본능 등의 복합으로서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라고 상정되었던 인간의 자아를 공리주의는 감성 중심으로 단순화하거나 평면화했다. 이런 이유로 알레비가 지적했듯이, 공리주의는 당시에 ‘철학적 급진주의’로 평가되었다.

가령 공리주의에 의하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노인에 대한 공경이라는 도덕률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노인과 젊은이의 쾌락과 고통을 합했을 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양보하지 않는 것보다 적어도 장기적으로 낫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다른 예로 노예제의 폐지를 들 수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노예도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예제도하에서 주인과 노예가 얻는 투입물과 생산물, 나아가 이로부터 얻는 쾌락과 고통을 합했을 때 열등라기 때문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공리주의는 주장한다.

(...) 공리주의는 사회구성원에게 각자가 자신의 예상되는 쾌락과 고통을 명확히 알고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할 뿐이다.

공리주의의 이 같은 특징은 주류경제학과 부합된다. 우선 합리성 중 도구적 합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는 효용이론이나 신고전학파와 친화력을 갖는다. 도구적 합리성은 주어진 목표에 대한 효율적인 수단의 강구를 의미하므로, 이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목적이나 목표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를 배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구적 합리성은 이성에 대한 전반적 신뢰보다 범위가 좁으며, 배버의 가치합리성(Wertrationalität)과 구분된다.
  • 긍정적으로 보면 도구적 합리성은 가치의 사전적 서열을 거부하고 귀족주의를 배제한다. 가령, 누구나 대중음악보다 고전음악을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이유로 신고전학파 바이너(J. Viner)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낫다는 밀의 주장을 불완전한 공리주의라고 비판했다. 
  •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면 도구적 합리성으로의 편향은 몰가치론이나 불가지론을 낳아 개인의 행위나 사회의 질서에 대한 책임회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신고전학파가 실증경제학을 자부하면서 가치판단이나 정책을 과학적 분석이나 이론으로부터 엄밀히 구분해 경제학의 영역 밖으로 밀어낸 것과 연결된다. 그런가 하면 [:]
  1. 신고전학파는 자아단순하게 파악하면서 
  2. 모든 가치가 시장에서 판정되어 화폐가치로 환산된다고 본다. 이 입장에서는 시장의 수요만 있으면 매춘도 상관없다. 
  3. 이런 이유로 신고전학파의 도구적 합리성이 가치를 완전히 배제하는지 아니면 특정 가치를 가치의 배제로 위장하는지 분명치 않다.
ㅡ이 독자의 해석:
(1) 저자가 말하는 ‘자아의 단순화’란 다음과 같은 의미이거나 다음과 같은 의미들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1.1) 소비하고 소비를 통해 만족을 극대화하는 자아. 이러한 자아 개념 이외의 가치가 실종된다.
 (1.2) 소비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상품(그러한 상품 생산에 사용되는 자원)의 세계와 자아의 철저한 이원적 구분. 인간이 자신이 사는 환경 속에서 자아를 파악하는 세계관이 실종된다. 환경과 자원은 소비를 위한 대상물이나 수단으로서의 가치로서만 부각된다.
(3) “특정 가치를 가치의 배제로 위장한다”는 말은 가치를 배제한다는 입장이 그 내용적 함축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특정 가치를 옹호하는 것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

선험적 도덕률을 거부하는 공리주의는 인간의 덕성스럽거나 행복한 삶과 분리시켜 부의 생산, 분배, 소비를 연구하려는 경제학의 흐름과 궤도를 같이한다. 스미스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벌어져 있는 개인의 이익과 공동선 사이의 괴리는 한계효용학파에 이르러 인문과학으로부터 독립된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괴리로 인해 경제학이 도덕이나 행복 등 전통적 가치로부터 가일층 멀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행위의 근원적 동력이나 의도와 무관한 결과주의로 이어지면서 공리주의와의 친화력을 강화시켰다.

둘째, 쾌락이나 고통이 개인 차원에서 규정되므로 시장경제의 개인주의를 상정하는 주류경제학과 상통한다. (...) 또한 효용이든 후생이든 일차적으로 각 개인의 느낌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는 경제학과 밀착되어 있다. 이는 생계나 기본적인 필요 및 필수품에 대한 고전학파의 강조,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철학의 일반적 집착, 그리고 롤즈의 ‘사회적 일차재(social primary good)’ 등과 같이 재화나 가치들 사이의 우선순위 부여와 대비된다.

인간의 행동이나 실천과 관련해 신고전학파는 막연히 개인주의라기보다 근본적으로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삼는다. 또한 공리주의는 영미 사회사상의 핵심으로서 자유주의 중[에서도] 정치적 자유주의보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밀착되어 있다. 더불어 주관적 측면에 대한 강조로 인해 공리주의와 효용이론은 모두 인간관계보다 재화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둔다. 공리주의에서 사회관계나 사회구조는 규칙이나 규범[으로 축약된다].

(...) 벤담의 공리주의는 한계효용학파에서 만개했다. 물론 현대의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 그리고 특히 그것의 응용분야인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전개된 신고전학파의 논리를 기대효용이론(expected utility theory)으로 규정하는 다수의 견해는 이 점을 말해준다.

나아가서 경제학의 특성상 공리주의가 이미 스미스와 맬더스, 그리고 리카도 등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선 제도학파의 창시자 베블런은 경제학이 고전경제학 시절부터 이미 공리주의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경제학자 미르달(G. Myrdal)은 (...) 스미스가 노동을 주관적 고통으로 규정한 것을 공리주의로 간주했다. 이 점은 마르크스도 지적한 바 있다. (...) 그리고 고전경제학이 개별적인 차원이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의지보다 이익을 경제활동이나 정책 혹은 법령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역시 공리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 공리주의와 경제학의 차이 ...)


7.2 한계효용 개념

한계효용학파의 핵심 개념인 한계효용은 한계와 효용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한계효용학파와 신고전학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간단히 말해, 한계는 이들의 방법을 함축하고 있으며, 효용은 이들의 내용을 지시한다.

우선,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한계는 마지막 한 단위를 의미하며, 평균이나 총계와 구분된다. 한계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미적분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때부터 수학이 경제학의 방법으로 도입되었다. (...)
그런데 한계 개념이 무언가 체감하거나 체증하는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 이에 따라 주류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이나 한계생산물이 체감하는 상황에서의 효용 극대화나 이윤 극대화가 준칙으로 자리 잡았다. (...)

한계효용이나 한계생산물 체감의 법칙은 확고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한계효용 체감은 심라학의 베버-휘히너법칙(E. H. Weber, G. T. Fechner)에서 비롯되었다. (...) 한계생산물 체감은 자원과 조직의 대체성과 보완성 등 결합된 여러 요소들 사이의 상호압박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확고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 힘들다.

(...) 한계적 변화는 외부의 변동이나 충격에 대해 개인이나 체제가 미세하고 점진적으로 반응하고 적응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러헥 할 수 있음을 표현해 준다. 이렇게 보면 그 근거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한계 개념이 경제학에서 더업싱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경제학설사에서 상품이나 재화의 속성으로 지적되는 것은 유용성, 노동의 산물이라는 성격, 희소성 세 가지다.
  • 고전학파와 마르크스는 유용성을 물체의 객관적 실재로 보아 사용가치라 불렀으며, 희소성보다 노동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입장에서는 생산의 결과 혹은 소비의 대상을 재화(goods)가 아니라 상품(commodity)으로 호칭했다.
  • 이에 비해 한계효용학파는 물체의 유용성을 강조하되 이것을 개인이 물체에 부여하는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했다. 이 학파는 고전학파의 사용가치도 [주관적 의미로] 해석해 한계효용을 적분한 총효용으로 규정했다. 또한 노동의 생산물이라는 특징을 경시하면서 희소성에 역점을 두었다. (...) 결과적으로 희소한 쾌락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상품보다 재화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 재화라는 말의 어원 ...)

재화는 상품과 달리 주관적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윤리학의 대상인 선이나 좋음(good)과 통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점차 행복에 대한 추상적 논의를 도외시하면서, 재화는 점점 철학적 의미의 선 가운데 수단에 해당되는 외적인 선, 그중에서도 물질적 수단을 대표하게 되었다. (...)

(...) 한계효용학파에 이르면 인간의 근본적인 경제활동이 노동이나 생산에서 소비로 바뀐다. 이미 고전경제학도 소비를 경제활동의 최종목표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하면서 소비가 경제활동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의 출발점이며, 점차 적정량의 소비가 아니라 최대의 소비가 목표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주5]
[주5] 문제는[,]
  • 과연 자본주의의 운행이 소비를 목표로 하는지 아니면 소비를 수단으로 삼아 자아실현 등 이보다 높은 목표를 인간이 지향하는지 혹은 지향해야 하는지(칸트, 롤즈, 쎈), 
  • 자연을 완전히 인간의 전유물로 만들면서까지 소비를 늘리는 것이 이상적인지(환경주의자), 
  • 그리고 계급이나 계층 사이의 소비상 불평등이나 선전광고에 휘둘리는 소비자를 방관해야 하는지(베블런) 등이다. 
공리주의와 이에 근거한 신고전학파는 미국인의 소비에서 보듯이 이런 고민 없이 소비지상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이 소비가 핵심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효용이론에서는 소비자주권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경제영역에서 소비자가 보이는 합리적 행동이 정치영역에서 시민이 주권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중시된다. 또한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자가 현명하고 똑똑한 시민과 비슷하게 중요해진다.

(...)

생산이나 노동이 계급이나 계층과 주로 연결되는 데 비해, 소비나 효용은 개인 이외의 다른 사회적 주체와 연결되기 힘들다. 무론 소비나 효용이 집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근대 서양에서는 이런 집단성이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결국 공리주의와 마찬가지로 효용이론도 개인주의와 밀착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경제학에서 명시적으로 개인이 중심에 놓이기 시작한 것은 고전학파가 아니라 한계효용학파에서부터이다. 정치적 존재로서 개인이 시민으로 등장한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경제영역에서 개인이 경제인으로 등장한 셈이다. 효용이론이 등장한 이후, 치밀하게 개인의 행동이나 활동을 분석하고 이에 근거해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경제학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효용 개념은 신고전학파로 넘어오면서 점점 희석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기수적 효용에서 서수적 효용으로 ...) 이에 따라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선택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선택이론에서 애로우는 순서를 정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더구나 행동주의의 영향으로 새뮤엘슨이 수요를 심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관찰된 선택으로 파악하는 현시선호이론을 제시하면서, 서수적 효용마저 약화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폰 노이만과 모르겐스터언이나 세비지 등은 선호의 불변성이나 안정성 등 형식논리에 의존해 기대효용이론을 제시했다. 이 모형이 게임이론을 포함해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을 현재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 같이 효용 개념은 현재까지 상당히 희석되었다. 이런 이유로 한계효용 개념 중에서 효용보다 한계가 더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한계효용학파의 등장이 효용혁명이 아니라 한계혁명이라는 것이다. 한계효용학파의 등장이 효용혁명이 아니라 한계혁명이라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카르납은 《과학철학입문》(1966)을 통해 물리학에서 순서만을 따지는 비교가 수량으로 표시할 수 있는 비교로 나아간 것을 발전으로 규정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한계효용학파와 신고전학파의 가치이론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수량화에 대한 과욕이 자초한 후퇴이거나 인간에 대한 내용이 빈약해지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기에는 앞의 해석이 우세했으나 최근 연구는 뒤의 해석으로 기울고 있다.

먼저 후생경제학은 여러 개인들의 효용을 합산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으며, 이 숙제로 인해 기수적 효용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으로, 최근 20~30년 사이에 행동경제학, 실험경제학, 신경경제학 등을 중심으로 신고전학파 주변에서 서수적 효용이론이나 기대효용이론의 빈약함과 비현실성에 대해 반발이나 반성이 일고 있다.


7.3 고전학파와의 비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리카도 등 고전학파의 차액지대이론이 발전해 신고전학파의 한계생산성이론을 형성했다. 또한 고전학파에도 공리주의적 발상이 없지 않다. 따라서 다같이 주류를 형성했던 고전학파와 한계효용학파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고전학파에서 한계 개념은 토지와 지대에 국한되어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고전학파와 한계효용학파는 여러 가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고전학파와 비교해 한계효용학파으 특징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고전학파를 왈라지언 일반균형체계와 비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한계효용학파의 최종적인 귀결이 신고전학파이며, 신고전학파의 초석이 왈라지언 일반균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계효용학파의 모든 측면이 왈라지언 일반균형에 수용되지는 않았다. 우선 오스트리아학파의 논리는 여러 면에서 일반균형이론과 다르다. 또한 제본스는 개별시장의 거래에 초점을 맞추었고, 마샬은 일반균형이 아니라 부분균형을 강조했다. 더구나 최근 신고전학파는 게임이론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효용학파 중 현실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해 온 학자가 발라스이고, 적어도 1970년대까지 왈라지언 일반균형이 신고전학파를 지배했으므로 일반균형이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

첫째, 다루는 문제에서 고전학파가 자본축적과 경제발전에 초점을 두었다면, 한계효용학파는 자원배분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한계효용학파의 이런 문제의식은 교과서에 ‘희소한 자원의 적정한 배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고전학파를 이 같이 정식화한 사람이 영국의 경제학자 로빈스(L. Robins)였다. 여기서 자원이나 재화의 희소성이 신고전학파의 기본전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 차이로 인해 고전학파는 생산이나 공급, 그리고 분배를 중요 경제활동으로 규정한 데 비해, 신고전학파는 소비나 수요, 그리고 교환을 논의의 중심에 놓았다. 자본축적이라는 고전학파의 문제설정은 생산에 대한 강조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분배에서 계층이나 계급의 대립이 생산구조와 연결되어 고전학파의 사고틀을 이룬다. 이에 비해 자원배분이라는 신고전학파의 문제는 소비나 수요 측면에 대한 강조와 연계되어 있다. 소비자선택이 시장수요로 나타나고, 시장수요가 각 산업에서 생산량이나 투자에 대한 신호로 작용해, 자원의 산업간 배분을 결정한다.

신고전학파가 공급 측면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궁극적으로 수요 측면에 중점을 둔다. 또한 이 학파는 수요 측면에서든 공급 측며에서든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이런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개인들 사이의 교환이나 거래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교환 활동과 이로부터 얻는 이익을 중시한다.

둘째, 이런 차이로 인해 고전학파가 기호, 인구, 제도 등이 변동하는 동태적 경제를 염두에 두는 데 비해, 왈라지언은 이런 요인들이 주어진 시점에서 고정되어 있는 정태적 상황을 상정한다. 신고전학파는 고전학파가 가변적이라고 생각한 제반 요인들을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의 가정에 묶어 정태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고전학파는 경제가 도달하는 최종 상태나 균형이 아니라 그런 상태로 향해 가는 과정을 중시한 데 비해, 왈라지언은 과정보다 균형 상태에 초점을 둔다.

물론 신고전학파는 이런 정태적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비교정태분석을 시도하지만, 동태적 분석에는 인색하다. 단지, 나중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는 이런 왈라지언의 입장을 일관되게 거부했다.

셋째, 고전학파가 평균이나 총량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한계효용학파는 한계 혹은 마지막 한 단위에 역점을 둔다. 이에 따라 신고전학파는 한계효용이나 한계생산성뿐만 아니라 한계대체율, 한계기술대체율, 한계비용, 한계수입 등을 핵심 개념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차이는 고전학파와 달리 한계효용학파는 신고전학파가 개인의 선택이나 적정화를 일차적인 관심사로 삼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전학파는 주어진 시점에서 소비활동이나 생산활동 등에 있어 경제주체에게 부여된 선택의 범위가 넓지 않다고 본다. 이에 비해, 신고전학파는 넓은 범위의 선택 집합이 경제주체들에게 열려 있다고 상정한다. 같은 이유로 고전학파는 재화나 생산요소 사이의 대체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고정계수를 상정하는 데 비해, 신고전학파는 완벽에 가까운 대체를 인정하면서 거의 무한한 결합 비율의 변동을 허용한다.

가령, 고전학파는 노동자가 한 달 동안 필요로 하는 소비재가 쌀 두 말과 지하철 표 50장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주어진 시점에서 탁자를 생산하는 데 노동자와 기계는 10:1로 겨랍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비해 신고전학파는 쌀값이 떨어지면 쌀 소비를 세 말로 늘리고 지하철 표를 30장으로 줄이며, 임금이 오르면 탁자 생산에 있어 노동자와 기계가 8:1로 결합될 수도 있다고 보는 셈이다.

이와 같이 한계 개념만큼이나 대체 개념도 신고전학파에 고유하다. 그런데 이론을 교육하는 교실에서는 한계대체의 비율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체나 대체성 자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 부각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체 개념은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부여되는 선택의 폭이나 외적 충격이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며, 이에 근거한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표현한다.

이 같이 신고전학파는 고전학파보다 개인이나 개인들의 합으로 규정되는 경제가 가격이나 기타 환경 변화에 대해 훨씬 더 맣은 적응 능력이나 융통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달리 보면, 전통적으로 윤리나 규범 혹은 정치제도가 사회에서 발휘하던 기능을 신고전학파는 대체 개념에 맡긴다. 이런 생각은 자본주의 경제가 현재까지 여러 가지 변화에 적응하면서 번성한 이유를 그것의 유연성에서 찾으려는 신고전학파의 입장과 상통한다.

7.4 주요 학자

7.4.1 제본스

(... ...)  제본스는 한계효용이론을 통해 스미스가 제기했던 가치론의 숙제, 즉 다이아몬드와 물의 역설을 해명했다. (...) 물의 사용가치가 다이아몬드의 사용가치보다 더 크다는 것은 물의 소비량이 다이아몬드의 소비량보다 많아 그 총효용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량이 많다는 동일한 이유로 물[은] 한계효용이 [낮고;적고;작고], 다이아몬드[는] 소비량이 적기 때문에 한계효용이 [높다;많다;크다]. 물의 사용가치가 다이아몬드의 사용가치보다 크다는 것은 양자의 총효용에 의해 설명된다. 물의 교화가치(혹은 가격)가 다이아몬드의 교환가치(혹은 가격)보다 낮다는 것은 양자의 한계효용에 의해 설명된다.

여기서 제본스가 명시하지 않은 것은 교환 당사자들의 소득이나 재산의 차이다. 만약 물의 뵈자와 다이아몬든의 소비자 사이에 소득이 크게 차이나면, 효용과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물의 가격보다 높아질 수 있다. 이는 신고전학파 미시이론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다. 교과서에서 수요곡선의 배후에 있다고 말하는 지불의사의 차이는 선호나 효용뿐 아니라 구매력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다.

(...) 또한 그는 (...) 노동을 효용이론에 끌어들여 고통으로 규정하고, 노동공급곡선의 후방굴절 가능성을 언급했다.

(...)

7.4.2 마샬과 클라크

영국적 전통에서 제본스는 마샬과 에지워스로 이어지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신고전학파로 정착된다. 단순화시키면, 발라스가 방법상에서 신고전학파의 기초를 닦은 데 비해, 마샬은 그 내용을 채웠다. 여기에 미국인 클라크의 분배이론도 빼놓을 수 없다. (...)

(...) 마샬이 《경제학 원리》에서 제시한 틀이 현재까지 미시경제학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마샬의 이 책은 스미스의 《국부론》,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에 이어 대표적인 경제학 교과서로 상당 기간 군림했다. (...)

마샬의 《경제학 원리》는 스미스의 《국부론》,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를 잇는 대표적인 경제학 교과서였다. 이어 20세기 중반 이후에 미국인 새뮤엘슨의 《경제학》이 일세를 풍미했다면, 현재는 맨큐의 《경제원론》이 유행하고 있다. (...)

마샬에게도 일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가치와 가격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수요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초기의 한계효용이론이, 공급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했던 고전학파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고 평가했다. 수요와 공급을 종이를 자르는 가위의 양날에 비유한 마샬은 수요와 공급 양자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신고전학파라는 명칭이 시사하듯이, 이 같은 논리에는 고전학파와 한계효용학파를 순조롭게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주8]

[주8] 독일 역사학파의 바그너(A. Wagner)가 《경제학 원리》 초판에 대해 쓴 서평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바그너는 한계효용학파의 한계효용이론과 생산비용이론의 관계를 규명한 것이 경제학설사에서 마샬의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마샬을 고전학파와 근대 신고전학파를 이어주는 가교로 간주하는 전통적 해석과 일치한다.

(...) 마샬은 수요를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한계효용뿐만 아니라, 공급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한계생산성을 제시했다. 그는 리카도가 토지에 국한시켜 적용했던 한계 개념을 모든 생산요소들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샬은 자신이 고전학파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원류가 고전학파가 아니라 한계효용학파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는 종래 경제학자들이 생산, 분배, 교화, 소비로 나누었던 경제활동을 모두 수요과 공급의 원리로 일관되게 묶어 내려고 했다.[주9] 같은 맥락에서 그는 경제학의 명칭으로 종전에 사용되던 political economy보다 economics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변동은 경제를 정치, 사회, 문화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신고전학파나 주류경제학의 경향으로 발전한다.

(...) 마샬은 부분균형, 정학과 동학의 개념 외에 현재 미시경제학에서 활용되는 탄력성과 대체, 내부효과와 외부효과, 준지대, 소비자 잉여와 근로자 잉여 등 여러 가지 개념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 지대와 준지대에 대한 구분은 리카도의 지대이론이 영원한 진리임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주10]

이 중 잉여 개념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마샬은 공급자의 잉여를 현재와 같이 생산자 잉여가 아니라 근로자 잉여로 표현했다. 이떤 이론적이거나 이념적인 근거에서 표현이 바뀌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잉여 개념이 이후 신고전학파에서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핵심적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 보다 중요하다.

경제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신고전학파의 교환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로 구성되며, 이들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생산물체감의 법칙에 의존한다. 이는 신고전학파가 그 이전에 존재하던 잉여나 잉여가치를 개인의 심리나 주관, 그리고 기술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음을 의미한다.[주11]

마샬은 이러한 개념들 중 상당수를 물리학에서 차용했다. (... 하지만) 그림표나 수학을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서 사용했으며 (...) 언제나 부차적인 도구로 취급했다. (...) 나아가 초보적인 경제분석에서는 물리학적 유추로 충분하지만 성숙한 분석에서는 동학이나 진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과 조직에 관한 논의에서 진화 개념과 생물학적 유추를 강조했다. (...)

이 같이 마샬이 신고전학파의 창시자였지만, 현재의 신고전학파와 달리 진화를 강조하고, 수학적 방법의 활용에 대해 조심스러웠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리학적 유추나 수학적 방법은 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 새뮤엘슨 등 미국의 신고전학파가 부상하면서 포괄적으로 채택되었다.

※ (...) 종합적으로 마샬은 경제학이 상식과 완전히 유리된 출발점을 설정하고, 일상용어와 분리시켜 학술용어를 정의하며, 이런 정의들을 사용해 기다란 논리의 사슬로 구성된 논리체계를 이룩하는 데 반대한 것이다. 그는 경제이론이 일상생활에서 출발하고 또한 이것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 케인스의 아버지는 (...)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경제학 용어가 일상언어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용어와 일상용어의 괴리를 당연시하거나 심지어 과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클라크는 《부의 분배》 등을 통해 한계이론에 근거해 현재 교과서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신고전학파의 분배이론을 완성했다. (...) 총 2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입장에 관계없이 그가 명석한 경제논리와 철학적 조망을 겸비했음을 보여준다. 보다 실감나게 표현해 현재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그를 닮았으며 얼마나 감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한계효용과 한계생산성을 이용해 임금, 지대, 이자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논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유경쟁에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노동자, 자본가, 지주 모두 생산요소가 생산에 공헌한 것만큼 자신의 보수로 가져간다는 논리를 명확히 했다. 그는 생산한 것만큼 가져가는 것을 정의의 원칙으로 전제했기 때문에, 분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가장 명시적으로 옹호한 셈이다.

리카도의 지대이론을 모든 생산요소에 확장시킨 것이 신고전학파의 분배이론이라는 점이 클라크에서 재확인된다. 그는 농업지대뿐 아니라 임금이나 이자도 넓은 의미에서 지대 혹은 차등적 이익이라고 규정했다. (...)

원래 지대이론은 특정 생산요소에 국한해 적용되었다. 더구나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토지는  노동이나 자본보다 부차적이고 전근대적이다. 상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이론이 모든 생산요소들을 설명하는 포괄적 논리로 순식간에 격상된 것이다. 이는 중농주의가 농업을 중시하면서 토지단일세를 주장한 것보다 더 역설적이다.

클라크는 (...) 노동을 고통으로, 자본을 시니어와 같이 절제로 규정하고, 이들이 모든 가치 측정을 가능케 하는 두 개의 주관적 척도라고 선언했다.

그는 노동과 자본을 동등하게 놓[고] ... 양자 모두 구체적 측면과 추상적 측면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자본은 기계 등 생산재로서 구체적인 면을 지니고, 사회적 차원에서 자금으로서 추상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이런 자본의 양면성은 노동의 양면성과 대응한다. 노동도 한편으로 이질적이면서, 다른 한편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의 에너지로서 동질적이다. 그는 자본과 노동의 이 같은 유사성이 핵심고리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상정하면서 그는 모두[아마도 자본과 노동을 뜻할 것 같다. 아니면 사회 구성원 전부를 뜻할 수도 있겠다ㅡ이 독자]가 사회적 가치에 따라 분배받는다고 주장해, 소득분배의 관점에서 시장을 옹호했다. 또한 이런 분배이론이 동시에 생산이론임을 명시했다.

(... ...)클라크는 지대, 임금, 이자가 정태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데 비해, 순수이윤은 동태적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 이들과 분리시켰다. 그에게 정태와 동태는 사회적 욕구, 생산공정, 산업의 조직방식, 노동과 자본의 배분, 노동과 자본 규모 등으 변동 여부로 구분된다. 고전학파가 지대를 미리 제거하고 임금과 이윤의 결정원리를 제시한 반면, 그는 이윤을 먼저 제거한 뒤 나머지 소득의 결정요인을 찾았다. (...)

(... ...)

둘째, 그는 구체적인 물체로서 자본재와 추상적인 자금으로서의 자본을 엄밀히 구분했고, 이에 근거해 오스트리아학파의 자본이론, 시니어의 절제, 마샬의 기다림 등 기존 이론들을 비판했다. 모스(S. Moss)가 오래 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과 자본재에 대한 그의 엄밀한 구분과 유동/고정자본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신고전학파에서 흔치 않은 논리로서 마르크스를 방불케 한다. (...)

7.4.3 발라스와 파레토

(... ...) 파레토는 파레토최적 혹은 파레토개선이라는 개념을 후대에 남겼다. (...) 이 기준은 경제주체들이 모두 독립성을 가지며 이들이 존중되어야 하는 다원화된 개인주의 사회경제에서 전체적으로 상황이 개선되었는지 판정하는 데 쓰인다. 그런데 이 개념은 개인들의 후생을 합산하는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마련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적용범위가 제한적이다. 구체적으로 교환이론이 상정한 것과 가리 한 개인이나 집단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다른 개인들이나 집단의 상태가 나빠지는 변동이 사회경제에는 비일비재하가. 이 경우 파레토최적은 적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준의 쓰임새는 만장일치 제도만큼이나 제한적이다.

그는 흥미롭게도 사회주의의 기준에 비추어 자본주의를 정당화했다. 그는 생산요소 및 투입물의 비율과 관련해 자본주의의 자유경쟁하에서도 사회주의에서 명령으로 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에 도달하게 딘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의 조류가 어느 정도 강한 영향을 행사했는지를 보여준다. (... ...)

7.4.4 멩거와 하이에크

(... ...) 하이에크는 멩거를 좇아 사회의 규칙(rule)과 제도가 정부의 개입이나 사회 전체 차원의 개혁 혹은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 안에서 스스로 발생하고 진화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고 주장했다. 특히, 시장과 시장의 제반 규칙들이 이 같이 형성되다. 자생적이기 때문에 이런 절서의 발생, 유지, 진화는 인간행동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unintended results of human action)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입장은 일종의 문화적 진화주의(cultural evolution)로 규정된다.

이 주장에는 자생적으로 발생했고 진화하는 질서와 규칙,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어 나타나는 사회현상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철두철미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자생적인 힘의 결과로 빚어진 소득분배에 대해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재분배 정책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 시장질서에 항시 불확실성이나 운이 따른다고 생각해 시장의 결과에 대해 윤리성을 부여하려는 시장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 “자생적 질서는 각각의 구성요소가 그들의 일부에게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어느 누구에게도 그 총체가 알려질 필요가 없는 수없이 많은 상황에 스스로  적응한 결과다.” (하이에크의 《법, 입법, 그리고 자유》)
  • “경쟁은 발견의 절차이다. 경쟁은 모든 진화와 관련된 절차이다. 경쟁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일치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점진적으로 효율을 늘려간다”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
(...)
그에 의하면 대륙의 합리주의는 인식과 사회를 근원적으로 규정하고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이므로, 영국의 합리주의만이 진정한 의미의 합리주의다. 두 가지 합리주의의 이 같은 차이는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영국의 합리주의는 인식능력에 대해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사회개조 능력에 관해 자만심을 갖지 않는다. 반면 구성주의는 인간의 인식에 대해 한계를 두기 않기 때문에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맹신하게 된다.

(...)
하이에크에서 총체적 인식과 근본적 변혁의 불가능성은 지식이 분산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에 의하면 경제운행과 사회혁신을 위한 지식은 여러 경제주체들에게 흩어져 있어 중앙권력에 집중시킬 수 없다. 또한 지식이 암묵적인 경우가 많아 문자로 전달할 수도 없다. 여기서 암묵적 지식은 삶의 현장에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언어로 개념화할 수 없는 지식을 의미한다. (...) 하이에크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경제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비해, 사회주의는 지식과 정보를 한 군데에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같은 지식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자본주의의 성공과 사회주의의 실패를 판정하는 기준이다. 이에 따라 하이에크는 사회를 집단적인 힘을 통해 바닥부터 완전히 개조할 수 있다고 보는 구성주의를 ‘치명적 자만심’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계획경제로의 이행을 주장하는 혁명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일반의지 혹은 총체적 의지에 의존하는 사회계약이론, 케인스의 거시경제 정책, 전체 이익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도모해야 한다고 보는 공리주의, 그리고 정태적 왈라지언 일반균형에 대해 비판적이었다.[주19]

(... ...)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경제의 이념적 기반을 제시했고, 신고전학파, 특히 시카고학파에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는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자유주의를 주장하면서 그를 자주 인용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프리드먼을 포함한 왈라지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인간이 안고 있는 인식의 한계로 인해 사회현상에 대한 예측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예측에 대해 대단히 유보적이었다. 같은 이유로 하이에크는 정교한 예측을 자부하는 계량경제학적 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 ...)
나아가 진화 개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하이에크의 생각은 상당 부분 생물학적 유추에 의존한다. 그는 균형 등 물리학적 유추에 의존하는 신고전학파, 특히 일반균형이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동태적 진화를 강조함으로써 정태적인 일반균형이론에 반대한 것이다. 무엇보다 균형을 끌어내기 위해 일반균형이론이 설정하는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이라는 정태적 가정을 그는 반복해서 문제 삼았다.

이렇게 본다면, 하이에크의 진화는 마르킇스의 혁명, 기독교의 창조, 왈라지언 경제학의 균형, 그리고 케인스의 정부개입과 대립된다. 전체적으로 하이에크는 시장주의와 점진주의에 있어서는 왈라지언 일반균형에 근거한 신고전학파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균형이 아니라 진화를 강조한다는 점, 이론의 목적을 예측이 아니라 설명에 둔다는 점, 그리고 공리주의를 구성주의로 간주해 비판한다는 점 등에서 신고전학파에서 벗어난다.

(...) 그러므로 그는 사회철학에서 신고전학파와 유사하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자연과학을 모방하려는 신고전학파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하이에크에 대해서는 관심도 다양하고 견해도 다양하다. 그의 결론과 무관하게 현재 다양한 이념의 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중에는 하이에크의 방법이 놀랍게도 마르크스와 동일하게 비판적 실재주의에 가깝다고 보거나 그의 논리 속에서 변증법을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주20]

[주20] 저자도 두 편의 논문과 한 권의 책을 통해 마르크스와 하이에크,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오스트리아학파 사이에 무시 못할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7.4.5 슘페터

(... ...)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안락사와 사회주의의 자연스런 도래를 점쳤다. 그는 여기서 노동가치이론을 위시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의 예언에는 동의했다.

슘페터에 의하면 폭력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타도는 불필요하며, 이미 자본주의 내부에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가능케 하는 요인들이 등장했다. 기업활동의 표준화로 인한 기업가와 유산계급의 소멸, 주식회사와 전문 경영인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재산의 희석, 대기업의 등장과 이에 수반한 관료화,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정치적 보호계층이나 장인 및 농민 등 외곽계층의 파괴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영자의 보수가 완전히 임금으로 전환되리라고 예언했다.

(... ...)

7.4.6 스톡홀름학파의 빅셀과 미르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