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경인일보,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262
2007년 7월
아침 출근시간마다 타는 버스․지하철, 학교가 끝난 뒤 먹는 맛있는 떡볶이 한 접시,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 멋있어 보이는 디지털카메라.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욕망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가장 공통적인 목적을 찾아보라면 ‘행복’이 될 것 같다. 굳이 에피쿠르스 학파나 공리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행복 = 어떤 일에 대해 만족감이 충족된 상태’ 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순간 행복해질 것이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자가 되는 순간 행복해질 것이다. 결국 만족감이란,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데카르트가 철학적으로 근대사회의 문을 힘차게 열어버린 이후, 이 이기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다.
1. 이기심의 두 얼굴 (토마스 홉스 vs 아담 스미스)
토마스 홉스(1588~1679)는 자신의 저서인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은 사악한 욕망이며, 이런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되고, 각 개인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개인의 권리들을 양도하여,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기적인 인간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국가가 이들에게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마치 맬더스가 『인구론』에서 예언한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생산량은 고작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라는 예언만큼이나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 대한 우울함으로 일관되고 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타인들을 만족시키는 여러 가지 결정들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유지되어 가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였다. 즉,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인간이 모두 이기적이라면 각 도시들은 모두 타락하고 부도덕한 상태로 변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살아생전 유머가 넘치고 인간미 있었던 글래스코 대학 교수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홉스의 견해에 반박할 하나의 묘답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른바 ‘공명정대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는 개념인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양심(良心)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욕망을 추구하는 행동보다는 동정심이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지만, 홉스의 생각처럼 무질서하거나 파괴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담스미스는 정반대로 사적 이익 추구가 공적 이익까지도 만들어 낸다고 역설한다. 영국의 위트 넘치는 신사답게 그는 이와 같은 주장을 한 뒤 국가와 민족과 정의를 앞세우는 정치인치고 국부 증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못 봤다고 꼬집는다. 반대로 장사꾼이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들만큼 국부의 증대에 기여하는 사람이 없다고 스미스는 이야기한다. 이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정치인과 관료를 비판하는 명분으로 그들의 생각과 스미스의 생각은 이런 점에서 동일선상에 있다.
2.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은 어떤 책일까? 대단한 책?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부론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성서[Bible]이며, 경제학 분야를 대표하는 한 권의 고전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국부론』을 선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스미스의 『국부론』이 가장 대표적인 경제학 저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적인 모습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저작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국부론』의 원제(原題)는 ‘여러 국민의 부(富)의 성질 및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원 제목을 살펴보면 아담 스미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각 개인이 만들어내는 부(副)의 성질을 분석하고 그 원인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 한다’는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모자란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바꾸고 싶다’는 욕구이다. 즉 이기심과 교역본능은, 특히 인간이 가진 이기심은 친절성, 박애심, 희생정신보다는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경제학사상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구절에서 스미스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문제는 이기심이 비록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홉스의 지적을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 스미스의 가설이 얌전하게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언젠가 스미스가 천문학을 연구한 적이 있는데, 그는 별들이 각각 자신의 궤도만을 돌고 있는데 우주 전체가 조화와 균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이롭게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인간사회에도 작용함을 믿었다.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전체로 볼 때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각 개인들이 의도적으로 돕는 것은 아니겠지만…….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결실도 얻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국부론』 전체에서 딱 한 번 등장하지만 그 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메커니즘의 핵심을 가장 통찰력 있게 설명하는 키워드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손’이 되었다. 따라서 경제를 접하고자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과 반드시 악수 한 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보이지 않는 손? (대공황과 정부개입)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은 실패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가 이기심, 즉 ‘보다 잘살고 싶은 욕구’라는 것은 정확하게 예상했지만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통제하는 신의 숨결처럼,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스미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마치 토마스 홉스가 “이기적인 인간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내버려 두면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어 인간은 결국 강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이들에게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라고 했던 예상이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예상은 맞았지만, 그 때문에 인간 사회가 멸망하지는 않았다는 반쪽짜리 예상이듯이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보이지 않는 손이 100미터 앞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쏜다고 하자. 100발 중 99발은 성공을 했으나, 1발은 실패했다. 애석하게도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완벽하지 못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1번의 실패가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치명적 실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가 겪은 최대의 경제적 위기인 1929년의 경제대공황 대한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1929년의 대공황을 가장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자유방임주의의 몰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공황 이후 1930년대 불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몇 가지 통계 수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23년에서 1925년 사이 경제 평균지수를 100으로 잡고 비교해본다면, 1933년의 미국 공업 생산은 60, 건축은 14, 고용은 61, 노동자 임금은 38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경제가 반 동강이 난 셈이다. 결국 ‘정부는 국방과 치안만 감당하면 될 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간섭해서는 안 된다’라는 자유방임주의의 핵심적인 생각과 ‘보이지 않는 손’은 대공황이 만들어준 엄청난 충격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경험을 바보에게도 가장 좋은 학교이고 필요는 발명을 낳는 법이다. 사람들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비록 자본주의가 많은 장점을 지녔지만 그에 못지않는 결점도 있기 때문에 가만 두어도 잡초처럼 번성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라는 교훈을 배웠다. 결국 자본주의는 곁가지를 쳐 주고 줄기를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온실 속의 불완전한 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공황 이후의 대다수의 자본주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옆에 ‘정부의 보이는 손’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의 시장개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제학자인 존 케인즈(1883~1946)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기능의 확대는 …… 자유방임에 대한 무서운 침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이 현존하는 자유방임 경제의 전면적 붕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개인적 창조의 기능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환경조건이라는 점에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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