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일요일

[발췌:애쓰모글루/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2장, 맞지 않는 이론들

출처: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2012).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최완규 옮김/장경덕 감수/시공사 펴냄.
원제: 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
기타자료: 구글도서


※ 발췌 (excerpts): pp. 106~110

판이한 길을 걸어온 미국과 멕시코를 보자. 두 나라 지도자들이 지적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억지스럽다. 존 스미스와 코르테스의 지적 수준이나 의도가 달랐기 때문에 식민통치 시적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운명에 놓인 것이 아니다. 훗날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무지해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엘리트층의 배만 불리고 나머지 서민은 희생시키는 경제제도를 선택했고, 시오도어 루스벨트나 우드로 윌슨 같은 미국 대통령은 지적 수준이 높아 그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니다. 두 나라 대통령과 엘리트층이 서로 다른 제도적 제약에 직면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 반세기 동안 불안정한 재산권과 경제제도 때문에 온 국민은 입에 풀칠하기도 급급한 상황에서도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실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옳은 정책이라 믿어서가 아니라 국민을 희생시켜 축재하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집단과 엘리트 층의 지지를 얻어내 계속 집권할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정치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1971년 코피 부시아Kofi Busia 가나 총리의 경험은 무시 가설의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시아는 위태로운 경제에 직면했다. 1969년 집권한 은크루마와 마찬가지로 부시아 역시 지속 불가능한 경제 확장정책을 추구했고 유통 조합과 고평가 환율을 통해 여러 방면에서 가격을 통제했다. 은크루마에 반대해 민주주의 정부를 이끈 부시아지만 가나의 역사가 길지 않았던 터라 은크루마와 똑같이 수많은 정치적 제약에 직면했다.

  은크루마와 마찬가지로 부시아의 경제정책 역시 그가 '무지'하고 그 정책이 좋다거나 국가 개발에 이상적인 방법이라 판단해 채택한 것이 아니다. 부시아는 예컨대 도시 지역 등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들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라 믿었던 것뿐이다. 가격 통제로 농민을 쥐어짜서 값싼 식품을 도시 유권자에게 제공하고 정부 지출을 지탱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통제는 지속될 수 없었다. 가나는 잇따른 재정 위기와 외환보유고 부족에 시달렸다. 곤경에 처한 부시아는 1971년 12월 27일, 국제통화기금과 대규모 통화 평가절하를 포함한 협정을 맺기에 이른다. 

  ( ... ... )
  ( ... ... )
  ( ... ... ) 이런 변화는 중국 공산당이 농지와 산업의 공동 소유가 알맹이 없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니다. ( ... ) 중국이 공산주의에서 시장 인센티브쪽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 역시 효율적인 경제 운용 방법에 대한 더 나은 조언이나 이해가 아닌 정치였다는 뜻이다.

  
  세계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일부 사회가 왜 그토록 비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짜여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어떻게 해서든 효율적인 제도를 채택해 번영을 이룩하는 나라도 가끔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경제 전문가와 정책입안자 대부분이 어떻게 '바로잡을지'만 몰두한다. 진짜 필요한 것은 왜 가난한 나라가 '잘못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들이 잘못되는이유는 대개 무지해서나 문화적 요인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빈곤을 조장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실수와 무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뜻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논리나 최선택에 대한 전문가의 존언을 넘어 실제로 어떻게 의사결정이 내려지며 누가 그런 의사결정을 하고 그들이 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연구해야 한다. 다름아닌 정치 및 정치 과정을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정치를 외면해왔지만, 세계 불평등을 설명하려면 정치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경제학자 아바 러너가 지적했듯이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꽃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이미 해결된 정치문제를 주요 연구분야로 삼은 덕분"이다.

  우리는 번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일부 기본적인 정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경제학은 정치적 문제들이 이미 해결되었다고 가정해왔다. 세계 불평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가정 때문이었다. 세계 불평등을 설명하려면 서로 다른 정책과 사회적 환경이 경제적 인센티브와 행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해야 하므로 경제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설명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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