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4일 목요일

발췌: CMEC 2권의 서론

도서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2권 “교환의 세계”
페르낭 브로델 지음(주경철 옮김), 1996년 까치 펴냄.


■ 발췌: 2권(역서 2-1권)의 서론 11-14쪽.

(...) 이번 권은 제1권의 주제였던 물질문명이라는 1층의 바로 위층인 경제생활과 또 그 위층인 자본주의 활동을 탐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층을 가진 집의 이미지는, 비록 구체적인 모습을 왜곡시킬 우려가 없지 않지만, 우리의 연구 대상이 되는 현실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아주 초보적인 경제라는 의미의 "물질생활"과 경제생활 사이의 접촉면은 연속된 것이라기보다는 시장, 가게, 상점 등의 수많은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들은 동시에 단절점이기도 하다: 한쪽에는 교환, 화폐 그리고 우월한 수단이 되는 집산지ㅡ교역 중심지, 교환소, 정기시 등ㅡ를 가진 경제생활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완강히 자급자족에 매달려 있는 "물질생활"이라는 비(非)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경제는 ^교환가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두 번째 권에서 나는 가장 초보적인 물물교환으로부터 가장 정교한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교환의 세계 ^전체^를 분석하려고 했다. 나는 가능한 한 주의깊고 중립적인 기술(記述)에서 시작하여 거기에서 규칙성과 메커니즘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것은 마치 ^일반 지리학^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서 일종의 ^일반^ 경제사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른 용어로 이야기하면 하나의 ^유형학^, 혹은 하나의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몇 개의 핵심 단어들이나 명백한 현실{실재}들의 뜻을 확정시켜줄 수 있는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일반사^는 완벽한 엄밀함을 가진 것이 아니며, 여기에서 제시한 ^유형학^도 결정적이거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또, 그 ^모델^은 결코 수식화되고 검증된 것이 아니며, 그 ^문법^도 경제 언어 내지 경제 담론의 열쇠ㅡ마치 그런 열쇠가 존재하고 더구나 그 열쇠가 모든 시공간을 통해서 거의 유사한 것처럼 이야기하는ㅡ을 주는 것이[은] 아니다. 크게 보아서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접합(articulation), 진화(evolution) 그리고 기존 질서를 유지시키는 거대한 힘 내지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바 있는 "타성의 폭력(violence inertie)"을 인식하기 위한 이해의 노력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회, 정치, 경제가 서로 만나는 연구인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을 해나가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눈 아프도록 관찰하는 것,  다른 인간과학 분야의 도움을 얻는 것 그리고 체계적인 비교뿐이다. 이렇게 필요한 비교 작업을 할 때, 혹시 시대착오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까 너무 큰 염려를 하지 말고, 거의 움직일 줄을 모르는 여러 다른 체제들을 넘나들며 같은 성격을 가진 경험을 과감하게 대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 블로크가 권고한 비교 방법이며, 내가 장기 지속이라는 조망에 따라 수행한 방법이다. 현단계의 지식 수준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시공간에 걸쳐 있는 다양한 비교 자료들은 우연히 내키는 대로 경험을 단순 비교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실험이 가능할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역사ㅡ나에게 첫 영감을 주었던 분야ㅡ와 다른 인간과학들의 중간에 위치한 책을 구성해보았다.

이렇게 모델과 관찰을 병행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가 늘 확인하게 된 것은 정상적인, 나아가서는 일상적인 교환경제(18세기 사람들은 ^자연natur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와 상위의 정교한 경제(18세기 사람드은 ^인공artifici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주1]) 사이의 끈질긴 대립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구분이 명백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리하여 서로 다른 층위마다 ^경제주체(agent)^, 사람, 그들의 활동과 심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예컨대 고전경제학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시장법칙들은 일정 수준에서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상층의 영역에서는 자유 경쟁이라는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상층의 영역은 차라리 계산과 투기의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그림자의 영역, 역광(逆光)의 영역이 시작되며, 이곳에 관한 비전(秘傳)을 물려받은 자들의 활동무대가 시작된다.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뿌리가 되는 영역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힘의 누적이며(그리하여 교환이 상호 필요에 근거한 것이기보다 세력관계에 근거한 것이 되도록 만든다) 사회적 기생 상태이다ㅡ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다른 계서제가 그런 것처럼 상업세계의 계서제 역시 아래층이 없으면 거기에 근거하고 있는 위층이 존립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할 것은 교환의 밑에 자리잡고 있는, 더 나은 이름이 없어서 내가 "물질생활"이라고 명명한 영역이 앙시앵 레짐 시기 동안 가장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내가 ^자본주의^라는 말을 단지 계서제의 최상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어쩌면 이것이 경제를 여러 층들로 나누어 대립시켜 보는 것보다도 더 의아한 점일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이 말이 성숙한 모습으로 그리고 그 폭발력을 가지고 등장한 것은 아주 뒤늦게, 20세기 초에 가서의 일이다.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심층의 내용에는 그것이 ^진정하게^ 태어난 시기의 특징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1400-1800년 사이의 기간에 대해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역사가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잘못인 시대착오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이다. 역사가들은 그들의 문제와 그들이 다루는 시기를 회고적으로 지칭하기 위한 꼬리표로서 여러 용어들을 만든다: 100년전쟁,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등이 다 그런 용어들이다. 진정한 시장경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흔히들 완전히 그 반대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이 영역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말이 필요하다. 이때 거부하기 힘든 말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말이다. 많은 이미지들을 상기키시는 이 말을 일부러 피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말이 붙러일으켰던, 또 지금도 불러일으키고 있는 뜨거운 논쟁들을 잊어버리면서까지 그 말을 피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모델 구성에서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이번 권에서 일부러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진행해갔다. 지난날의 경제사회를 볼 때 제일 먼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통(circulation)^ 내지 ^시장경제(économie de marché)^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교환의 도구"와 "시장과 경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잇는 이 책의 첫 두 장에서 시장, 행상, 상점, 정기시, 교환소 등을 묘사했다. (...) 그러면서 혹시 교환의 법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추출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다음 두 장은 "생산: 자기 영역을 벗어난 자본주의"와 "자기 영역에서의 자본주의"이다. 여기에서는 유통의 바깥에 널리 퍼져 있는 생산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반드시 다루어야 할 것으로서, 우리의 논쟁에서 핵심 단어들인 ^자본^, ^자본가^, ^자본주의^의 뜻을 명확히 구분했다.  마지막으로 영역별로 자본주의를 자리매김해보았는데, 그러한 "위상(topologie)"은 자본주의의 경계를 보여주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드러내줄 것이다. (...) 마지막 장인 "사회, 혹은 전체집합"에서는 경제와 자본주의를 일반적인 사회현실의 틀 속에서 다시 자리잡아보려고 했다. 이런 틀 바깥에서는 그 어느 것도 완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설명하는 것은 대개 역사적인 서술을 피하는 것이며,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역사의 시간을 무시하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깨뜨리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시간을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 권인 제3권 「세계의 시간」에서 다시 찾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제2권에서 하려는 것은 연대기적인 지속성 속에서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관찰 수단으로서 사용한 것이다.

(... 생략...)

■ 영문판의 서두:


If I were to look for a simple image, I would say that the present volume takes us upstairs from the ground-level of material lifeㅡthe subject of the first volume of this bookㅡand explores the upper storyes, representing what I have called 'economic lie', before moving to the highest level of all, the action of capitalism. This metaphor of a house with several floors is a reasonable translation of the reality of the things we shall considering, thought it does rather strain their concrete meaning.

Between 'material life' (in the sense of an extremely elemeantary economy) and 'economic life', the contact surface is not continuous, but takes the form of thousands of humble points of intersection: markets, stalls, shops. Each point marks a break: on the one side is economic life with its commerce, its currencies, its nodal points and its superior equipmentㅡgreat trading cities, Stock Exchanges and fairs; on the other 'material life', the non-economy, imprisoned within self-sufficiency. The economy begins at the fateful threshold of 'exchange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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