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4일 목요일

발췌: CMEC 1권의 머리말과 서문

도서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1권 “일상생활의 구조”
페르낭 브로델 지음(주경철 옮김), 1996년 까치 펴냄.

■ 발췌: 1권의 머리말, 12-15쪽.

이들[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산업화 시기의 유럽(유럽 이외의 세계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배제하고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의 발전이란 인류 역사를 둘로 갈라놓는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의, 점진적으로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성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19세기 이전에 관찰 가능한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우리는 그 진화과정을 추적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진화과정이란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대립되고 어깨를 겨루며 심지어 서로 상반되기까지 하는 ^여러 개^의 진화과정들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경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중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소위 시장경제이다. 그것은 농업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거래소, 은행, 정기시장(定期市場),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 메커니즘들을 뜻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명료한, 심지어 “투명한”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히 움직여가고 또 그렇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과정들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학은 처음부터 다른 것들을 사상한 채 이런 특권적인 분야만 골라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 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vie matérielle)” 혹은 “물질문명(civilisation matérielle)”이라고 명명했다. 확실히 이 표현은 너무 모호하다. 그러나 현재를 보는 시각이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처럼 과거를 보는 나의 시각이 공유된다면, 언젠가는 이 하부경제(infra-économie), 즉 경제활동이 덜 형식적이며, 자급자족적이거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재화와 용역을 물물교환하는 이 또 다른 절반을 가리키는 데 더 적절한 명칭을 발견하게 되리라.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왜곡하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교란한다}. 원하든, 아니면 의식적으로 원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18세기의 암스테르담 상인이나 16세기의 제노바 상인은 이처럼 상층에 자리잡고서 원거리로부터 유럽 경제나 세계 경제의 전분야를 뒤흔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특권적인 주인공 집단은 일반인이 모르는 유통과 계산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환업무는 원거리 무역과 신용수단의 복잡한 운용과 연결되어 있어서 기껏해야 일부 특권적인 사람에게만 개방된 정교한 기술이었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 한계를 이루는 이 두 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이 삼분법적 도식ㅡ위로부터 보면 차례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물질문명(혹은 물질생활)ㅡ은 내가 관찰한 요소들을 분류해가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거의 저절로 형성된 것이지만,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너무 명료하게 갈라놓았으며, 나아가서는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처음부터 이 시각을 주저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받아들인 사실은 15-18세기 동안, 혹은 그 이전에도 시장경제는 구속력을 가진 질서였으며, (사회적, 정치적, 혹은 문화적) 다른 모든 구속력을 가진 질서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위로나 밑으로나 대립과 대응력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

나의 이런 시각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 것은 똑같은 틀을 통해서 현재의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상당히 빨리, 그리고 상당이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는 여기에서도 언제나처럼 광범한 정도의 교환을 좌우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통계에 잡히는 만큼에서만^ 그러하다. 시장경제의 가장 뚜렷한 표시인 경쟁이 현재의 모든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누가 그것을 부인하겠는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한편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서 그곳에 특별한 자본주의, 즉 내 생각에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동인도회사들이나 혹은 다양한 규모의 독점ㅡ사실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그것은 이미 옛날부터 존재했으며, 원리상으로는 오늘날의 독점과 마찬가지이다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국적 성격을 띠고 있다. 푸거 가문이나 벨저 가문의 기업들은 유럽 전체에 관심을 가졌고 인도와 스페인 령 아메리카에 동시에 대리인을 두었으므로 오늘날의 소위 ^초국가적(transnational)^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전 세기에 자크 쾨르가 수행했던 사업은 후에 레반트에 진출한 네덜란드 인의 사업 수준을 이미 확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러한 일치점들은 그 외에도 더 찾을 수 있다. 1973-74년의 위기의 결과로 인한 경제 불황의 과정에서 비록 근대적인 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비시장경제가 번성했다: 거의 적나라한 물물교환, 용역의 직접 교환, 소위 "암거래 노동()",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가사노동이나 집에서 직접 하는 허드렛일(bricolage) 등이 그것이었다. 시장의 밑에서 혹은 시장와 동떻어져서 행해지는 이러한 활동의 층은 몇몇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적어도 GNP의 30-40%를 차지하면서도 모든 통계에서 빠져 있으며, 심지어 공업화된 국가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삼분법적 도식은 내가 의도적으로 모든 이론을 배제하고 단지 구체적인 관찰과 비교사의 방법으로만 이 책을 써갈 때 그 참조표가 ^되어갔다^ {그리하여 이 삼분법적 도식은 내가 의도적으로 모든 이론을 배제한 채 단지 구체적인 관찰과 비교사의 방법에만 의지하여 이 책을 써나가는 참조표가 ^되어갔다^.} 여기서 비교란 우선 시간을 통한 비교로서, 장기 지속()과 현재-과거의 변증법이라는 언어를 통한 것이었으며 (...중략...) 또 그 비교란 공간을 통한, 그리고 가능한 대로 가장 넓은 공간을 통한 비교였다. (...중략...) 왜냐하면 살아 있는 현실을 세 개의 층으로 나누고ㅡ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본다는 것 자체는 유용한 구분이라고 생각하지만ㅡ그 각각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나누어서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역사학은 객관적인 과학이 되었을 터이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 나머지 두 권[1권과 2권]은 대개 유형학적인 연구이다. 이미 1967년에 간행된 첫 번째 권은 피에르 쇼뉘가 말한 대로 일종의 "세계의 무게 재기(pesée du monde)"이며, 전산업화 세계에서 가능성의 영역이 어느 한계까지 펼쳐져 있었는가에 대한 인식이다. 그 한계 중의 하나가 "물질생활"이라는 아주 광대한 분야이다. 두 번째 권인 「교환의 세계」는 경제{‘시장경제’의 오기인 듯하다. 하기 cf 참조}와 자본주의라는 상층의 활동을 대조한다.  이 두 개의 상층은 서로 구분되어야 하고 또 상호 혼합과 대비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cf. “(...) The second volume, ^The Wheels of Commerce^, compares the market economy and the higher activity of capitalism. It was essential to my purpose to distinguish between the two upper layers and explain them in relation to each other, both where they coincide and where they differ.” 
(※ 자료: 구글도서 영역본, 25쪽. 구글도서 불어원저는 원문 미리보기가 없어 확인하지 못함.) 
(... 생략...)


■ 발췌: 1권의 서론, 17-19쪽.

(... 전략...) [아직 익숙하지 않은 주제들을 발굴하여 하나의 일관된 역사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며, 보통 서로 관련 없이 고립되어 있고 전통적인 역사서술의 변두리에서만 발저해온 준(準) 역사적(parahistorique) 논구들ㅡ인구, 식량, 의복, 주거, 기술, 화폐, 도시ㅡ이 군색하게 모여 있어서 생기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것들을 모아놓는가?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전산업화 시기의 경제활동 영역을 포괄하고 그것을 전체 두께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인간 생활의 전체를 제한하고 포괄하는 다소 넓은 경계, 도달하기가 늘 어려우며 넘어서기란 더욱 어려운 한계, 말하자면 일종의 천장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현 시대를 포함하여 각 시대마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다시 설명하면 노력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달할 수 있는 것과, 인간에게 아예 거부된 채 남아 있는 것 사이에 한계{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과거에는 식량이 불충분했고, 가용자원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었거나 혹은 너무 많았으며, 인간의 노동 생산성이 낮았고, 또 자연에 대한 정복이 겨우 시작된 단계였다는 것 등이 불가능의 영역이 존재하는 원인이었다. 15세기에서 18세기 말까지 이러한 한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드른 가능한 영역의 극단까지 가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완만함이나 관성에 대하여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육상 수송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완성단계에 도달할 요소들이 있었다. 우선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진 근대적인 도로의 건설, 상품과 여행자를 수송하는 차량의 개선, 역참의 설치 등으로 인하여 수송 속도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철도 혁명 전야인 1830년경에 가서야 일반화되었다. 그때 가서야 도로 교통이 늘어났고 규칙적이 되었으며 더욱 빨라졌는가 하면, 나아가서는 '민주화되었다'. 즉 그때 가서야 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완만함은 육상 수송의 영역에서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광범한 경계선에 단절{즉 경계선의 장벽이 뚫리고}, 혁신, 그리고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으며, 이로써 세계 전체가 변혁을 맞게 되었다.
(...중략...)

가능성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우리는{나는} 머리말에서 "물질문명"이라고 이름붙인 것과 자주 마주쳤다. 왜냐하면 가능성의 영역은 위로부터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가능성의 영역을 의미}은 교환의 움직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생산의 "또 다른 절반"을 구성하는 큰 덩어리 때문에 밑으로부터도 역시 제한된다. 도처에 편재하고 침투하며 반복되는 이 물질생활은 일상사(routine)라는 성격을 띤다. 사람들은 언제나 밀의 씨앗을 뿌려왔던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밀을 뿌린다. 언제나 옥수수를 심던 방식으로 옥수수를 심는다. (...) 이 정체적인 역사의 층은 엄청나다. 시골의 삶, 즉 세계 인구의 80-90%의 삶은 거의 대부분 이 층에 속한다. (...) [하지만] 물질문명과 시장경제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그렇게 활실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 ^물질문명^과 공존하기도 하고 교란시키기도 하며, 또 물질문명과 모순됨으로써 오히려 물질문명을 설명해주는 ^경제문명^(이렇게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면)을 물질문명과 동시에 소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둘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문명과 물질문명의 두 요소로 되어 있는 이 복식부기는 사실 수 세기 동안의 진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물질생활은 거의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느리게 변화해온 고대 사회와 경제의 연장이다{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것{물질생활을 가리킨다고 이해}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 오래된 사회와 경제 위에 필연적으로 그 무게를 짊지우는 상부사회(une société supérieure)를 조금씩 형성해갔다. 그리고 언제나 상부와 하부는 함께 공조낳되 그 각각이 가지는 크기의 비율이 끊임없이 변하면서 공존해왔다. 17세기 유럽에서는 경제가 축소되면서 물질생활이 증대되지 않았던가? 더구나 1973년과 1974년에 시작된 경기 후퇴로 인하여 바로 우리 시대에도 경제 대신 물질생활이 증가했다. 이와 같이 1층이 증가하면서 2층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본래부터 경계가 확실하지 않은 채 두 가지가 공존한다. 내가 잘 아는 마을 하나는 1929년경에도 17세기나 18세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 18세기 이전에 시장경제는 하부경제를 포착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반대로 오늘날] 시장 혹은 "경제"와 동떨어진 영역이 광범하게 존재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조직한 교환이 그러한 영역을 소홀히 한다든가 그 교환이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하부로부터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This double register (economic and material) is in fact the product of a multisecular process of evolution. Material life, between the 15th and 18th centuries, is the prolongation of an ancient society and economy, which are very slowly, imperceptibly being transformed; gradually and with all the success and failures such an enterprise entails, they  are erecting above them a higher form of society, the full weight of which they are obliged to bear. Since the process began, there has been coexistence of the upper and lower levels, with endless variation in their respective volumes. In 17th- century Europe for instance, material life, the alternative economy, must have been swollen by the recession in the economy. It is certainly doing so in front of our own eyes, since the recession that began in 1973-74. So the boundary between the upper and lower storey is by nature uncertain: now one is ahead, now the other. I haven known villages which were still living at the pace of the 17th or 18th century in 1929. Falling behind in this way be deliberate or unintentional. The market economy was not strong enough before the 18th century to seize and mould according to its rules the great mass of the infra-economy, which was often protected by distance and isolation. Nowadays on the other hand, if there is a substantial sector outside the 'economy' or outside the market, it is more likely to reflect a refusal from below, than negligence or inadequacy of the exchange system organized by the State or society. The result, however, is bound to be analogous in more ways than one. 
(※ 자료: 구글도서 영역본, 28-2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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