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3일 일요일

억압과 해방

클라이브 해밀턴,
 성장 숭배: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 
4장 “진보” 중 2절 “억압과 해방” 중에서


(... 전략 ...)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함을 뜻한다. 하지만 주류의 보수적 견해는 오직 한 가지 형태의 자기결정―시장에서 개인이 행사하는 선택―만을 편애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위조된 자기결정’이라고 주장한다. 울리히 베크Ulrich Beck는 옳다 그르다 훈계할 권리를 울부짖는 ‘보수주의자들의 고함’을 민주주의의 역사적 진화를 억제하려는 행위라고 반박한다. 사실 이런 행위는 자유시장을 최종적인 자유라고 치켜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놀랄 일이다. ‘자기결정의 추구(개인화individualisation)’는 ‘이기적 잇속의 추구(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보수주의가 자기결정의 요구를 가로막는 것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다. (... 중략 ...) 

민주적 욕망이 분출하면서 밟아온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보수주의자들이 통탄했던 도덕의 쇠락은 산업자본주의를 정의했던 전통적인 기대와 역할들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것들이 출현하는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했다. 전통적인 표준과 기대,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는 성性혁명과 반문화反文化counter-culture, 여성운동 등 다양한 조류와 운동으로 나타났고,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러한 움직임은 자기결정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었다.

그렇지만 전후의 사회운동은 소비자본주의에게는 거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사실은 반문화나 시민권 운동, 여성운동, 심지어 환경운동의 주류에 속하는 움직임까지도 소비자본주의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오히려 힘을 보태주었다. 구시대에는 자본주의가 부추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 해로운 형태의 억압이 문화적·종교적 관습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으나, 전후에 억압에 맞섰던 저항운동들은 그 장벽들을 모두 허물어버림으로써 오히려 소비자본주의에 득이 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풀려나온 새로운 형태의 억압은 부와 명성, 그리고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자아의 잠재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사람들 스스로 수용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억압이다. 결국 가시적인 보상을 위해 삶을 바치는 사람들은 끝내 해방을 빼앗기고 만다.

이러한 은연중의 억압은 각 개인이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개인 문제만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절묘한 시스템을 가동하여 해방에 대한 열망이 가시적인 보상에 굴복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무엇이든 굴복시켜버리는 자본주의의 위력을 지적하는 유명한 구절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유구하게 이어오던 고정관념이나 견해와 더불어 견고하게 굳어 있던 모든 관계들이 해체된다. 심지어 새로 생긴 관계들마저 충분히 뿌리내리기도 전에 퇴물이 되어 사라진다. 견실했던 모든 것들이 허공 속 연무처럼 녹아버리고, 신성했던 모든 것들은 비천한 속물로 전락한다. 마침내 인간이 내몰리는 눈앞의 현실은 이제 그 맨몸의 오감과 생존의 현실적 조건, 그리고 그 족속과의 관계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내용은 여러 면에서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공산당선언》 출간 이후로도 한 세기 동안이나 산업화 이전의 사회관습과 보수적 사고방식이 시장 자본주의의 완연한 발현을 억제하는 장애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직시한다면, 1960년대 세대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길을 닦아주었으며 1980~1990년대의 “터보 자본주의”에 고성능 엔진을 달아주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보수주의가 유지해온 사회구조가 무의미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시장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반문화 운동은 부모 세대의 관습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이 견제 장치들도 모두 허물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생활의 자유, 직업이나 가족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성애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요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관습적인 사회구조들을 파괴했다고 해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가 도래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마케팅의 첨병들은 사회적 관습의 속박이 파괴된 빈자리를 물질적 소비와 제조된 라이프스타일로 채우는 데 활용했다. 구미권 사회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혁명적으로 변화해가는 와중에도 소비자본주의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유지되어왔다. 오히려 새로운 사회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소비자본주의는 그 각각을 자신의 원기를 회복하는 활력소로 활용했다. 반문화와 환경운동은 반항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소비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로 흡수되었다. 그 결과 그러한 저항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저 또 하나의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하면 그만인 식이 되어버렸다.

여성운동은 여성들을 부엌에 붙잡아두었던 사회와 가족의 관습을 공격했다. 생계를 책임진 남성 위주의 가족사회에서 여성이 날개를 펼칠 기회는 당연히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사회의 관습은 남성 노동자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로 노동시장이 운영되는 토대이기도 했다. 남성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투쟁하면서 노동시간의 제한과 고용의 안정성, 세심한 배려가 갖추어진 급여체계를 얻어내고자 했다. 노동자들이 결혼한 남성과 그 부인 및 아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수준을 ‘생활임금’으로 요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호소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개인의 역할을 인식할 때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해주는 안전한 세계는 이제 사라졌다. 반문화 운동이 그 세계에 도끼날을 들이댄 것은, 자유시장 이념의 옹호자들이 노동시장의 규제가 완화되면 우리 모두가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반문화 운동의 소망은 마침내 이루었다. 직업에서 요구되는 답답한 제약조건과 근무시간의 엄격한 통제도 사라졌고, 기업의 위계질서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다. (...) 

결국 마가렛 대처는 비트 세대의 대표적 시인인 앨런 긴즈버그와 60년대 반문화 조류의 핵심적 인물인 티모시 리어리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반문화는 “(약물과 함께) 의식에 발동을 걸고turn on, 함께 어울려서tune in, 전통에서 이탈drop out”하자는 구호로 주류 사회의 흐름에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사이 도덕 따위는 개의치 않는 소비자본주의의 충동을 도덕적으로 견제해주던 사회관습을 몰아내고서 반문화는 소멸해버렸다.

(... 중략 ...) 

이제 가부장제는 소비자본주의를 견제하는 영향력은 상실한 채, 그저 시스템에 곁다리로 붙어 있는 부속물처럼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성해방은 아주 기가 막힌 마케팅의 재료로 부상했다. 뭔가 다른 것―새로운 여성의 느낌을 다양한 모양새로 표현해줄 상품들―을 찾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인구층, 즉 ‘신여성 소비자 군단’이 시장에 출현한 것이다.

(... 중략 ...) 

여성주의가 소비지상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그리어의 지적은 마땅한 것이다. 여성주의가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참된 나를 찾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겠지만, 소비지상주의는 나와 세계, 그리고 세계와 나의 관계에 대한 허위의식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은 시장에게는 아주 좋은 호재다. 양성평등은 시장에 양질의 노동력을 더 많이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주가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해묵은 관념까지 일소해주었다. 나아가 가정이 ‘훈육의 공간’에서 ‘소비의 거점’으로 탈바꿈하도록 거들어주었다. 또 산다는 것을 그 모양새로 가늠하는 ‘라이프스타일 사고방식’이 번창하도록 부채질했다. 그리고 전체 인구 가운데 광고업체들의 영향력에 곧바로 노출되는 사람들의 수를 훨씬 더 늘려주었다. 마가렛 대처는 여성주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클라이브 해밀턴,
 성장 숭배: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 
4장. “진보” 중 2절 “억압과 해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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