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9일 토요일

발췌: 미시사와 거시사: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도서명: 미시사와 거시사: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지은이(들): 위르겐 슐롬봄 편 (궁리출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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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미시사-거시사: 토론을 시작하며 (위르겐 슐롬봄Juergen Schulombom)

(...) 예컨대 경제학의 경우를 살펴보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미시와 거시 양쪽이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했다. "중요한 것은 모두 거시 경제적이요, 본질적인 것은 모두가 미시 경제적이다"라는 세르쉬 크리스토프 콜름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나 해야 할까. 하지만 뒤에 가서는 거시경제학을 미시경제학에 예속시키려는 격렬한 시도가 있었다. "미시 경제적 근본주의"가 거시경제학의 자율권을 부정했던 것이다.[주1]

비슷한 시기 사회학계에서도 미시적인 연구자들은 주장하기를, 사회에서는 거시적인 차원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거시 현상을 미시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과격한 시도를 벌였다.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사회학계에는 "미시적 이해와 거시적 이해가 마치 적대적 이웃처럼 병립했다. 평소 그들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지내다가, 가끔씩 서로 트집을 잡아서 싸우는 이웃이었다"[주2]는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역사학계에는 현재까지도 미시와 거시적 관점이 공존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미시사화 거시사의 관계가 신랄한 토론 과정을 거쳐서 해명되었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 새내기나 다름없는 미시사가들은, 역사학의 지배적 전통이라 할 거시사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거시사측으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주3]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시사는 학문이라는 건물 속에서 거시사의 사랑방조차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시사는 기껏해야 복도를 서성이면서 기성 역사학이 차지하고 있는 방문을 두들기는, 귀찮은 잡상인쯤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미시사'의 그러한 처지는, 그 자매라고도 할 수 있는 미시사회학이나 미시경제학과 비교해볼 때 연륜이 짧다는 사실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시피, 미시사 연구는 1970년대 후반에야 시작되었다.

(...) 1960년대에는 양자[미시와 거시]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밝혀보고자 하는 시도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1889-1966, 독일 출신의 유태인 사회학자)의 경우가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는 유고집 『역사ㅡ최후의 일에 앞서(Geschichteㅡvor den letzten Dingen)』에서 "역사적인 우주의 구조(Struktur des historischen Universums)"를 논의했다.

크라카우어는 "역사적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다양한 역사들"이며, 그것{역사적 우주, 혹은 다양한 역사들, 이 둘 중 하나를 가리킬 것}은 "미시사와 거시사"라는 "두 가지 핵심 분야"로 나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두 분야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은 유동적"이라고 주장했다. 크라카우어는 미시사와 거시사 같은 용어의 개념을 구태여 정의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

크라카우어가 볼 때, 문제의 관건은 "미시사"와 "거시사"가 상호보완적인가, 아니면 서로 비교조차 불가능한가를 따져보는 데 있었다. '미시사'와 '거시사'라는 용어를 언급할 때, 그는 경우에 따라서 단수 또는 복수형 명사를 사용했다. 크라카우어가 찾아낸 해다블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양자는 상호보완적이기는 하지만 "서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의 총체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여러 요소만으로 완전히 분해될 수 없다. 역사의 총체에는 미시적 차원을 벗어난 다른 차원[거시]에서 연출되는 사건과 그 발전 과정까지도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일반성이라는 좀 더 높은 차원에서 기술된 역사도 세부적인 역사 연구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이다. 그러나 거시사는 불완전하다. ... 미시사를 동반하지 않는 거시사는 이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없다."

영화가 그러하듯이, 어떤 사물을 적절히 묘사하려고 할 경우 역사가는 "전체에서 시작해서 임의의 세부 사항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전체로 돌아 나오는 것과 같은 식으로, 실로 끝없이 되풀이하여 움직여야만" 한다.  (...) 그러나 역사학에는 초점 거리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진기의 렌즈 같은 것은 없다. 크라카우어가 꿰뚫어 보았듯이, "역사적 우주는 동질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라카우어가 생각하기에 미시사와 거시사 모두가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은, 어떤 경우에나 문제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관점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결코 극복될 수가 없다. ... 두 가지 상이한 연구가 서로 공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양자는 절대 서로 융합하지 못한다."[주4]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관점의 다양성을 위한 변론"을 편 점에서 크라카우어는 최근의 미시사가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 미시사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데 그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알게 된 다음부터 미시사가들은, 크라카우어의 입장에 동의를 표하면서 기꺼이 인용하고 있다.[주5]  크라카우어의 주장이 지니는 중요성은 '미시사'와 '거시사'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한 점에 있다. 그는 몇 가지 비유를 사용했는데, 최근의 토론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예를 들자면, 크라카우어는 크고 작은 "척도()"라든지, "확대 촬영()", 전체()" 또는 "조감도()"와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그 밖에도 오늘날에는 폐기 처분되다시피 했지만 "비행 시각(Fliegenperspektive)"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 그의 주장 가운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미시사화 거시사를 구별하는 방법이다. 
  • 크라카우어는 그것이 주로 "역사가 펼쳐진 시간적·공간적 단위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는 "단순화할 필요 때문"에 시공의 "연속체"를 두 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 한쪽 끝에는 "극단적인 일반성의 통합으로서의 세계사[거시사]"를, 다른 한편의 끝에는 "원자와도 같이 미세한 개별 사건에 관한 연구[미시사]"를 배치시켰다.
(...) 1960년대의 역사 서술에서 미시적 분석을 대표할 만한 저작은 루이스 네이미어(Lewis Namier: 1888-1960. 영국의 역사가로 18, 19세기 유럽 연구로 유명하다)의 경우라 하겠다. 그의 논저는 이미 출판 당시에도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었다. 네이미어는 헌법의 역사와 정당의 역사라는 전통적인 연구 범위에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그 대신에 그는 하원 의석의 구성과 선거 과정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 조사를 바탈으로 18세기 영국의 정치적 구조를 서술했다. "네이미어의 관심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생애다"라고 크라카우어는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네이미어에게 해당되는] "이름없는 사람들이란 [뒷날 미시사 연구에서처럼] 방앗간 주인이라든가 마을의 신부/목사, 직조공, 농부... 소작인들이 아니라, [어엿한] 영국 의회의 의원들이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기념비적 연구로 저자 성명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역구별 인구 분석까지 동원하여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를 연구한 결과가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확인 요}
(...)
  • 페르낭 브로델의 경우, "미시사"는 "미시사회학"을 방불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브로델이 보기에 미시사는 "사건의 역사"였다. 장기간에 걸친 구조의 연구라든가 중기간 동안의 "경기" 변동을 연구하는 것에 비하여, 미시사는 그저 표면에 머물 뿐이라는 혹평을 그는 남기고 있다.[주7: Fernand Braudel, "Histoire et sociologie"(1958/60), ^Ecrit sur l'histoire^, 1969, 97-121쪽. 112쪽 이하 인용)
  • (...) 또한 멕시코의 루이스 곤살레스 이 곤살레스(Luis Gonzales y Gonzales)는 1968년, 멕시코 어느 마을의 400년 간에 걸친 '미시사'를 썼다.
  • 위톨드 쿨라(Witold Kula)는 1963년에 저술한 경제사에서 "미시 분석"과 "거시 분석"을 구별했으며,
  • 헥스터(J. H. Hexter)는 1968년에 역사 서술의 수사학에 관한 연구에서 이 두 가지 용어를 구분해 사용했다. 사학사적인 저술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경우 헥스터는 그것을 "거시 분석"이라 했다. 그에 비하여 연구자의 관심이 역사적 수사학에 관계되는 개별적인 요소[??]에만 국한될 경우에는 "미시 분석"이라고 했다.[주9] 
  • 또한 흔히들 이용하는 용어이지만, "권력의 미시 물리학"이라는 푸코의 표현이야말로 현대의 자연과학이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고 하겠다.[주10]{자연과학이라는 주어와 향하다라는 술어, 둘 중 하나가 잘못 배치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좀 든다} 
(하지만) 미시사가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버리고 "작은 일"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아니다. 반대편[거시사]에 선 역사가들은 미시사를 "작은 일"에만 매달리는 것으로 몰아붙였지만, [이 생각이] 오해라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다. 이로써, 단순히 서술 대상의 규모를 기준으로 미시/거시를 구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연구로서 미시사가 강조하는 것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세밀하게 관찰하되 그 연구 대상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통하여 이전의 역사 연구에서 전혀 주목되지 못했던 과거의 본질적인 여러 현상을 가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시사 연구 초기 단계부터 제기되었다.

(...) 미시사의 연구 중점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미시사는, '전통적'인 거시적 관점의 사회사에 대항하는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후자인 거시적 사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하층민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통계 숫자나 익명으로만 파악되는 존재였다.[주19]

미시사가 날린 공격의 화살은[,]
  • 아날 학파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거대 통합주의[전체사]와 지역사 연구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 영국과 미국에서 일정한 세력을 이룬 "신 사회사()"의 통계 중심적 연구,
  • 그리고 독일의 정치적 사회사[위에서 말한 거시적 관점의 사회사와 같은 것으로서 역사사회학으로도 불린다]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주20]
1979년 이탈리아의 긴츠부르크와 포니는 일종의 접목을 미시사의 목표로 삼았다. 즉 "엘리트를 위주로 하지 않는 관점"을 수용하면서, 여기에다 전기적 서술 중심의 기존 엘리트 연구에 활용되는 "개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융합시킬 셈이었다. 그들은 실로 많은 사례 연구를 통하여 "민중의 전기적 연구"를 실천에 옮기고자 애썼다.[주21]

(...)

그러나 미시사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서로 고립된 개인들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 나름대로 "전략"을 추구해왔다. 사회적 집단이나 기관은 객관적 사실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외딴곳에 사는 농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규범을 자기네 목적에 알맞게 운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여 일상 생활의 정치"는 이루어진다. '보통 사람들'이 때로는 협상을 벌이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이러한 일상 생활의 정치를 해 나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 다름 아닌 사회적 집단이고, 기관이다.[주23]

원칙적으로 볼 때, 수없이 많은 개인의 전략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들 전략이 서로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가 바로 "사회의 모든 조직"이다.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씨줄과 날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의 "엮임"을 "재구성해내는" 일이야말로 미시 분석이 감당해야 할 특별한 과제이다.[주24] 

(...)

이 시기[1970년대]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 연구에 필요한 이론상의 모형을 설정한 다음, 산업화 이전의 산업화를 연구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1974년부터 이 연구 계획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두 가지 노선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 형성기에 농촌 지역에서 공업적 상품 생산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일반적 가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측에서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던 지역에 관한 미시적 연구인데, 연구가 진행될수록 방금 말한 일반적인 가정과의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 그런데 이 논문의 저자는 "농가의 사회 활동에 관한 광범위한 전기적 자료가 구성되었다"는 점 말고는ㅡ방법론 위주로 미시사를 소개하는 논문이기 때문에 생략한 것 같지만ㅡ이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작업에서 드러났다는, 일반적 가정과의 차이점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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