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06년 9월 9일
위 자료출처에 나오는 최용희라는 분이 이 자료를 올리신 것 같다.
제목: 공학적 관행과 윤리학
지은이(추정): 윌리엄 린치·로널드 클라인|웨인 주립대학교·코넬대학교
개인적 키워드: Diane Vaughan, 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챌린저호 폭발사고, normalization of dev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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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 사고에 대한 다이안 보건[Diane Vaughan]의 분석은 과학기술학이 공학윤리교육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미래의 엔지니어들이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을 통해 위험이 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하여 영웅적 개입이 벌어지기 전에 공중보건, 안전, 복지 등의 쟁점을 제기하도록 할 수 있다. 공학설계과정에서 전례나 점진적 변화, 또는 공학적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이해함으로써 작업장 문화의 일상적 과정으로 인해 대중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경우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공학관련 사업에서 빚어지는 대형사고에 대한 상세한 사례연구와 공학윤리 수업에서 다루는 가설적인 윤리적 딜레마들에 대한 분석에 대한 수정을 제안할 것이다. 공학적 관행의 사회기술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실 조건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조기에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개선에 저해가 되거나 도움이 되는 작업장 조직 및 문화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죽은 비극적인 챌린저호 사고 전날 밤, 엔지니어들이 위험을 인지했지만 발사를 취소하도록 미항공우주국(NASA)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던 장면은 공학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모턴 씨어콜(Morton Thiokol)이 화씨 53도 이하의 조건에서 발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학적 결론을 내렸던 2차 원격회의가 끝난 이후 케네디 우주센터와 마샬우주비행센터의 관리자들은 이런 결론을 반박했고 발사 하루 전날에서야 새로운 발사기준을 제시하는 거냐고 주장했다. 마샬센터의 과학-공학부 차장인 조지 하디는 씨어콜의 권고를 듣고 매우 "오싹했다"고 말했다. 미항공우주국 고체로케트추진체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래리 멀로이도 "오, 씨어콜. 내가 다음 4월에야 발사하기를 바라는 겁니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유타에서는 씨어콜 엔지니어와 경영자들이 직접 모여서 회의를 했고 선임 부사장 제리 메이슨은 "경영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학담당 부사장인 로버트 룬트는 처음에는 발사에 반대하는 엔지니어 편을 들었지만 네 명의 경영자들 중에서 룬트 혼자 발사 반대를 고수하자 메이슨은 룬트에게 "엔지니어의 모자를 벗고 경영자의 모자를 써야 할 때다"라며 권고했다. 룬트는 반대를 접었고, 발사는 이루어졌다. 엔지니어, 윤리학자, 언론에서는 이 장면이 1986년 1월 28일에 있었던 사고를 초래한 우주왕복선 계획의 모든 잘못의 전부인 것처럼 ― 생산 상의 압력이나 일정 상의 압력이 안전에 대한 우려보다 앞섰다 ― 포장했다. 이런 에피소드나 엔지니어의 "모자"와 경영자의 "모자"에 대한 일화는 공학이나 공학윤리 관련 문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챌린저 사고의 원인을 "안전보다 일정이 우선이다"는 것이 문제라는 식의 해석이 오해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일 것이다.
다이안 보건이 챌린저호를 사고로 몰고간 이유에 대한 매우 많은 연구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보건은 챌린저 사고에 대한 연구에 대한 규범적 해석에 [챌린저 사고를 다룬 연구에서 규범적 해석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공학에서 윤리의 역할에 대한 엔지니어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Vaughan 1996, 304-5, 315-6, 318). 윤리학자들은 일상에 기초해서 결정을 형성하는 공학적 관행의 복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엔지니어들이 명확한 윤리적 딜레마가 드러나기 전에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일상적인 관행의 특징들에 대해 어떻게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한다. 우리는 공학윤리가 도덕이론이나 전문직업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를 보완해서 과학기술학에서 발전된 기술적 관행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기초로 윤리적 성찰을 하려고 한다.
응용도덕철학으로서 공학윤리
대중적인 교과서에서는 공학윤리를 "① 공학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이나 조직이 직면하는 도덕적 쟁점이나 결정에 대한 연구 또는 ② 기술관련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행위, 특징, 정책, 관계 문제에 대한 연구"로 정의한다 (Martin and Schinzinger 1996, 23). 윤리교육은 구체적인 가치들을 주입하기보다는 개인들의 도덕적 사고를 위한 체계적인 지침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학교육을 연구하는 아안느 베실린드는 윤리학을 "개인의 도덕적 가치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가치내재적 판단을 내릴 때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계적 방법론에 대한 연구"라고 본다 (Vesilind 1998, 290).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덕이론은 엔지니어들이 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공학윤리는 전문직업윤리학의 한 형태이지만 엔지니어의 특수한 사회적 역할에 대해 먼저 고려해야 한다. 최근의 교과서에는 다음을 강조하고 있다.
공학윤리는 전문직업 윤리학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개인윤리학이나 다른 사회적 역할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윤리적 책임과는 다르다. 공학윤리는 공학윤리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고 이런 기준이 어떻게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주요 관심으로 한다 (Harris, Pritchard, and Rabins 1995, 14)
전문직업으로서 공학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런 접근법은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직면하는 압력과는 무관하게 대중에 대한 책임 ― 공학관련 협회/학회의 윤리강령의 형태로 공식화되는 ― 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다. 개인의 도덕적 추론을 강조하거나 전문직업의 규범적 기준을 강조하더라도, 공학윤리학자들은 엔지니어들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다.
공학윤리 교과서는 공익과 사익의 상충, 영업비밀의 보호와 비밀준수책임, 거부권, 전문직업의 책임, 공중보건·안전·복지에 대한 책임 등 엔지니어들이 마주치게 될 여러 가지 윤리적 쟁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제일 마지막에 있는 대중들의 안전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공학적 관행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도덕이론을 이해하거나 전문직이 갖고 있는 윤리강령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공학윤리 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하지만 대중들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는 일상적 결정을 형성하는 작업상 관행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엔지니어들이 잠재적인 위험을 인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면 자율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를 통해서건, 전문직업의 윤리강령을 통해서건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위험을 예방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주1).
공대생들은 도덕이론과 전문직업의 행위기준을 이용해서 도덕적 문제들을 인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공학윤리수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대체로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이 기업이나 관료조직의 피고용인인 상황에서 공공안전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개인의 자율성이나 전문직업의 자율성에 대해 가졌던 관심이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의 갈등, 그리고 엔지니어에 의한 내부고발행위으로 돌려져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경영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엔지니어의 전문직업인으로서 책임을 고수하기보다 안전을 과소평가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가정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학윤리는 경영진의 비용-편익 산출과 엔지니어의 공공안전에 대한 노력 사이의 갈등에만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엔지니어의 양심적 거부권과 경영진에 대해 전문직업인으로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거나 어떻게 내부고발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제기하는 게 논의의 초점이 되면서 공학적 관행과 제도적 문화에 의해 형성된, 수용가능한 위험에 대한 공학적 판단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양상들은 무시되고 만다.
공학윤리 교육에서 내부고발이 도덕이론을 이용한 논의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여러 논쟁이 있어왔다 (Weil 1983). 마틴과 쉰찐거는 공학윤리 교과서인 {공학에서의 윤리 Ethics in Engineering}(1996) 6장 [내부고발을 넘어]에서 엔지니어들은 우선 조직 내에서 내부고발이 아닌 해결방법을 추구해야하며 내부고발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엔지니어들이 양심적 반대를 할 권리에 대한 강조는 내부고발에 대한 초기의 논쟁처럼, 공학과 경영간의 갈등으로 논쟁의 틀을 잡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환경에서 엔지니어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윤리적 결정이 내려지는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보다 일반적인 응용윤리학의 경향처럼 공학윤리도 결의론(決疑論, casuistry)[양심의 문제나 행위의 선악을 경전·교회 또는 사회도덕의 표준으로 규정지으려는 학설 ―역주], 즉 사례중심논의가 부활한 것 같다(주2). 결의론은 특별한 사례에서 이미 옮고 그름에 대한 동의가 얻어진 행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행동들의 범위를 결정하기 위해 더 많은 문제 사례들을 비교한다. 이런 사례들이 공학에서의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사고를 더욱 구체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덕적 행위자인 개인에 의한 특별한 행위만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내부고발에 대한 관심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학윤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인 가설적 사례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처한 엔지니어 개인의 행동을 다루면서 작업장의 관행을 상세하게 다루거나 관련된 결정들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거나 엔지니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 또는 유사한 쟁점에 직면했던 다른 주체들의 행위를 관찰하는 등의 작업에는 무관심하다.
결의론의 확장
과학기술학이라는 학제간 연구에서 전개된 내재화된 기술적 관행에 대한 분석 (Jasanoff et al. 1995)을 이용해서 우리들은 결의론의 관심을 확장하고 더 많은 행위와 주체들을 포함하려고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경험을 가진 수많은 행위자들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도덕적 선택은 끊임없이 진행되는 관행들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윤리학자들이 내부고발이라는 극적인 사례나 도덕적 갈등이라는 이상화된 사례에만 집착하는 대신, 일상을 기반으로 결정이 형성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공학적 관행의 복잡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예방적 윤리학"과 "창조적인 중도적 방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의 책(1995)과 공학적 관행의 사회적 귀결에 대해 고려할 것과 경험을 통해 학습할 필요성을 요구하는, 즉 공학을 "사회적 실험"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마틴과 쉰찐거의 책(1996)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주3).
보건(1996)은 엔지니어가 일상적 기반에서 위험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전범이 된 과거의 사례의 정당성이 사건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엔지니어의 손에 묶여있기까지는 전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변화된 안전기준에 대한 점진적 조정과정을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보건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엔지니어는 정직하지 못한 경영진보다는 과거에 자신이 위험이 내재한 신기술의 수용가능한 위험수준을 결정했던 행동의 역사 때문에 ― 제도적 비밀이라는 보다 큰 구조와 생산에 대한 강조가 이런 결정을 강화했다는 게 사실일지라도 ― 좌절을 겪을 수 있다고 봤다. 보건은 다른 해석가들이 엔지니어나 경영자가 냉소적으로 안전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 이런 상황은 여러 공학적 재앙의 배후에 있는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있는 캐리커쳐로, 보건은 "비도덕적 계산(amoral calculation)"이라 불렀다 ― 여러 공학적 재앙조건을 수용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특정 위험이 수용가능했다는 치명적인 결정을 생산의 압박과 일정의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과 연결짓는 간단한 분석회로를 거부했다(주4).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이러한 논쟁이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행동의 윤리적 귀결에 대한 성찰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공학윤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엔지니어들이 조직 내에서 공공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윤리적인 행동을 하려 할 때에 직면하게 되는 가장 주요한 장애물을 [엔지니어들 스스로의 또는 경영자들의] 비도덕적 계산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 도덕이론의 자극을 받아서, 또는 도덕적 영웅의 이야기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아니면 전문직업의 행위강령의 요구사항이 강조하는 등의 이유로 이러한 비도덕적 계산에 저항하는 엔지니어의 모습을 강조하는 버릇이 나오게 된다. 영웅적 저항을 강조하면 바일이 편집한 {내부고발을 넘어 Beyond Whistleblowing} (Weil 1983)에서 보여진 내부고발에 대한 논쟁에서와 같은 불행한 이분법이 다시 재현된다. 알펀(Alpern 1983)은 공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면 저항이라는 영웅적 행위를 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에 직면할 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플로만(Florman 1983)은 공학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책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정부규제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웅적인 개인의 도덕적 행위 아니면 전문직과 무관하게, 모두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양자택일의 시나리오는 도덕적 딜레마에까지 도달하게된 잠복기간과 도덕적 문제에 대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윤리적 대응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윤리를 개인적 행위로 보는 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내부고발을 넘어}의 서문에서는 내부고발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서 관료조직의 작업환경이라는 맥락에서 전문직업의 독립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플로만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도 윤리학을 넘어서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어떤 관행들이 공공안전과 공공복지를 위협할 수도 있는 지를 정의하는 일은 별로 문제가 없다고 간주되고 있다. 기업의 악은 다스베이더와 같은 단계에 들어오기 때문에 막 피어오르는 엔지니어들 모두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그녀가 저항해야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그림이 캐리커쳐에 불과한 지 아닌지를 묻는 독자들은 경고는 했지만 재앙을 사실상 막지못한 "준-내부고발자"들까지를 포함해서 구체적인 내부고발자들의 개인성에 대한 극찬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숙고해봐야 한다. [챌린저호의 발사연기를 주장했던] 씨어콜 엔지니어였던 로저 보졸리는 환경에서의 독성물질을 경고했던 [{침묵의 봄}의 저자인] 카슨이 충분하게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주5).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추천할만하고, 진정으로 영웅적이지만 이러한 사람들을 기반으로 개혁운동을 하는 데에는 심각한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학생들이 그들의 삶을 기꺼이 따르기 어려운 비극적인 인물들이라는 점과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그들의 실질적으로 거둔 성공보다는 개인의 저항, 그로 인한 개인적인 도덕적 순수성이 관심을 끈다는 점 등이 있다(주6).
다른 사람들은 개인들의 저항행동들이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며 기업 내·외부에서 엔지니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용자원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도록 학생들을 독려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주7). 스티븐 웅어 (1994)는 공학학회, 윤리강령, 공학관련조합, 변호사, 규제기관, [조직]내부절차 등이 엔지니어들의 반대를 지원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엔지니어 개인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집단적 자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Unger 1994, chaps. 4-7).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1995, 68-76)은 "자발적인 회피" 또는 "의지박약" 등에 기여하는 무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책임의 장애물"에 대해서 주로 논의했다. 그러나 실제로 엔지니어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때까지는 전례들이 확립되어가고, 결함이 있는 행위과정을 합리화하는 일련의 가정에 기반해서 작업장 문화가 진화하는 게 더욱 일반적이다. 공학윤리 수업은 엔지니어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사소한(때로는 거대한) 드라마보다는 자신들의 작업장 내부의 관행 ― 윤리적 관심을 명시적으로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관행들이 지금처럼 지속되거나 새로운 시나리오가 발전된다면 윤리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에 대해 성찰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한다. 공공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예상될 때, 엔지니어들은 추상적인 도덕철학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자나 역사학자들에 의해, 그리고 지금은 과학기술학 ― 해석적 유연성, 해석의 종결(closure), 숫자에 대한 신뢰, 고분고분하지 않는 기술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기술적 관행, 그 자체에 대해 내부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Downey and Lucena 1995; Collins 1985; Porter 1995; Wynne 1988).
적어도 로버트 머튼 이후의 과학사회학은 어떤 관행이 그리 긴밀하지 않은 연관을 갖고 있는 윤리적 귀결을 입증하려면 사회학적 성찰을 반드시 거쳐야하며 비성찰적인 관행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윤리적 귀결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간주하고 있다 (Merton 1979). 최근의 민속지적 접근과 사회학적 접근이 자연 및 사회 현상에 관한 지식의 미시문화적 구성이 현재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참여자들의 의미형성 활동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철학자들의 성찰적 판단은 위험의 신호들을 당시에 인식할 수 있었던 이유, 또는 인식을 불가능하게 했던 이유를 무시하고 넘어갈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여러 논자들이 종종 놓치고 있는 사실은 과학·공학적 맥락이 참여자들 스스로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 지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다시 겉으로 보기에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사후 성찰의 이점에 의존하는 비생산적인 도덕주의를 조장하게 된다(주8). 보건(1996)은 고체로케트추진체 설계와 문제의 오-링(O-ring)에 대한 조사에 관련된 엔지니어집단들의 위험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한 상세한 "민속지적 역사기술(historical ethnography)"을 과학기술학적 연구로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보건은 커다란 구조적 제약 ― 엔지니어들의 "문화생산"이 미항공우주국의 "생산문화"와 "구조적 비밀주의"에 의해 강화되었다 ― 이 현실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주9). 게다가 그녀는 엔지니어들이 발전시켜온 위험에 대한 내적으로 일관성있고 합리적인 구성물이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유쾌하지 못한 결과 ― 보건이 "이상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고 부르는 ― 로 이어지게 되는 여러 우연적 가능성들과 어떤 면에서 공통점들이 있는 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런 정상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과거의 결정이 나중의 결정을 정당화하게 되는 방식과 점진적 변화로 인해, 그렇지 않았으면 수용되지 않았을 수용가능한 위험이 구성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공학적 관행의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민감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그들이 영웅적 개입을 해야하기 전에 잠재적인 위험을 제기할 수 있는 전략을 발전시킬 것이다.
과학기술학의 작업이 여러 관행들의 국지적 총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문화적 관행의 한계, 실패, 병리를 고려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Lynch 1994). 보건은 "실수의 불가피성"이라는 장(1996, 415-422)에서 구조적 변화가 미래의 실수로 이어질 것이라거나 재앙을 예방할 수 있도록, 현재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조직의 여러 요소들이 방해받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해 회의적이다. 문제를 이렇게 바라보면 (보건이 해결책으로 특정한 개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적 관행을 개혁하려는 사회학자나 다른 외부인들에게 모든 부담이 넘겨지게 된다(주10). 대신 우리는 과학기술학을 통해, 엔지니어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관행에서 문제가 되는 측면을 찾아내고 그들의 상상력을 ―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엔지니어들이 갖고 있는 설계상의 선택권을 통해,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더욱 "강력한" 행위자들이나 사용할 수 있었을, 어떤 기술형태를 형성하는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중요한 이론적 함의가 있다 (Latour 1996; Boland 1983). 우리는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보건의 대안적 분석이 공학윤리 연구 및 교육의 새로운 전략을 어떻게 제안하고 있는 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
극단적 윤리학의 회피
로버트 룬트가 엔지니어의 모자를 경영자의 모자로 바꾸어 쓴 것은 공학윤리의 역사가 보여주는 신화적 장면이다. 대부분의 신화들처럼 이 사건에 부여되는 의미들은 진지한 영적 추구나 제도적 개혁을 고무하기 보다는 현상황에 순응하기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신화는 과거완료시제의 능동형태를 띈다. 윤리학자들은 합리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는 엔지니어라면 그/그녀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도구를 활용해서, 무엇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는지를 규명하려고 한다. 대다수의 엔지니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상황은 엔지니어들이 경영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는,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저술가인 트루디 벨과 칼 에쉬는 미국 전기전자공학회의 ≪IEEE 스펙트럼 IEEE Spectrum≫에 쓴 글(1987, 38)에서 오-링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경영자"와 "발사결정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던" 엔지니어들을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로저 보졸리와 아니 톰슨을 제외한 다른 엔지니어들이 경영측의 결정에 대해 침묵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어떤 태도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경영진" 역시 엔지니어들이었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공학적 분석의 가치를 인정했고 그렇게 생각했다.
[2차 원격회의에 참여한] 34명은 "경영자"와 "엔지니어"로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마샬센터의 래리 웨어에 따르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엔지니어다. 따라서 공학적 측면으로는 이렇고 경영적 측면으로는 저러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모두 엔지니어였고 공학부문 경영자였다. 그 자리에 '순수한 경영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의 모두는 공학적 교육을 받았고 공학 실무에 몸담고 있어왔다. 그들이 공학관련조직에 배치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업은 엔지니어이고 사고방식도 엔지니어였다" (Vaughan 1996, 299-300).
룬트 일화를 얘기하면, 이런 복잡한 결정과정이 정체성의 갈등 문제로 환원되어버리는 게 불가피하다.
공학윤리교과서에서 이 사례는 "공학적 판단 외의 다른 요인들이 비행안전결정에 영향을 줬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영진들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활용된다 (Martin and Schinzinger 1996, 84, ≪LA타임즈≫에 보낸 엔지니어의 편지에서 인용). 비행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압력에 놓인 씨어콜 엔지니어들의 인식을 돌이켜보면서 필자들은 "미항공우주국의 모토를 '안전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비행하지 마라'를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비행하라'"로 바꿔 부르면서 오만을 사고가 일어난 원인으로 해석한다 (Martin and Schinzinger 1996, 85). 여기에서 모자 일화는 경영상 요구때문에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위험회피적 전략이 무시된 사실을 보여준다. 마이클 데이비스 (1991)의 논문에서는 보다 세련되게 엔지니어 윤리강령이 엔지니어들이 상반되는 임무에 대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1995)는 "공학적으로 적절한 결정"과 "경영상 적절한 결정"을 구분한다. 공학적으로 적절한 결정은,
엔지니어가 내리거나 (1) 공학적 전문성의 범위 내에 있는 기술적 사안이나 (2) 공학 윤리강령 ― 특히, 엔지니어들이 대중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 에 체화된 윤리적 표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전문적인 공학적 관행 하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다.
경영상 적절한 결정은,
경영자가 내리거나 (1) 비용, 일정, 마케팅, 피고용인들의 사기 또는 복지에 관련된 요소 등 조직의 건전한 운영과 관련된 요인들을 포함하거나 (2) 엔지니어들(또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기술적 관행이나 윤리적 표준에 비추어 수용할 수 없는 합의를 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결정이기 때문에 적어도 경영상의 고려 하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다. (Harris, Pritchad, and Rabins 1995, 278).
그러므로 (내가 아래에서 비판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학적 결정은 공공안전과 공중보건에 저해되지 않을 때에만 무시될 수 있다. 공공안전이 문제가 되면, 조직의 필요에 대해 경영진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내려지는 공학적 판단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조직 내에서 엔지니어의 지위에 대한 개념화를 하다보면, 공공안전을 보호해야하는 ― 이런 위험의 사례로는 챌린저호 발사 결정이 제시되곤 한다 ― 엔지니어의 책임은 경영진이 공학적인 측면에서 안전에 대한 우려를 희생하는 경향을 갖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Harris, Pritchard, and Rabins 1995, 283-286). 각각의 경우에 숙명적인 "경영상의" 결정은 공학적 분석의 대안으로 개념화된다. 공학적인 합의를 기대할 수 없지만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경영상의 결정이 확립된 절차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는 공학과 경영 모두에 대해 경험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경영자의 경험을 통한 공학적 판단에 입각한다.
이러한 판단은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1) 씨어콜 엔지니어들은 블로바이(blowby, 피스톤과 실린더 사이의 가스누출)와 저온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사실 오-링을 통해 고온의 기체가 새어나가는 블로바이 현상 중에서 두 번째로 심각했던 사례는 가장 높은 기온(75℉)에서 했던 발사에서도 관측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공학적으로 좋은 분석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엔지니어들의 기존의 가정과 주관적인 견해보다는 정량적인 추론을 당연히 더 강조하는 관행에 굴복한 결과다(주11). (2) 두 개의 오-링 중 하나가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런 믿음은 어느 정도로 엄격한 여유치를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한 다른 식의 이해방식을 갖고 있던 오-링 작업그룹 자체의 여유치에 대한 혼란스러운 역사로 인해 더욱 촉진되었다. 씨어콜의 알 맥도널드는 저온이 두 개의 오-링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정상적인 누출검사과정이 오-링을 잘못된 홈을 타고 나가도록 했기 때문에 첫번째 오-링에 더 많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른 사람들은 맥도널드가 두 번째 오-링은 첫 번째 오-링이 손상을 입었을 때, 밀폐하기 위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해석했지만 실제로 맥도널드는 최저안전온도를 결정할 때에는 서로 다른 밀폐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려고 했을 따름이다. 씨어콜 경영간부회의에 참석했던 네 명이 씨어콜의 이전의 건의를 부정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이 고려했던 것은 블로바이와 문제의 여유치가 저온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최초의 분석에 대한 기술적 논의였다.
모자에 대한 메이슨의 비유의 의미를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진전되지 않을 때 경영진에 참여하는 엔지니어들이 정보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는 비공식적인, 기존의 확립된 관행의 맥락에서 모자의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는 게 매우 도움이 된다(주12). 보건 (1996)은 경영자의 모자를 쓰라는 메이슨의 요구에 대한 룬트의 답변이 문제의 판단이 공학적 기초도 부족했지만, 부정적인 권고사항을 방어하기 위한 엔지니어들도 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논리적] 자원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씨어콜의 래리 세이어의 해석을 인용했다.
나는 그[룬트]가 매우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돌아서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공학적 자료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봤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도움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공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원래의 권고사항을 지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p.318 강조는 인용자)
여기에서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이 공유하는 가정은 매우 중요하다. 엔지니어들이 발사해서는 안된다는 건의를 할 정도로 충분한 추가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경영상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경영자와 엔지니어의 역할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의견의 일치를 얻을 수 없는 처지의 경영자에게 공학적 판단이 맡겨지고 엔지니어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철저한 공학적 분석 ― 정량적이고 경험적인 분석을 선호한다 ― 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주13).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씨어콜 엔지니어들이 수용가능한 위험을 입증하기 전에는 발사가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기존의 이해방식을 고수한다고 해도 당시의 발사는 안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새롭고도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처해있다고 느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사례는 발사를 중지시키려고 하는, 지나칠 정도로 걱정이 많은 엔지니어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였다. 이 사례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내리는 경영상의 결정과 여러 논쟁들을 신중하게 고려해야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이 선의의 여러 자문과는 반대로 챌린저호가 발사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모든 발사를 중단시켜야만 했는데, 강행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주왕복선은 위험한 기술이고 우주왕복선을 일단 개발하기로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실행되면 우리들은 잠재적인 수많은 재앙들이 예상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마련이다(주14). 챌린저호 사고가 있기 6달 전까지 미항공우주국의 국장 대리를 맡았던 한스 마크는 12회의 우주왕복선 발사결정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 때마다 몇몇의 엔지니어들은 어느 하위구성시스템이 비극적인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발사에 반대하곤 했다. 마크는 발사가 연기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사결정이 내려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Mark 1987, 221-22; Pinkus et al. 1997, 312-13에서 인용). 핀커스 등(1997, 313)은 엔지니어들의 권고가 발사를 연기하는 데에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례들이 위계를 따라 어떻게 심화되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사례를 엔지니어들의 정당한 자율성이 주변화된 표시로 간주하는 것은 다소 이상하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반론일지라도 엔지니어의 판단을 뒤집을 수 없을 때에 있을 수 있는 마비현상을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대신, 마크의 경험은 미항공우주국의 "저비용", "고위험" 정서를 주장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미항공우주국이 안전기준을 상향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논의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건의의 부담때문에 엔지니어들의 거부권이 안전판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결과 ― 비극적인 파국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비행취소로 이어지는 경우를 포함하여 ― 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비판의 정도가 낮은 문제들로부터 진정한 문제들을 뽑아내는 것은 이미 확립된 절차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위계를 따라 정보를 위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가능한 위험이 점검되고 바람직하지 못한 정보에 대해서는 심사를 받도록 확인하는 절차를 갖고 있다. 안전심사절차는 발사인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시스템들이 안전한 지를 엔지니어들이 인정하도록 설계되어왔다.
그러면 우주왕복선의 발사가 취소되기 전에 비행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엔지니어들이 입증하는 방향으로 강조지점이 옮겨지고 있다고 엔지니어(특히 보졸리)들이 인식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 경영자들 자신들이 이미 확립되어있는 위험기피적 절차를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면, 또는 그들이 일정이나 자만때문에 냉소적으로 의식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접근으로 입장을 바꾼 게 아니라면, 왜 엔지니어들은 강조점이 이동하고 있다고 인식했을까? 보건(1996)이 생각하기에 해답은 과거부터 수용가능한 위험을 판단해오면서 발전한, 엔지니어들 자신들의 문화가 자신들의 통제로부터 소외되어왔고 스스로를 미항공우주국의 전체적인 문화 내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그 힘과 완고함에 있다. 오-링이 수용가능한 위험 범위 내에 있다는 사실을 인증했던 엔지니어 자신들은 그 정도의 오차한계는 그동안 존재했던 것이라고 믿었다. 위험에 관한 정보들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변화가 있었지만 오-링의 문제를 저온과 관련지어보려고 했던 보졸리의 노력은 거부되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졸리는 미항공우주국은 계약자가 우주왕복선의 발사가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데에서 발사가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어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항공우주국은 두가지 건의사항 ― 발사가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 ― 모두를 동등하게 사고했다. 씨어콜의 활동이 발사자문에서 발사중지자문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보졸리에게는 절차상의 변화로 여겨졌던 것이다.
경영진이 피고용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학적 판단을 "진지하게" 수용했다면 유용했을 것이라는 상투적인 얘기가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건간에 경영자들이 엔지니어들의 반대를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에 따르면, 경영자들은 공학문화에서 수용되는 증명기준이라는 유일한 새로운 반대를 터져나오게 하기도 했지만 수용가능한 위험에 대한 엔지니어들이 그동안 내렸던 판단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온도와 오-링의 블로바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량적인 분석을 했던 엔지니어들은 없었다(주15). 반면, 엔지니어들은 오-링은 수용가능한 위험범위 내에 있다는 처음의 확신이 당시에는 오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미 착수했던 행위과정을 역전시키기 위해 공학문화에서 수용될만한 자원을 갖고 있지 못했다.
고전적인 비극인 이러한 불행한 상황은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행위의 모든 결과 ―예측하지 못한 것이더라도―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실존주의자에 의해 다시 제기되어왔다. 엔지니어들이 영웅적인 저항을 했어야 하고, 언론에 알리고,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왕복선으로 가는 통로에 드러눕거나, 자신의 행동의 모든 상이한 결과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드러내는 극적인 행위를 했어야 한다는 사후적인 여러 논의들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다. 엔지니어들이 운명에 대한 정상적인 예측에 대한 마크의 논의 (1996)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면 이러한 상황이 정상적인 기반에서 다시 제기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우리들은 이내 영웅적인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늑대가 나타났다고 너무 자주 거짓말을 했던 아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극적인 장면들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을 때, 자기 자신의 환경에 있는 무언가를 바꿔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엔지니어의 자리에 있었다면 비극이 초래되지 않도록 행동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도록 하는 것은 사후판단이 갖고 있는 악덕이다. 도덕철학, 개인의 도덕강령,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책임에 대한 헌신 등은 우리들이 나약해지지 않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정하고 있다.
비극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해당 공동체의 모든 죄악을 갖고 있어서 다른 모두가 받아야할 비난을 흡수하는 외부의 속죄양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영자들은 자주 부패한 사람으로 그려진다(주16). 게다가 경영자는 거대한 경제학·사회학적 과정으로부터 고립되어서 부패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악마연구가 사회학을 대체한다. 시장이나 거대한 위계조직 내부에서의 엔지니어들의 지위때문에 발생하는 엔지니어가 갖고 있는 포로적인 속성은 공학윤리 분석에서 반드시 언급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다뤄진다(주17). 그리고 보건(1996)은 어떻게 엔지니어 집단을 둘러싸고 있는 비밀과 생산의 문화가 그들의 미시문화가 착취되고 자신들에 반하여 이용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경영진, 정부기구, 기업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적절한 재량권을 박탈할 수 있는 대안적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편리한 표적만을 비난하는 윤리학으로 환원되는 게 아닌, 사회학적으로 민감한 윤리학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사회학적 윤리학이 취해야 하는 형식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관행을 성찰하고 그것을 변화시켜 위기상태의 잠재적 문제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보건 (1996)의 사례연구에서 드러난 공학설계가 갖고 있는 몇몇 두드러진 특성들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1) 작은 전례가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고 엔지니어들은 다른 행위자들이 이러한 전례에 부여한 의미들이 자신들이 부여한 의미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2) 공학적 판단에서 점진적인 변화는 현재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특성이다. 엔지니어들은 잠재적인 문제가 있는 경로를 찾아내고 회피하려고 한다. (3) 공학적 판단은 정량적 증거가 불충분할 때에는 위임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어떤 현상을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때문에 그 현상을 추가적으로 탐구해야하는 "암흑상자"문제로 이끌 수도 있다. 공학적 관행은 과학적 관행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이며 불완전하다. 공학적 방법을 신화적으로 설명하게 되면 설계안전에 대한 인지적 판단이 문제가 없다고 가정하게 되면서 치명적인 잠재력을 갖게 된다(주18). 이런 주제들은 ― 전례의 중요성, 점진주의, 공학적 판단의 오류가능성과 공학적 판단의 동시적 필요성 ― 명백한 비도덕적 계산의 증거에 주로 집중하기보다는 공공안전에 관련된 공학에서의 윤리적 쟁점을 찾아내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도덕적 계산이 의사결정과정을 훌륭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공학윤리 교과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거나 명쾌하지 않다. 이 글의 나머지에서는 공학윤리 교육에서 공학적 관행에 대한 이해를 통합하는 전략을 제안하겠다.
공학윤리수업
공학적 관행의 사회학적·문화적 맥락을 관심에 두면 공학윤리교육은 풍부해질 수 있다. 우리들은 학생들이 공공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눈앞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기 위한 숙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리적 중요성을 결정하는 것은 문화 및 제도적 맥락 내에서 형성된다. 엔지니어들은 인공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공학적 관행이 수행되는 방식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정들의 집합을 생산하는 데에 기여한다. 그들은 윤리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결정을 형성하는 작업장 문화의 적극적 생산자다. 그러나 아직까지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을 성가시게 하는 윤리적 딜레마가 닥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작업장 환경에서 윤리적으로 중요한 요소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학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현재의 문화생산이 어떻게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한 엔지니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형성하는 지를 고려하게 되면 공학윤리에 매우 유익한 결과가 얻어질 것이며 효과적인 윤리적 행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숙련 ― 무엇보다 일상생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 ― 이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갖게 만든다.
[수업에 다루기 위해] 사전에 짜여져 있는 윤리적 딜레마는 교사들이 1회의 수업시간에 하나의 사례를 다루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공학윤리 수업의 표준으로 교육되고 있다. 전형적인 경우, 학생들은 선임자에 대한 순종의 의무와 잠재적인 위험을 갖고 있는 설계상의 결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할 요구 등의 상충하는 입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된다(주19). 이러한 결정은 통상 이미 주어진 작업환경 내에서 확립된 자원, 관행, 규칙들에 대한 맥락적인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이상화된 형태로 제시된다. 게다가 단일한 결정시점이 제시되는 게 보통이다. 몇몇 경우에 1회의 사후 결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런 데에서 작업장 문화에 상존하는 윤리적 결정의 누적 효과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자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딜레마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학생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주어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게 상급자에게 도전해서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하거나 아니면 현상황을 승인해서 심각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할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다면 학생들은 윤리학을 자기희생적인 영웅주의와 비도덕적인 자기이해라는 양자 사이의 맞교환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잘 짜여지지 않은 현실 상황의 윤리적 문제가 제시될 때 갖게되는 처음의 인식을 진전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작업환경과 작업문화의 상이한 요소들이 해결을 위한 노력을 방해할 수도 있고 촉진할 수도 있는 지를 가르쳐주지 못할 수도 있다(주20).
엔지니어들이 [수업을 통해 습득하게되는] 잘 짜여져 있지만 이상화된 사례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암묵적인 가정들로 구성된 제도적·문화적인 제약조건 내에서 서투르게 구조화된 문제분야에서 윤리적인 쟁점들을 파악해내는 능력보다는 덜 중요하다(주21). 윤리적 의사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공학적 관행의 사회학적, 문화적 맥락과 이것이 상존하고 있는, 평범한 공학적 관행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 윤리적 가치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직접적이고 의도적인 갈등은 의도적 행동이 빚어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으로 표현한 결과나 이러한 관행들이 만들어내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효과들을 추적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여러 관행들의 문화적 표준화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대학에서의 공학윤리 교육을 통해 공대생들이 자신들의 장래의 직장에서 공공안전과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상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학적 관행은 공대 졸업생들이 윤리적 성찰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작업환경의 특성을 파악하게 되는 계기를 제약한다고 믿고 있다. 보건 (1996)은 오-링 문제를 제기했던 엔지니어와 경영자들 작업 집단의 과거사를 재구성함으로써 챌린저호의 발사 결정에 이르게 된 정상성과 점진주의를 추적하고 있다.
보건 (1996)은 챌린저호 사고를 해석하는 규범적인 해석을 뒷받침하는 "비도덕적 계산"이라는 묘사의 설득력을 침식시키면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여러 윤리학 교육을 작동시키는 유사한 가정에 도전하고 있다. 경영자들은 안전에 대한 엔지니어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비용과 일정에 대해서만 고려한다고 정의된다. 공학윤리 교육자들에게 이런 상황은 윤리적 행위와 기업의 이윤극대화 욕구 사이의 고전적인 갈등상황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미 준비되어있는 도덕이론이 적당하다는 인식으로 빠르게 넘어가서,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고 행위를 위한 잠재적인 자원은 어떻게 정당화될 지에 대해 도덕적 직관력을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경영상의 명령으로부터 엔지니어들이 자율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이러한 갈등에 기여할 수도 있는 엔지니어들의 작업장 관행이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적 관행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공학윤리학자들은 기업에 고용된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공공안전이 어떠한 지위를 갖는 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때, 예방적 윤리학보다는 위기윤리학을 고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Harris, Pritchard, and Rabins 1995, 14). 윤리학자나 현업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현실때문에 어떤 행위과정이 파국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개인들을 강제로 안정화시키게 된다. 이는 특정한 사례로부터 추상화될 수 있는 일반적 "교훈"이나 내부고발자(또는 보졸리 같은 "준 내부고발자 (near whistle-blower)")의 개인적 성격에 대한 치료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공학문화와 윤리적 성찰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기업문화나 조직문화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제약을 받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이 기업의 위계, 기업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정부기구, 또는 시장압력에 의해 부여된 비용이나 일정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기술을 설계하는 자유를 가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재정적인 정보를 관장하는 규정이나 비밀이나 보안에 대한 내규는 조직 내의 모든 사람들이 만약에 있을 수도 있는 설계 상의 모든 우려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공학윤리학자들이 내부고발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이해할만하다. 정보를 공개하고 규제기관에게 정보를 알리고 기업의 위계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은 엔지니어들이 고용주들이 보건이나 공공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의 내부고발자들을 낙담시키려는 게 아니며 공익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피고용인들과 반대에 있는 기업의 이해를 방어하려는 반-내부고발자적 논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엔지니어들은 아무리 민중지향적이고 매우 윤리적일지라도 자동적이면서도 무오류적으로 공익이 요구하는 바 또는 엔지니어들이 공익을 대변해서 행동할 때를 알 수 있지 않다. 보건(1996)의 분석은 내부고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게 환상적 시각의 결과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윤리학자는 엔지니어들이 직면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대안적 시나리오를 상상하거나 시시각각으로 그/그녀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이 처해있는 긴급한 필요로부터 떨어진 어떤 조직으로부터 내려진 의사결정궤적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는 챌린저호 사례에서 나타난 이상(異常)행동들의 정상화에 대한 보건의 분석으로부터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작업문화가 갖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문제화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접근방법은 사고에 대한 사후적 연구나 이상화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두 가지 이점을 갖고 있다. 우선, 공대생들이 매우 추상적인 도덕이론이나 전문직업의 [윤리]강령보다는 현실의 공학적 관행의 특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도덕이론이나 전문직업의 [윤리]강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공학적 관행과는 직접적 연관을 갖지 않을 수 있으며, 특히 조직 내에서 권리와 의무 문제가 연관되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 교실에서 윤리학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사용되는 개념들과 학생들이 직면하게될 "실제 세계"의 여러 측면들 사이에 견고한 연관을 형성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장래의 전문가로서의 삶에서 교실에서 배웠던 지식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둘째, 논의되는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의 여러 특성들은 공학적 사고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따라서 공학적 사고가 평범한 관행으로부터 유발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학생들은 일상적인 작업환경과 공학적 사고에 대한 상세한 사후적 검토를 서로 연관짓게 된다.
비도덕적 계산, 내부고발자, 미시-거시 문제
"비도덕적 계산"이라는 게 사회학자, 엔지니어, 일반인들에게 동일하게 결정적인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비도덕적 계산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식은 사회이론가들이 미시-거시 문제라고 부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Alexander et al. 1987; Knorr-Cetina and Corourel 1981). 한편, 우리는 나중에야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결정들이 [지금도]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링이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증거들이나 초기의 설계규격에서부터 벗어났다는 등의 문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사신호가 내려지는 동안 추가연구꺼리로 남겨지면서 무시된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일정과 비용을 맞춰야 한다는 제도적, 정치적 압력이 이 시기 내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압력과 비용에 대한 관심은 이미 알려진 안전에 대한 우려를 압도해왔다. 미항공우주국의 경영진은 의식적으로 이러한 추가적인 기술적 압력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선택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문서로 정리했을 때, 대통령 위원회는 기존에 확립된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러한 비약은 계산을 통해 비용과 일정을 안전과 맞교환했다는 합리적 선택에 의한 규칙위반을 너무나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사례는 학생들이 단순한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윤리적 관점을 채택하기 위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묘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 거짓이라는 점이다. 보건 (1996)은 설계상의 우려에 대한 감시활동과 이런 우려에 대한 답변에 대한 기존의 확립된 절차들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명백한 규칙위반이라는 것이 사실상 규칙을 준수한 결과이며 엔지니어들이 오-링 문제는 ― 실질적인 추가 연구가 필요했지만 ― 그들이 생각하는 수용가능한 위험 내부에 있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건은 여기에서의 의사결정이 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두 종류의 논의를 끌어들이고 있다. 첫째, 문제의 작업집단의 문화를 통해 위험이 이해되는 과정이 진화해온 과정에 대한 통시적이고 점진적인 설명을 통해 새로 제기된 심각한 문제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들에 의해 수용가능한 위험이라는 식의 정직한 규명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이상이 정상화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작업집단의 자기이해는 생산과 비밀의 문화에 의해 강화된다.) 둘째, 과학기술사회학의 작업을 통해, 오-링 문제때문에 재설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우주왕복선의 비행이 연기되었어야만 했다는 사후적 판단의 "명백함"과 자명함을 부식시키고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비정상사례의 바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새롭고, 복잡한 기술적 시스템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이 항상 모든 문제들을 예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경험의 진화에 따라 과거의 설계도를 조정해야만 한다. 게다가 공학적 관행은 설계의 잦은 변경이나 급격한 변경은 알려지고 취급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문제들을 알려지지 않은 심각할 수도 있는 문제들로 대체하는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도입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정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Petroski 1985). 엔지니어들도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존재하게 마련인 비정상사례들과 성공적일 가능성이 있는 여러 대응방안들을 형성하는 구조 내에서 작업하고 있다. 끝으로,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비정상적인 행태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실험과 정량화의 미덕에 대한 고집은 설계상의 문제가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확신으로 이어지는 데에 기여한다.
소형 사례에 대한 재고
공학윤리 교사들은 대형 사례연구와 소형 사례연구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한다. 대형 사례는 에세이나 연구논문의 형태이며 소형 사례는 수업에서 다뤄지는 단일한 쟁점 정도로 이용된다. 소형사례들 ―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설적 시나리오인 ― 이 공학적 관행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이해를 위해서 어떻게 재가공될 수 있을까? 우리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가설적 사례는 문화적으로 체화된 공학적 관행의 특성들을 성찰하기 위해 재서술되어야 한다. 둘째, 서술된 사례는 학생들의 창의성, 세부사항에 대한 관심, 설득의 필요 등을 북돋우기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은 타인의 관점을 탐구하도록 역할연기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서술과 역할연기 경험이 효과적이려면 가설적 사례가 명확하게 구조화된 가치들의 갈등에 대한 지금과 같은 강조보다는 공학적 관행의 복잡하고 개방적인 본질을 반영하도록 재서술되어야만 한다(주22). 소형 사례들은 본질적으로 민속지적 세부 내용을 완전히 포함할 수 없다. 그러나 가설적 사례는 (1) 해당 사례의 조직적인 환경과 설계의 과거 역사에 대한 맥락적 배경과 (2) 다른 것들보다 더 분명하게 쟁점을 정의하는 실마리를 사례를 구조화하는 실마리들을 소거함으로써 현실의 윤리적 문제들이 갖고 있는 점진적이고 맥락적으로 체화된 속성을 모사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편집되지않은" 맥락적 배경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딜레마의 어느 한 편(일자리를 잃거나 감독자에게 저항해야한다)을 선택하도록 강요되기 보다는 창조적으로 해결책을 탐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대안들을 생각해내도록 돕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주23). 잠재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세부 내용들을 포함하게 되면, 학생들은 교사가 선호하는 정답을 탐구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예상되는 문제들과 가능한 답변들을 자유롭게 상상해보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은 공학적 관행에 대한 보건 (1996)의 책이나 다른 책이나 논문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을 활용한 가설적 사례들에 대한 창조적인 대응방안을 서술하는 리포트를 제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맥락적인 세부 내용과는 거리가 먼 도덕적 딜레마에만 초점을 맞춘 대표적 사례인 "제이와 촉매"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 사례에서 제이는 미숙련 조수가 수행한 시험결과 촉매B가 더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촉매A가 촉매B보다 우수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촉매전문 엔지니어다. 제이는 시험결과에도 불구하고 촉매A가 우수하다는 것을 자기가 속해있는 작업집단의 합의를 입증하기 위해 역산을 하도록(work the math backwards) 지시를 받았다. 학생은 [이 지시에] 거부하는 리포트를 쓰거나, 비윤리적 지시에 반대하는 언급을 담고 있는 리포트를 쓰거나, 서명하기를 거부하거나 직접적으로 더 높은 상급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리포트를 쓰는 등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타"를 선택했고 몇가지 더 나은 세부내용을 이용해서 시나리오를 더 정교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촉매A를 선호하는 이유가 역산없이 제시되었다거나, 그 시험이 다시 한 번 수행되어야 한다거나, 시험의 정확도가 명시되지 않은 채 제시되었다거나, 제이가 부서장의 마음을 바꾸려고 한다는 등이 있다(주24).
도덕 이론에서 기원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교사들은 이렇게 기타를 선택한 게 엔지니어들이 윤리적 딜레마를 회피하고 "기술적"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경향은 이미 제시된 사례의 특성을 활용해서, 실질적이고 윤리적으로 수용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한 진지한 노력 ― 기존의 절차, 비공식적 관습, 조직적 목표, 조직의 역사, 개성에 대한 서술적 배경을 확립하기 위한 ― 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틀린 데이터라는 문제를 부각시키는 딜레마를 어떻게 모양새를 갖추게 하려하기 보다는 어떤 한 시점에서 가능한 선택지들의 목록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의 행위절차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세부내용을 갖고 현재의 결정과정에 임할 수 있다. 학생들이 틀린 데이터의 "비도덕적 계산"이 아닌 이 사례의 특성 중에는 정량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의 권위와 오류가능성, 공학적 결정에서 배경가정의 역할(이 사례에서 여러 가정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전례의 중요성(각각의 행위에 대해 어떤 결과가 얻어질 것인가), 생산압력과 조직적 비밀의 효과 등이 있다. 끝으로 공대생들은 자신들의 행위절차들에 대한 설득력있는 논의를 만들어내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공학윤리의 내용을 내부에 통합하고 있는 수업은 공대 교과과정에서 "교과과정을 가로지르는 리포트"의 이상적인 자리다. 상호관계적 접근은 리포트에 대한 동료들의 심사과정과 피드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실에서의 역할연기는 공대생들이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주25). 예를 들어, 제이의 부서장은 제이보다는 중간적인 입장에서 생산압력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학생들이 도달한 해결책에 대해 그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 각각의 학생들은 제이의 역할과 부서장의 역할 또는 조직적 환경 내에서의 윤리적인 책임을 갖고 있는 결정을 보다 사실적으로 모사하기 위해 다른 구성원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할 수 있다.
대형 사례에 대한 재고
보건 (1996)의 책은 복잡한 조직에서 어떻게 수용가능한 위험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가에 관련된, 공학적 관행에 대한 역사적이면서 민속지적인 연구의 모델로 제시될 수 있다. 공학윤리에서 또다른 주요 교육자료로 이용되는, 공학관련 사고를 다루는 "대형 사례"도 보건같은 꼼꼼한 연구자의 연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 연구는 공학적 관행의 일상적인 특성이 윤리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공학관련 사고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패러다임적 사례로도 사용될 수 있다. 공학관련 대형사고에 대한 기존의 문헌들을 재가공하기 위해 교사들은 소형 사례들에서 권고된 것과 유사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우선, 강의와 토론은 잠재적인 내부고발을 고립화시키기보다는 극적인 사고의 원인이 되는 관행적이고 평범한 절차와 관행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은 결론이 이상현상의 정상화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확립되어있는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를 상상하는 리포트 뿐만 아니라 챌린저 사고의 특성을 다른 사례들과 창조적으로 비교하는 리포트를 쓸 수 있다. 셋째, 학생들은 희생양이 되는 "비도덕적" 경영자들마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역할연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방법은 경영자들이 갖고 있는 행동제약과 그들을 변호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 내에서 현재의 문화가 생산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하면, 공학윤리에서의 규범적인 대형 사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수가 있을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DC-10사례를 다루는 방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1970년 지상실험을 통해 DC-10의 화물칸 문, 객실바닥, 조종장치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설계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험과정에서 화물칸 앞문이 바람에 열리자, 바닥 일부가 붕괴하는 일이 일어났다. 바닥이 손상을 입자 바닥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조종시스템이 위험해졌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능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었다. 화물칸문의 설계를 변경했지만 맥도넬 더글러스와 하청업체인 컨베어는 추가적인 설계변경이 필요한 지, 그리고 누가 재설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쟁을 계속했다. 1972년 6월, 디트로이트를 이륙한 아메리칸에어리인 96편의 화물칸 앞문이 날라가 버리고 객실바닥이 부분적으로 붕괴되어 조종장치에 손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안전하게 온타리오 윈저에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국립교통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는 화물칸문의 설계변경은 부적절했고 연방항공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FAA)은 화물칸문의 유실되면 비행기 조종이 불가능해지는 설계를 승인하지 않아야만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컨베어 내부에서는 생산부문 이사인 댄 애플게이트가 컨베어가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맥도넬더글러스에 설득시켜야 한다는 메모를 썼지만 편성이사인 허트와 부사장인 커티스에 의해 거부된 일이 있었다 (Sawyier 1983; Fielder and Birsch 1992).
반면, 연방항공국은 윈저 사고의결과로 DC-10에 대해 비행에 견딜 수 있는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공식적 명령을 내리는 대신 존 샤퍼 연방항공국 국장이 맥도넬 더글러스의 더글러스 부문 사장인 잭슨 맥고웬과 항공사들에게 필수적인 수정사항을 공지하기로 하는 비공식적인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항공사별로 보유하고 있는 자사 비행기의 특성에 대한] 맥도넬 더글러스의 보고서를 수정하기로 한 약속은 늦어졌고, 게다가 당시 보고서 상에 있는 맥도넬 더글러스가 소유하고 있던 어떤 비행기는 변경을 했다는 것을 보장하는 문서와 인증도장이 있었지만 자물쇠핀에 대한 육안점검을 위한 장치만을 추가한 채, 거의 개조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 비행기는 화물칸 뒷문을 잘 닫아야 한다는 영어 설명서를 부탁한 채, 터키항공(Turk Hava Yollari, THY)에 팔렸다. 1974년 3월 3일, 이 비행기의 화물칸문은 파리를 이륙한 지 10분이 지나자 날려가 버렸다. 1972년, 디트로이트에서의 비행때와는 달리 이 비행기는 만원이어서 바닥에는 더 많은 충격이 가해졌고 따라서 조종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비행기는 추락했고 타고있던 346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여러 나라 말에 유창했지만 영어에는 익숙하지 않었던 수화물 담당 마흐무디는 화물칸문을 검사하는 데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체엔지니어와 교육과정에 있던 이스탄불에 있던 공항의 엔지니어와 함께 자물쇠핀을 검사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컨베어 경영진에 의해 거부된 애플게이트의 재설계 요구와 더불어 항공산업을 진흥하려는 연방항공국 국장의 비공식적 신사협정과 맥도넬 더글러스와 터키항공의 명백한 거짓말과 부적절한 조치때문에 이 사례는 공학윤리라는 공장에서 수많은 쟁점들을 산출해냈다. 그러나 공대생들이 장래의 직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안목을 얻으려면 교사들은 내부고발이 가능한 순간을 찾아내거나 개인, 기업, 규제당국을 비판해서 비난을 외부화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주26). 교사들은 이런 사고에 대한 연구와 현직 엔지니어들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의 여러 측면들 사이의 연관들이 의미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해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해서 교육자들은 비난을 외부화하는 주장에 반박하고, 대신 공학관련 사고에 공학적 관행이 책임을 갖고 있다는 폭넓은 조망 하에서 "내부적"인 특성들을 지적해야 한다. 여러 사례를 보면, 엔지니어들은 "기술적" 요인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만 제도적 또는 "정치적" 요인들은 타인의 영역인 것처럼 간주한다. 그러나 사실상 여러 현직 엔지니어들은 협소하게 정의된 기술적 영역을 넘어 활동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계약을 협상하고, 조직을 관리하고, 규제당국에 보고하고, 시장력과 사회적 반응을 예상하고,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서 기술설계의 여러 요인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Latour 1996).
우리는 DC-10의 사례와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계약, 규제, 기술이전이라는 세 가지 초점을 제시한다. 애플게이트의 메모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구조적인 핵심 요인은 컨베어와 더글러스 사이의 관계다. 계약에 따르면 컨베어는 최초의 설계철학이 승인된 이후 ― 화물칸이 틈이 생길 때 바닥이 붕괴하는 일을 방지하는 공기배출설계 단계가 아니라 문제의 개폐메커니즘이 도입될 때 ― 제기된 설계변경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컨베어의 경영진들은 컨베어가 더글러스를 압박해서 바닥배기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애플게이트의 건의를 거부하게 되었다(주27). 여기에서는 계약 및 재정상의 고려가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엔지니어들도 이러한 계약과정에 빈번하게 참여했고 계약상의 세부내용들이 그들에게 어떤 구속을 미칠 지를 미리 고려할 수도 있었다.
수업시간에서는 엔지니어의 일 ― 그들이 속해있는 산업의 "비기술적" 구성요소 ― 과 공학관련 사고 사이에 어떤 관계가 가능한 지를 동시에 토론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수업에서는 계약상의 고려사항이 미래의 공학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방식들을 검토하고 학생들이 이러한 평범한 요소들이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계약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토론에는 민간부문 및 공공부문의 엔지니어들이 수업시간에 초청될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특별한 산업에서의 계약절차에 대한 연구를 하거나 제기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예상하거나 해명하는 숙제가 주어실 수도 있다. 계약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패러다임적 사례인 DC-10사고를 통해 학생들은 잠재적인 문제들이 분명하지 않은 다른 상황을 창의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기업결정에서 규제는 "외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지만 규제당국이 기업에 고용된 엔지니어들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빈번하다. 항공산업의 경우 조사는 대체로 생산자에 의해 고용되어있지만 연방항공국을 대표하는 지정엔지니어대표들(Designated Engineering Representatives, DERs)들에 의해 수행된다 (Fielder and Birsch 1992, 3). DC-10사례의 경우, 연방항공국 국장은 화물칸 문을 고치겠다는 더글러스와의 비공식 협약을 맺었다. 규제당국으로서의 연방항공국과 산업의 후원자로서의 연방항공국 사이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 효과적인 정부규제를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적이어야만 하는 경우도 좀처럼 없다는 게 현실이다.
보건 (1996)은 미항공우주국 내·외부 기관에서 안전을 간과한 것은 고체추진부스터 작업집단이 마련한 "상황 정의"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p. 271). 규제당국이 얼마나 유효한가는 규제당국과 조직의 상대적 자율성, 그리고 양자에 필수적인 상호의존성 모두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자율이 지배적인 분위기일 경우 규제당국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반대하는 여러 관계들로 인해 문제를 따라가기 위한 정보와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제약되고 있다. 상호의존성이 크면 클수록 규제받은 조직의 자원, 이해관계, 목표에 대한 더 많은 의존이 필요하지만 안전을 감독하는 데에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 수 있다 (p.264-66).
학생들에게 특정한 산업에서 규제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규제가 공식적으로 바라는 바에 반대해서 ― 를 탐구하는 과제가 주어질 수도 있다. 조사과정에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가? 조사원은 몇 명이며 그들이 사용가능한 자원은 그들의 책임에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가? 그들이 조직내에 고용되어있는 엔지니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정도는 어떠한가? 이러한 관계는 공식적인가 비공식적인가? 안전을 위한 기업 내부의 절차들은 규제절차의 효과와 독립성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가? 엔지니어들은 식견이 있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규제기구를 개혁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DC-10의 경우, 외국으로 팔려나갈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안전지침은 영어로 쓰여졌다. 게다가 항공사에 자사의 비행기에 대한 보고서에 명시된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신사협정에는 운영자의 적절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틈새가 있었다 (Eddy, Potter, and Page 1992b, 116). 당시 미국 내의 항공사들은 설계를 변경하고 운영자를 교육하라는 지시를 잘 이행하지 않았다(주28). 미국 내의 항공사 내에서 설계를 변경하라는 지시가 비공식적으로 제도화되자 미국 외부에서는 필요한 훈련절차마저 보증되지 않고 있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줄곧 "부적절한 정비절차"라는 이유를 들어 사고를 유발한 설계상 문제를 정당화해왔다(주29). 그러나 항공사들에게 적절한 절차를 조언해주는 맥도넬 더글러스의 보고서가 있다고 해서 이러한 설계상의 변경이 예상처럼 제도화될 것이라고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떤 기술을 생산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기술의 사용자들이 다른 언어, 문화, 규제환경에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엔지니어들은 어떤 기술이 다른 나라 또는 다른 문화적 환경에 있는 사용자들이 기술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는 않았기 때문에 눈앞에 놓여있는 목표 고객들에만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사용자들이 설계나 안전에 대한 가정들을 어떻게 형성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 엔지니어들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 지를 고려해서, 특정한 맥락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다른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평가하는 과제가 부여될 수도 있다.
엔지니어들은 각각의 "비기술적인" 관행들 ― 계약, 규제, 기술이전 ― 로 인해 안전기준의 점진적 수준저하가 역전되기도 하는 등 "이상(異常)의 정상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여러 다양한 경로들을 예상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느 경우라도 교육자는 학생들이 윤리적 성찰과 평범한 공학적 관행으로부터 기인한 관점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자율성과 상호의존성에서 균형을 잡는 규제당국처럼 공학윤리교사들은 학생들이 문제상황이 당시에 어떻게 합리적인 것처럼 현상하게 되는 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일상적인 공학적 관행의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이상의 정상화에 반하는 ― 조직 내에서의 공학의 지위와 기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가를 고려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를 준비할 수도 있지만 선택적인 사후판단이 갖고 있는 악덕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학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한 좋은 위치에 있다.
각주
* William T. Lynch and Ronald Kline, "Engineering Practice and Engineering Ethics,"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 25 No. 2, Spring 2000 pp. 195-225.
** 윌리엄 린치 |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웨인주립대학교 학제간연구과정 과학기술분과 조교수. 독일 베를린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으로 있으면서 윌리엄 페티의 아일랜드에 대한 다운서베이에 대한 연구를 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과학저술(Writing Science)총서로 나올 초기 런던왕립학회에서 방법론적 담론의 역할에 대한 책을 썼다. ≪미국전기전자공학회 기술과 사회 IEEE Technology and Society Magazine≫1997/1998 겨울호에 [미국에서의 공학윤리교육 Teaching Engineering Ethics in the United State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로널드 클라인 | 코넬대학교 기술사 부교수로 있으면서 전기공학부와 과학기술학과의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슈타인메츠 : 사회주의자인 공학자 Steinmetz: Engineer and Socialist}(1992)와 {시골의 소비자 : 미국 농촌에서의 기술과 사회변화 Consumer in Country: Technology and Social Change in Rural America}(2000)가 있고 공학, 기업연구, 농촌에서의 기술 등의 역사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최근 몇 년동안 공학윤리수업을 진행해왔고 정보이론의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1) 마틴과 쉰찐거(1996, 35)는 도덕적 자율성을 "우리들 대부분이 어릴 때 배웠던 인간적인 가치에 부응한 합리적인 도덕적 관점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마틴과 쉰찐거는 도덕적 자율성이 단일한 올바른 행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도덕적 문제가 인지되고 추론을 통해 명확하게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상이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베실린드(1988, 292-93)는 가르쳐지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개인이 결정을 내리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2) Jonsen and Toulmin (1988), Arras (1991). 결의론에 대한 논의를 많이 담고 있는 교과서로 다음을 보라.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Harris, Pritchard, and Rabins 1995, chap.5)
3)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1995, 14)는 "예방적 윤리학에서 실천은 도덕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율리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분석적 능력을 발전시키고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제고하며 모호함과 의견차이를 참아내거나 거부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중도적 해결책은 13쪽과 4장에서 6장을 보라. 마틴과 쉰찐거(1996, chap. 3)
4) 해리스, 프릿처드, 래빈스(1995, 278)는 엔지니어와 경영자들 모두에게 적절한 책임을 서술하는 비도덕적 계산을 피하려고 한다.
5) <온라인 공학 및 과학 윤리 센터> 홈페이지(1999)의 긍정적 역할모델 부분에서는 윌리엄 르메쉬리으와 더불어 보졸리와 카슨을 예로 들고 있다. 긍정적 역할모델을 강조하는 것은 엔지니어들도 나쁜 일을 해왔다는 윤리학자들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미래의 엔지니어들이 작업장에서의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잠재적 효과를 갖고 있다.
6) 내부고발자의 불확실한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말린(1983)을 보라.
7) MIT 기계공학과는 1987년의 설계과목에서 학생들이 직원들이 윤리적 쟁점을 접하게 하기 위해 기업들은 어떤 자원들을 제공하고 있는 지를 조사하도록 했다 (Whitbeck, 1987). 현재의 공학윤리교육 방식에 대한 조사는 린치(Lynch, 1997/1998)을 보라.
8) 어떤 과학철학자들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워진 속성과 무관하게 과학을 평가했던 기존의 과학철학의 역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학, 문화연구, 역사학의 전통으로부터 과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스티브 풀러의 {사회인식론 Social Epistemology}(1988)와 ≪사회인식론 Social Epistemology≫이라는 학술지가 대표적이다. Rouse (1996); Galison and Stump (1996).
9) 마이클 데이비스 (Davis 1998, 69-70)는 [챌린저호의] 발사결정은 "정상과정" 또는 "사회적 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발사를 수락했던 룬트의 결정은 "부주의하고, 무지하며, 무능하고, 사악하며, 의지가 박약하고, 도덕적으로 미성숙하거나 자기기만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p.68). 보건 (Vaughan 1996)의 분석은 경영자와 엔지니어 사이의 역할의 갈등에 기반한 분석을 거부하고 엔지니어들의 과거의 공학적 관행의 역사를 통해 엔지니어들이 만들어온 위험에 대한 상세한 역사적인 민속지적 분석을 했다는 점에서 데이비스와는 차이가 있다.
10) 보건 (1996)은 클라크의 논의(Clarke 1992)는 개인을 희생양으로 해서 공학적 재앙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고려를 봉쇄한다고 주장했다.
11) "따라서 마샬센터가 씨어콜이 '당신들의 우려를 정량화'해서 '입증하라'고 강하게 밀어붙였을 때는 씨어콜이 정량적인 데이터를 이용해서 원래의 기술문화의 표준에 부합하도록 하라는 요구였다. 보졸리가 '나는 정량화할 수 없다. 나는 정량화할만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자료를 토대로 지금의 상태가 양호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때, '현재의 자료를 토대로 지금의 상태가 양호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은 미항공우주국의 문화에서는 '감정적 주장'으로 간주되었다. '진정한' 기술은 정량적인 과학적 실증주의 규범에 부합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비행준비심사국(FRR, Flight Readiness Review) 엔지니어들의 분석은 사실상 미항공우주국 체계에서는 약한 신호밖에 되지 못했다"(Vaughan 1996, 355). 사고가 있은 후, 연결부분의 문제가 있을 때의 비행과 없을 때의 비행에서의 자료들을 토대로 온도를 분석해본 결과 온도가 낮은 경우에는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63℉이하에서의 비행은 반드시 오-링 문제를 유발한다 ― 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비행에서 온도와 오-링의 손상에 대한 상관관계가 없는 문제들만 고려했다. 핀커스 등(Pinkus et. al. 1997, 318-319)은 이 사고를 엔지니어들에게 적절한 정량적 추세분석을 교육하는 데에 실패한 결과로 보는 반면, 보건(Vaughan 1996, 382-385)은 이러한 결정을 과거의 비행경험에 근거해서 추위가 미치는 효과에 대한 가정에 기반한 결정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다. 자사노프(Jasanoff, 1991)는 가솔린에 포함된 납의 위험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규제전략을 비교하면서 영국은 해롭다는 역학적 증거가 예상되느냐에 무관하게 최선의 과학적 판단을 추구하려고 하는 반면, 미국은 개선을 위한 행동을 하기 전에 정량적 증거를 입증하는 데에 노력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량적 위험분석과 정성적 위험분석의 상대적인 강점들에 대한 평가는 자사노프(Jasanoff, 1993)에 있다.
12) 경영진의 결정을 내리는 메이슨의 결단에 대해 보건(1996, 317)은 씨어콜의 조 킬민스터의 "엔지니어링 관련 사람들의 의견의 차이가 인지되었다. 당신이 상이한 의견들에 접하고 있고 단일한 공학적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면 누군가는 양편의 견해들을 수집하고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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