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연세대 산업디자인] 미니멀리즘 -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료: 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전공


2005-04-22 05:53:36

이병종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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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보여진 미술의 현 상황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대상물 범주에 대해 허용하는 것이 늘어남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보여지는 것에서, 그 의도하는 바에서, 그 도덕적 작용에서 다방면으로 서로 확연히 구별되면서도 동일화 될 수 있는 특징, 하나의 공통된 측면을 갖는다. 이를 정의하기 위해, 그 미술적 내용을 미니멀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로 구별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그 어떤 미술적 내용만을 갖거나 몇몇 경우에는 매우 특징적인 차이만을 보인다. 그러나 그 특징적 차이는 미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 자연이나 공장과 같은 미술 밖의 원천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Richard Wollheim, 「Minimal Art」, in: 「Arts Magazine」, Jan. 1965) 1)

미니멀 아트 / 미니멀리즘
서구 예술에서 나타난 미니멀이라는 제반 경향을 지칭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논의는 서양 미술사에서 유일하게 미국이 그 기원이 되는 미니멀 아트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에서 미국식 후기산업사회적 맥락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미니멀 아트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확산된 서구 순수미술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1965년 영국의 철학자 월하임(R. Wohlheim)이 그의 에세이에서 20세기 서구 미술의 일반적 경향이 갖는 특성을 밝히고자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월하임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미국에서의 미술 경향을 논하기보다 라인하르트(A. Reinhardt)의 모노크롬, 라우젠버그(R. Rauschenberg)의 콤바인(Combine)이나 듀샹(M. Duchamp)의 레디 메이드(Ready-made) 등의 작품들을 예로 들어, 의식적으로 미적 의미를 최소화한 작품들을 미니멀 아트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1968년 7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안드레(C. Andre), 플래빈(D. Flavin), 주드(D. Judd), 르비트(S. LeWitt), 모리스(R. Morris) 등에 의해 주도된 서양미술의 한 특정 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이 되었다.

1950-60년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에서 이주해온 지식인들로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최대의 번성기를 맞이했다. 세계를 지배한 미국 달러는 서구 예술과 문화의 전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힘을 미쳤다. 가장 먼저 대중문화를 형성하고 지배해온 미국의 자본이 그 세력을 서구 고급문화 전반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미술은 문화산업의 상품이 되었고, 뉴욕은 서구미술의 중심지로서 파리를 대체하였다. 이는 반(反) 자본주의적인 유럽 전위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활동들을 억압하는 반면, 사회주의적 전위정신을 배제한 양식이나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집착하는 경향들을 장려하고 그 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국제주의 양식이 전세계를 지배해나갔던 것처럼,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이탈되어 오로지 개인의 내면에만 집착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뉴욕을 중심으로 당시 서구미술 전반을 장악해나갔다. 이로부터 서구의 전위미술은 사라져가고, 미술상품이 서구미술을 지배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미술계에 등장한 젊은 미술가들은 극단적인 현대성을 내세우며 엘리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표현만을 일삼는 추상표현주의의 횡포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냈다. 풍요로운 대량생산제품과 대중문화를 향유하면서 성장한 그들에게 당시 영국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문화 현상을 직접적이고 극사실적인 언어형태로 표현하는 팝아트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팝아트를 적극 수용하여 뉴욕의 미술시장을 주도하였고, 이로써 미국식 팝아트는 하나의 서양 미술양식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신진 미술가들은 팝아트에 의해 장악된 미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하였고, 그것은 1960년대에 걸쳐 팝아트의 현대적 사실주의에 반하는 미니멀 아트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미니멀 아트는 무엇보다 미국 내에 팽배해 있던 프랑스적 미술의 기준에 대한 국수주의적 배척임과 동시에 극단적 현대주의의 보수적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여기서 깊은 주관성과 암시적 주정주의로 가득 찬 추상표현주의가 1950년대 미국 미술에 주입시켰던 모든 우선권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조롱되었다.2) 그리고 산업적 재료와 생산방식, 최소한의 기본요소적 형태와 순차적 배열을 통해 개인적인 표현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익명성을 강조하고 단조로움을 부각시켰다.

미니멀 아트가 순수미술에서 나타난 이러한 경향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대중매체에 확산되자, 1960년대 말부터 회화와 조각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무용과 음악에서 전개된 것들 역시 포함하는 역사적인 총제적 현상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서 미니멀리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1960년대 중반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발탁되어, 서로 무관하게 전개된 것들이었다. 한 예로, 무용에서의 미니멀적인 경향은 음악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연관성을 갖지 않았으며, 특히 순수미술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여러 예술분야에서 나타난 제각각의 경향들을 미니멀리즘으로 묶어냄으로써, 특히 산업사회적 대상물에 대한 추상개념에서 도출된 모든 순수미술에서의 경향들을 미니멀 아트로 설명함으로써, 미니멀 아트에 관계된 역사적인 과정은 해체되었다. 그 결과, 미니멀리즘의 개념은 구체적인 물질성의 경험을 유행시키고, 미적 비유의 경계를 “순수한” 개념주의로 확장시켰다. 이로부터 프로세스아트, 보디아트, 랜드아트,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새로운 “야만” 등, 서구 미술에서 새로이 등장한 개념적 추상의 경향들은 모두 미니멀 아트 개념에 연관되었다. 이와 같이 다양한 개념들이 미니멀 아트/미니멀리즘에 관계된 것은 단지 서구 예술산업자본의 운동논리에 따른 역사적, 미적 반영일 뿐, 그 이상 어떤 실제적, 현상적 실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3)

서구 미술의 실증주의적 전통
미니멀 아트가 지향하는 개인적 표현을 배제한 익명성은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보편적 기준으로서 수리적인 기하학적 형태언어로 나타난다. 즉,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객관성의 시각화로 합리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이성적 인식에 대한 표현이다. 이는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을 부정하고, 과학과 철학으로 확립된 주어진 사실만을 확실시하는 실증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관된다. 서양 미술에서 실증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그 어떠한 가치의 판단도 배제한 채, 형태를 구성하는 수리적 규칙만을 따르는 조형방식에 대한 양식적 이념이다. 이러한 조형이념은 시민사회를 이룩한 합리적 이성의 승리를 찬양하고 그 기념비를 높이 세우고자 한 고전주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서구 미술에서의 고전주의 정신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과학의 발전에 따른 이성적 인식의 급속한 확장에 힘입어 입체주의로 발현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결합된 구성주의와 데슈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된다. 이는 특히 말레비치(K. Malewitsch)와 타틀린(V. Tatlin)에 의해 주창된 절대주의로 대표된다. 이들의 절대주의는 공산주의 초기단계로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미술의 사회적 참여운동으로서, “(미술의 모든)활동의 중점을 건축 전선에 두고 모든 혁명적인 건축가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였다.4) 이러한 절대주의의 호소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전위미술운동, 즉 신정신(Esprit Nouveau)과 바우하우스에 전폭 수용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르주아의 실증주의적 조형양식은 그것이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와 각 국가들의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되었다. 유럽에서 실증주의적 조형양식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빌(M. Bill)과 로제(R.P. Lohse)로 대표되는 콘크리트 아트로, 미술에서 수리적 사고를 강조하여 형태를 조형방법 그 자체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조형양식은 울름조형대학에 영향을 주었고, 브라운 제품을 통해 일상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상응하는 미국에서의 실증주의적 조형양식이 바로 미니멀 아트와 국제주의 양식이다. 그러나 이들 양식은 미국으로 건너간 바우하우스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기는 했으나, 미국 고유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유럽에서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알버스(J. Albers)는 미국으로 건너가 북 캐롤라이나의 블랙마운틴대학과 예일대학에서 그의 실증주의적 조형론 연구를 지속해나갔다. 그는 「색채의 상호작용(Interaction of Colour, 1943)」이라는 책에서 사각형 형태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색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정방형에 대한 경의(Hommage to the Square)」라는 작업들을 통해 그 이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는데, 이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추상미술의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토대가 되었다.5) 그로부터 미니멀 아트는 보는 이에게 강한 조형적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한눈에 파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구하여, 단순한 기하학적 대상으로 축소된 장방형과 입방형 형태들, 각 부분의 모든 의미와 은유가 배제된 동일성과 반복 그리고 중성적인 표면들로 나타났다. 여기서는 또한 작품이 “하나의 사물, 즉 하나의 전체로서 인식될 수 있는 단순한 형태로, 입체주의가 만들어낸 연속적이고 관계적이며 죽 둘러보고 알아내는 종류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경험으로서 효과적으로 보여져야 된다는 데”6)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입체주의가 형태를 원초적 구조로 되돌리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입체의 형태를 부피의 본질적인 원소로 축소시킴으로써 모든 인과관계의 투명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보는 이에게 분명히 인식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수학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요소적이고 산업대상물적인 미술은 구성주의와 일련의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질서의 익명성에 관련되는 절대적 조형을 추구한 미니멀 아트에서 나타난 현상은 형태의 즉물화와 탈심리화에 상응하는 육면체, 격자, 무의미한 표면 등으로 한정되었다. 이점에서 미니멀 아트는 구성주의의 구성법칙과 정반대로 대립한다.

구성주의는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미의 긴장과 균형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관계를 갖고서, 인간 유기체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것과 유사한 조절원칙을 미술에 반영시킨 것이었다. 이렇듯 구성주의자들은 미술에서 비례와 균형에 대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의미를 지향하였다. 그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상화된 구조는 그들의 내적인 경험에 기초함으로써, 모든 관계에서 그 작품들을 고유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미니멀 아트는 조형적 측면에서 전적으로 익명성을 추구하였다. 미술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유럽의 전통적 교육과는 달리, 시장을 위한 미국식 미술교육을 받은 미술가들은 고유하고 생리적이며 지각적인 것에 결정되고, 따라서 상대적일 수 있는 법칙성을 도출해내는 것을 준비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기술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기본적으로 놓여있는 그 어떤 것도 원하거나 책임지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법칙 그 자체에 따른 절대성의 등가물에 몰두하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미니멀 아트의 이상화된 구조는 비인격적이고 수리적인 구성원칙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미니멀 아트의 모습에 대해 로제(B. Rose)는 “60년대 미국의 미술가들은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반항적인 지리멸렬한 미술로서 중간계층을 공공연하게 고문하고자 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7)

일상사물의 세계와 미니멀리즘
이러한 미니멀 아트는 당시 미국의 인공환경을 주도한 국제주의 양식의 폭력성이 미술에 반영된 결과이다. 미국의 국제주의 양식은 전쟁이후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적의 양식으로서 1950년대 급속히 확산되었고, 당시 건축적 전통이 부재했던 미국의 일상 건축환경을 지배하였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스 판 데어 로에(L. Mies van der Rohe), 그로피우스(W. Gropius), 브로이어(M. Breuer) 등에게 영향을 받은 미국의 젊은 건축가들에 의해 이 양식은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미국의 현대적 과학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찬양되었다. 여기서 미국의 건축가들은 무엇보다 유럽의 기능주의가 표방하는 사회적, 공리적 합리성으로서의 경제성을 미국식 실용주의적 자본경제성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미술과 사회의 변증법적 합리성에 대한 비례와 균형의 기하학적 기능성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시장경제적 기능성으로 치환되었고, 그 결과 이윤극대화를 위한 수리적 육면체와 격자 등, 익명성의 획일적 형태가 표준화되었다. 여기에 국제주의 양식이 이루는 콘크리트 구조의 즉물화를 강조하는 새로운 브루탈리즘이 가세하면서 인공물 환경의 황폐화와 그 정신적, 문화적 폭력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건축과 디자인에서 나타난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 말 예술분야 전반에 걸친 총제적 현상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서의 미니멀리즘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일상사물의 세계에서 새로운 단순성, 즉물성이 부각되면서 미니멀리즘이 다시 이야기되고 있다. 피셔(V. Fischer)는 1980년대 중반부터 멤피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중매체 홍보를 통한 세계화 전략을 기반으로 나타난 디자인의 새로운 경향들을 분류하면서, 1984년 결성된 이탈리아 밀라노의 건축가 그룹 제우스(Zeus)에서 시작된 디자인 양식을 미니멀리즘으로 정의한다.8) 그는 이 양식을 팝아트적 요소를 통한 강렬한 상징과 과도한 역사적 운율로 표현되는 멤피스의 양식언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캘빈주의적 강고함에서 기인된 극단적인 미적 요소의 축소로 특징짓고 있다. 그리고 색이 완전히 배제된 무광의 흑색, 무광의 금속 등 즉물적이고 중성적인 표면 또한 이 양식의 중요한 특징으로 설명한다. 이는 1962년 팝아트의 대대적인 전시 이후,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나타난 미니멀 아트가 1964년에 첫 선을 보였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피셔는 팝아트와 멤피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양식을 미니멀 아트와 연관지어 회화적-개인주의적 장식을 의식적으로 배제한 미의 수리적 추상으로 보는 한편, 동시에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미의 상징적 표현이라고도 평가한다. 그리고 일상사물의 모든 기능을 단지 상징적 표현을 위한 대상으로 치환시키고, 그 속에서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형태가 갖는 장식성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스타크(P. Starck)를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로 설명하고 있다. 이로서 피셔의 개념 또한 미니멀 아트 또는 1960년대의 총체적 현상에 대한 미니멀리즘과 아무런 연관성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피셔가 정의하는 미니멀리즘 역시 그 어떤 실제적, 현상적 실존도 갖지 않는, 서구 예술문화산업의 운동논리에 따른 비즈니스적 의미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하고 깔끔한, 미니멀”. 최근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십중팔구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의도나 결과를 설명할 때 가장 역점을 두는 말이다. 여기서 “미니멀”은 모던한 것이고, 20-30대 성공한 독신 전문직업인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류층에서 유행하는 최신 인테리어 장식을 소개하는 여성지를 비롯한 디자인 관련 잡지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잡지는 항상 디자인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는 서구 “스타 디자이너”의 소개와 그 최근 작품들로 채워진다.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들은 피셔가 하이테크, 트랜스 하이테크, 포스트모던, 미니멀리즘 등으로 모호하게 분류한 것처럼 각양각색의 양식들로 뒤엉켜있다. 서구의 역사적 양식들의 기하학적-구성적 재해석에서부터 일본으로 대표되는 이국적 양식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상징적이고 표현적인 장식문양들이 현대적 수공예품에서 소량생산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 작품은 개념미술을 상징하는 원초적 재료나 정밀하게 가공된 고급재료를 사용하는 고가의 제품으로, 미적 생활양식을 강조하는 서구의 상류 엘리트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상류 엘리트층의 사치, 낭비, 퇴폐의 생활양식이 발달함에 따라, 상류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고가의 장식문양으로 출현한 아르데코의 양식적 특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아르데코의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취향은 과도한 권력의 상징에 몰두하여 온갖 역사적, 이국적, 표현적 양식들을 범람시키고, 이를 통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발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르데코와 같은 양식이 부각되는 현상은 세계화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세계화에 따른 빈부의 양극화로 그 폭이 두터워진 서구의 부유한 여피(Yuppies, Young Urban Professionals) 계층 사이에서 그들의 성공을 과시하고자 하는 엘리트적 취향이 발달하여, 그 취향을 대변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표출된다.

그러나 서구에서 미니멀리즘이 갖는 후기자본주의적 관계는 여타 서구의 것이 우리에게 수용될 때 그러하듯이, 식민지적 규율과 권력의 관계로 치환된다. 이러한 치환의 과정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이, 수용대상의 구체적 실체가 불분명할수록 잘 작동하는 메카니즘을 갖는다. 우리에게 수용의 대상은 지배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그 대상이 갖는 서구에서의 역사적이고 인식론적 의미는 관심 밖의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이 실존적이고 명확한 개념이라면 갖은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지배적 권력을 꾀하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에, 우리가 전형으로 삼아야 할 서구의 최신 디자인 경향으로 부각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서구는 식민지적 지배권력을 상징하고, 따라서 각 시대마다 서구에서 나타난 모든 양식은 우리에게 권력을 상징하는 장식으로 수용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의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는 서구의 최신 유행양식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 유행은 쉴새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여기서 서구의 최신 유행양식을 주도함은 우리사회에서 식민지적 규율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유행을 따르는 것은 그 규율과 권력에 대한 동경과 복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고리를 단절시키는 힘 또한 서구의 것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과 성찰적 수용으로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식민성이 갖는 도그마이며, 그 속에 미니멀리즘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놓여있다.

1) Gregory Battcock(ed.), 「Minimal Art. A Critical Anthology」, New York 1968, p. 387 / Gregor Stemmrich(ed.), 「Minimal Art. Eine kritische Retrospektive」, Verlag der Kunst, Dresden 1995, p. 13
2) 니코스 스탠고스/성완경, 김안레, 「현대미술의 개념」, 문예출판사 1997, p. 356 참조
3) Gregor Stemmrich(ed.), 앞의 책, pp. 15-20 참조
4) Malewitsch, Kasimir, 「절대주의 선언」, 1924: Conrads, Ulrich/이현호, 「건축선언문집」, 기문당 1995, p. 111
5) Boccola, Sandro, 「Die Kunst der Moderne. Zur Struktur und Dynamik ihrer Entwicklung von Goya bis Beuys」, Prestel Verlag, 1997 München, p. 468 참조
6) 니코스 스탠고스, 앞의 책, p. 369
7) Gregor Stemmrich(ed.), 앞의 책, p. 535
8) Fischer, Volker, 「Design heute」, Prestel Verlag, 1988 München, pp. 101-1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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