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3일 금요일

그리스 비극에 대하여

자료: http://history.wonkwang.ac.kr/school/west/ancient/ancient8.htm


※ 메모: 

인간의 마음속에 생기는, 자신의 동료나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갈등의 결과로 생기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취급한다. 비극의 기원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열광적인 노래와 춤이 포함된 디시램브(dithyramb)라고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인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카데미의 축제기간에 열리는 연극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비극시인에게 양 한 마리를 주었기 때문에 트라고이디아(tragoda)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리스 비극은 독백이나 대화의 대사 이외에 고대 축제의 합창과 춤을 지녔다. 행동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은 이러한 합창에 의하여 결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였다. 뚜렷한 행동이 없으며,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서브플룻'(sub plot)이나 '코믹 릴리프'(comic relief)가 없었다. 전쟁이나 암살과 같은 실제의 사건들은 무대 위에서 상연되기보다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서술되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그리스 비극시인 중 가장 위대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대한 분석의 기초로 삼은 것도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B. C 240년 그리스인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가 그리스 극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공연함으로써 비로소 로마인에게 비극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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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희극은 비극보다 계속성이 풍부하며, 특히 도리스 지방에 오랜 전통이 있어 B. C 6세기의 에피카르모스는 이미 그리스 희극의 특색인 토론(討論) 형식의 작품을 썼다. 아테네의 고희극(古喜劇)은 B. C 487년부터 주신(酒神)의 제사에 공식으로 상연되었다. 동물로 분장한 합창대나 제사의 비속한 소란 속에도 당연히 위정자 ·권력자에 대한 민중의 해학 ·풍자가 들어 있었다. 이러한 연극 들 중 하나를 사티로스 극(Satyr Play)이라 하는데, 그 정신은 희극과 많이 닮아있다. 그것은 B. C 5세기의 그리스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평화론자로서 시류에 대한 혹심한 풍자를 작품 속에 전개하였다.
B. C 4세기에 들어가 중기 희극에서 합창대는 이미 퇴화되고 정치 비판은 사라져 풍속 희극화의 경향이 보인다. 안티파네스의 작품 명은 많이 알려졌으나 완전히 전하는 것은 없다. B. C 4세기 후반에는 메난드로스를 대표로 하는 신희극(新喜劇)이 대두하여, 시정(市井) 사건을 다루면서 교묘한 줄거리를 가미하여 인물의 유형화를 완성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고희극으로 이어지고 프라투스나 테렌티우스에 의하여 라틴어로 이식(移植)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B. C 534년에 테스피스가 합창단을 중심으로 배우 한 사람과의 문답형식의 상연을 시도하였다는 유럽 최고(最古)의 기록이 있다. 그리스 연극은 B. C 5세기를 전성기로, B. C 3세기경까지 행해진 고대극(古代劇)의 전통이 로마를 거쳐 서(西)유럽 전체에 퍼져 유럽 연극의 원류(源流)가 되었다.
아테네의 최성기인 B. C 5세기는 세계 연극 사상의 황금기였다. 당시는 매년 3월에 행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제사인 춘기대제(春期大祭)에 비극을, 겨울에 행하는 전원제(田園祭)에 희극을, 각기 3인 또는 5인 작자의 경작형식(競作形式)으로 상연하였다. 이것은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에 딸린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신관(神官)의 주관 하에 1만 7000명이 넘는 관중을 모아 행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테스피스가 B. C 6세기 후반에 원형적(原形的)인 비극을 상연했다고 하나 비극의 창시자는 아이스킬로스(B. C 525??B. C 456)였다. 그는 90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하며 경연(競演)에서 13회(1회에 4편 상연)나 우승하였다고 하였는데 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7편에 불과하다.
합창대의 연기 부분이 많았던 초기에는, 합창대와 그 중에서 나온 한 사람의 배우와의 문답이 극적 요소를 강하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한층 높이고 연극으로 완성시킨 것은 아이스킬로스이다. 그는 배우를 두 사람으로 하였고, 또 훗날 소포클레스는 제3의 배우를 등장시켰다. 물론 한 사람의 배우가 가면을 바꿈으로써 복수의 등장인물로 분장할 수도 있었다. B. C 4세기말에는 제4의 배우도 나왔다고 하지만 대사가 없는 배우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배우·합창대는 모두 남성이었고, 비극에서는 처음 12명이었으나 소포클레스는 이를 15명으로 증원하여 그 중 1명을 합창대장(코리파이오스)으로 독립시켰다. 이들 합창대는 서사(序詞) 뒤에 등장하여 피리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었고, 배우의 연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에페이소디온과 번갈아 4회 반복하고는 대단원(엑소더스)에 이른다. 이것이 5막으로 된 로마 연극에 인계되어 르네상스기(期) 이후 고전 비극의 정형(定形)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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