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췌:
( ... ... ) 이 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 독자들이 문장에서 받는 느낌은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에서 나오는 것인가?
- 어떻게 자신의 글을 진단하고 독자가 받는 느낌을 예상할 수 있는가?
- 자신의 문장을 독자가 더 낫다고 여기는 문장으로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 독자들이 모든 문장들이 일관성 있는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독자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하는가?
글쓰기에 대한 일상적인 조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라.' '수동태를 쓰지 마라.' '독자를 고려하라.' 대부분 뻔한 소리들이다. 우리가 머릿속 생각을 종이 위에 쏟아내기 위해 씨름을 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조언들이다. 나도 이 문단을 처음 쓸 때 당신, 독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내 생각을 그대로 끄집어내는 데 몰두했을 뿐이다. ( ... ... )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글을 수정할 때에야 나는 독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글을 쓰고자 했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며 거기에 맞춰 수정할 수 있었다. 그러한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글을 고칠 때 참고할 수 있는 몇몇 원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원칙을 설명한다. 다음 [절]은 조셉이 쓴 글이다. 조셉이 사용한 1인칭을 우아하게 처리[하고자, 그리고] 개정판을 거치면서 변경된 내용을 반영하고자 꼭 필요한 부분만 조금 고쳤을 뿐, 그레고리도 나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처방이 아닌 원칙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은 처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쓴 글에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예측하고, 수정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
─ cf. 1차 독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을 처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쓴 글에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예측하고,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 ── (A)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을 처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쓴 글에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예측하고, [무엇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 ── (B)
Those principles may seem prescriptive, but that's not how I intend them. I offer them as ways to help you predict how readers will judge your prose and then help you decide whether and how to revise it. As you try to follow those principles, you may write more slowly. That's inevitable. Whenever we reflect on what we do as we do it, we become self-conscious, sometimes to the point of near-paralysis. It passes. ( ... ... ) ── 다른 판본 (Style: Lessons in Clarity and Grace, 9th Edition. 출처)
이곳의 표현만을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 ... ... )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은 처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쓴 글에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예측하고, 나아가 과연 수정을 해야 하는지 또한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 ... ... )
중요한 사실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이 초고를 쓰는 데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초고를 고치는 데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글을 쓰는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초고를 쓸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원칙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조언을 모조리 잊으라는 것이다.
( ... ... )
* * *
1장 첫머리의 인용문이 매우 멋지다.
* * *
1장_ Lesson 1: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면 가능한 한 명확하게 말하라. 그것이 스타일의 유일한 비법이다. ─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
1절_ 명확하게 써야 하는 이유
( ... ... ) [글을 명확하게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은] 특히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을 때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An understanding of the causal factors involved in excessive drinking by students could lead to their more effective treatment. ── (A)
( ... ... ) 위 문장을 명확하게 고치면 다음과 같아질 것이다.
We could more effectively treat students who drink excessively if we understood why they do. ── (B)※ [독자 메모] 번역을 하면서 접하는 텍스트들을 떠올려 보면 (B)와 같이 명확히 쓰는 필자들보다 (A)처럼 명사구 속에 명사와 전치사로 겹겹이 떡칠을 해놓는 필자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2절_모호한 글쓰기의 유혹
조지 오웰은 영어 문체에 관한 유명한 소논문 "정치와 영어"에서 ( ... 이렇게 썼다 ... )
The keynote [of a pretentious style] is the elimination of simple verbs. Instead of being a single word, such as break, stop, spoil, mend, kill, a verb becomes a phrase, made up of a noun or adjective tacked on to some general-purposes verb such as prove, serve, form, play, render. In addition, the passive voice is wherever possible used in preference to the active, and noun constructions are used instead of gerunds (by examination instead of by examining).
Pretentious writers avoid simple verbs. Instead of using one word, such as break, stop, [? spoil, mend,] kill, they turn the verb into a noun or adjective, then tack onto it a general-purpose verb such as prove, serve, form, play, render. They use the passive voice everywhere instead of the active, and noun constructions instead of gerunds (by examination instead of by examining).
( ... ... )
우리가 난해하고 현학적인 글을 처음 만나는 곳은 대개 교과서다.
Recognition of the fact that systems [of grammar] differ from one language to another can serve as the basis for serious consideration of the problems confronting translators of the great works of world literature originally written in a language other than English.사실, 이런 글은 절반의 낱말만으로도 훨씬 명확하게 쓸 수 있다.
When we recognize that languages have different grammars, we can consider the problems of those who translate great works of literature into English.
※ 독자 메모: 이어서 아주 의미심장한 지적이 나온다.
지금도 무수한 학생들이 이처럼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글을 읽어내기 위해 고군부투하고 있으며, 저자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물론 정말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더 많은 경우, 글을 쓰는 사람이 명확하게 쓰지 못한 (또는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쓰지 않은) 탓이 크다.
이로써,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이 글 읽는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난해한 글을 읽어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또 그렇게 글을 써낸다는 사실이다. 결국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또다시 그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이 굳건한 전통처럼 세워진다.
3절_ 글을 모호하게 쓰는 심리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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