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발췌] <모비딕>과 사귐의 세계관

출처: 블로그 "미국 문학과 문화 연구"  (2008.1.9.)

CF. http://www.freepatentsonline.com/article/College-Literature/128705118.html
(5) In Chapter 89, "Fast-Fish and Loose-Fish," Melville differentiates between whales that are the possession of those who are fast to them and whales that remain "fair game" for anyone who can catch them. Claiming that these two whaling principles demonstrate the "fundamentals of all human jurisprudence[,]" he uses them to critique social inequities and global imperialism, and ends the chapter by asking, "What [are] all men's minds and opinions but Loose-Fish?" and then interrogating the reader: "And what are you, reader, but a Loose-Fish and a Fast-Fish, too?" In doing so, he points to how we are all already possessed by certain ideologies and discursive formations and yet are still fair game to be captured by new ideologies and ways of seeing. In appropriating his analogy here, I am noting the two kinds of effect that reading a book like Moby-Dick can have: we can be held in thrall by Melville's powerful rhetorical arguments, but these very arguments can also act to free us from previously held beliefs and open us up to new ways of thinking, which, in turn, can similarly hold us fast.
CF. http://callmeishmael.org/2009/01/11/chapter-89-fast-fish-and-loose-fish/
CF. http://www.albertleatribune.com/2012/09/are-you-a-fast-fish-or-are-you-a-loose-fish/
CF. http://www.williamlanday.com/2011/01/10/fast-fish-and-loose-fish/


※ 발췌:

서구 자본주의 탄생의 원동력이 부르주아의 이익을 인본주의의 보편 이념으로 정당화시킴으로써 얻은 혁명적, 대중적 힘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미국 독립의 실마리 역시 정치 권력과 세금 문제와 관련 이권을 침해당한 부르주아의 불만에서 발견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표권 없는 과세'가 분노를 촉발했고, 권력의 전횡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헌법과 보편적 인간의 자유, 평등, 행복 추구권 등 천부인권을 정의하는, 제퍼슨의 기초로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자기들 반란의 보편적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이념이었다. 세계 최초로 '만민 평등'이라는 국가의 설립 정신을 내세운 미국은 유럽 제국과 달리 노예 수입을 통해 '내부 식민지'를 조성, 유럽의 농산물 기지로서 국가 발전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데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국내 산업 자본이 성장하고 경제적 토대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부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의 발전은 전통적으로 정계를 장악해오던 남부 농장주 출신 정치인들과 이해의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상충하는 경제적 이해는 잠재적이었지만, 그 논쟁에서 강력한 세력들로 대립" (Lincoln 42)했다. 1860년 통계에 따르면 은행 예금, 공장, 철도 등 직간접 자본의 약 80%가 북부에 쏠리게 됐고(데이비스 220-221), 낙후된 남부의 불만은 북부 양키와의 대립을 첨예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딕(Moby Dick, or the Whale)>은 남북전쟁 10년 전인 1851년에 발표됐다. 미국사에서 1850년대는 아주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데, 저잋적 독립과 이어진 경제적 팽창에 더하여 문화적 독립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격동의 1850년대를 매씨슨(F.O. Matthiessen)은 '미국 르네상스'라 칭했다. 당대 미국적 이념을 구현한 주요 문화인으로 랠프 에머슨, 헨리 쏘로루 월트 휘트먼, 나사니엘 호손, 에드거 애런 포 등이 있다. 그러나 멜빌은 인기 없는 무명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아메리카니즘의 신념이 팽배하던 시기에 그 오만과 편견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상징적 작품들이 문학 대중들의 구미에 맞지 않았던 탓이었다. 1849년에 발표된 <레드번(Redburn0>, 1850년의 <화이트재킷(White Jacket)> 등 초기 몇 작품들은 미국의 우월성에 대한 멜빌의 믿음이 부분적으로 표현되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작가 스스로 '쓰레기', '댐뱃값 벌기 위해 쓴 것'이라 폄하했다(신문수 16)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발표했던 <타이피(Typee, 1846)>, <오무(Omoo, 1847)>, <마디(Mardi, 1849)> 등에서 백인들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단의 압력에 수정판을 내야"(신문수 15)했다. 현실 논리와 타협을 거부한 작가가 <모비딕>을 분기점으로 ( ...).

멜빌은 <모비딕>을 탈고하면서 이웃에 살던 작가 호손에게 편지를 쓰는데, 출판사 편집자의 집요한 검열과 대중 취미에 동조할 수 없는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대담하게 진실을 밝히려는" 욕구와 한편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보짓이라는 뼈아픈 각성 사이에서 심히 상충되는 감정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진실대로 살려고 하는 것과 주류 사회로 가고자 하는 것"의 내적 갈등인 셈이다. 일찍이 <타이피> 원고에서 마퀴스 제도를 '문명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백인 식민자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잔혹 행위들을 재현한 부분을 삭제하도록 호되게 편집 당한 바 있는 그는 편집자를 "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언제나 나에게 히죽대는 심술궂은 악마"라고 표현하고, 그에게 가져갈 원고를 설명하면서, "만약 당신이 나의 전면에 걸친 무자비한 민주주의(ruthless democracy) 이야기를 보고 읽는다면, 아마도 전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Powell 5)는 의견을 폈다.

'무자비한 민주주의'라고 작가에 의해 묘사된 <모비딕>의 내용은 당대 미국인의 세계 탐험과 일확천금의 꿈을 바다와 포경선이라는 무대를 통해 종교, 운명, 경제적 야망 따위로 동시대를 지배하던 문화정치적 토대를 다면적으로 분석하고, 비극적 비전에 입각 인간적 야망의 무모성과 그 때문에 나타나는 집단적이고 폭력적인 경향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나아가 멜빌은 유럽 백인종들로 하여금 중세라는 암흑시대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한 꿈과 야망을 펼치도록 자극했던 현장, 즉 근대 국가 탄생과 성장의 텃밭인 바다라는 탈출과 해방의 길을 따라가면서 그 동력의 실체를 탐색한다.

이 글은 근대적 이상인 민주주의가 종교와 결합하여 어떻게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지에 대한 멜빌의 탐색을 살펴보고, 그리고 그렇다면 작가가 구상하는 대안적 구상은 무엇인지를 인식론적 관점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피쿼드 호(The Pequod)를 동시대 미국으로 가정하고, 그 지도자로서 에이헙(Ahab)과 그의 선상 생황의 운영 및 선원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느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대안적 관계로서 작중 화자 이스마엘(Ishmael)과 작살잡이 퀴컥(Queequeg)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세계의 인식과 관계 형성에 대한 멜빌의 시각을 '사귐의 세계관'이란 각도에서 조명할 것이다.

2. 교과서의 미국과 시장의 미국

이스마엘은 로마 절대권력 시저에 항거하여 칼 위에 자기 몸을 던졌던 정치인 케이토(Cato)와 같은 심정으로 조용히 배를 탄다. 마치 유럽인들이 어떠한 이유에서건 구대륙에 등을 돌리고 신대륙을 향해 배를 타듯이, 그는 육지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포경선 피쿼드 호에 몸을 싣는다. 왜 하필이면 포경선인가? 그는 "거대한 고래 그 자체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관념"에 유혹되고 자기의 모든 호기심을 발분시키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신비로운 괴물"(25)[n.1]에 이끌렸다고 동기를 밝힌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서구인들의 모험 정신에 대한 낭만적 수용을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르네상스 시기부터 19세기까지 절대 다수의 인구가 절대 빈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동시대의 집중적 관심의 대상인 "돈은 온갖 현세의 악의 뿌리라고 성심껏 믿고, 부자가 절대 천국에 들 수 없다는 신앙의 진리를 감안하면, 사람들의 돈을 벌려는 그 품위 있는 행위야말로 정말 경이로운 일"이라고 문제제기하면서, "아 우리는 얼마나 즐겁게 그 파멸에 자신들을 위탁하고 있는가!"(24)라고 비판한다.

피터 번스타인(Peter L. Bernstein)은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 The History of Obsession)>에서 특히 모험 정신의 순수성으로 기독교인들에 의해 포장된 항해와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을 근대 서구인들의 황금에 대한 강박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영웅이 되겠자는 꿈과 이교도를 개종시키겠다는 그들의 열정은 르네상스 시대에만 나타난 일이 아니었고, 서구 역사에서 "언제나 기독교들은 영정적인 전도사"(번스타인 175)였다.

 ( ... ... )

( ... ) 멜빌이 <모비딕>을 쓰기 전인 1848년 아직 미국에 편입되지 않은 극서부 샌프랜시스코에서 금맥이 발견되어, 1849년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이른바 '금을 향한 질주(Gold Rush))의 대열을 만들어낸다.

이스마엘은 이런 시대 상황적 조건에서 열강 제국이 행하는 '게임의 규칙'을 형상화하기 위해 각국의 배들이 뛰어드는 포경 세계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잡은 고래(Fast-Fish)와 놓친 고래(Loose-Fish)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1. 잡힌 고래는 붙잡고 있는 쪽의 소유이고, 2. 놓친 고래는 누구라도 그것을 먼저 붙잡는 쪽 소유인 것이 정당"(379)하다는 원칙이다. 그는 이런 세상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러시아와 미국 노예의 육체와 영혼, 죄가 드러나지 않은 악당의 대저택, 거간꾼에 저당잡힌 굶주리는 빈곤층, 성직자에게 돈을 바쳐야 하는 등뼈 부서진 노동자들이 바로 잡힌 고래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끔찍한 작살잡이 영국(John Bull)에게 불쌍한 아일랜드는 오로지 잡힌 고래가 아니고 무언가? 성스러운 창잡이 미국(Brother Jonathan)에게 텍사스는 잡힌 고래 아니면 뭔가?"라고 주장하고, 그렇다면 "소유라는 것이 곧 법의 전부"(381)라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당시의 백인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더 많았다. 그래서 놓친 고래의 법령은 더 폭넓고 국제적이며 보편적으로 통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자기 황제와 황후를 위한 표시로 스페인 국기를 꽂았을 때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폴란드는 러시아 황제에게 무엇이고, 그리스는 터키 사람에게 무엇이며, 인도는 영국에게 무엇이겠는가? 합중국에게 멕시코가 무엇이 되겠는가. 모두 놓친 고래인 셈이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 그것도 놓친 고래가 아니고 뭔가? 모든 인간의 마음과 사상은 놓친 고래다. 그들이 갖는 종교적 신념의 원리 또한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으스대며 표절을 일삼는 달변가에게 철학자의 사상은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커다란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라는 것쯤 누구나 알지 않는가? 그리고 독자 여러분 역시 놓친 고래인 동시에 잡힌 고래 아니고 무엇인가? (381)
식민지 '뉴잉글랜드'는 본성적으로 이런 모순의 그물망에 싸 안겨 탄생했다.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찾아 이른바 '신대륙'을 강탈했던 백인들의 행태는 유럽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이식과 그의 실행에 다름 아니었다. 종교적, 정치적 자유라는 인본주의적 꿈과 일확천금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이념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의 양면이었다. ( ... ) 이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 체제의 건설이라는 정세의 변화는 전 유럽인으로 하여금 탈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갖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침략과 강탈의 산물인 미국은 유럽적 뿌리를 갖고 있는 까닭에 유럽의 근대를 출발시킨 르네상스의 기독교도 중심의 인본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기독교/이교, 문명/야만, 이성/감성, 선/악 등의 이항 대립의 차별적 이식은 기독교 문명이 사악한 이교도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복, 강탈, 착취 따위를 정당화했고, 이를 개척적으로 수행할 근대적 주체인 백인 남성을 정점으로 하는 남성/여성, 백인/유색인으로부터 나아가 주인/노예로 발전했다. 관념적 차원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위계적 인식은 그 객체화된 대상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아는 것이 곧 권력'이라는 인식은 근대적 주체로서 이성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은 하위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세계를 계몽할 권한을 부여받은 자기 책무의 즐거운 고행을 "백인 남성의 짐(whiteman's burden)"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치 권역, 경제, 성, 인종적 지배와 약탈의 체제를 대내외적으로 구조화해 나갔다. 이스마엘의 미국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오늘날 아메리카 포경업에서 고급 선원들을 제외하고 수많은 하급 선원의 두 명 중 한 사람도 아메리카 태생은 없다. 포경업의 이런 정황은 아메리카 육군, 해군, 상선, 또는 운하며 철도 건설에 종사하는 인부 집단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라는 것은 이런 방면에서 순수한 아메리카 사람은 사실상 두뇌를 제공하고,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근육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127)
피부색과 태생에 따른 먹이사슬 피라미드 식 서열화는 그대로 노동시장의 약육강식으로 적용되었다. 그 최정점에 있는 계급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였다. 이들의 설교에 따라 근대 국가 미국은 스스로 독자적 이념의 창조자이자 파급 주체가 되었다. "설교단이 이 세상의 최선두를 차지하고, 모든 나머지들은 뒤에서 따르는 것이요, 그 설교단이 세계를 선도하는"(56) 것이다. 미국 독립 이후 일어난 독립 도미노 여상은 미주 지역에서 유럽 제국들의 힘의 균형을 어긋나게 만들었고, 설교단에 선 미국은 본격적으로 영토 확장 사업에 뛰어든다. 그 대표적 사례는 1842년 미국-멕시코 전쟁을 통한 텍사스 병합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타일러(John Tyler)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먼로 독트린을 설교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자기들 영토 확장과 세력권 확대를 위해서 무차별 학살과 점령을 일삼았는데, 이는 "민주주의 확산," 신의 뜻을 이루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따위로 포장됐다. 그랫 아널드 슈처(Arnold Schuchter)는 "인본주의적 목표 수립의 껍데기 말과 과정에 있어 미국은 수사적으로 강박되어 있다"면서, 그 예로 명백한 운명, 사회 선교, 공산주의로부터 아시아의 보호 따위를 들고, 언제나 "이런 목표들과 폭력적으로 모순되는 결과의 눈가림에 강박되어 있다"(Schwartz and Disch 재인용 4)고 설명한다.


3. 축복받은 미국과 저주받은 미국

미국에 온다고 모두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서 종교, 출신, 피부색에 따라 분류된다. 특히 인간/짐승에 버금가는 미국인/노예의 구분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노예는 가축과 똑같이 매매되고, 쟁기를 끄는 소처럼 부려졌다. 미국인들이 '특유의 제도(peculiar institution)'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던 재산 노예제(chatter slavery)는 근대인의 욕망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노예제의 감옥을 벗어나더라도 유색인은 어김없이 하나님의 감옥에 갇혀야 했다. 마찬가지로 <모비딕>의 미국인 피쿼드 호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이런 검색을 거쳐야 한다. 승선 계약을 앞두고 선두 빌대드(Bildad)가 남태평양 코코보코 섬 출신 작살잡이 퀴컥에게 교회 소속을 증명하라고 하자, 궁지에 몰린 이스마엘은 신에 경배 드리는 전 세계의 위대하고 영원한 최초의 집회에 우리 모두가 속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들 중 일부만 기이한 변덕을 부려 그 장엄한 신앙에 도달하지 못하지요. 그 장엄한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 손잡은 겁니다"(100)하고 둘러대며 상황을 모면한다.

( ... ... )

[에이헙]은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 턱 밑에까지 갔다가 다리 한 쪽을 잃었고, 고래의 턱뼈로 의족을 했다. 그로부터 에이헙은 개인적 경험과 인식의 투사로서 창조된 상(像; 주관적 표상)인 "헤아릴 수 없는 악,"(167) "만져지지 않는 악"(185)을, 한 배를 탄 모두가 정복해야 할 사명으로 확대시켜 나간다. 그는 "근대 기독교도들이 세상의 절반이 그의 지배에 속한다"(185)고 믿었던 일체의 악을 "가시적으로 인성화했고, 모비딕을 실제 공격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었던"(186) 것이다.

( ... ... )


4. 정복의 논리와 공존의 논리


5. 다시 여는 말─사귐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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