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차현진 지음. 율곡출판사 2007
읽어볼 순서:
제2부. 통화정책 이야기 中, 4장(공개시장조작: 두 중앙은행의 과오), 5장(지급준비제도: 백작과 산적의 갈림길), 3장(중앙은행 대출: 실물경제의 그림자냐, 원동력이냐)
제1부. 법과 제도 이야기 中, 8장(통화안정증권 I: 서자인가, 적자인가?), 9장(통화안정증권 II: 국민의 부담인가, 아닌?가)
* * *
4장(공개시장조작: 두 중앙은행의 과오)
p.324. [주9] 이와 같이 미 연준의 공개시장조작은 국채 매입을 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증권시장의 브로커와 딜러 역할을 하던 유수 증권회사(프라이머리 딜러)들을 거래 대상 기관으로 삼았다. 지급준비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예금기관을 주요(핵심) 공개시장조작 대상기관으로 삼은 중앙은행은 현재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 ...)
결론: 정책당국의 유연성
공개시장조작에 대한 미 연준과 일본은행 사례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개시장조작은 재할인에 상대되는 개념이며 재량적 통화정책의 출발점이다. 재화 및 용역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행되는 민간의 상업어음을 기초로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는 방식이 재할인이라면, 공개시장조작은 민간의 상업어음 또는 실물경제 동향과 상관없이 통화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경기조절을 위한 선제적 통화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공개시장조작이 우연히 발견되기 전에는 중앙은행의 통화조절이 재할인을 통해서만 실시되었기 때문에 피셔가 말한 안정적 통화공급 또는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통화정책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공개시장조작은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둘째, 공개시장조작은 시장의 반응을 반영하는 환류경로(feedback)를 갖출 때에만 효과적이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재할인금리에는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할인금리의 조정은 금융시장을 상대로 중앙은행의 정책의지를 일방적으로 밝히는 시그널 효과가 강하다. 이에 비해 일상적 공개시장조작 과정에서는 경기에 대한 기대, 외환시장 동향, 금융시장 수급 사정 등 다양한 정보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나므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생각을 읽기가 쉽다. 따라서 공개시장조작은 이런 정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실시될 때 비로소 재할인정책과 차별화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공개시장조작의 의의가 크게 감소한다. 일본은행은 경기불황 초기에 자금수요 둔화현상만 보고 통화량 감소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밀러 이사가 지휘했던 대공황 당시의 미 연준과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행은 미 연준에 비해 공개시장조작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금융시장과의 교류, 호흡, 의사소통에는 소홀했다. 그 대신 고위층이 결정한 금리수준에서 필요지준 수준의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공개시장조작의 전부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중앙은행 스스로의 결정, 즉 공개시장조작 금리가 과연 적절한가를 되짚어 생각하고 정책방향 전화을 모색해보는 피드백 경로를 망각한 것이다. 이런 식의 공개시장조작은 재할인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셋째, 국채를 대상으로 하는 공개시장조작은 결국 정부의 채무를 화폐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보다는 정부를 우대하는 통화공급 방식이다. 따라서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대출정책을 멀리하고 공개시장조작 의존도를 높일수록 민간이 후순위로 밀린다. (...)
이런 문제 때문에 유럽중앙은행은 국채뿐 아니라 우량 회사채 등도 공개시장조작의 대상증권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매우 심했을 때 일본은행이 CP나 주식마저 공개시장조작 대상증권으로 활용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영란은행도 국채 이외에 외국의 국채나 국제금융기구들의 채권 등 우량 채권들을 재할인 및 공개시장조작 적격증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중앙은행들은 미국을 염두에 두고 국채를 이용한 공개시장조작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채만 이용한 공개시장조작은 상업어음에 기초한 재할인정책보다 더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대출정책(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제도)은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
5장(지급준비제도: 백작과 산적의 갈림길)
(...) 지급준비제도는 본원통화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중앙은행이 그 수요까지도 인위적으로 강제하는 매우 강력한 수요창출 장치이다. 이런 제도는 금융의 이외 분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한 회사만 독점적으로 만드는 핸드폰을 소비자들이 강제적으로 사도록 만드는 제도를 만든다면, 당장 난리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금융의 세계에서는 지급준비예치금이 부족한 은행들이 배고픈 당그라르처럼 금리 수준을 불문하고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
지급준비제도의 변천사: 미국의 경우
지급준비제도는 은행업이 태동했던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싹이 텄다. 즉 은행권을 발행하는 은행들끼리 결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정 금액의 정화(금화)를 상대 은행에게 예치한 다음 {그 금액 범위 내에서는 상대방 은행권을 제시받았을 때 금으로 태환해주었다─(이 독자) 서로 자기 은행에 예치된 상대 은행의 금액까지는 상대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이 창구에 제시됐을 때 금으로 태환해주었다}.
당시 지급준비제도의 취지는 금태환을 원활히 함으로써 은행권 유통을 촉진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개별 은행의 건전성 유지보다는 은행시스템 전체의 이익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
오늘날과 같이 법률을 통해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지급준비금을 예치해야 하는 제도는 미국의 1863년 <국법은행법(National Bank Act)>을 통해 시작되었다. 링컨 대통령 주도로 만들어진 이 법은 발권은행 설립인가권을 주정부에서 연방정부로 이관하고, 동시에 발권은행들은 예금 및 은행권 발행액의 25%를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도록 했다. 다만 지역(지방, 지준거점 지역, 중앙지준거점 지역)에 따라 지급준비금의 보유방식을 차등화했다[주2]
[주2] 뉴욕 등 중앙지준거점 지역의 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을 전액 법정화폐(금화 및 국채, 무이자)로 보유해야 하고, 여타 지역 은행들은 필요지준의 60%까지 지준거점에 있는 타 은행앞 예금(이자부)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 국법은행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뉴욕과 뉴잉글랜드 지역의 은행들은 유럽에서와 같이 금태환의 편의 증진을 위해 정화를 상호 예탁했다.
한편 지급준비제도가 도입된 지 1년 만인 1864년, 국법은행들의 은행권 발행에 따른 지준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급준비율을 25%에서 15%로 인하했다. 이것이 역사상 첫 지준율 조정이었다(그 이유가 통화관리가 아니라 지준금 보유에 따른 은행들의 자금부담 경감이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후 국법은행들이 발행한 은행권이 전국에 거쳐 순조롭게 유통되어 결제수단으로 정착되자 1873년에는 지준 대상 채무에서 은행권 발행액은 제외되고 예금만이 필요지준 계산의 기준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의 지급준비제도가 거의 완성된 것이다. (... ...)
1913년 미 연준 설립... 미 연준의 지급준비제도의 두 가지 특징: (1).. (2)..
(... ...) 1980년 <통화관리 및 예금기관규제완화법>으로 지급준비제도 적용기관이 비회원으냉 및 저축기관까지 크게 확대. 이 법의 제정으로 연준의 통화관리가 한결 용이해졌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1)..
(2)..
(3) 셋째, 지급결제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통화관리법에 의해 지급준비제도 적용대상기관으로 추가된 기관들은 대부분 수신규모가 매우 작아 필요지준이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준비금을 근거로 지급결제업무(환업무) 취급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지급결제규모가 필요지준 규모를 상회하기 쉬웠는데, 그렇게 되면 지급결제시스템이 작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들 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지급결제시스템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 연준은 결제용 지준예치금(required clearing balance) 제도를 마련했다. 결제용 지준예치금이란 예금기관들이 연준과 협의해 결정한 금액을 자율적으로 예치하는 자금으로서, 이 자금은 일상적 결제업무에 사용하되 평균 예치잔액이 약정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2%) 페더럴펀드 금리에 해당하는 이자가 지급된다.[주14] 다만 평균 예치액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벌과금이 부과되고, 초과하면 초과금액에 대한 이자가 붙지 않는다. 일종의 자발적 지준제도이다(2006년 5월 영란은행이 도입한 제도가 바로 이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 ...)
지급준비제도의 존재 이유: 허상과 진실
흔히 지급준비제도는 "예금자 보호 및 금융기관 경영의 건전화를 위해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은행 유동성 조절 또는 통화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어 운용된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급준비제도의 의미와 효과를 통화관리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이러한 주장들은 1970년대 이전 통화주의 영향이 강했을 때는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각국의 통화정책 운용내용의 실증분석 등을 통해 하나씩 논리의 진정성이 부정되어 왔다.
(1) 먼저 예금자 보호 기능을 보자.
부분지급준비제도하에서는 패닉 현상이 발생했을 때 예금지급불능 사태가 태생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853년 국법은행법 제정을 시작으로 부분지급준비제도가 시작되었지만 국법은행시대(1863~1913)에는 금융공황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이 숱하게 도산했다. 1907년 금융공황을 계기로 설립된 미 연준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금융공황이 빈발하던 과거보다도 오히려 지급준비율을 더 낮추었다.[주17: Feinman(1993)]
부분지급준비제도하에서는 패닉이 발생했을 때 예금지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발권기능을 가진 중앙은행의 존재 그 자체이다.[주18] 그래서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요약컨대, 지급준비제도에 한때나마 예금자 보호 기능이 있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지급준비제도 안에 예금자 보호 기능은 처음부터 없었다.
(2)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시켜 줄까?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과 관련이 있다면 지급준비율이 인하될수록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실증분석 결과 지급준비율 인하시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오히려 하락했다. (...)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미 연준의 지급준비율 인하 발표 직후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유로달러선물 금리-국채선물 금리)이 일제히 축소되었다. 이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지급준비율 인하로 인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기보다는 개선된다고 보는 것을 시사한다. 지급준비율 인하시 은행수지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3)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에 도움이 될까?
지급준비제도가 통화관리를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이라는 점은 보통 통화승수이론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통화승수이론에서 지급준비제도는 은행들의 무한 신용창출을 억제하는 장치이며,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 조정을 통해 통화량을 상당히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통화승수모형에 입각한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지급준비제도의 성격이 잘못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통화주의가 사라진 지금에는 지급준비제도가 불필요한 제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주19]
[주19] (...) 그러나 통화승수이론은 통화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미국식 이론이다. 영란은행을 비롯한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통화승수이론을 그다지 신봉하지 않는다. Bindsell(2004)에 따르면, 유럽 중앙은행들은 통화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에도 "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식 통화승수이론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 통화승수이론을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의 풍토는 확실히 미국식 통화주의 쪽으로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민간의 현금보유비율(c)과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지준율(r)이 주어져있을 때 통화량(M)은 본원통화(RB)와 다음과 같은 안정적인 비례관계이 있다.
M = 1 / c+r(1-c) RB ..... (15.1)
식 (15.1)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지준율(r)이 인상(인하)되면 통화량은 감소(증가)한다. 지준율 조정이 은행의 신용창출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모형에 따르면 지준율 조정은 통화량 수준뿐 아니라 그 변동성까지 설명할 수 있다. 즉 지준금은 필요지준(RR = rD, D는 예금액)과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초과지준(ER)으로 구분되는데, 초과지준 수요는 금리(i)의 영향을 받으므로, ER = EB(i)로 표현하면 식 (15.1)은 다음과 같이 고칠 수 잇다.
M = 1 / c+r(1-c) { rD + EB(i) } ..... (15.2)
이때 금리 변동에 대한 통화량의 민감도, 즉 통화지표의 금리 탄력성은
ΔM/Δi = 1 / c+r(1-c) ΔEB(i)/Δi ..... (15.3)
과 같다. 즉 지준율의 절대 수준(r)이 높을수록 통화지표의 금리 탄력성(ΔM/Δi)이 낮아진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그림 15-1>과 같다.
<그림 15-1> 지금준비율 조정이 통화량 결정에 미치는 영향
(...)
퉁화수요 증가시 지준율이 높을 때 균형: M1, i1
통화수요 증가시 지준율이 낮을 때 균형: M2(>M1), i2(<i1)
따라서 통화량 공급목표가 중시되는 상황에서는 통화당국이 가급적 높은 수준의 지준율을 선호하게 된다.
이상과 설명을 따를 경우 지급준비제도가 폐지되면 통화공급곡선은 더욱 완만해진다.지급준비금 예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면, 은행들은 이자가 붙지 않는 지급준비금 보유를 최소화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는데, 이 경우 지급준비금 수요는 금리에 대해 매우 탄력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급준비제도가 없을 경우 통화관리는 어려워지는 대신 금리는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1981년 지급준비제도를 폐지한 영국에서는 금리가 별로 안정되지 못했다. 오히려 금리 급등락이 심해졌으며, 그 결과 2006년 5월 다시 자발적 지급준비제도를 부활시켰다. 영란은행의 경우를 보면,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통화승수이론은 사실이 아니다.
통화승수이론의 이론적 허구성은 각국 중앙은행들의 실제 통화정책 수행내용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지준율을 인상(인하)하면, 통화증가율이 둔화(상승)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즉 식 (15.1)의 양변을 로그값을 취한 뒤 미분하면,
Udot(M) = Udot(k) + Udot(RB) (단, k = 1 / r(1-c) +c ) .... (15.1.A)
가 되는데,
Udot(k) = 1/k Δk/Δr = - 1-c / r(1-c) +c < 0 ..... (15.1.B)
라는 점에 착안하여 지준율 인상(인하)기 통화증가율 하락(상승)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즉 Udot(RB) = 0 이라고 가정한다). ...
하지만 지준율 조정시 필요지준 규모가 일시에 대폭 변경되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지준부족 또는 초과지준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사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중앙은행은 없다. 즉 지준율 조정시 식 (15.1.A) 에서 Udot(RB) = 0 이 아닌 것이다. 지준율 조정 이후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액 변동은
Udot(RB) = 1/RB ΔRB/Δr = 1/(R+C) Δ(R+C)/Δr ..... (15.1.C)
로 표시할 수 있는데, 중앙은행의 지준율 변공은 민간의 현금보유 행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C = Ubar(C) = Ubar(cM) = Ubar(c(C+D))이다. 즉,
C = Ubar(C) = c/1-c D ..... (15.1.D)
이다. 따라서
RB = R + C = rD + c/1-c D = r(1-c)+c / 1-c D
이며 ,
ΔRB/Δr = Δ(R+c)/Δr = D
이다. 따라서
Udot(RB) = 1/RB ΔRB/Δr = 1/D 1-c / r(1-c)+c D = 1-c / r(1-c)+c > 0 (15.1.E)
가 된다. 이제 식 (15.1.B)와 (15.1.E)를 식 (15.1.A)에 반영하면,
Udot(M) = - 1-c / r(1-c)+c + 1-c / r(1-c)+c = 0 ... (15.1.F)
이다. 즉, 지준율 조정 이후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 내용까지 감안하면 지준율 조정은 통화증가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통화관리를 위해 지준율을 인상(인하)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유가 되어 본원통화 공급을 확대(축소)하는 것이 각국 통화정책의 실제 모습이다. 2006년 12우러 한국은행의 지준율 인상조치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통화승수이론을 근거로 지급준비제도의 필요성이나 지급준비율 조정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 설득력이 매우 박약하다(통화승수모형이 완성한 멜쩌 자신이 인정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은 지급준비제도가 중앙은행의 이익을 보장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조절하면 말할 필요도 없이 통화승수가 바뀐다. 통화승수는 중앙은행과 예금은행이 각각 가지고 있는 통화성부채(본원통화 및 예금통화) 간의 비율이다. 즉 지급준비율 인상시 통화량(예금은행의 부채)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 규모가 늘어나고, 따라서 통화승수가 달라진다. 본원통화 증가는 중앙은행의 시뇨리지 증가를 의미한다.
지준율 변경에도 불구하고 통화량은 그대로인데, 중앙은행의 시뇨리지만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은행들의 영업이익이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준율 조정은 산 속에 붙들린 당그라르와 산전 간의 제로섬 게임 속에서 산적의 몫을 산적이 정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주20] 한편 지급준비율 인상시 중앙은행의 시뇨리지가 늘어나는 만큼 예금은행들은 예대마진을 확대해 수지 악화에 대응한다. 그런데 은행들의 예대마진 확대는 금융중개 기능의 저하를 의미한다. (....)
영란은행은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1981년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지급준비제도를 아주 '화끈하게' 폐지하고, 그 대신 영란은행 수지 보전용 지급준비제도를 도입했다. 즉 예금은행들은 6개월마다 일정액의 자금(예금 평잔의 0.15%)을 영란은행에 정기예금 형식으로 예치하고, 영란은행이 이를 통해 이자수입을 얻는 제도(cash ratio deposit)를 운용하고 있다. 부끄럽긴 하지만, 영란은행이 예금은행으로부터 일조의 보조금을 받는 대신 지급준비율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을 중단한 것이다. 영란은행처럼 '용기가 없는' 다른 중앙은행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지급준비율 조절을 자제하거나 지급준비율 인하 일변도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지급준비제도를 둘러싼 난처한 비판을 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급준비제도는 이제 통화관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급준비제도의 피해자: 태산명동에 서일필
(... ...) 한편, 지급준비제도의 존재 이유와 비용 부담자에 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급준비제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지급준비제도를 은행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특권으로 보는 것이다.
지급준비제도를 은행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특권으로 보는 이유는 은행들이 타 금융기관이나 고객들에게 배타적으로 제공하는 결제서비스가 결국은 지급준비제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미국에서} 1980년 통화관리법 개정을 계기로 저축은행들이 지급결제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된 이후에 두드러졌다.
(... ...) 1980년 통화관리법(DIDMCA)는 흔히 연준의 통화관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초 입법 취지는 저축기관에게 지급결제업무(환업무)를 허용하는 데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법은 연준이 결제서비스를 유료화하고 민간기관과 대등한 자역으로 경쟁하는 것을 의무화했는데, 이런 점을 보더라도 이 법의 주된 목표가 통화관리 여건 개선이 아니라 지급결제서비스 면에서의 규제완화와 경쟁 촉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은행이 운용하는 지급결제시스템에 참가해 환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 일부 금융기관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라면,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지급준비제도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로 인해 일부 금융기관들이 누리는 특원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혜택을 제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급결제제도를 재조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중앙은행이 없는 초기 금본위제도를 가정해보자. 이때는 누구든 正貨를 갖기만 하면 그것을 지급함으로써 결제가 완료되므로 결제기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기관은 없다. 완전경쟁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지급결제를 실시각 총액결제(real-time gross settlement) 방식으로 처리할 경우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무수익 자산인 정화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의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인 민간 어음교환소(private clearing house)이다. 어음교환소는 회원들로부터 일정 규모의 예치금 또는 결제이행보증금을 받아두고 차액을 결제(net settlement)를 한다. 그럼으로써 어음교환소에 참가하는 기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정화를 줄여 다른 고수익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주25] 따라서 어음교환소에 맡겨진 예치금은 회원들이 고수익 투자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장치가 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현대 은행제도로 이식하면 지급준비제도의 특징과 의미를 알 수 있다. 미 연준이 그랬듯 모든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제도를 통해 지역별로 산재하는 어음교환소의 어음교환소 기능을 한다. 어음교환소와 회원사 간의 관계가 중앙은행과 예금은행 간의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주26]
(1) 중앙은행에 예치되는 지급준비금은 과연 조세일까?
어음교환소에 참가하는 기관이 결제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어음교환소에 예치하는 자금은 아무도 조세로 보지 않는다.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앙은행 앞 지급준비금은 조세가 아니다. 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이 회원들 간의 결제위험을 담보하기 위해 징구하는 안전장치일 뿐이다.
(2) 지급준비금은 예금자 보호 기능이 있을까?
어음교환소가 징구하는 예치금은 회원 모두를 상대로 지급결제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어음교환소 밖의 회원고객에 대해 예금지급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지급준비금은 지급결제시스템의 운영을 위한 것이지 예금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예금자 보호 기능은 일종의 상상이다!)
(3) 지급준비제도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 ...) 결론적으로 말해, 은행은 어떤 금융기관보다도 저렴한 결제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그래서 모든 경제주체들은 결국 지급결제서비스를 통해 지급준비제도에 노출된다. 이와 같이 지급결제제도와 지급준비제도는 동전의 앞뒷면으로서 은행업의 근간이요, 특징이다.
(4)..
(... ...) 이상과 같이 지급결제 차원에서 지급준비제도를 설명하면, 통화승수이론에 입각해 통화정책 수단으로만 이해하려는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와는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지러울 정도로 상반된다. 이런 주장은 최신 이론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등장한 이론들이다.[주30: Garber and Weisbrod(1990) 참조. 한편 국내에서는 지급준비제도를 여전히 통화주의적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으니 통화주의가 그만큼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판단된다.] 그만큼 지급준비제도에 관한 이론은 느리지만 거대한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
중앙은행의 입장: 진퇴양난
오늘날 캐나다나 뉴질랜드처럼 지급준비제도가 폐지된 나라도 있고, 미국이나 한국처럼 고전적 지급준비제도가 그대로 운영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지급준비금이 거래되는 지준시장(reserve market)이 없는 나라는 없다. 지준시장은 통화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다. 지준시장은 왜 중요한가?
<표 15-2>는 중앙은행을 제외한 모든 경제주체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준다.
중앙은행을 제외한 자금순환표 [주1]
=================================================================================
| 정부(g) 은행(i) 비은행 민간(j) 계
| ------------------------------------------------
| 자산 부채 | 자산 부채 | 자산 부채 |
=================================================================================
현금통화[주2] Cj Σ Cj
지준예치금 Ri Σ Ri
중앙은행앞 정부예금 Gg Gg
중앙은행 대출금 Bg Bi Bg + Σ Bi
국채발행 및 투자 Tg Ti Tj Tg - (Σ Ti + Σ Tj)
금융시장 자산·부채[주3] Ai Aj Σ Ai + Σ Aj = 0
은행예금 Di Dj Σ Di = Σ Dj
은행대출 Li Lj Σ Li = Σ Lj
=================================================================================
자산과 부채별로 모든 경제주체의 예산제약식을 합산하면,
부채 = Bg + Tg + Σ Bi + Σ Di + Σ Lj
= 자산 = Gg + Σ Ri + Σ Ti + Σ Ai + Σ Li + Σ Cj + Σ Tj + Σ Aj + Σ Dj .... (15.4)
이 되고, 이때 상계항목을 차감하면
Bg + Σ Bi + Tg = Σ Ri + Gg + Σ Cj + (Σ Ti + Σ Tj) ...................... (15.5)
의 항등식을 얻게 된다. (15.5) 식을 다시 정리하면, 최종적으로
Σ Bi + { Tg - (Σ Ti + Σ Tj) } = Σ Ri + Σ Cj + (Gg - Bg) ................ (15.6)
이 된다.
한편 식 (15.6)은 다름아닌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나타내는 식이다.
따라서 지준시장은 중앙은행의 정책의사가 실물부문을 향해 금융시장으로 전달되는 최초의 장이자, 국민경제 전체의 자금수요가 최종적으로 집약되어 반영되는 시장이다. 지준시장의 이러한 특징은 지급준비제도가 있는 나라건, 없는 나라건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성립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운용목표로 삼는다면, 지준시장에서의 금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페더럴펀드 금리, 유럽의 EONIA(Euro Over Night Index Average), 영국의 SONIA(Sterling Over Night Index Average), 캐나다의 은행간금리, 스위스의 콜금리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강제적 지급준비제도가 없어도 지준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어떤 쪽이 더 나을까?
앞에서 소개한 1980년 통화관리법 제정 때, 연준이 기존의 통화관리 목적으로 운영하던 지급준비금 이외에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해 예치할 수 있는 결제용 지급준비금 제도(required clearing balance):
199년대 초반 이 결제용 지급준비금 규모가 60억불을 넘어서면서 미 연준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이 자금의 성격에 대해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비록 연준에 예치된 자금이라 하더라도 결제용 지급준비금은 민간의 결제서비스와 경쟁하는 성격의 자금이므로 전통적 의미의 본원통화(outside money)로 분류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연준에 예치된 결제용 지준예치금은 예금기관 사이에서의 동업자 간 예금과 완전 대체재이다. 그리고 동업자 간 예금은 전형적인 내부화폐(inside money)다. 따라서 연준에 예치된 결제용 지준예치금은 본원통화에서 제외하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전통적 의미의 본원통화와 함께 결제용 지급준비금을 차감한 "수정된 본원통화(adjusted monetary base)"라는 통화지표를 별도로 산출하고 있다.
(...) 그러나 민간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지준예치금 규모를 스스로 결정하고 중앙은행은 여기에 이자를 지급한다는 사실은 1960년 걸리와 쇼가 만든 내부화폐와 외부화폐 개념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리고 그 구분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주34: 1980년대 이후 각국의 지준율이 계속 낮아져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급준비금보다는 현금통화가 압도적으로 많가. 그래서 본원통화 개념의 유용성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수정된 본원통화가 실물경제를 더 잘 설명한다면, 굳이 지급준비제도를 유지할 필요없이 민간의 자생적 결제수요만을 이용해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지급준비제도는 점점 더 설 땅을 잃어가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다각도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
(... ...)
결론: 정책당국의 유연성
공개시장조작에 대한 미 연준과 일본은행 사례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개시장조작은 재할인에 상대되는 개념이며 재량적 통화정책의 출발점이다. 재화 및 용역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행되는 민간의 상업어음을 기초로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는 방식이 재할인이라면, 공개시장조작은 민간의 상업어음 또는 실물경제 동향과 상관없이 통화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경기조절을 위한 선제적 통화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공개시장조작이 우연히 발견되기 전에는 중앙은행의 통화조절이 재할인을 통해서만 실시되었기 때문에 피셔가 말한 안정적 통화공급 또는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통화정책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공개시장조작은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둘째, 공개시장조작은 시장의 반응을 반영하는 환류경로(feedback)를 갖출 때에만 효과적이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재할인금리에는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할인금리의 조정은 금융시장을 상대로 중앙은행의 정책의지를 일방적으로 밝히는 시그널 효과가 강하다. 이에 비해 일상적 공개시장조작 과정에서는 경기에 대한 기대, 외환시장 동향, 금융시장 수급 사정 등 다양한 정보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나므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생각을 읽기가 쉽다. 따라서 공개시장조작은 이런 정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실시될 때 비로소 재할인정책과 차별화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공개시장조작의 의의가 크게 감소한다. 일본은행은 경기불황 초기에 자금수요 둔화현상만 보고 통화량 감소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밀러 이사가 지휘했던 대공황 당시의 미 연준과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행은 미 연준에 비해 공개시장조작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금융시장과의 교류, 호흡, 의사소통에는 소홀했다. 그 대신 고위층이 결정한 금리수준에서 필요지준 수준의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공개시장조작의 전부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중앙은행 스스로의 결정, 즉 공개시장조작 금리가 과연 적절한가를 되짚어 생각하고 정책방향 전화을 모색해보는 피드백 경로를 망각한 것이다. 이런 식의 공개시장조작은 재할인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셋째, 국채를 대상으로 하는 공개시장조작은 결국 정부의 채무를 화폐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보다는 정부를 우대하는 통화공급 방식이다. 따라서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대출정책을 멀리하고 공개시장조작 의존도를 높일수록 민간이 후순위로 밀린다. (...)
이런 문제 때문에 유럽중앙은행은 국채뿐 아니라 우량 회사채 등도 공개시장조작의 대상증권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매우 심했을 때 일본은행이 CP나 주식마저 공개시장조작 대상증권으로 활용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영란은행도 국채 이외에 외국의 국채나 국제금융기구들의 채권 등 우량 채권들을 재할인 및 공개시장조작 적격증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중앙은행들은 미국을 염두에 두고 국채를 이용한 공개시장조작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채만 이용한 공개시장조작은 상업어음에 기초한 재할인정책보다 더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대출정책(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제도)은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
5장(지급준비제도: 백작과 산적의 갈림길)
(...) 지급준비제도는 본원통화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중앙은행이 그 수요까지도 인위적으로 강제하는 매우 강력한 수요창출 장치이다. 이런 제도는 금융의 이외 분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한 회사만 독점적으로 만드는 핸드폰을 소비자들이 강제적으로 사도록 만드는 제도를 만든다면, 당장 난리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금융의 세계에서는 지급준비예치금이 부족한 은행들이 배고픈 당그라르처럼 금리 수준을 불문하고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
지급준비제도의 변천사: 미국의 경우
지급준비제도는 은행업이 태동했던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싹이 텄다. 즉 은행권을 발행하는 은행들끼리 결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정 금액의 정화(금화)를 상대 은행에게 예치한 다음 {그 금액 범위 내에서는 상대방 은행권을 제시받았을 때 금으로 태환해주었다─(이 독자) 서로 자기 은행에 예치된 상대 은행의 금액까지는 상대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이 창구에 제시됐을 때 금으로 태환해주었다}.
당시 지급준비제도의 취지는 금태환을 원활히 함으로써 은행권 유통을 촉진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개별 은행의 건전성 유지보다는 은행시스템 전체의 이익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
오늘날과 같이 법률을 통해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지급준비금을 예치해야 하는 제도는 미국의 1863년 <국법은행법(National Bank Act)>을 통해 시작되었다. 링컨 대통령 주도로 만들어진 이 법은 발권은행 설립인가권을 주정부에서 연방정부로 이관하고, 동시에 발권은행들은 예금 및 은행권 발행액의 25%를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도록 했다. 다만 지역(지방, 지준거점 지역, 중앙지준거점 지역)에 따라 지급준비금의 보유방식을 차등화했다[주2]
[주2] 뉴욕 등 중앙지준거점 지역의 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을 전액 법정화폐(금화 및 국채, 무이자)로 보유해야 하고, 여타 지역 은행들은 필요지준의 60%까지 지준거점에 있는 타 은행앞 예금(이자부)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 국법은행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뉴욕과 뉴잉글랜드 지역의 은행들은 유럽에서와 같이 금태환의 편의 증진을 위해 정화를 상호 예탁했다.
한편 지급준비제도가 도입된 지 1년 만인 1864년, 국법은행들의 은행권 발행에 따른 지준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급준비율을 25%에서 15%로 인하했다. 이것이 역사상 첫 지준율 조정이었다(그 이유가 통화관리가 아니라 지준금 보유에 따른 은행들의 자금부담 경감이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후 국법은행들이 발행한 은행권이 전국에 거쳐 순조롭게 유통되어 결제수단으로 정착되자 1873년에는 지준 대상 채무에서 은행권 발행액은 제외되고 예금만이 필요지준 계산의 기준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의 지급준비제도가 거의 완성된 것이다. (... ...)
1913년 미 연준 설립... 미 연준의 지급준비제도의 두 가지 특징: (1).. (2)..
(... ...) 1980년 <통화관리 및 예금기관규제완화법>으로 지급준비제도 적용기관이 비회원으냉 및 저축기관까지 크게 확대. 이 법의 제정으로 연준의 통화관리가 한결 용이해졌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1)..
(2)..
(3) 셋째, 지급결제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통화관리법에 의해 지급준비제도 적용대상기관으로 추가된 기관들은 대부분 수신규모가 매우 작아 필요지준이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준비금을 근거로 지급결제업무(환업무) 취급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지급결제규모가 필요지준 규모를 상회하기 쉬웠는데, 그렇게 되면 지급결제시스템이 작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들 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지급결제시스템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 연준은 결제용 지준예치금(required clearing balance) 제도를 마련했다. 결제용 지준예치금이란 예금기관들이 연준과 협의해 결정한 금액을 자율적으로 예치하는 자금으로서, 이 자금은 일상적 결제업무에 사용하되 평균 예치잔액이 약정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2%) 페더럴펀드 금리에 해당하는 이자가 지급된다.[주14] 다만 평균 예치액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벌과금이 부과되고, 초과하면 초과금액에 대한 이자가 붙지 않는다. 일종의 자발적 지준제도이다(2006년 5월 영란은행이 도입한 제도가 바로 이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 ...)
지급준비제도의 존재 이유: 허상과 진실
흔히 지급준비제도는 "예금자 보호 및 금융기관 경영의 건전화를 위해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은행 유동성 조절 또는 통화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어 운용된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급준비제도의 의미와 효과를 통화관리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이러한 주장들은 1970년대 이전 통화주의 영향이 강했을 때는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각국의 통화정책 운용내용의 실증분석 등을 통해 하나씩 논리의 진정성이 부정되어 왔다.
(1) 먼저 예금자 보호 기능을 보자.
부분지급준비제도하에서는 패닉 현상이 발생했을 때 예금지급불능 사태가 태생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853년 국법은행법 제정을 시작으로 부분지급준비제도가 시작되었지만 국법은행시대(1863~1913)에는 금융공황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이 숱하게 도산했다. 1907년 금융공황을 계기로 설립된 미 연준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금융공황이 빈발하던 과거보다도 오히려 지급준비율을 더 낮추었다.[주17: Feinman(1993)]
부분지급준비제도하에서는 패닉이 발생했을 때 예금지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발권기능을 가진 중앙은행의 존재 그 자체이다.[주18] 그래서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요약컨대, 지급준비제도에 한때나마 예금자 보호 기능이 있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지급준비제도 안에 예금자 보호 기능은 처음부터 없었다.
(2)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시켜 줄까?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과 관련이 있다면 지급준비율이 인하될수록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실증분석 결과 지급준비율 인하시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오히려 하락했다. (...)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미 연준의 지급준비율 인하 발표 직후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유로달러선물 금리-국채선물 금리)이 일제히 축소되었다. 이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지급준비율 인하로 인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기보다는 개선된다고 보는 것을 시사한다. 지급준비율 인하시 은행수지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지급준비제도가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3)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에 도움이 될까?
지급준비제도가 통화관리를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이라는 점은 보통 통화승수이론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통화승수이론에서 지급준비제도는 은행들의 무한 신용창출을 억제하는 장치이며,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 조정을 통해 통화량을 상당히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통화승수모형에 입각한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지급준비제도의 성격이 잘못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통화주의가 사라진 지금에는 지급준비제도가 불필요한 제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주19]
[주19] (...) 그러나 통화승수이론은 통화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미국식 이론이다. 영란은행을 비롯한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통화승수이론을 그다지 신봉하지 않는다. Bindsell(2004)에 따르면, 유럽 중앙은행들은 통화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에도 "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식 통화승수이론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 통화승수이론을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의 풍토는 확실히 미국식 통화주의 쪽으로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민간의 현금보유비율(c)과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지준율(r)이 주어져있을 때 통화량(M)은 본원통화(RB)와 다음과 같은 안정적인 비례관계이 있다.
M = 1 / c+r(1-c) RB ..... (15.1)
식 (15.1)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지준율(r)이 인상(인하)되면 통화량은 감소(증가)한다. 지준율 조정이 은행의 신용창출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모형에 따르면 지준율 조정은 통화량 수준뿐 아니라 그 변동성까지 설명할 수 있다. 즉 지준금은 필요지준(RR = rD, D는 예금액)과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초과지준(ER)으로 구분되는데, 초과지준 수요는 금리(i)의 영향을 받으므로, ER = EB(i)로 표현하면 식 (15.1)은 다음과 같이 고칠 수 잇다.
M = 1 / c+r(1-c) { rD + EB(i) } ..... (15.2)
이때 금리 변동에 대한 통화량의 민감도, 즉 통화지표의 금리 탄력성은
ΔM/Δi = 1 / c+r(1-c) ΔEB(i)/Δi ..... (15.3)
과 같다. 즉 지준율의 절대 수준(r)이 높을수록 통화지표의 금리 탄력성(ΔM/Δi)이 낮아진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그림 15-1>과 같다.
<그림 15-1> 지금준비율 조정이 통화량 결정에 미치는 영향
(...)
퉁화수요 증가시 지준율이 높을 때 균형: M1, i1
통화수요 증가시 지준율이 낮을 때 균형: M2(>M1), i2(<i1)
따라서 통화량 공급목표가 중시되는 상황에서는 통화당국이 가급적 높은 수준의 지준율을 선호하게 된다.
이상과 설명을 따를 경우 지급준비제도가 폐지되면 통화공급곡선은 더욱 완만해진다.지급준비금 예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면, 은행들은 이자가 붙지 않는 지급준비금 보유를 최소화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는데, 이 경우 지급준비금 수요는 금리에 대해 매우 탄력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급준비제도가 없을 경우 통화관리는 어려워지는 대신 금리는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1981년 지급준비제도를 폐지한 영국에서는 금리가 별로 안정되지 못했다. 오히려 금리 급등락이 심해졌으며, 그 결과 2006년 5월 다시 자발적 지급준비제도를 부활시켰다. 영란은행의 경우를 보면,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통화승수이론은 사실이 아니다.
통화승수이론의 이론적 허구성은 각국 중앙은행들의 실제 통화정책 수행내용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지준율을 인상(인하)하면, 통화증가율이 둔화(상승)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즉 식 (15.1)의 양변을 로그값을 취한 뒤 미분하면,
Udot(M) = Udot(k) + Udot(RB) (단, k = 1 / r(1-c) +c ) .... (15.1.A)
가 되는데,
Udot(k) = 1/k Δk/Δr = - 1-c / r(1-c) +c < 0 ..... (15.1.B)
라는 점에 착안하여 지준율 인상(인하)기 통화증가율 하락(상승)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즉 Udot(RB) = 0 이라고 가정한다). ...
하지만 지준율 조정시 필요지준 규모가 일시에 대폭 변경되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지준부족 또는 초과지준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사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중앙은행은 없다. 즉 지준율 조정시 식 (15.1.A) 에서 Udot(RB) = 0 이 아닌 것이다. 지준율 조정 이후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액 변동은
Udot(RB) = 1/RB ΔRB/Δr = 1/(R+C) Δ(R+C)/Δr ..... (15.1.C)
로 표시할 수 있는데, 중앙은행의 지준율 변공은 민간의 현금보유 행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C = Ubar(C) = Ubar(cM) = Ubar(c(C+D))이다. 즉,
C = Ubar(C) = c/1-c D ..... (15.1.D)
이다. 따라서
RB = R + C = rD + c/1-c D = r(1-c)+c / 1-c D
이며 ,
ΔRB/Δr = Δ(R+c)/Δr = D
이다. 따라서
Udot(RB) = 1/RB ΔRB/Δr = 1/D 1-c / r(1-c)+c D = 1-c / r(1-c)+c > 0 (15.1.E)
가 된다. 이제 식 (15.1.B)와 (15.1.E)를 식 (15.1.A)에 반영하면,
Udot(M) = - 1-c / r(1-c)+c + 1-c / r(1-c)+c = 0 ... (15.1.F)
이다. 즉, 지준율 조정 이후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 내용까지 감안하면 지준율 조정은 통화증가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통화관리를 위해 지준율을 인상(인하)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유가 되어 본원통화 공급을 확대(축소)하는 것이 각국 통화정책의 실제 모습이다. 2006년 12우러 한국은행의 지준율 인상조치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통화승수이론을 근거로 지급준비제도의 필요성이나 지급준비율 조정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 설득력이 매우 박약하다(통화승수모형이 완성한 멜쩌 자신이 인정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은 지급준비제도가 중앙은행의 이익을 보장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조절하면 말할 필요도 없이 통화승수가 바뀐다. 통화승수는 중앙은행과 예금은행이 각각 가지고 있는 통화성부채(본원통화 및 예금통화) 간의 비율이다. 즉 지급준비율 인상시 통화량(예금은행의 부채)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 규모가 늘어나고, 따라서 통화승수가 달라진다. 본원통화 증가는 중앙은행의 시뇨리지 증가를 의미한다.
지준율 변경에도 불구하고 통화량은 그대로인데, 중앙은행의 시뇨리지만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은행들의 영업이익이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준율 조정은 산 속에 붙들린 당그라르와 산전 간의 제로섬 게임 속에서 산적의 몫을 산적이 정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주20] 한편 지급준비율 인상시 중앙은행의 시뇨리지가 늘어나는 만큼 예금은행들은 예대마진을 확대해 수지 악화에 대응한다. 그런데 은행들의 예대마진 확대는 금융중개 기능의 저하를 의미한다. (....)
영란은행은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1981년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지급준비제도를 아주 '화끈하게' 폐지하고, 그 대신 영란은행 수지 보전용 지급준비제도를 도입했다. 즉 예금은행들은 6개월마다 일정액의 자금(예금 평잔의 0.15%)을 영란은행에 정기예금 형식으로 예치하고, 영란은행이 이를 통해 이자수입을 얻는 제도(cash ratio deposit)를 운용하고 있다. 부끄럽긴 하지만, 영란은행이 예금은행으로부터 일조의 보조금을 받는 대신 지급준비율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을 중단한 것이다. 영란은행처럼 '용기가 없는' 다른 중앙은행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지급준비율 조절을 자제하거나 지급준비율 인하 일변도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지급준비제도를 둘러싼 난처한 비판을 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급준비제도는 이제 통화관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급준비제도의 피해자: 태산명동에 서일필
(... ...) 한편, 지급준비제도의 존재 이유와 비용 부담자에 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급준비제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지급준비제도를 은행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특권으로 보는 것이다.
지급준비제도를 은행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특권으로 보는 이유는 은행들이 타 금융기관이나 고객들에게 배타적으로 제공하는 결제서비스가 결국은 지급준비제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미국에서} 1980년 통화관리법 개정을 계기로 저축은행들이 지급결제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된 이후에 두드러졌다.
(... ...) 1980년 통화관리법(DIDMCA)는 흔히 연준의 통화관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초 입법 취지는 저축기관에게 지급결제업무(환업무)를 허용하는 데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법은 연준이 결제서비스를 유료화하고 민간기관과 대등한 자역으로 경쟁하는 것을 의무화했는데, 이런 점을 보더라도 이 법의 주된 목표가 통화관리 여건 개선이 아니라 지급결제서비스 면에서의 규제완화와 경쟁 촉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은행이 운용하는 지급결제시스템에 참가해 환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 일부 금융기관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라면,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지급준비제도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로 인해 일부 금융기관들이 누리는 특원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혜택을 제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급결제제도를 재조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중앙은행이 없는 초기 금본위제도를 가정해보자. 이때는 누구든 正貨를 갖기만 하면 그것을 지급함으로써 결제가 완료되므로 결제기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기관은 없다. 완전경쟁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지급결제를 실시각 총액결제(real-time gross settlement) 방식으로 처리할 경우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무수익 자산인 정화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의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인 민간 어음교환소(private clearing house)이다. 어음교환소는 회원들로부터 일정 규모의 예치금 또는 결제이행보증금을 받아두고 차액을 결제(net settlement)를 한다. 그럼으로써 어음교환소에 참가하는 기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정화를 줄여 다른 고수익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주25] 따라서 어음교환소에 맡겨진 예치금은 회원들이 고수익 투자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장치가 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현대 은행제도로 이식하면 지급준비제도의 특징과 의미를 알 수 있다. 미 연준이 그랬듯 모든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제도를 통해 지역별로 산재하는 어음교환소의 어음교환소 기능을 한다. 어음교환소와 회원사 간의 관계가 중앙은행과 예금은행 간의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주26]
(1) 중앙은행에 예치되는 지급준비금은 과연 조세일까?
어음교환소에 참가하는 기관이 결제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어음교환소에 예치하는 자금은 아무도 조세로 보지 않는다.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앙은행 앞 지급준비금은 조세가 아니다. 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이 회원들 간의 결제위험을 담보하기 위해 징구하는 안전장치일 뿐이다.
(2) 지급준비금은 예금자 보호 기능이 있을까?
어음교환소가 징구하는 예치금은 회원 모두를 상대로 지급결제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어음교환소 밖의 회원고객에 대해 예금지급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지급준비금은 지급결제시스템의 운영을 위한 것이지 예금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예금자 보호 기능은 일종의 상상이다!)
(3) 지급준비제도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 ...) 결론적으로 말해, 은행은 어떤 금융기관보다도 저렴한 결제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그래서 모든 경제주체들은 결국 지급결제서비스를 통해 지급준비제도에 노출된다. 이와 같이 지급결제제도와 지급준비제도는 동전의 앞뒷면으로서 은행업의 근간이요, 특징이다.
(4)..
(... ...) 이상과 같이 지급결제 차원에서 지급준비제도를 설명하면, 통화승수이론에 입각해 통화정책 수단으로만 이해하려는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와는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지러울 정도로 상반된다. 이런 주장은 최신 이론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등장한 이론들이다.[주30: Garber and Weisbrod(1990) 참조. 한편 국내에서는 지급준비제도를 여전히 통화주의적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으니 통화주의가 그만큼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판단된다.] 그만큼 지급준비제도에 관한 이론은 느리지만 거대한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
중앙은행의 입장: 진퇴양난
오늘날 캐나다나 뉴질랜드처럼 지급준비제도가 폐지된 나라도 있고, 미국이나 한국처럼 고전적 지급준비제도가 그대로 운영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지급준비금이 거래되는 지준시장(reserve market)이 없는 나라는 없다. 지준시장은 통화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다. 지준시장은 왜 중요한가?
<표 15-2>는 중앙은행을 제외한 모든 경제주체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준다.
중앙은행을 제외한 자금순환표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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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g) 은행(i) 비은행 민간(j) 계
| ------------------------------------------------
| 자산 부채 | 자산 부채 | 자산 부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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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통화[주2] Cj Σ Cj
지준예치금 Ri Σ Ri
중앙은행앞 정부예금 Gg Gg
중앙은행 대출금 Bg Bi Bg + Σ Bi
국채발행 및 투자 Tg Ti Tj Tg - (Σ Ti + Σ Tj)
금융시장 자산·부채[주3] Ai Aj Σ Ai + Σ Aj = 0
은행예금 Di Dj Σ Di = Σ Dj
은행대출 Li Lj Σ Li = Σ 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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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과 부채별로 모든 경제주체의 예산제약식을 합산하면,
부채 = Bg + Tg + Σ Bi + Σ Di + Σ Lj
= 자산 = Gg + Σ Ri + Σ Ti + Σ Ai + Σ Li + Σ Cj + Σ Tj + Σ Aj + Σ Dj .... (15.4)
이 되고, 이때 상계항목을 차감하면
Bg + Σ Bi + Tg = Σ Ri + Gg + Σ Cj + (Σ Ti + Σ Tj) ...................... (15.5)
의 항등식을 얻게 된다. (15.5) 식을 다시 정리하면, 최종적으로
Σ Bi + { Tg - (Σ Ti + Σ Tj) } = Σ Ri + Σ Cj + (Gg - Bg) ................ (15.6)
이 된다.
한편 식 (15.6)은 다름아닌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나타내는 식이다.
- 이 식의 좌변은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차변(민간은행 대출 + 국채보유액)을,
- 우변은 대변(지준예치금 + 현금통화 + 대정부 순대출금)을 각각 나타낸다.
따라서 지준시장은 중앙은행의 정책의사가 실물부문을 향해 금융시장으로 전달되는 최초의 장이자, 국민경제 전체의 자금수요가 최종적으로 집약되어 반영되는 시장이다. 지준시장의 이러한 특징은 지급준비제도가 있는 나라건, 없는 나라건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성립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운용목표로 삼는다면, 지준시장에서의 금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페더럴펀드 금리, 유럽의 EONIA(Euro Over Night Index Average), 영국의 SONIA(Sterling Over Night Index Average), 캐나다의 은행간금리, 스위스의 콜금리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강제적 지급준비제도가 없어도 지준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급준비제도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어떤 쪽이 더 나을까?
앞에서 소개한 1980년 통화관리법 제정 때, 연준이 기존의 통화관리 목적으로 운영하던 지급준비금 이외에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해 예치할 수 있는 결제용 지급준비금 제도(required clearing balance):
199년대 초반 이 결제용 지급준비금 규모가 60억불을 넘어서면서 미 연준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이 자금의 성격에 대해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비록 연준에 예치된 자금이라 하더라도 결제용 지급준비금은 민간의 결제서비스와 경쟁하는 성격의 자금이므로 전통적 의미의 본원통화(outside money)로 분류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연준에 예치된 결제용 지준예치금은 예금기관 사이에서의 동업자 간 예금과 완전 대체재이다. 그리고 동업자 간 예금은 전형적인 내부화폐(inside money)다. 따라서 연준에 예치된 결제용 지준예치금은 본원통화에서 제외하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전통적 의미의 본원통화와 함께 결제용 지급준비금을 차감한 "수정된 본원통화(adjusted monetary base)"라는 통화지표를 별도로 산출하고 있다.
(...) 그러나 민간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지준예치금 규모를 스스로 결정하고 중앙은행은 여기에 이자를 지급한다는 사실은 1960년 걸리와 쇼가 만든 내부화폐와 외부화폐 개념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리고 그 구분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주34: 1980년대 이후 각국의 지준율이 계속 낮아져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급준비금보다는 현금통화가 압도적으로 많가. 그래서 본원통화 개념의 유용성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수정된 본원통화가 실물경제를 더 잘 설명한다면, 굳이 지급준비제도를 유지할 필요없이 민간의 자생적 결제수요만을 이용해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지급준비제도는 점점 더 설 땅을 잃어가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다각도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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