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간략스크랩] 폴 새뮤얼슨

[추가]

▶ “美경제 연착륙…한·중·일에도 긍정 신호” 폴 새뮤얼슨 교수 (동아, 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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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사무엘슨이 94세를 일기로 2009년 12월 13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이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은 사무엘슨 석좌교수가 벨몬트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사무엘슨은 경제학을 발전시킨 공로로 1970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1940년 MIT에서 강의를 시작해 6년 후 정교수 자리에 올랐고, 강단에서 수많은 석학들을 양성했다. 특히 로렌스 클라인과 조지 아켈로프, 조셉 스티글리츠 등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그의 무역학과 국제 경제 이론은 세계화로 인해 그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다"며 "그가 이 이론을 내놓은 50년 전보다 오늘날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또한 사무엘슨은 미국 경제학회에서 40세 미만의 탁월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클라크 메달'을 1947년 받았다. 1948년 출간된 그의 저서 '경제학'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로써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저서이기도 하다. '경제학'은 30여 년간 27개의 언어로 번역되며 400만부 이상 팔렸다.



사무엘슨의 경제학은 1948년 출판된 이래로 미국 경제학계를 주름잡아 왔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가 바로 사무엘슨의 <경제학>이었습니다. 사무엘슨은 제2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공공재의 경우 비배타성과 비배제성이 있으므로 민간이 아닌 정부가 생산해야 한다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폴 사무엘슨입니다.

그의 시각은 고전학파의 미시적 시장 균형 이론과 케인즈의 거시경제정책론을 접목했다는 신고전파 종합입니다. 즉 경제의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케인지안의 시각), 일단 완전고용이 달성되면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시장의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전학파 시각) 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영미 경제학의 주류는 1950년대에 사무엘슨(Paul Samuelson)을 대표로 하는 신고전학파 종합이었다. 기존의 불공정분배이론과 케인스의 불황이론에 덧붙여서 이들은 공공재와 외부효과에 관한 이론들을 새로이 발전시켜서 시장의 실패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여 정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을 확립함으로써 개입주의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하였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는 개입주의의 전성기였다. 구미 각국 정부는 빈부격차와 빈곤을 치유하는 공공복지 제공, 정부의 재정지출과 통화증발을 통해 불황에 대처하는 총수요 조절, 독과점 규제, 공공재(공공시설 등)의 공급, 환경보호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복지국가(welfare state)를 확립하였다. 그 결과 선진국들은 유례가 없는 장기 번영기를 누렸다. 이처럼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치유 내지 완화하여 경제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정부의 성공(government success)이라고 부른다.




크루그먼은 위의 포스트를 포함하여 사뮤엘슨 추모 포스트만 4개를 썼습니다.
“진실로 위대하고, 진실로 좋은 사람”
“비교할 수 없는 경제학자.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딕싵 역시 사뮤엘슨 추모 글을 따로 썼습니다.

크루그먼 위키피디아 항목에도 케인즈, 제가 이미 얘기한 바그와티, 제가 나중에 얘기할 돈부시와 함께 제가 지금 얘기하는 딕싵이 크루그먼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목록에 사뮤엘슨은 없는데, 그 이유는, 제 생각에는, 디폴트 값이기 때문입니다. 사뮤엘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주류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칭명제입니다.)

특히 딕싵의 사뮤엘슨론(論)은 로드릭에 의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 정부 정책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안(케인스 학파 경제학자)적인 접근과 시장의 작동을 강조하는 신고전학파적 사고를 경제학 체계 내에서 조화롭게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이런 조화를 바탕으로 쓴 책 ‘경제원론(Economics)’은 경제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필독서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 새뮤얼슨은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비교우위에 기초한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여기에서 비교우위의 핵심은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그 결과를 교환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서는 또 다른 측면도 강조된다. 그에 따르면, 자유무역을 할 때 비교우위를 갖고 수출을 하는 산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생산요소를 가진 사람들은 실질소득이 증가하지만, 수입 부문에서 많이 사용되는 생산요소를 가진 계층의 실질소득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즉 자유무역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해도 이익을 얻는 계층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존재할 수 있고 이익과 손해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생산요소가 수출에 주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수입 부문에 주로 이용되는지의 여부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 때문에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국제무역으로 혜택을 보는 계층의 이익을 손해를 입는 계층의 손실을 보존하는 데 사용해, 자유무역의 혜택을 사회 모든 계층이 고르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기도 한다. 결국 자유무역을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자유무역으로 모든 계층이 이익을 본다는 주장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손실을 어떻게 보전시켜 사회 전체 이익을 적절히 배분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 속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찾아냈던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 같은 그의 고민은 단순한 이념적인 주장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보다 과학적이고 엄밀한 학문적 과정을 통해 검증 가능한 이론적 체계화 과정을 거쳤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 전개 부분이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중요 요인 중 하나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사회 전체적인 이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




(... ...) 선진국에서 개입주의가 부활하게 된 두 번째의 요인은 새로운 경제학의 등장이다. 근대 주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신뢰하였다. 시장경제가 생산과 고용에서는 효율성을 발휘하므로 정부는 가능한 한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 이래의 근대경제학의 기본입장이다. 이런 경제학자들의 믿음을 바꾼 것이 케인즈(John M. Keynes)의 거시경제학과 사무엘슨(Paul Samuelson)의 공공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을 최초로 설득력 있게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1936년에 출판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었다.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더불어 역사를 바꾼 3대 경제학 저서이자,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이론경제학 분야를 탄생시킨 이 책은, 종전의 고전학파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두 가지의 획기적인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었다. 첫째, 시장경제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자가 저축보다 적어서 상품에 대한 총수요가 부족하며 이로 인해 불황과 실업이 일반적인 현상임을 이론적으로 주장하였다. 저축이란 돈을 안 쓰는 것이므로 저축만큼 상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를 상쇄시켜 주는 것이 기업의 투자이다. 투자가 저축을 충분하게 상쇄시켜 주어야 불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들의 경기전망이 나빠지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그 결과로 저축보다 투자가 적게 되어 불황이 발생하고 불황이 한 번 발생하면 미래에 대한 기업들의 전망이 더욱 나빠져서 불황은 더욱 악화된다고 케인즈는 설명하였다. <일반이론>의 출판으로 비로소 경제학자들이 불황과 실업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설명에 근거하여, 상품시장에서의 수요부족과 그에 따른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화발행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각종 공공사업을 벌려서 총수요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정책제안이다. 이를 위해 케인즈는 정부가 금이나 은의 지불준비금이 없더라도 정부의 정책적 판단만으로 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관리통화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고 모든 선진국들이 이를 채택하였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이나 은만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본위화폐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본위화폐제도는 통화남발을 막아서 물가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으나 반면에 정부가 필요할 때 통화발행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관리통화제도는 정부가 통화증발을 통해 총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반면에 통화남발로 인한 인플레가 발생하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관리통화제도가 채택된 이후의 현대 경제에는 인플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하이에크, 프리드먼과 뷰캐넌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를 인플레의 원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두 가지의 오해를 지적하고 넘어가자. 하나는 케인즈의 이론이 나옴으로써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채택되었다고 하는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케인즈가 주장한 총수요확대정책의 대표적 예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the New Deal)인데, 이 정책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판된 1936년 이전에 이미 채택되었었다. 뉴딜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법들이 모두 <일반이론>이 출판되기 전인 1933년부터 35년간에 제정되었다. 케인즈의 이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불황의 탈출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출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언론계와 정계에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케인즈가 한 일은 이러한 생각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나아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던 경제학자들을 설득함으로써 개입주의가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눈앞의 사실보다 자기가 배운 이론을 믿기 때문에 현실이 아무리 변하여도 이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보통사람들보다 시대를 앞서 가지는 않더라도, 동료경제학자들보다는 한 발 앞서 가면 위대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음을 케인즈는 보여 준다.

또 하나의 오해는 뉴딜정책의 효과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이다. 현재 많은 경제학 교과서가, 미국이 뉴딜정책 덕분에 30년대의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뉴딜정책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2차대전이 발발할 때에도 미국은 약 20%의 높은 실업률을 여전히 갖고 있었고, 2차대전이 발발한 다음에야 비로소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뉴딜정책이라는 대대적인 통화발행과 재정지출의 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민간경제의 회복 없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만으로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사무엘슨의 공공경제학과 신고전학파종합

케인즈가 정부의 경제개입을 지지하는 새로운 거시경제학을 제시한 반면에 2차대전 이후 선진국의 주류경제학을 이끈 미국의 사무엘슨(Paul A. Samuelson)은 공공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미시경제학을 개척하여 정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였다. 공공경제학이란 정부부문의 경제활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응용 미시경제학이다. 사무엘슨은, 시장경제에는 빈부격차와 독과점, 불황에 더하여 공공재의 공급부족과 외부효과라는 또 다른 시장의 실패 요인이 존재하며, 이의 해결을 위한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밝혔다. 공공재란 무상 도로나 소방서, 국방, 치안, 행정과 같은 정부의 서비스처럼, 사회가 공동으로 생산하여 공동으로 소비하는 재화를 말한다. 공공재는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돈을 받고 팔 수 없으므로 시장에 맡기면 생산이 부족해진다. 외부효과란 외부불경제와 외부경제를 말한다. 외부불경제란 환경오염과 같이 합당한 금전 지불 없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말하며, 외부경제는 무상의 공공도로나 가로등, 기초과학과 같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남에게 주는 이익을 말한다(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칼럼12 참조). 시장에만 맡기면 외부불경제는 과다하게 생산되고, 외부경제는 생산이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공공재의 생산과 외부경제의 생산 장려, 외부불경제의 규제는 정부가 담당하여야 한다.

2차대전 이후에는, 케인즈의 거시경제학, 그리고 사무엘슨이 발전시킨 공공경제학으로 보완된 새로운 경제학이 선진국의 주류경제학이 되었다. 이런 2차대전 이후의 수정된 경제학을 사무엘슨은 신고전학파종합(the neoclassical synthesis)라고 불렀다. 이 경제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시장의 실패가 시정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개입주의경제학이다. 2차대전 이후에 복지국가를 지향하여 등장한 이러한 선진국들의 개입주의 경제정책을 과거의 중상주의와 대비하여 신중상주의라고도 부른다.

2차대전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 동안 대다수 선진국들은 신고전학파종합의 주장에 따라서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전례 없는 물질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을 누렸다. 과거와 같은 대공황이나 세계대전도 없이 절대 빈곤도 거의 퇴치하여, 대다수 일반 대중들은 안락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선진국들의 이러한 장기번영에 케인즈 경제학과 신고전학파종합이라는 현대 경제학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이 기여한 공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복지국가의 개입주의도 양날의 칼이었다. 한편으로는 장기번영을 달성하였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정부가 점차 비대하여져서 정부의 무능, 비리와 횡포라는 국가의 실패가 크게 증대하여 이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19> (프레시안 2011.11.27)

케인즈에 대한 재해석으로 경제학을 다시보다 (대학신문, 2008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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