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8일 목요일

[자료] 중세 도시와 농촌의 관계: 앙제의 경우*


자료: http://mahan.wonkwang.ac.kr/medsociety/jn/jn21/01.htm
강일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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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발췌:

이하에서 키비타스 주변에 건설된 부르(bourg)들을 매개로 중세도시 앙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기로 하자. (...)

(...) 10세기에 노르만 침공이 진정되면서 키비타스 앙제의 성벽 안에 있거나 그 주변에 있던 수도원들이 ‘부활’하고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부르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먼저 부르(bourg)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부르는 소규모 요새지를 의미하는 라틴어 burgus에서 나온 용어다(물론 사료에는 burgus라는 용어로 나오지만, 잉글랜드의 borough나 독일의 Burg와 구별하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부르라고 표기한다. 물론 이 경우의 부르는 현대 프랑스어 bourg가 의미하는 큰 마을이라는 뜻은 아니다).

  • 엔넨(E. Ennen)에 의하면, 이미 4세기에 burgus가 요새지나 성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형태의 거주지 ─대체로 상업이 행해지는 거주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하지만,13) 
  • 골 지방에서는 8세기경에야 이런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14) 
  • 일반적으로 부르는 어떤 곳에 건설되었느냐에 따라, 즉 어떤 ‘전도시적 핵’(preurban nuclei) 근처에 건설되었느냐에 따라 분류된다. 옛 로마도시인 키비타스의 곁에 건설된 ‘키비타스 부르’, 수도원 곁에 건설된 ‘수도원 부르’, 성 곁에 건설된 ‘성 부르’가 있고, 개간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지역에서는 ‘전도시적 핵’이 없이 농촌에 부르가 건설되기도 했는데 이를 ‘농촌 부르’라고 한다.15) 물론 이런 분류는 다소 애매한 것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앙제의 경우에 드러나듯이, 키비타스의 성벽 안에 혹은 성벽에 인접한 곳에 건설된 수도원 소속의 부르는 ‘수도원 부르’이면서 동시에 ‘키비타스 부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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