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르크스주의연구, 제6권 제2호(2009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해주신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 감사드린다.
* * * 차 례 * * *
특집: 신자유주의적 도시화와 변혁운동의 확장
- 14 용산참사의 정치경제학|홍석만
- 26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종말? :신자유주의와 도시에 관한 데이비드 하비의 견해 재검토 |최병두
- 69 ‘유비쿼터스 도시’의 출현과 대안적 도시인문학의 과제|심광현
- 124 글로벌아고라의 도시철학: :‘글로벌시티’ 대 ‘코스모폴리스’ 내지 ‘트랜스내셔널 도시주의’의 이분법을 넘어|곽노완
- 152 욕망의 정치경제학과 현대 도시의 위기|박영균
- 188 케인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경제정책 비판|김수행
- 205 ‘다중’은 대안세계화운동의 희망인가?: 하트와 네그리의 ‘다중’을 중심으로|장시복
- 238 페미니즘으로 모색하는 변혁이론과 운동의 대변환: NGA/SF의 공동 창립을 위한 국제 포럼|태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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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메모식 자료 검토: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종말?
신자유주의와 도시에 관한 데이비드 하비의 견해 재검토
(...)
2.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적 특성
1)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이며 또한 그 현실적 특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비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사적 소유권,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 자유무역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안에서 기업의 자유를 극대화함으로써 인간 복리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다고 하는 정치경제적 실행에 관한 이론”이다(Harvey, 2007a: 22; Harvey, 2005: 2[15]). [주4]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실행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창출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규정된다(Harvey, 2007a: 22; Harvey, 2005: 2[15]).
※ 주4: 이 문장은 Harvey(2007a, 22) 및 Harvey(2005: 2; 최병두 옮김, 2007: 15, 이하에서 [] 속의 숫자는 해당 원서의 한글 번역본 페이지를 나타냄)에서 약간 달리 서술되어 있다.
■ (...)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적 성향과 실제 이의 결과를 통해 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 또는 자본축적 과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보다는 자본계급의 권력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로 이해된다. 즉 하비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관한 뒤메닐과 레비(Dumenil and Levy, 2000)의 설명에 공감하여,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국제자본주의의 재조직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유토피아적 기획 또는 자본축적 조건의 재구축과 계급권력의 복원을 염두에 둔 정치적 기획”(Harvey, 2007a, 28-29; Harvey, 2005: 36)으로 정의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사드-필류와 존스턴(Saad-Filho and Johnston, 2005: [10])의 주장과 유사하다. 이들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란 “전 세계 엘리트 집단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특히 각국의 금융적 이해관계에 이익이 되며 국제적으로는 미국 자본에 이익이 되는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주5]
※ 주5: 그러나 이들[Saad-Filho and Johnston, 2005: [10]을 말함]은 “몇 가지 이유에서 신자유주의를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이론은 정태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의 핵심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주장된다(Saad-Filho and Johnston, 2005: [15]).
- 첫째,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생산양식이 아니며,
- 둘째,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나 제국주의와 분리할 수 없으며,
- 셋째, 신자유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다층적인 접근을 요구하며,
- 넷째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의 체계적 사용과 관련된다.
※ 메모 삽입: 한편 다음과 같은 하비의 언급은 Paul Treanor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정의를 그대로 채용하는 것으로도 읽힘.
- In so far as neoliberalism ‘values market exchange as “an ethic in itself, capable of acting as a guide to all human action, and substituting for all previously held ethical beliefs,” it emphasises the significance of contractual relations in the marketplace. It holds that the social good will be maximised by maximising the reach and frequency of market transactions, and it seeks to bring all human action into the domain of the market.’ It holds that the social good will be maximised by maximising the reach and frequency of market transactions, and it seeks to bring all human action into the domain of the market. ─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2005)-Google books.
- Cf. 한편, Paul Treanor가 여러 가지 예시에 대한 설명에 이어 마지막에 요약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최종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A final summary definition of neoliberalism as a philosophy is this:
Neoliberalism is a philosophy in which the existence and operation of a market are valued in themselves, separately from any previous relationship with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and without any attempt to justify them in terms of their effect on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and where the operation of a market or market-like structure is seen as an ethic in itself, capable of acting as a guide for all human action, and substituting for all previously existing ethical beliefs. ” ─ Paul Treanor, “Neoliberalism: origins, theory, definition”
■ 하비의 우선적 관심은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하게 번성하게 되었는가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이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설명은 두 가지 세부 내용을 가진다.
- 첫째는 신자유주의라는 소수파 주장이 어떻게 다수 주장이 되어, 담론 양식에서 헤게모니적이게 되었는가와 관련된다.
- 둘째는 이른바 ‘세계화’라고 불리는 새로운 경제적·공간적 편성, 즉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어떠한 수단과 경로를 통해 기존의 체계에서 도출되었는가는 점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물적 토대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지만, 실제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신자유주의와 직접 관련시킨 경험적 연구는 미흡하다고할 수 있다.
■ 그러나 여기서 일단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 첫째, 하비는 신자유주의는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위한 수단’을 강조하지만, 여기서 ‘계급’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이다. 하비에 의하면, ‘계급’은 안정된 사회적 편제가 아니며, 실제 신자유주의화는 계급의 재개념화를 동반했다고 주장된다.7) 만약 그렇다면, ‘계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뒤에서 논의할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재편된 계급은 기존의 자본-노동관계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를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 둘째,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가 있다는 폴라니(Polanyi)의 입장에 따라, 하비는 ‘좋은’ 자유를 위한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주의는 권위주의 또는 파시즘에 의해 좌절될 운명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해 “좋은 자유는 사라지고, 나쁜 자유가 빈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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