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손-손목-팔뚝: 힘을 최소한으로 줄여 써라


(전략)...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절단 용도의 날카로운 석기는 2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으로 만든 칼은 적어도 6000 년 전에 만들어졌고, 망치질로 벼려 만든 쇠칼은 3500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은 청동보다 주물로 만들기가 용이했고, 날카롭게 벼리기도 쉬워서 더 나은 칼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와 같이 거친 방법으로 예리한 칼날을 만들려는 노력은 오늘날 강철을 단련해 만든 칼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지적에 따르면, 칼은 항상 “위험한 도구이자 공격 무기”로 비쳤다. 이로 인해 평화기에는 어떤 문화에서나 칼을 엄하게 금기시해야 했고, 특히 가정용으로 쓰이는 칼은 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식탁을 차릴 때도 칼은 날이 선 쪽을 앉은 사람의 몸 안쪽으로 놓는 문화가 생겼다. 칼날을 바깥쪽으로 둬서 옆 사람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서다.

언제든 위험한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탓에, 칼이라는 물건에는 절제의 상징이 따라다녔고, 칼을 쓰는 일에도 몸놀림을 삼가는 예식이 생기게 됐다. 일례로, 1560년에 C. 칼비악C. Calviac이 쓴 《예절Civilité》에는 젊은이에게 고기 썰어 먹는 법을 가르치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기는 써는 받침에 놓고 아주 잘게 썬” 다음, 입으로 가져갈 때는 “오른손을 쓰되.......세 손가락만 사용한다.” 그 전에는 음식을 큰 덩이째 찍어 입에 대고 뜯어 먹었는데, 이렇게 칼을 창처럼 쓰다가 칼비악이 묘사한 좀 더 얌전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는 예전처럼 먹으면 육즙이 볼에 묻어 흐르기 쉽고, 코로 콧물과 코딱지를 들이마실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도무지 얌전하게 먹는 모양새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칼비악이 권고한 청결하고 얌전한 식사 방식은 고작 500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중국 식탁에서는 수천 년 동안 작은 음식을 청결하고 얌전하게 먹을 수밖에 없는 젓가락을 썼다. 게다가 젓가락은 칼을 식탁에서 몰아낸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칼을 써야 할 곳은 어디까지나 주방이어서, 야만적인 칼 대신에 평화로운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주방의 장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살인도구로 쓸 때는 예리한 칼끝이 중요하지만, 요리도구로 쓸 때는 측면의 칼날이 더 중요하다는 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 가운데 하나다. 철기를 망치질로 벼려 만들 수 있게 된 주(周) 나라 때에 이르러, 요리에만 쓰는 주방용 칼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측면의 칼날은 아주 예리하고 칼끝은 네모나서 꼭 도끼처럼 생긴 중국 주방장의 칼이 그것이다.

주나라 때부터 최근까지 중국의 주방장은 고깃덩이를 조각내고(“샤오”), 편육을 뜨고(“쯔”), 잘게 다지는(“후이”) 등 온갖 일을 이 칼 하나로 처리하는 게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반면, 솜씨가 떨어지는 요리사들은 그때마다 다른 칼을 사용했다. 도가(道家) 사상의 초기 경전인 《장자莊子》에는 칼로 “뼈마디 틈바구니까지 짚어서” 사람의 치아로 먹을 수 있는 육질을 샅샅이 정밀하게 도려내는 요리사 팅(丁)의 솜씨를 칭찬하는 말이 나온다. 주방장은 생선 육질을 뜨고 야채 조각을 내는 게 아주 정밀해서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고기와 야채를 똑같은 규격으로 조각내기 때문에 주방 용기에 담아 열을 가할 때 좀 더 균일하게 익힐 수가 있다. 이런 칼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최소한의 힘을 계산하는 것인데, 바로 칼을 거의 무게만을 이용해서 떨어뜨린 뒤 곧바로 재료가 받는 압력을 줄여주는 기법이다...(중략)...타격하듯 칼을 내리치지 않고, 팔꿈치 관절을 조절해 팔뚝과 손 그리고 칼 전체를 움직여 칼날 끝이 재료 속으로 파고들도록 ^떨어뜨렸다^. 이어서 칼날이 재료에 접촉하는 순간, 팔뚝 근육을 수축시켜 재료에 가해지는 압력을 ^완화시켰다^.

...(중략)...

최소한의 힘만을 쓸 수 있도록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출처는 불분명해도 논리적으로 완벽한 고대 중국 요리의 조언에 잘 나타나 있다. 바로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익힌 밥알을 써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결국 “밥알을 써는” 일에는 몸을 움직이는 두 가지 규칙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써야 할 힘의 기준을 최소한으로 줄여 잡는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놓는(힘을 빼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이 연결 고리의 기술적 내용이야 동작을 조절하는 것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도 많다. 요리를 다룬 고대 중국의 책자들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잘 설명돼있는데, 일례로《장자》에는 “주방에서는 무사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조언이 나온다. 도가 사상은 이로부터 아주 폭넓은 ^호모 파베르^의 ^도(道)ethics^를 이끌어낸다. 즉 자연에서 얻는 재료를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다뤄서 득 될 게 없다는 가르침이다. 나중에 일본의 선(禪) 불교는 이 유산을 이어받아, 궁도(弓道)로 구체화된 “놓음의 도”를 탐구했다. 활을 다루는 궁도에서 훈련의 초점은 활시위를 놓는 동작에서 긴장을 푸는 데 있다. 참선 저술가들은 시위를 놓는 바로 그 순간에 물리적인 공격 의사가 완전히 증발된 흔들림 없는 마음의 정적을 강조한다. 이러한 마음 상태라야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생략)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Chapter 5, "The Hand," 《장인 The Craf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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