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9일 화요일

아스팔트와 나무 베기

작업하는 도서관이 푸른 숲과 나무가 많아 좋다. 돌연 전기톱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메아리치더니 이 나무 저 나무가 넘어간다. 심을 때는 언제고 또 저렇게 벨 때는 언제인가? 원래 있던 나무라서 심지 않았다고 해도 저만큼 자라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도로를 놓을 때는 아무데나 아스팔트로 깔아버린다. 땅이 숨쉴 구멍이 없어진다.


언젠가 빠리 어느 길목에서 길을 다시 놓는 공사 과정을 한참 지켜본 적이 있었다. 서구 중세사회를 묘사하는 영화 같은 데서 마차가 달리면 "따그닥 따그닥" 발굽 소리가 요란히 들릴 만한 그런 길이다. 인부들이 가로 세로가 5~6 센티미터 너비의 돌들을 땅에 "심고" 있었다. 그런 돌은 그때 처음 봤었다. 돌의 너비는 그렇게 좁은데, 높이가 족히 20~30 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좁은 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좁은 돌로 길을 놓는 공사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들을 "심어" 나갔다. 예전처럼 마차도 달릴 수 있는 길이고, 사람도 걸을 수 있는 길이며, 인부들이 찬찬히 만드는 길이라 심하게 울퉁불퉁하지도 않으니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아! 아직도 전기톱이 굉음을 내고 있다. 우리는 길을 놓을 때 웬만하면 다 아스팔트로 "깔아서" 대지를 덮어 버린다. 물이 지표로 스며들지 못하는 땅이 늘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해서 불투수면(不透水面)이란 말이 생긴 지도 이미 오래다. "깔고", "베고", "부수고"...

서울 한강 주변의 어디엔가 "선유도"라는 곳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마포나 그 언저리 어디일 것이다. 지금도 인공적인 "선유도 공원"은 있지만, 본래 선유도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기암절벽처럼 높다란 바위가 솟아있고 그곳에 자란 나무와 물가가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신선이 하늘을 날다가도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놀다가는 곳이라 해서 "선유(仙遊)"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중이라면 저 아래 땅이 아주 널따랗게 보일 텐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돋보였다면 얼마나 아름다웠다는 이야기일까?

이 바위가 무슨 한강 다리 하나를 설치하는 데 가로거친다고 해서 "때려 부수고" 그 자리에 다리를 설치했다고 한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전반부의 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아름다웠다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자연을 홀대하는 자, 그들 자신을 홀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깔고" "베고" "부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닐 것이다. 그 덕에 숨 막히고, 잘려 나가고, 망가지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일 것이다. 선유도를 기억하는 이가 없어지듯이 우리 자신도 그렇게 없어질 것 같다.

댓글 1개:

  1. 예전 글이지만 천주교 사제 선언에 부응 게시일자를 오늘로 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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