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6일 토요일

[착한왕] Galton, Hereditary Genius, English Men of Science, and Human Faculty

자료: http://goodking.co.kr/board.php?bid=1&bs_type=&bs_str=&cate=&pg=340&mode=view&uid=5276



상속된 천재: Hereditary Genius (1869)

골턴의 19세기 중반 사고에 영향을 미친 저서는 두권이었다. 하나는 퀘틀렛에 의해 번역된 <확률이론에 관한 소고>로 이책에서 골턴은 '라플라스-가우스 분포'에 관해 배우고 '평균으로부터의 변이에 관한 정상곡선'에 관해 알게 된다(정상분포는 바로 종형곡선, Bell Curve를 말한다). 그리고 이후 이를 사람의 키와 가슴크기등에 적용, '평균으로의 회귀', 즉 상관관계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잘알려진 이야기다.

또하나의 책은 골턴의 사촌형 다윈의 작품이다(무엇이겠는가?). <종의 기원>으로부터 골턴은 형질의 변이가 생존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이를 인간에 적용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반면 다윈은 이를 극도로 꺼려했다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적용에 있어 골턴이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개인간의 차이였고 특히 지적능력(mental ability)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상 그의 관심은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지적능력의 우월성에 있었다.

1860년대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는 이 연구의 목적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른 물리적 특성들처럼 지적능력도 유전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골턴에게 닥친 첫번째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지적능력을 '측정'하느냐였을 것이다(과학은 재생 가능하고 재확인 가능한 측정량과의 연결성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GK). 그는 우선 지적능력과 고귀함 혹은 명성이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명성을 얻지 못할 확률은 드물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가정을 가지고 그는 지적능력의 분포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용한 자료는 캠브리지대학생 200명과 공무원 72명의 수학고등검정시험점수였다. 이를 이용해서 그는 지적능력이 다른 육체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규분포만으로 천재가 유전된다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골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럼 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골턴이 택한 방법은 저명한 집안의 가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사실 직접적으로 지적능력의 유전성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태어난 이후 받게되는 교육, 개인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등에 의해 데이터 자체가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계의 후손들의 명성을 관찰함으로서 골턴은 천재의 유전성을 확증할 수 있을것이라고 여겼다. <상속된 천재>에서 그는 이러한 데이터들을 판사, 정치가, 귀족, 지휘관, 교양있는 사람, 과학자, 시인, 음악가, 화가, 성직자, 학자등등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 명성관 연관된 빈도수를 측정하자, 강한 유전적연관도를 가진 표본에서 혈연도에 따라 (예를 들어 아버지, 아들, 형제 -> 할아버지, 삼촌, 조카 -> 증조부, 증손자등)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골턴은 이러한 표본으로부터 도출된 결과를 확장해서 전체인구에 외삽했다. 저명한 사람의 가계에서 저명한 사람이 나오는 빈도수가 높고, 이러한 빈도수가 혈연도가 멀어짐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은, 골턴에게 있어 지적능력이 가계를 통해 유전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결과로 보였다.

그당시로서도 이는 매우 자극적인 결론이었다. 게다가 이는 데이터와 통계적 분석에 의해 보강되는 결론이었다. 따라서 골턴의 책은 심리학의 지지기반을 흔드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말하듯이 "과거에도 천재의 유전성을 주장하는 이론은 많았으나 이를 처음으로 통계적으로 수식화한 사람은' 그가 최초였으며, '평균으로의 회귀법칙'을 유전현상에 귀속시킨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상속된 천재>의 분석방법은 이후 다량차 심리학(Quantitative differential psychology)의 탄생으로 간주되곤 한다.

영국의 과학자들: English Men of Science (1874)

1969년 골턴에 의해 출판된 <상속된 천재>는 양적 데이터를 다루었다는 점이나 통계적 분석방법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었고, 지적능력에 관한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된 작품이다.골턴의 주요발견은 명성있는 사람의 친인척이 명성이 있을 빈도수가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명성이 있을 빈도수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계급화된 사회구조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 결과자체는 놀랍거나 도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발견에 대한 골턴의 해석은 양자 모두였다. 골턴에게 있어 명성이 가계내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유전의 직접적인 증거였다. 지적능력은 유전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대표적인 반대는 식물학자 알폰소 드 캔돌(Alphonse de Candolle)에게서 나왔다. 식물학자인 캔돌인 식물의 생장에 환경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1872년 출판된 책을 통해 캔돌은 과학자들이 명성을 얻는 과정에 환경적 요소가 얼마나 강력한 요소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캔돌의 논증은 좀더 큰 전기 데이터에 의존한 통계적 방법에 기반한다. 샘플의 수를 늘린 것이다. 캔돌 역시 지적능력의 유전성을 어느정도 인정하긴 했지만, 그는 명성획득에 관여하는 많은 환경요소들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다. 캔돌에 따르면 위대한 과학자는 온화한 기후와 민주주의적 정부를 가지고 있고, 관용있는 종교와 상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더 많이 나온다. 피어슨이 편집한 골턴의 전기에는 골턴과 캔돌의 교환한 서신들이 들어 있다. 이 서신을 통해 우리는 캔돌의 작업이 이후 골턴에 의해 탄생하게 되는 다음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고 있다(캔돌 역시 골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이 1874년 출판된 <영국의 과학자들: 그들의 본성과 양육>이었다. 피어슨에 따르면 골턴은 이 작품이 유전현상의 영향을 알리는데 있어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상속된 천재>의 과학자 챕터를 확장한 것이다. 데이터를 얻기 위해 골턴은 설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설문지는 조상에 관한 것뿐 아니라,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질들인 기력, 건강, 인내력, 사업능력, 기억력, 독립성, 육체적 능력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설문지에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생긴 계기와 교육환경등에 대한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설문지는 왕립학술원의 180명의 지원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설문조사결과에 근거해 서술되고 있다. 첫번째 장은 선조의 명성에 관한 의문을 다룬다. 이장에서 골턴은 혈연도에 따라 명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 빈도수가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것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번째 장에서는 그가 다룬 표본의 질에 대한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의 기원'이라고 명명된 세번째 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환경요소들의 역할을 서술한다. 예를 들어 우연, 기회, 집안이나 스승으로부터의 격려, 여행등이 과학에 대한 열정에 영향을 주는 두번째 요소들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골턴에게 과학에 대한 열정은 주로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골턴은 교육에 관한 긴 분석을 시도한다. 이 분석에서 캔돌의 영향이 깊게 나타난다. 골턴이 다룬 표본의 대부분(그가 다룬 과학자 대부분)이 스코틀랜드인이었고 스코틀랜드의 교육체계가 잉글랜드보다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골턴도 천재의 유전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유전된 지적능력은 명성을 전제하지만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명성의 단계는 교육등의 환경요소에 의해 지지될 수도,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자들>이 골턴의 가장 대단한 업적은 아니지만 이 책은 심리학의 역사에서 본성 대 양육(Nature/Nurture)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용어를 만들어내었다는 위치를 가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설문지기법'라는 방법을 심리학에 도입시켰으며 설문지기법을 이용해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심리학적 분석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번째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능과 그 발달에 관한 탐구: 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 (1883)

모든 시대를 통털어 골턴만큼 생산적이고, 다재다능하며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던 지성인도 드물다. 그는 아프리카 지도제작에 공헌했고, 날씨지도를 고안했으며, 개인식별 시스템으로 지문을 이용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했고, 합성사진(composite photography)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심리학의 영역에서 그는, 설문지기법, 통계적 기법(상관과 회귀), 본성/양육이라는 개념용어, 지능 테스트등을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동물 미로를 디자인했고, 골턴 피리(청력 연구에 쓰이는 원통형의 피리)를 고안했는데 이는 처음으로 단어와 연관된 연상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중요한 도구였다. 또한 그는 유전성을 연구하기 위해 쌍생아 연구를 이용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윌리암 분트가 과학적 심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주로 언급되지만, 심리학이 다루는 문제나, 방법론, 용어와 개념들에 있어서까지 현대 심리학은 분트보다 골턴에게 빚진바가 더 많다. 비록 골턴이 귀족학자(Gentlemen Sholar)였고 공식적으로 대학이나제자와 연결이 안된다고 해도 그가 심리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골턴에게 제자는 없었지만 그는 두명의 피후견인을 두었다. 제임스 맥킨 카텔과 칼 피어슨이 바로 그들이다). 심리학에 영향을 미친 골턴의 공헌은 논문과 책을 통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과학적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책은 단 한권에 집약된다. 그 책이 바로 1883년 출판된 <인간의 지능과 그 발달에 관한 탐구>(이후 <탐구>)였다. 이후 심리학의 발전과정을 바라보았을 때 이책은 이후 심리학자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을 보면 그 광범위함에 놀라게 된다. 그 다양한 주제들은 합성사진, 지능측정법과 측정도구, 통계적 기법, 범죄성, 광기, 사교성, 심상, 색감, 시각과 환각, 잠재의식(골턴이 의식의 대기실이라고 부른), 쌍생아 연구, 동물의 가축화, 기도자의 객관적 효용, 선택과 인종, 인구, 우생학 등에 걸쳐 있다. 이 리스트에서 두드러진 것은 바로 개념화와 측정기법의 개발인데 이는 이후 심리학에 영향을 미치는 세가지 연구에 의해 좀더 분명해 진다. 이들은 지능 측정(mental measurement), 심상(mental imagery), 그리고 단어 연관(word assoaciation)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능을 문제풀이나, 추론, 사고능력과 연관된 고도의 정신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골턴의 시대에 지능은 주로 사고의 처리(manipulation of ideas)와 관련된 개념이었고, 이는 부분적으로는 감각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골턴은 지능의 차이가 감각능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감각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들(골턴 피리)등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물론 현대에 와서 지능을 감각능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골턴의 작업은 우리가 지능에 대해 무언가 측정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다른 곳에서 출판된 책에서 사진기억술(photographic memory)에 대해 듣고 충격을 받은 골턴은 시상(visual imagery)의 개인차를 연구하기 위한 도구를 고안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그는 설문지를 만들고 어떤 물체를 떠올리고 그려보라고 말한 뒤, 그 물체의 밝기, 선명함등을 기술하라고 했다. 그는 또한 풍경, 안면, 숫자, 날짜, 냄새, 소리등에 대한 심상도 연구했다.

<탐구>에 출판된 심상에 관한 연구는 심상의 변이가 매우 다양한 범위에 걸쳐 분포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시상과 지각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시상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심상에 관한 이러한 구분은 이 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탐구>의 가장 중요한 업적중 하나는 골턴 자신에 관한 단어 연관(association) 연구였다. 그는 75개의 단어를 나열해 놓고 순서를 뒤바꿔가면 그것을 자신에게 보여준 후(네번의 반복)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나갔다.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그는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것보다 연관의 변이가 적다는 것이었다. 23%의 단어자극은 그에게 4번의 반복실험에서 모두 같은 연관을 나타냈다. 21%는 4번 중 3번에서 모두 나타나는 식이었다. 도한 그는 그에게 나타나는 연관의 1/3이 어린시절의 기억과 관련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들중 많은 수가 매우 당황스러운 그의 본성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그가 기술하듯이 이러한 사실은 매우 독특하다고 알려진 인간 사고의 기반을 발가벗기고 그가 세상에 내놓으려 했던 것보다 더욱 확실한 방법으로 인간의 정신을 해부해낸다.

게다가 골턴은 이러한 과정이 가지는 무의식적인 본성을 인식했다. 그는 이러한 실험에 의해 도출되는 가장 강력한 결론이 의식의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정신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고, 또한 이러한 무의식이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다른 업적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후 심리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한 조류를 예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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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글. 이것도 퍼와서 공부해야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다윈은 사상적으로 그리 나쁜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사상적 표현에 있어 내성적이었던 다윈, 표현에 있어 매우 적극적이었던 골턴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굴드가 분석한바 있듯이 다윈조차도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다만 그에겐 동정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골턴도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우생학을 만든 인물이니만큼 계급론자였다. 그러나 그의 우생학은 양성 우생학(positive eugenics)으로 안좋은 형질의 씨앗을 잘라버리자는 음성 우생학(negative eugenics)와는 달랐다. 이후 음성 우생학이 미국에 건너가 매우 악명높은 명성을 얻게 된다. http://blog.naver.com/sci_fiction.do?Redirect=Log&logNo=14670152 복거일은 양성 우생학을 적극적 우생학이라고 번역하는 데 이는 잘못이다. 여기서 positive라는 말은 적극성이 아니라 좋은 형질을 놔두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negative의 의미는 나쁜 형질의 제거를 의미하는데 positive가 적극적 으로 번역되면 negative는 소극적이란 말인가?

여하간 항상 이런 이론은 자유주의자들 손에 들어가서 훼손된다는 느낌이다. (이기적 유전자던 뭐던 다 복거일, 공병호 등등이 열라 좋아하더라) 재수없다. 이걸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이걸 자신들의 논리전파에 악용하는 사람들이나..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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