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함께걸음, http://www.cowalknews.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749
정신지체장애우 뒤집어보기(6)- 건강한 사회를 위해 소수 천재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2004년 3월 1일
김치훈(어린이집 특수교사)
지난 글에서 우리는 교육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의 선별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프랑스의 비네(Alfred Binet)에 의해 처음 개발된 지능검사가 미국으로 수입되면서 어떻게 ‘정신박약자’를 사회 내부에서 도태시키고 이들이 이민을 통해 사회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것을 차단할 것인가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의 달성에 이용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IQ가 타고난 지능을 나타내는 유일한 실체라는 개념은 분명히 미국에서 새롭게 발명된, 아니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새롭게 변질된 개념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고다드(H. H. Goddard)는 그러한 IQ 개념변질의 선봉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냈습니다. 그러나 지능검사와 IQ가 오늘날과 같은 대중성을 얻게 되는 데는 터먼(Lewis M. Terman)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측정가능한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가 머리 속에 위치한다는 신념에 가득 차있던 터먼은 비네가 1911년에 발표했던 마지막 버전의 척도를 개정하여 1916년에 그 유명한 스탠포드-비네 척도를 만들어냅니다. 이 개정판의 지능검사에서는 비네의 척도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문항수가 늘어났고 측정하는 정신연령도 청소년 중기에서 ‘우수한 성인기’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터먼이 스탠포드-비네 척도에 새롭게 포함시킨 항목들 가운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난생 처음으로 도회지를 방문한 한 인디언이 거리에서 뭔가를 타고 가는 한 백인을 보았다. 그 백인이 지나가는 것을 본 이 인디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백인은 게으르군. 앉아서 걷고 있으니 말이야.” 인디언이 ‘앉아서 걷고 있다’고 말한 백인이 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터먼은 이 문제의 유일한 답으로 오직 자전거만을 허용했습니다. 자동차나 말과 같은 다른 탈 것들은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답으로 처리되었고,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장애우’나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가는 사람’같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로 오답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제 자신은 이 문제의 답을 자동차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앉아서 걷는다’라는 말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보았고, 인디언의 이 말을 서구의 문명세계에 대한 풍자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같은 예에서 보듯이 터먼의 새로운 문항들이 인간의 논리적인 사고를 측정하기보다는 양식화된 인간행동에 대한 친숙도를 측정한다는 비판은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터먼의 주요한 업적(?)은 비네의 척도를 보다 정교화 했다거나 확장시켰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터먼의 야심은 바로 ‘지능’이라는 타고난 능력에 따라 모든 인간의 ‘적절한’ 사회적 위치를 결정해주는 궁극적인 인간서열화의 도구로써 이 검사도구를 대중화시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지능검사를 모든 학생들에게 실시해야 한다고 터먼이 수시로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터먼의 야심에 찬 꿈은 결국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 스탠포드-비네 척도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이 후의 수많은 도구들의 전형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해냈기 때문입니다. 논리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스탠포드-비네 척도는 타고난 지능을 측정한다 → 따라서 어떤 검사라 할지라도 스탠포드-비네와 강한 통계적 상관관계를 보인다면 그 검사 또한 지능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은 어떤 독립적인 확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단지 스탠포드-비네 척도와의 통계적인 상관성을 통해 자신들이 개발한 검사가 지능을 측정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마련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심리측정의 분야가 수백만 달러의 산업으로 급성장을 하면서 마케팅 회사들은 감히 지능검사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스탠포드-비네 척도와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지 않고 새로 개발한 자신들의 검사도구를 판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플라톤이 철학자인 왕들에 의해 통치되는 이성적인 사회를 꿈꾸었다면 터먼은 플라톤의 그 꿈을 20세기에 다시 재생시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플라톤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에 의해 인간계급이 규정된다고 생각한 반면 터먼은 타고난 지능 즉, IQ에 의해 인간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측정된 그들의 타고난 지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회적인 역할들을 배정한다면 인류역사상 최초로 가장 공정하고도 어느 때보다도 효과적인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터먼은 직업에 따라 요구되는 최소한의 IQ를 규정하는 연구를 실행하기도 합니다. 터먼에 따르면 예를 들어 권위와 금전적인 보상이 따르는 직업은 적어도 IQ가 100이상이 되어야 하고, IQ 75 이하는 비숙련직 노동을, IQ 75에서 85 사이는 준숙련직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의 눈에 IQ가 85 이상인 사람이 이발사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터먼은 한 사회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열등한 구성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사회가 그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높은 IQ를 가진 소수의 천재들의 리더쉽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병리의 주 원인인 ‘정신박약’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모든 범죄자들이 정신박약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박약자는 적어도 잠재적인 범죄자이다. 모든 정신박약 여자들이 잠재적인 매춘부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업상의 판단이나 사회적인 판단 혹은 다른 어떤 종류의 고차원적인 사고과정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판단 또한 지능이 그 기능을 담당한다...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그들의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 정신박약자들은 당연히 사회의 짐이 된다. 가망이 전혀 없는 이들 정신박약자들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을 시설에서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공립학교의 책무는 오히려 많은 수의 보다 희망이 있는, 단순히 열등한 아동들을 가르치는데 있다. ”
사회지배세력인 백인들에 의해 오래 동안 서구에서 기획되어온 인간서열화와 인간차별의 논리는 이제 터먼에 이르러 IQ라는 두꺼운 투구로 무장을 하고 열등한 인간들이, 그리고 특히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는 지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두 시간의 지능검사로써 한 아동에게 펼쳐질 미래가 정확히 규정될 수 있다는,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한 아동에게 펼쳐질 미래가 그렇게 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모두가 믿는 그런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적인 능력을 통해 인간을 서열화하고 인간차별의 근거로 삼으려 했던 그 끈질긴 기획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역사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이 연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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