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수요일

젊은이들, 컴퓨터 켜도 뉴스는 안 읽어 (미디어오늘, 2007년 12월)

자료: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63512


[미디어월드와이드-한국언론재단] 뉴스 습관 전승체계의 단절, 개선대책 강구해야
2007년 12월 14일 (금) 14:05:15미디어월드와이드

  
 ▲ Northeastern University의 Dan Kennedy 교수 
 
※ 메모: 


미국 노스이스턴대(Northeastern University) 저널리즘 스쿨 댄 케네디(Dan Kennedy) 교수는 젊은이들의 뉴스 단절 현상이 인터넷, 오락 위주의 TV프로그램, 비디오 위주의 뉴스전달 방법이 확산되면서 세대간 이어져 오던 뉴스 읽기 습관의 전승체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진단한다. .... 커먼웰스(Common Wealth) 2007년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
 
....... 최근 수년간 언론사 경영 간부들과 사회학자들 할 것 없이 모두들 젊은이들과 뉴스 사이의 관계 단절현상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현재 40살 미만의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것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두 세대 전 같은 또래의 나이층에 비해서도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덜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젊은이들이 뉴스를 접하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은 채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스쿨(Kennedy School of Government)의 행정 및 언론학 교수(Bradlee Professor)인 톰 패터슨(Tom Patterson)은 말한다. 물론 나이가 더 들면 좀더 많은 뉴스를 접하게 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나이 든 세대만큼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패터슨 교수의 진단이다.

‘뉴스는 관심없다’ 24% 달해

....... 예를 들어, 젊은이들(18세에서 30세 사이) 가운데 불과 16%만이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했다. 반면 30세 이상 응답자는 이 수치가 35%로 나타났다. 인터넷이 많이 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매일 온라인 뉴스(22%)를 읽는 것보다는 텔레비전 전국 뉴스방송(31%)이나 지방 뉴스방송(36%) 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렇더라도 더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서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시간이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놀랍게도 “출처가 어디든 관계없이 뉴스에는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젊은이가 24%에 달했다.

설마 그럴까라는 의심이 든다면 오산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대 말에는 미국의 20대 가운데 53%가 국내정치면 신문기사를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성인들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치가 아니다. 1967년에는 텔레비전 뉴스 시청률이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터슨 교수가 보기에 이유는 분명하다. 케이블, 텔레비전 같은 독자들의 부수적인 선택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쉽게 말해 매일 아침 현관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펼쳐들거나,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가 진행하는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던 독자들의 뉴스 접근 패턴이 이제는 모든 종류의 오락프로한테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어린이들한테, 부모가 자녀들한테 물려주던 뉴스 습관 전승체계가 무너져 버렸다”는 게 패터슨 교수의 진단이다. 이러한 전승체계의 단절은 뉴스 미디어에 위협이 되어 독자, 시청자 감소로 나타날 뿐 아니라, 시민생활 전반, 정보에 정통한 시민사회라는 이상,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다스리는 능력까지 위협한다. 
... 

‘소극적 시민’과 무책임한 정부

뉴스에 대한 관심은 또한 커뮤니티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이다.  저서 ‘혼자 볼링하기: 미국사회의 붕괴와 소생(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에서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은 젊은이들이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신문을 덜 읽을 뿐 아니라, 종교집회 참석, 청원서 서명, 공적인 모임, 선출직 관리에게 편지 쓰기, 지방조직에 관리로 봉사하기 등에 있어서 훨씬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신문 독자들은 미국의 평균적인 시민들에 비해 나이가 더 들고, 교육 수준이 더 높으며, 지역사회에 더 뿌리내리고 있다”고 푸트남은 쓰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메릴랜드대(University of Maryland) 시민 학습 및 참여 정보센터(Center for Information and Research on Civic Learning and Engagement)의 피터 르바인(Peter Levine) 소장은 투표율과 뉴스 인지도 사이에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며, 젊은이들은 이 두 가지 사안에서 모두 저조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새 저서 ‘민주주의의 미래: 미국의 차세대 시민육성(The Future of Democracy: Developing the Next Generation of American Citizens)’에서 르바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를 지지할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투표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후보자와 소속 정당, 기타 기본적인 사안들에 대해 모른다면 누구를 지지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올해 초, 텔레비전 저널리스트인 주디 우드러프(Judy Wood-ruff)는 PBS방송에서 ‘차세대(Generation Next)’란 이름의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 프로를 진행했다. 16세에서 25세 사이 젊은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였다. 프로그램에는 퓨연구센터(Pew Research Center for the People and the Press)에서 장시간에 걸쳐 실시한 조사를 함께 방영했는데, 조사에서는 1980년대 말 이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뉴스에 대한 관심이 약간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이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수준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드러프는 약간의 희망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판가들이 너무 전통적인 매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으며, 대안매체라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와 함께 하는 데일리 쇼(The Daily Show with Jon Stewart)나 훼밀리 가이(Family Guy) 같은 만평은 젊은이들에게 뉴욕 타임스나 지상파 방송이 하지 못하는(혹은 일부러 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치와 공적인 사안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14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데일리 쇼는 모두 합쳐 시청자 수가 3,000만 명에 달하는 3대 텔레비전 방송사한테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들의 시청자 중간 나이(35세)는 전통적인 뉴스 방송 시청자들보다 매우 젊다.   

“젊은이들이 보는 뉴스의 대부분이 자신들과 아무 관련 없는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우드러프는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서 말한다. “뉴스가 나이 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좋은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메디케이드 파트 B(Medicaid Part B)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교토 의정서, 메케인-파인골드(McCain-Feingold)법안도 마찬가지다. 뉴스에는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난무하고, 어른용으로 틀이 짜여져 있다.” 우드러프는 이렇게 덧붙인다. “뉴스를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뉴스에서 스토리를 없애 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 어떤 세대보다도 더 잘 교육받은 세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고나서 그들한테 뉴스를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젊다. 그들은 자기 재산을 갖고 있는 나이도 아니고, 저녁 6시나 6시 30분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 나이도 아니다.”
... 

사용자 중심 콘텐츠가 대안

젊은이들이 뉴스를 싫어하면서 빚어지는 대표적인 부정적인 면은 신문 부수가 크게 위축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사실상 일간신문 구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프로비던스(Providence)와 포틀랜드(Portland)의 사장인 피터 카디스(Peter Kadzis)는 자사 핵심 독자층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고 한다.  

첫째, 미국인들은 결혼하고, 자녀를 갖고,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고 나면, 정부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뉴스에 대해서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일간신문에서는 이런 뉴스를 크게 취급한다. 둘째, 젊은이들은 디자인이 좋고 휴대폰, 랩톱, 아이포드(iPod)를 이용해서 보기 편하도록 만들어진 미디어를 선호한다. 카디스 사장의 말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보통 사이즈 신문을 19세기 유물쯤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카디스 사장은 2005년에 휘닉스가 발행하는 신문들이 모두 잡지 포맷을 하도록 디자인을 새로 바꾸는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  

신문사 경영진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고, 그래서 온라인 젊은 독자들을 잡으려고 적극적으로 매달린다. 이는 어려운 문제다. 젊은이들은 오랜 시간 인터넷에 매달려 지내면서도 반드시 뉴스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뉴스를 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신문 웹사이트에서 보는 것 또한 아니다.   보스턴 글로브(Globe)와 헤럴드(Herald)는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Nielsen/NetRatings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브의 Boston.com 사이트는 6월 한 달 동안 420만 명의 독특한 이용자들이 방문, 전국적으로 5번째로 많은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BostonHerald.com은 120만 명의 독특한 이용자들이 방문해 전국 30위에 올랐다. 아울러 이 두 신문의 웹사이트에는 인쇄 신문에 비해 젊은 독자들이 더 많이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Boston.com은 이용자의 54%가 25세에서 44세 사이인 반면, 보스턴 글로브 신문의 중간 독자 연령은 46세로 나타났다. 

  
 ▲ 보스톤 닷컴 
 
Boston.com과 BostonHerald.com 모두 블로그, 멀티미디어, 쌍방향, 특집물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런 내용 대부분은 인쇄신문에 등장하는 내용에 비해 가벼워 보일 수 있다. 젊은 독자들은 이용자 위주로 제작된 콘텐츠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헤럴드 인터렉티브(Herald Interactive) 콘텐츠 개발국장인 케리 퍼셀(Kerry Purce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신문을 읽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온라인에서도 뉴스를 읽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 나는 모든 뉴스 기관들이 무엇보다도 이 독자들이 모두 사용자 중심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이미 뉴스와 관련 없는 사회 미디어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MySpace와 Facebook 같은 사회적 네트워킹 사이트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용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프로필을 사진, 비디오, 블로그, 그리고 좋아하는 뮤지션과 영화 목록으로 꾸미느라 몇 시간씩 매달리고 있다. 정치인들 역시 뉴스 기관들보다 더 빠르게 사회적 미디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대선 출마 후보자들 대부분이 MySpace와 Facebook 양쪽에 숍(shop)을 만들어 놓았다. 유튜브(YouTube)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또 다른 형태로 이용자들이 비디오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며, 가공하지 않은 정치 콘텐츠를 올리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30세인 AP 기자 출신의 폴린 밀러드(Pauline Millard)는 현재 신문조합 잡지인 에디터 앤드 퍼블리셔(Editor & Publisher) 온라인 에디터를 맡고 있는데 뉴스 사이트들도 이러한 참여적인 특성들을 일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도구로 세상에 참여하라

그렇다고 예를 들어 25세의 뉴스에 무관심한 전형적인 젊은이가 존 스튜어트 쇼를 보고, 몇 개 뉴스 사이트를 체크하고, 사회적 미디어 네트워크 한 두 곳에 접속해서 또래 젊은이들과 아는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하루아침에 뉴스에 정통한 시민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아니다. 뉴스는 팔아먹기 어려운 물건이다. 풍요의 시대와 전쟁의 시대에는 특히 더 그렇다.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전형적인 젊은이들에게 전쟁은 자기들과는 너무 동떨어진 사건이다. 인터넷의 주도로 현재 진행중인 미디어 재편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보다 더 낫고,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분권화된 방법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참여 뉴스의 형태로 시민 참여의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참여 뉴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여러분 개개인이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러한 새로운 도구들을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데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사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젊은이들과 뉴스의 단절은 평화의 산물이 아니라면, 적어도 번영의 산물이다. 그것도 아니면 정부가 젊은이들을 외국땅에 가서 싸우다 죽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안보 철학의 산물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스리고, 시민생활의 완전한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제대로 알고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 

사회비평가인 고(故) 닐 포스트맨(Neil Postman)은 4반세기 전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즐긴다”고 경고했다. 그가 당시에 경고한 사회적인 추세가 지금은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물론 뉴스 매체는 진보해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데서 벗어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한다.  

편역 : 이기동(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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