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내가 동의하는 것(즉 설득 당하는 것)인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인지, 전혀 구분을 못했던 때가 있었다. 꽤나 오래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엉뚱한 길을 여러 군데 헤매고 왔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많이 속았다(어쩌면 나도 그렇게 남들을 속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유난히 표정을 잘 관리하면서, 착각을 유발해 설득을 하려는 인간들이 싫어졌다. 그 그룹 중에도 일처리와 각종 관리가 아주 깔끔하고 보여줄 것도 다 보여주는 선수급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머리도 좋고 배포도 좋다. 한편, 보여줄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실한 관리 실력에, 말과 표정만 잘 관리하는 하수들도 있다. 전자는 머리가 좋은데 안 좋은 척을 하는 반면, 후자는 머리는 안 좋은데 남들에게 좋은 척을 한다. 사실 나는 이런 하수의 부류들에게도 당하고 살았었다. 그때 귀신이 더 편하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그들 중 내가 만난 몇몇은 인간처럼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는 점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골치 아픈 유형의 사람이 지겹다 못해 무섭다는 생각을 몇 년 전에 했었다. 희안한 것은 그러던 중 관상을 보는 눈이 늘다 보니, 이런 인간 관계에서 상당히 유효한 매개변수로 훌륭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관상은 천하고 욕심(혹은 꾀) 많은 놈인데, 큰 이상이나 봉사, 여러 사람들의 공익을 이야기하듯 내세우는(아니면 은근히 분위기를 까는) 경우는 거의 백발백중 사기꾼이다.
어쨌든 그런 부류라도 하나하나 보다 보면, "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선생이니, 어찌 인연이 아니랴.
얼마전에는 서초동 법원 앞을 지나다 약간 정신이 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아주머니가 내게 욕설을 해댔다. 세상에 수염 기르는 사람 처음 봤나? 노홍철도 있는 마당에, 나보러 미친 놈이란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별의 별 욕을 다 해줬다.
그리고 돌아서 길을 걷는데 이게 웬 일인가? 아니, 작업 마감 중에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이다. 그 미친 아주머니도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가르쳐준 "三人行 必有我師"의 한 사례였다!
2008년 6월 20일 금요일
착각과 설득, 선수와 하수, 三人行 必有我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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