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4일 월요일

절망과 낚시

언젠가 오래 전부터 어느 친구를 설득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제 메시지가 들어갈 틈바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그렇게도 말리던 주식 파생상품에 투자하다가 서너 달만에 수천 만원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날에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가슴까지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시장.
여러 가지 시장 상황들.
서로 엇갈리며 피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서로 다른 전략과 전술이 부딪는 전선.
돈 많은 진영과 돈 없는 진영.
돈 많은 진영 간에도 여러 가지 숨겨진 이유로 갈라지는 진영들.
내가 어느 전선을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시장.
내 참호에 실을 수 있는 무기와 탄약, 내 사격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시장
....


"이 친구야, 이건 전쟁이야! 뭘 모르는 초식동물들은 우르르 몰려 다니고 온갖 맹수들은 나름대로 발톱과 이빨을 갈면서 달려드는 피 튀기는 생태계! 그리고 ... "

그렇게 계속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저는 줄곧 맹수와 초식동물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호와 전선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습니다.

맹수와 초식동물은 큰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과 개인투자자들을 가리키기에 어느 정도 어울립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참호와 전선이 있기 마련입니다. 맹수와 초식동물이 만들수 있는 참호와 전선은 서로 다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맹수들이 다니는 전선에 개인의 참호 수준으로 무장한 채 뛰어든 격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설명하는 사람도 어려웠고 듣는 측에서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귀가 멍멍해지는 전쟁의 포화와 주변에 널린 피비린내에 지쳐 돌아온 상이용사에게 "네가 있던 전쟁터는 본래 그런 데가 아니었어"라고 이야기해봐야 그 속뜻이 들릴 리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저는 그런 전쟁터를 아수라판이라고 봅니다만, 어쩌면 시장에 투입할 거래자금을 삼국지류의 전쟁터에 나오는 병사 수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예컨대, 나에게 1만의 병사가 있고, 적진에는 10만의 병사가 있습니다. 나는 1만의 병사를 투입해 한 방에 승부에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10만을 가진 적진은 유인계로 3천을 투입해 나와 피흘리는 백병전에서 3천을 버리는 대신 내 병사 7천을 계곡으로 유인합니다. 의기 충천한 7천의 내 병사는 계곡에서 고작 2천도 안 되는 적진의 병사들에게 몰살당합니다. 적진은 3천의 목을 버리고 제가 애지중지하던 1만의 목을 거두어 갑니다. 이런 옛날 전쟁터의 모습이 오늘의 현대판 금융시장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게 1만의 병사가 있음을 나는 알지만, 적진에 병사가 얼마나 있으며 적장이 어느 전선으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투입할지, 노림수인지 유인계인지, 그 순서는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는 게 요즈음의 시장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의 시장에는 옛날 전쟁터와 달리 새로운 전선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전선입니다. 시간의 지평을 내가 바꾸면 그 지평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적들도 전혀 달라집니다. 맹수들은 성미 급하게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보지만, 어쨌거나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두 용해되기 마련입니다.

그 친구, 나름대로 설정한 전선에서 크게 패배한 경험에 대해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상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이야기의 마디마디가 끝나기 전에 "맞아, 그래 맞아"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친구 역시 이미 되새기고 있던 아픈 과오를 제가 다시 후벼 놓았나 봅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저는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한강가의 낚시터로 가겠다 하고 저는 집으로 향하며, 서로의 발길은 그렇게 갈라졌습니다.

집으로 향하던 길에 그 친구가 아직 한강가의 낚시하는 데 있겠지 하는 생각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친구의 마음을 달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에 이런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고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후회와 탄식이 클수록 새출발 또한 커지니, 부디 마음의 밭을 가꿀수록 시야는 밝아지리.."

"동감"

"무얼 낚든 낚시대 드리운 사람은 물고기 만나기 전의 뜻이 있으리"

"지금 생각을 낚는 중"

"추석 앞둔 달빛 좋은 강가에 생각을 낚는 친구 있으니, 또 좋고!"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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