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5일 일요일

발췌읽기: 홍기빈 // '검은 돈'은 우연적인 일화가 아니다

출처: 장 지글러 지음.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3 (원저 1990년)

위 도서의 해제: 홍기빈 지음. "'검은 돈'은 우연적인 일화가 아니다"


※ 발췌: 

* * *

( ... ... ) 18세기에 들어 출현한 근대의 화폐제도는 근대 이전에 존재했던 두 가지의 금융 네트워크 즉 조세 권력을 기초로 한 국가의 주화 발행과 유통, 그리고 상인들 간의 신용을 기초로 한 상업계 내의 신용지권(paper credit)의 발행과 유통이 하나로 융합되어 생겨난 것이다.[주]1
[주]1. 조프리 잉햄. 홍기빈 옮김. <돈의 본성>(삼천리, 2011). 이러한 사실을 최초로 강조했던 이론은 20세기 초 독일의 크나프(George Friedrich Knapp)가 내놓은 화폐 국정설이다.
16세기까지 이 두 가지의 화폐 네트워크는 서로 의존하면서 한편으로 서로 갈등하는 관계였다. 특히 국가 측에서는 당신 상인들 사이에 유통되던 대표적인 신용지권이었던 각종 환어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16세기 영국의 헨리 7세는 상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환어음을 유통시키고 국가가 발행한 주화의 사용을 기피한다고 보아 환어음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사실 헨리 7세의 의심은 상당히 근거가 있다. 환어음은 발행 장소와 유통 주체들의 공간적 이동 그리고 상환의 시간적 차이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아예 그 자체로 이윤까지 듬뿍 만들어낼 수 있는 탐나는 금융상품이었다. 그러니 허술하기 짝이 없던 당시의 조세체계를 우회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의 지하경제에서는 공식적 화폐인 페소 대신 독특한 방식으로 이서가 이루어지는 '날으는[? 날아 다니는] 수표(flying check)'가 탈세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미 16세기의 튜더 왕가는 이러한 민간 금융업의 속성을 잘 이해했기에, 국가가 주관하는 공적인 화폐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갖은 방법으로 이와 경쟁해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환어음 사용을 금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부터 주화의 귀금속 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것이 영국이 파운드 스털링 시스템에 맞추어 발행한 기니와 크라운 등 각종 주화들이 국내적, 국제적 공신력을 갖게 된 계기다.

그러다가 17세기 끝 무렵 드디어 영국의 영란은행이 설립되면서 국가와 민간의 두 화폐 네트워크는 하나로 결합된다. 그 결과 국가도 국채 발행과 중앙은행의 장치를 이용하여 자기들이 발행하는 화폐를 통해 상인 네트워크의 재화를 얼마든지 징발할 수 있게 되었다. 상인들 특히 은행가들도 자기들끼리 임의로 발행할 수 있는 각종 신용증서들을 국가가 인증하는 조세 지불수단 즉 법적인 강제력을 가진 최종 지불수단으로서의 법화(legal tender)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일종의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 그 기초가 되는 정부 채건과 그 궁극적 기초인 조세 수입 등의 사항은 시시콜콜 낱낱이 공시되며, 정부 지출과 재정 건전성은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한 민간 금융기관들의 철저한 감시 아래에 놓인다.

하지만 그 반대는 어떨까? 민간의 금융 행위자들이 '고성능 화폐[high-powered money = 본원통화 = 일상적인 말로, '현찰'이 되겠다. 독자메모]'로 바꿀 수 있다는 약속 아래 창조하고 유통시키는 신용창출의 현황을 정부가 다 감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민간에는 무수한 종류의 경제 행위자들이 있으며 이들끼리 본원통화로 표시하고 결제하기로 합의한 모든 채권과 채무는 잠재적으로 화폐가 된다. 그리고 이를 중앙은행과 연결된 민간은행이 승인하는 순간 이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화폐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은행만 승인해 준다면 모든 종류의 채권증서는 다 화폐로 변하는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서 파괴적인 금융 위기를 무수히 겪으면서 정부 측도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은행을 방패로 삼아 민간이 멋대로 만들어내는 '화폐'의 물결 때문에 거품이 생겨나며, 그 거품이 붕괴할 때에는 채권 채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은행을 볼모로 한 온 나라의 경제 체제가 다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은 은해을 제대로 규제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 하나의 상식이 된다. 은행은 무엇보다 하나의 기업이며, 자기들의 수익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규제하지 않고 그냥 둘 경우, 태양 아래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채권 채무는 적당한 할인율·수익률만 매겨진다면 모두 은행이 게걸스레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1929년의 대혼란을 겪은 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를 목표로 했던 글래스-스티걸법은 그러한 지혜가 법제화된 전형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은행과 금융업자들은 실로 기상천외한 가지각색의 '금융 기법'을 동원하여 이러한 규제를 쉽게 벗어나기 일쑤다. 그래서 이미 예전부터 공시적인 화폐 시스템 바깥에서 엄청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은행가들이라는 점은 무의식중에 상식이 되어 있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부터 대영 제국이 완성될 때까지 절대적인 기여를 했던 로스차일드등은 국가 체제를 넘어선 '오트 피낭스(haute finance)'로서, 그 엄청난 자금력으로 금융계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국제 정치와 세력 균형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절에도 스위스 바젤에 모인 전 세계 주요 은행가들 및 기업가들의 사조직인 국제결제은행 또한 초국가적 금융 흐름으로 존재하면서 히틀러에게 자금을 대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주]2  역사상 전 세계의 자금 흐름이 국가 체제에 의해 가장 잘 통제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50년대와1960년대에도 이러한 '장외 화폐 시장'이라고 할 유로 달러 시장은 한없이 불어만 갔다. 1960년대 말이 되면 이[= 유로 달러 시장, 독자메모]는 공식적인 각국 중앙은행 간의 거래를 위협할 정도의 규모가 되어 결국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근대 금융 시스템의 역사는 곧 은행들이 동원하는 이 '묻지마' 자금의 흐름에 고삐를 채울까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2. 이러한 전력 때문에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가 열렸을 때 국제결제은행을 강제로 청산하기로 결의된다. 하지만 케인스 등을 비롯하여 영국과 미국의 여러 인사들이 막아서면서 이 결의는 실행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톰과 제리처럼 서로 쫓고 쫓기는 경주는 최근 몇 십 년간의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오자 은행과 민간 신용 네트워크의 거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되었다. 민간의 금융기관들로만 구성되는 금융 시스템은 효율성에선 안정성에서나 완벽하다고 선언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국가의 모든 규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를 망치는 악이라고 낙인찍혔다. 히틀러의 돈줄 역할을 하다가 청산까지 당할 뻔했던 국제결제은행은 어느 새 은행들의 지구적인 '자율적' 규제 기관 노릇을 하게 되었고, 아무 효과도 없는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난 '자기자본 규제'라는 알량한 장치 하나를 핑계로 삼아 은행들에게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글래스-스티걸법은 완전히 사라졌고,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악기 위한 이자율 결정 하나만 빼고는 거의 손이 묶인 채 은행들의 현금 자동 지급기로 전락하였다. 19세기 자유방임 자본주의 시절을 능가하는 국제적 자본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자 큰 뭉칫돈들은 세계 곳곳의 조세 피난처로 모여들었꼬, 초국적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이곳으로 돈을 빼돌려 불법적 탈세를 일삼는 것을 무슨 '선진 금융기법' 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장 지글러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들은 이와 같은 근대 이후의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생각해 보면 결코 몇몇 못된 개인들의 일탈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범죄 조직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스위스나 몇몇 특수한 지역의 별쭝난 금융 기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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